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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7: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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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 소망도 없고 살 수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진다면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절실한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특히 죄를 짓고도 그것을 숨기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십니다. 죄는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단절시킵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하려 합니다. 성도에게 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러한 사탄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가나안 을 정복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아간이라는 한 사람을 범죄케 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게 하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이스라엘은 작은 성 아이와의 전투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색출하여 제거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 죄를 처리하지 않으면 함께 하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아간이 범죄한 것으로 드러나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이스라엘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 초대교회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신들의 토지를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땅 판 값의 일부를 숨기고 일부만 가지고 와서 그것이 전부라고 속이면서 드렸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제 교회가 세워져 힘차게 성장해가고 있었는데, 만일 이러한 죄가 교회에 퍼진다면 교회는 힘을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두 사람을 엄중하게 책망했고, 이 부부는 베드로 앞에서 죽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는 숨겨 놓은 죄가 없습니까? 은혜가 메마르고, 삶이 곤고한 원인이 숨겨 놓은 죄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만일 숨겨 놓은 죄가 있다면, 속히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해결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곤고함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죄가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버림으로써 다시금 은혜를 회복할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아이 성 전투
난공불략의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다음 성인 아이를 정복할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작은 성이었던 아이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뜻밖의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원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 성 전투는 시작부터 여리고 전투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여리고 전투는 하나님의 승리의 약속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6:2) 여리고 전투는 승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이 성 전투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7:1) 그러므로 아이 성 전투는 패배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상대가 누구이며 얼마나 강한지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여부가 전쟁을 좌우했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에서는 그 성이 심히 견고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성 아이와의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쓰라린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음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를 신중하게 준비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정탐꾼들을 보낸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2절) 정탐꾼들은 아이 성을 살펴보고 와서 여호수아에게 보고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고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3절)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의 의견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4절)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공격할 때 이처럼 신중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은 아이 사람들 앞에서 패퇴했습니다. 그날 전투에서 이스라엘 사람 36명이 전사하고 이스라엘의 사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을 36명쯤 쳐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5절)
여호수아의 준비와 작전은 신중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여호수아가 아이 성 전투를 준비한 과정을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와의 군대대장께서 전쟁 직전에 이스라엘에게 오셨습니다. 여리고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작전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아이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이 단독으로 모든 것을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먼저 여쭈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아간의 범죄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교만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원인을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리고라는 크고 견고한 성을 쉽게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처럼 작은 성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만해지고 방심했던 것입니다.
정탐꾼들이 가서 살펴보니 아이 성은 작은 성이었고,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다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의 말대로 삼천 명쯤 되는 군대를 아이 성으로 보냈습니다. 나머지 백성들은 여유 있게 편히 쉬면서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려온 것은 승전보가 아니라 뜻밖에도 처참한 패배의 소식이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여리고 전투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성을 열세 번 돌았고 소리를 한 번 질렀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견고하던 성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성에 들어가 승리를 얻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리고 승리로 교만해졌습니다. 가장 견고한 성을 이렇게 쉽게 물리쳤는데, 아이처럼 작은 성이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교만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자기들의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만이 바로 패배의 원인이었습니다.
아간의 범죄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간의 범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바치고 절대로 각 개인이 취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수6:18)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이 명령을 어겼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1절)
아간은 사람이 보지 못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죄는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끊임없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괜찮다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이번 한 번뿐이니 눈 딱 감고 지나가면 된다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아간의 죄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타격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아간의 범죄는 개인의 범죄가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아간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온 이스라엘이 아이 전투에서 패배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 패배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는 크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5절) 결국 아간의 범죄는 불같이 타오르던 이스라엘의 부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
아간이 여리고 성의 물건을 취한 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취한 것이었습니다. 이 아간의 범죄는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바쳐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12절) 그래서 그들은 작은 성 아이와의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리고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멸망을 당했으며, 그 성의 모든 물건들은 불살라야 했습니다. 불에 타지 않는 물건들은 불을 지나게 한 후 하나님의 곳간에 넣게 했습니다. 아간은 이렇게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취함으로 자신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바쳐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두려운 경고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을 너무나도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임의로 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십일조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3:8)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것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3:9)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십일조를 개인적으로 취하는 것은 결코 유익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인생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인생인데 우리는 아직도 인생을 내 맘대로 살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실패가 오고 삶이 곤고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을 이제는 내려놓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진정한 평안과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불평과 기도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후 작은 성 아이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여호수아는 너무나도 당황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 쓸 뿐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6절)
여호수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보십시오.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다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7-9절)
여호수아는 아간의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슬퍼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려고 하시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 자신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사기가 떨어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고 불평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가나안 족속들이 사기가 올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되지 않겠느냐고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이 혼란스럽고 두려운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기도할 수만 있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11-12절)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15절)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아간의 죄는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안겨주었으며, 아간 자신과 그의 온 가족이 처형을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단절시키며,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 죄 때문에 우리는 실패하고 곤고하게 됩니다. 죄는 이렇게 심각하고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곤고함은 무엇 때문입니까? 당신에게 숨겨놓은 죄가 있지는 않습니까? 즉시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회개하고 그 죄를 버리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막힘없이 당신에게 부어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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