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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전7: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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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전도서(19) 7가지 역설적인 진리 (전도서 7장 1-10절)
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는 진리(1절)
전도서 7장은 ‘역설의 장’이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상식을 깨는 7가지 역설적이 나오는데 그 중의 첫째 진리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는 진리입니다. 이름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어떻게 보면 목숨과도 같습니다. 목숨과 재물을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얘기에서 부자의 이름은 성경에 안 나오지만 가난한 나사로의 이름은 나옵니다. 믿음으로 주어진 가장 복된 일은 그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책이 기록된 것입니다. 물질보다 이름이 소중하고 권세보다 인격이 소중합니다.
2.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는 진리(1절)
왜 죽는 날이 낫습니까? 하나님 안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믿음 안에서는 죽음조차 최선의 결과이고 최종적인 치유입니다.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잠깐 동안은 슬프지만 곧 슬픔을 뒤덮는 소망의 빛이 그 마음에 임하게 됩니다. 언젠가 기쁜 모습으로 재회하게 될 날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재회의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면 큰 힘과 평안을 얻습니다.
3.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진리(2절)
잔칫집은 자신을 망각하게 만들지만 초상집은 자신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잔칫집에서 한바탕 먹으면 남는 것은 배탈 밖에 없지만 초상집에 갔다 오면 인생의 엄숙한 자각을 하게 됩니다. 초상집에 가서 초보 철학자처럼 “이제 곧 나도 죽을 텐데 저 죽음의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하면 그 초상집은 어떤 교실보다 훌륭한 교실이 됩니다. 초상집에는 죽은 자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가야 하지만 죽음으로부터 지혜를 얻기 위해서도 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출생을 축하하지만 기독교는 죽음도 축하합니다. 그것이 복음만이 가지는 위대한 저력입니다.
4.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는 진리(3절)
맑고 건강한 웃음은 좋은 것이지만 가식적인 웃음은 차가운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식적인 웃음보다는 차라리 진지한 슬픔이 더 낫습니다. 슬픔 속에는 오히려 진실이 있고 슬퍼하는 사람들은 대개 정직합니다. 또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때 진정한 치유도 일어납니다. 눈물이 마른 것은 감격도 상실한 것입니다. 눈물은 마음의 창을 닦는 세정제이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치료제입니다. 진실한 눈물을 박카스 병으로 한 병만 채울 수 있어도 암과 그 외의 수많은 병이 떠나갈 것입니다.
5. “지혜자의 책망이 우매자의 노래보다 낫다.”는 진리(5-7절)
여기서 우매자의 노래란 ‘어리석은 자의 아첨’을 뜻합니다. 어리석은 자의 아첨은 자신을 점차 멸망으로 이끌지만 지혜로운 자의 책망은 자신을 일깨웁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잘못을 지적해줄 수 있는 깊은 단계에 이르기 전에 책망부터 하면 피차 불편해집니다. 서로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책망의 단계에 이르려면 책망 전에 먼저 죽도록 충성하는 삶을 보여주십시오. 그 단계에까지 이르도록 가까운 사람이 바로 자신의 배우자입니다. 좋은 부부는 책망을 주고받아도 별 탈이 없습니다. 그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면서 책망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는 교제를 추구하십시오.
6.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진리(8절)
한국인은 거창한 시작을 좋아하지만 사실상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다 그랬습니다. 기독교는 종말론적인 종교입니다. “이제 곧 내 삶의 끝이 온다.”는 엄숙한 사실 앞에서 겸허하게 서십시오. 그처럼 종말을 인식하며 결산의 그 날을 바라보고 오늘의 순간을 진지하게 사십시오. 살다 보면 풀기 힘든 문제를 당할 때도 있지만 그때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반드시 문제는 풀립니다. 그 다음에 보면 어느덧 더 성숙해 있고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훨씬 복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처럼 최종승리가 보장된 존재로서 마무리를 잘하는 심령이 되십시오.
7.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는 진리(8-9절)
하나님은 인내를 이루게 하려고 시련을 허용하시고 그 시련 가운데서 주님의 형상을 만들어 가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필생의 꿈과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이 느껴질 때 어떻게 쉽게 기뻐하고 인내겠습니까? 그래도 인내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아무리 힘든 고난이라도 그 상황이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모든 고난의 터널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인내하면 찬란한 영광의 때가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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