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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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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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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예수님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는 절대로 알 수없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그의 친어머니와 형제들까지도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오해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님의 감화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족관은 혈통 가족보다 영통 가족(靈通家族)을 주요시(主要視)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친 가족들을 시하고 버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였고(눅2:51)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어머니를 도왔고(요2), 십자가에서는 그 모친을 사도요한에게 부탁하기도 하셨습니다(요19:26-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육신의 인연 보다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신령한 인연으로 된 형제 자매가 더욱 귀하다고 하십니다.
오늘 내가 예수님과 한 가족이라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하여 내가 지불해야될 나의 노력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추고 싶을 만큼 기가 막히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한 가족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예수님과 한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인 줄 알았습니다.
높은 빌딩을 짓기 위해서는 땅을 깊이 파서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물이 흔들리지 않고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실 때 드단 거민에게 말씀하시기를 돌이켜 도망하여 '깊은데 숨을 지어다'(렘49:8)하셨습니다. 에돔을 떠나 안전한 비밀 장소에 숨음으로써 그들은 무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방법입니다.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가장 깊숙한 비밀의 장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짝하여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마치 남과 북이 만나는 휴전선 근처에서 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늘 긴장되고 불안한 삶을 살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가능하면 멀리 떨어진 가장 깊숙한 곳에 마련된 하나님의 연회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모든 신자들이 다 받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적극적인 구원의 경험'을 하려고 하는 대신에 소극적인 구원의 어떤 흐름을 따라 그저 평범한 신자로 남고 맙니다.
주의 깊게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그 관계가 실제적으로 살아있는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생명이 있습니다(요5:25) 이 생명은 에스겔의 강처럼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를 기쁘게, 건강하게, 열매맺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도 있습니다(롬8:2) 룻이 보아스와 결혼함으로 그의 모든 재산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듯이 이 생명은 충만하고 무한히 풍요하신 그리스도 안에 참예하게 합니다. 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생명도 있습니다(왕하2:2) 이 생명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혹은 그와 똑같은 모든 일을 행함을 뜻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바로 나를 그분의 가족으로 부르십니다. 부르실 때 얼른 대답하고 따라 나서렵니까? 그분은 그의 영적인 가족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그 평강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범사에 기도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또 그 평강은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따르도록 우리 안에 사십니다. 그분의 가족이 되는 일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분이 부르실 때 '네'하고 대답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손을 잡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깊숙한 곳 비밀의 화원으로 입장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손잡고 걷는 이길 넘치는 기쁨 주체할 길 없네! 아멘 아멘 ^^
예수님의 가족관은 혈통 가족보다 영통 가족(靈通家族)을 주요시(主要視)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친 가족들을 시하고 버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였고(눅2:51)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어머니를 도왔고(요2), 십자가에서는 그 모친을 사도요한에게 부탁하기도 하셨습니다(요19:26-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육신의 인연 보다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신령한 인연으로 된 형제 자매가 더욱 귀하다고 하십니다.
오늘 내가 예수님과 한 가족이라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하여 내가 지불해야될 나의 노력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추고 싶을 만큼 기가 막히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한 가족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예수님과 한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인 줄 알았습니다.
높은 빌딩을 짓기 위해서는 땅을 깊이 파서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물이 흔들리지 않고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실 때 드단 거민에게 말씀하시기를 돌이켜 도망하여 '깊은데 숨을 지어다'(렘49:8)하셨습니다. 에돔을 떠나 안전한 비밀 장소에 숨음으로써 그들은 무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방법입니다.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가장 깊숙한 비밀의 장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짝하여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마치 남과 북이 만나는 휴전선 근처에서 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늘 긴장되고 불안한 삶을 살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가능하면 멀리 떨어진 가장 깊숙한 곳에 마련된 하나님의 연회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모든 신자들이 다 받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적극적인 구원의 경험'을 하려고 하는 대신에 소극적인 구원의 어떤 흐름을 따라 그저 평범한 신자로 남고 맙니다.
주의 깊게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그 관계가 실제적으로 살아있는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생명이 있습니다(요5:25) 이 생명은 에스겔의 강처럼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를 기쁘게, 건강하게, 열매맺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도 있습니다(롬8:2) 룻이 보아스와 결혼함으로 그의 모든 재산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듯이 이 생명은 충만하고 무한히 풍요하신 그리스도 안에 참예하게 합니다. 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생명도 있습니다(왕하2:2) 이 생명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혹은 그와 똑같은 모든 일을 행함을 뜻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바로 나를 그분의 가족으로 부르십니다. 부르실 때 얼른 대답하고 따라 나서렵니까? 그분은 그의 영적인 가족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그 평강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범사에 기도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또 그 평강은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따르도록 우리 안에 사십니다. 그분의 가족이 되는 일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분이 부르실 때 '네'하고 대답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손을 잡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깊숙한 곳 비밀의 화원으로 입장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손잡고 걷는 이길 넘치는 기쁨 주체할 길 없네! 아멘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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