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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49: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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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내 발 밑에 있는 무저갱을 깨닫게 하소서!
본문/ 시49:1-20, 시62:1-12, 계20:1-15
1. 들어가는 이야기
나는 12월 1-5일, 4박5일 일본 선교유적지 여행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지만 나에게 가장 절실한-인상적인 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無低坑(무저갱)에 대한 실존적 체험이었습니다.
지난 12월 5일(금), 오후 7시 비가 내리는 시모노세키 항을 떠난 배가 밤비 내리는 바다를 가르며 항해 중이었습니다. 나는 밤에 우연히 그냥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때는 밤 1시 30분, 희미한 갑판 조명등, 비바람이 몰아치고, 배전 아래로는 검은 물결이 일렁이고,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였습니다. “하, 이러다가 비바람에 휩쓸려 바다에 빠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겠구나” 하는 무섬증에 나도 모르게 갑판 벽에 붙어 있는 쇠손잡이를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하늘 땅 그 어디에도 불빛 한 점 없고 문자 그대로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잠시 어둠 그 자체를 응시하였습니다. 그 때 내 마음 속에 떠오른 것이 성경에 나오는 無低坑(무저갱-Abyss)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2. 죽은 자들의 거처-무저갱(Abode of the Dead-Abyss)
구약성경은 죽은 자들의 거처-도착지(destination)-운명(fate)에 대하여 공식적인 교리(doctrine)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망각의 땅(the land of ovlivision 시88:12), 음부(the depthe 시139:8), 감사도 없고 찬양도 없는 곳(시30:9), 땅 아래(민16:30), 어둡고 그늘진 죽음의 땅(욥10:20-21), 적막한 곳(시94:17), 깊은 고통, 큰 물, 멸망의 웅덩이, 우주의 외진 곳(욥26:5-6), 깊은 구덩이, 깊은 어두움(the lowest pit, the darkest depths 시88:6), 쉐올, 아바돈, 구덩이 등입니다.
특히, “쉐올” 은 히브리 특유의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지하 세계”를 지칭하는 말로서 죽은 자를 불러내는 신탁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으로 하여금 주술로서 쉐올에 있는 사무엘을 불러낸 사건, 삼상28:3-19, 신18:11).
신약성경은 죽은 사람들의 거처를 분명히 구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은 사람의 거처인 천국과 사악한 사람들의 거처인 지옥이 바로 그것입니다(요한계시록20-22장). 신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옥(hell-inferno-perdition)에 대한 표현은 희랍어 하데스(Hades-죽은 자들이 거처하는 지하 세계), 타르타루스(tartarus-하데스 아래 깊은 어두운 구덩이. 벧전2:4), 게헨나(gehennna-힌놈의 골짜기-불타는 지옥), 무저갱(Abyss-바닥을 알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 불못(the lake of fire) 등이 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신약시대에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대문서는 여러 파편으로 편집되어 남아 있는 에녹서(10:2, 22, 102:5)라고 합니다.
참고 : IDB 1권 787-788쪽, 3권 361-362쪽.
3. 본문 시편49편 말씀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시편 49편 기자는 그 서두에서 “만민들아,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첫째. 지금 부귀한 자여, 지금 네가 누리는 부귀의 바로 그 아래 무저갱이 입을 벌리고 있음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역사는 勢不十年 花無十日紅(세불십년 화무십일홍-10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시49:17-19)” 하신 말씀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지금 빈천한 자여, “부귀한 자를 시기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 오히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 행위를 옳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14, 24)” 하신 말씀을 믿고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지금 부귀한 자여, 지금 빈천한 자여, 너는 죽는 존재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람은 “아담아,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네가 그 속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하신 말씀을 깜빡깜빡 잊고 삽니다.
지금 돈 좀 벌고-인기 좀 얻고-명예 좀 얻고-권세 좀 쥐면 다 저 잘나서 된 줄 알고 우쭐 거립니다. 소나 개나 아무나 돈-인기-명예-권세 얻는 것이 아니니 우쭐 거릴 만도 합니다. 겉으로 겸손한 척 하는 것 보다 훨씬 낫습니다. 반면에 지금 쪼달리고 궁지에 몰려 궁핍한 사람은 조상 탓-세상 탓-운명 탓하며 고개 푹 숙이고 삽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侈心(치심)치 말찌어다(시62:9-10)” 라고 하십니다. 부하다고 우쭐 거릴 것도 없고, 가난하다고 우울 할 필요도 없다고 하십니다. 빈부귀천은 세월 따라 변하고 흐르는 것이니 거기에 매달려 안달하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하십니다. 이 걸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귀하든 빈천하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죽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혹 부귀해서 혹 빈천해서 하나님을 떠나고-잊고-없다 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저 깊고 어두운 무저갱(a bottomless gloomy dungeons)으로 떨어지는 것이 사람의 실존인 것을 분명히 깨닫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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