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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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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마음 다스림의 방향성
본문/ 잠4:23, 16:32, 25:28
1. 들어가는 이야기
하나님의 생기로 지음 받은 사람의 마음은 무한히 신묘막측하여 마음이 하는 일을 무엇 무엇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사람의 知情意(지정의)-四端七情(사단칠정)-Etos-Patos-Logos 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데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우리는 체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위대성은 그가 처음으로 인간의 의식 아래 묻혀 있는 무의식 세계를 발굴하였다는 데 있습니다(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해석 문제는 별도다). 무의식은 사람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간에 어떤 한 사람이 눈+귀+코+혀+몸+육감으로 경험한 것을 고스란히 저장하는 무한 용량의 컴퓨터와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경험 한계 안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자연히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하여 그 자신의 의식-무의식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 이 무한 용량의 경험 컴퓨터에 거의 자동으로 즉각 접속합니다. 이 때 어디에 접속할 것인가? 어떻게 접속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를 관장하는 주체가 바로 마음입니다.
2. 그러므로 마음 다스림의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미국 100달러 화폐에 그려진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랭클린이 어렸을 때, 명절날 모처럼 넉넉한 용돈을 받아 가지고 거리에 나갔다가 장난감 가게에서 10불을 주고 울긋불긋한 멋진 호루라기를 샀습니다. 호루라기를 불면서 신나게 동네 골목을 누볐습니다. 잠시 후 똑 같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오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둘은 의기투합하여 더욱 재미나게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각자 호루라기 값을 말하였는데 그 친구는 길 건너편 가게에서 5불 주고 샀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이제까지의 재미는 바람처럼 날아가고 실망-후회-분노의 감정만 끓어올랐다고 하였습니다. 신중하지 못 하고 조급하여 잘못된 방향에 접속한 결과 심적-경제적 고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그때, 얼마나 속이 쓰렸으면 나이 78세에 쓴 자서전에 5살 때의 사건을 그처럼 세세히 기록하였을까!).
그래서 사람 마음 다스림의 방향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얼마 전 이승엽 선수가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사회자가 “홈런왕이고 잘나가는 이승엽 선수도 울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이승엽 왈 “부끄럽지만 많이 울었습니다. 일본에서 2군으로 밀려났을 때,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 때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결심했지요. 기필코 1군으로 돌아갈 꺼야! 라구요. 그리고 울면서 이를 악물고 연습했습니다.” 그 후 이승엽은 곧 1군으로 돌아갔고 더욱 훌륭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승엽의 마음 다스림의 방향이 “아, 이제 끝이로구나!” 하였다면 이승엽은 거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3. 마음 다스림의 기본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첫째. 마음 다스림의 기본 방향은 현실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일부러라도-억지로라도-말이 안 되더라도-심히 어리석어 보일찌라도-다른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든-무조건 눈 딱 감고 무조건! Positive-optimistic-prospective thought form 이어야 합니다. 긍정적-적극적-낙관적-희망적이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이 마음 다스림 방향성의 알파요 오메가이며, 그 외는 다 부수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聖 삼위일체 하나님이 천지창조 처음부터 그리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it was very good!)” 하신 것입니다. 그 후 인류 역사는 정치-군사-경제-학문-예술-과학-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긍정적-적극적-낙관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끌어 왔고,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역사 속에 구름 같이 늘어선 그 모든 증인들을 어찌 다 열거 할 수 있으리오!
둘째. 마음 다스림의 기본 방향은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선진국-문명국-큰 나라 사회와 후진국-야만국-별 볼 일 없는 작은 나라 사회의 결정적 차이는 원리-원칙이 통하는 사회냐? 아니면 편법-대충이 통하는 사회냐? 에 달려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되고, 안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니 됩니다. 후진국에서는 되는 것도 그 누구에게는 안 되고, 안 되는 것도 그 누구에게는 됩니다. 사람은 영물입니다. 말을 안 해서 혹은 말 못할 상황이라 그렇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힘-돈-빽이 없어 할 수 없이 후진국에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은 누구나 선진국에서 살고 싶은 겁니다.
그러므로 YMCA 첫 한국인 총무 月南 李商在(월남 이상재: 1850-1927) 선생은 제 나라도 지키지 못하는 말할 수 없이 못난 후진국 구한말 한국 사회를 향하여 一喝(일갈) 하기를 “이 세상에 원리-원칙을 벗어나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는 마음으로 오롯하다면 말 없는 가운데 그 마음은 충분히 자유자재할 수 있습니다(萬事無求源理外 一心自在不言中)” 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마음 다스림의 기본 방향은 하나님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우심(kenosis)을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빌2:1-11). 예의란 본질적으로 나의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상충 되었을 때 “나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고(빌2:3)” 예의 바른 태도-배려하는 태도-너그러운 태도-양보하는 태도-용서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사람”이란 말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란 문자 그대로 내가 “다른 사람”이라 여기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내 사람들-내 부모-내 아내-내 남편-내 아이들-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 도 포함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가정문제가 심각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잘하면서 정작 내 사람들에게는 소홀히 심지어는 함부로 막 대하는 데서 일어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라고 극단적으로 엄히 경계하신 것입니다. “특히 내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라!” 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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