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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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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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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15:7 외식(外飾)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誡命)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敬拜)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제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탈렌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얻은 별명이 아니고 제 스스로 붙인 별명입니다. 그것도 30분전에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 탈렌트는 두얼굴을 가진 배우입니다. 배우는 자기가 아닌 사람을 그럴듯하게 연기합니다. 더욱 리얼하게 연기하는 사람이 인기탈렌트가 되어 돈과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가장 그럴듯하게 살아주는 사람이 바로 탈렌트입니다. 오늘 말씀의 7절에 예수님께서는 성난 목소리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고함을 치십니다.
"이 탈렌트들아!" (외식하는 자들아!)
두 얼굴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외식하는 신앙인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조심할 것은 바로 외식이라는 함정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경계하신 것이 외식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3장에 '외식하는 신앙인이여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하며 외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일곱 번이나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외식은 2000년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나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그 외식하는 신앙인은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바리새인임을 인정하고나니 말씀이 파도처럼 밀려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떨리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외식하는 자입니까?
말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
남에게 시키기는 잘하면서 자신은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않는 사람
남에게 잘 보이려고 겉치레만 잘하는 사람
높은 자리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
천국문을 지키고만 있을 뿐 들어가려 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천국문을 막는 사람
열심히 전도해서 배나 지옥자식으로 만드는 사람
자기가 인도자라 하지만 스스로 소경인 사람
십일조를 한다고 하면서 의와 신은 무시하고 저버리는 사람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사람
겉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리나 속에는 끊임없는 욕망과 방탕과 악한 생각으로 가득한 이런 사람이 바로 외식하는자, 종교연극을 하는 탈렌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탈렌트들에게 이렇게 예언을 하였습니다.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먼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사람의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 자기 말을하면 안 들을 것 같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에 적당히 섞어서 그렇게 해서 자기의 생각과 말을 전하는 사람 - 적어도 하나님의 순수복음의 의미를 알기 전까지는 바로 제가 그런 외식하는자! 탈렌트였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가짜 목사인 박중훈이라는 배우는 정말 연기를 잘 하더군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온 성도들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 탈렌트가 지금 교회에 다닌다거나 새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감동적인 장면은 그야말로 탈렌트의 연기였습니다.(정말 연기였습니다) 이런 연기로 드리는 회개와 찬양과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으로는 딴생각하는 사람, 혹은 다른 목적과 동기로 교회에 오는 사람, 이런 사람의 예배도 박중훈의 연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외식은 누구나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만 처음 믿는 사람보다는 오래 믿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식하는 바리새인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거룩한 주일. 그대에게는 주일에 대한 기쁨과 감격스러운 마음이 있습니까? 오늘 예배에 대한 기대와 가슴뛰는 설레임이 있습니까? 시간이 되어서 허둥대며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채 겨우 자리에만 앉은 것은 아닌지요.
탈렌트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단과 교리와 전통과 노선과 신학과 제도와 직분과 신분과 해석과 목사를 통해서 성경을 보지 말고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만을 주목하고 그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저 순수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순수복음'이라고 오래전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른데서 이 단어가 쓰이고 있는지 없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없다면 아마 제가 처음으로 붙이는 이름이 되겠지요.(순복음과는 의미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성경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으면 말씀 그대로 부모를 공경하기만 하는 것이 순수복음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되,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나서 부모를 공경해야 된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걸 '고르반'이라고 합니다) 어쩌고 하면서 주석을 달아 원래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훼손시키면 그것은 오염된 복음입니다.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는 예는 위생을 위함이 아니고 또한 그것은 성경 말씀은 더더욱 아니고 힐릴(hillel) 이나 솸마이(shammai)같은 랍비들이 만들어서 전해져온 것입니다. 랍비 경전에 보면 '누구든지 손을(원 의미는 팔뚝까지)씻지 않고 먹는 자는 이단과 같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와서 따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교회의 전통을 어깁니까? 혹 당신들은 이단이 아닙니까? "
"너희는 어찌하여 '교회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느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느냐? 그것보다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우선이 아니냐?"
탈렌트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부정입니다. 외식에 빠지지 않는 길은 자신이 지금 외식하는 자임을 눈치채는 것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줄 정도로 자신을 부정하셨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겨누고 방아쇠가 당겨졌을 때 그 총알을 피하려 하지 말고 맞아 즉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그것을 방어하려고 몸부림 치지 말고 그대로 깔아 뭉개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부서지고 치이고 눌려서, 그 말씀에 커다란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자기 부정입니다.
탈렌트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꾸 바라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실감나게 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육성을 들으십시오! *
제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탈렌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얻은 별명이 아니고 제 스스로 붙인 별명입니다. 그것도 30분전에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 탈렌트는 두얼굴을 가진 배우입니다. 배우는 자기가 아닌 사람을 그럴듯하게 연기합니다. 더욱 리얼하게 연기하는 사람이 인기탈렌트가 되어 돈과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가장 그럴듯하게 살아주는 사람이 바로 탈렌트입니다. 오늘 말씀의 7절에 예수님께서는 성난 목소리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고함을 치십니다.
"이 탈렌트들아!" (외식하는 자들아!)
두 얼굴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외식하는 신앙인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조심할 것은 바로 외식이라는 함정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경계하신 것이 외식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3장에 '외식하는 신앙인이여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하며 외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일곱 번이나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외식은 2000년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나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그 외식하는 신앙인은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바리새인임을 인정하고나니 말씀이 파도처럼 밀려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떨리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외식하는 자입니까?
말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
남에게 시키기는 잘하면서 자신은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않는 사람
남에게 잘 보이려고 겉치레만 잘하는 사람
높은 자리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
천국문을 지키고만 있을 뿐 들어가려 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천국문을 막는 사람
열심히 전도해서 배나 지옥자식으로 만드는 사람
자기가 인도자라 하지만 스스로 소경인 사람
십일조를 한다고 하면서 의와 신은 무시하고 저버리는 사람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사람
겉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리나 속에는 끊임없는 욕망과 방탕과 악한 생각으로 가득한 이런 사람이 바로 외식하는자, 종교연극을 하는 탈렌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탈렌트들에게 이렇게 예언을 하였습니다.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먼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사람의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 자기 말을하면 안 들을 것 같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에 적당히 섞어서 그렇게 해서 자기의 생각과 말을 전하는 사람 - 적어도 하나님의 순수복음의 의미를 알기 전까지는 바로 제가 그런 외식하는자! 탈렌트였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가짜 목사인 박중훈이라는 배우는 정말 연기를 잘 하더군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온 성도들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 탈렌트가 지금 교회에 다닌다거나 새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감동적인 장면은 그야말로 탈렌트의 연기였습니다.(정말 연기였습니다) 이런 연기로 드리는 회개와 찬양과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으로는 딴생각하는 사람, 혹은 다른 목적과 동기로 교회에 오는 사람, 이런 사람의 예배도 박중훈의 연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외식은 누구나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만 처음 믿는 사람보다는 오래 믿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식하는 바리새인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거룩한 주일. 그대에게는 주일에 대한 기쁨과 감격스러운 마음이 있습니까? 오늘 예배에 대한 기대와 가슴뛰는 설레임이 있습니까? 시간이 되어서 허둥대며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채 겨우 자리에만 앉은 것은 아닌지요.
탈렌트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단과 교리와 전통과 노선과 신학과 제도와 직분과 신분과 해석과 목사를 통해서 성경을 보지 말고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만을 주목하고 그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저 순수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순수복음'이라고 오래전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른데서 이 단어가 쓰이고 있는지 없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없다면 아마 제가 처음으로 붙이는 이름이 되겠지요.(순복음과는 의미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성경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으면 말씀 그대로 부모를 공경하기만 하는 것이 순수복음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되,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나서 부모를 공경해야 된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걸 '고르반'이라고 합니다) 어쩌고 하면서 주석을 달아 원래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훼손시키면 그것은 오염된 복음입니다.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는 예는 위생을 위함이 아니고 또한 그것은 성경 말씀은 더더욱 아니고 힐릴(hillel) 이나 솸마이(shammai)같은 랍비들이 만들어서 전해져온 것입니다. 랍비 경전에 보면 '누구든지 손을(원 의미는 팔뚝까지)씻지 않고 먹는 자는 이단과 같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와서 따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교회의 전통을 어깁니까? 혹 당신들은 이단이 아닙니까? "
"너희는 어찌하여 '교회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느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느냐? 그것보다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우선이 아니냐?"
탈렌트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부정입니다. 외식에 빠지지 않는 길은 자신이 지금 외식하는 자임을 눈치채는 것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줄 정도로 자신을 부정하셨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겨누고 방아쇠가 당겨졌을 때 그 총알을 피하려 하지 말고 맞아 즉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그것을 방어하려고 몸부림 치지 말고 그대로 깔아 뭉개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부서지고 치이고 눌려서, 그 말씀에 커다란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자기 부정입니다.
탈렌트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꾸 바라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실감나게 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육성을 들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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