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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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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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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본문 19: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더나 요단강 건너 유대지경에 이르시니
예수님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갈릴리 사역과 예루살렘 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님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을 펼쳐 나가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부터 18장까지입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자와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능력 많으시며 부드러우시며 사랑이 넘치는 예수님 입니다.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어느 바닷가 거닐 때
그 갈릴리 오신 이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았네
나 그때에 확실히 소경이 눈을 뜨는 것 보았네
그 갈릴리 오신 이 능력이 나를 놀라게 하였네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모습을
나 뵈옵고 그 후로부터 내 구주로 섬겼네.
(찬송가 84장)
드디어 예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셧습니다.
놀라우신 에수그리스도. 그분이 이제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심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마가복음10:33-34) 죽음이 있는 저 너머 요단강을 향하여 나아가는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십시오. 그러나 그 죽음은 만인을 구원하기 위한 아버지의 거룩한 작정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예수님은 반쪽자리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그분의 신분이나 속성을 완전하지만 사역에 있어서 십자가를 지기전과 후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시다. 요단강이 항상 기점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신앙이 있고 아직 요단강 저편 갈릴리에 있는 신앙이 있습니다. 저 구약시대에 아브라함, 야곱도 그랬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목표는 요단강 건너 가나안땅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고난의 시작이지만 그러나 그 길은 새로운 새 생명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또한 반드시 건너야될 강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서둘러 요단강을 건너갑시다. 마음 단단히 먹고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부릅뜨고 이제 머뭇거리던 발걸음을 내 딧읍시다. 그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그 길만이 표면적 신앙에서 이면적 신앙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만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그분의 에루살렘 사역을 지켜보고 그에 동참합시다. *
예수님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갈릴리 사역과 예루살렘 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님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을 펼쳐 나가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부터 18장까지입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자와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능력 많으시며 부드러우시며 사랑이 넘치는 예수님 입니다.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어느 바닷가 거닐 때
그 갈릴리 오신 이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았네
나 그때에 확실히 소경이 눈을 뜨는 것 보았네
그 갈릴리 오신 이 능력이 나를 놀라게 하였네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모습을
나 뵈옵고 그 후로부터 내 구주로 섬겼네.
(찬송가 84장)
드디어 예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셧습니다.
놀라우신 에수그리스도. 그분이 이제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심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마가복음10:33-34) 죽음이 있는 저 너머 요단강을 향하여 나아가는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십시오. 그러나 그 죽음은 만인을 구원하기 위한 아버지의 거룩한 작정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예수님은 반쪽자리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그분의 신분이나 속성을 완전하지만 사역에 있어서 십자가를 지기전과 후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시다. 요단강이 항상 기점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신앙이 있고 아직 요단강 저편 갈릴리에 있는 신앙이 있습니다. 저 구약시대에 아브라함, 야곱도 그랬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목표는 요단강 건너 가나안땅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고난의 시작이지만 그러나 그 길은 새로운 새 생명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또한 반드시 건너야될 강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서둘러 요단강을 건너갑시다. 마음 단단히 먹고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부릅뜨고 이제 머뭇거리던 발걸음을 내 딧읍시다. 그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그 길만이 표면적 신앙에서 이면적 신앙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만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그분의 에루살렘 사역을 지켜보고 그에 동참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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