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
성경본문 : | |
---|---|
구분 : |
본문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39 둘때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드디어 바리새인 가운데 특별히 '율법사'가 등장합니다. 율법사는 율법에 정통한 사람으로 율법 해석의 전문가입니다. 마가는 '서기관' 누가는 '교법사'라 하였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율법에 많은 해석과 주석을 다는 일의 전문가였습니다. 율법을 613개로 나누고 248개는 적극적인 율법, 365개는 소극적인 율법이라 하여 사람들을 율법으로 꼼짝 못하게 묶어버렸습니다. 그런 대단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과연 율법사다운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받고 거침없이 대답을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37-38절)
한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기쁘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모든 인생의 가장 마땅한 본분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는 율법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자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자기의 존재의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배대신 섬기고, 경쟁 대신 희생하고, 소유 대신 나누어주고, 받는 대신 주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반대는 '자기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사랑, 자기 만족, 자아 성취를 위해 싸우고 서로 착취하면서 살아갑니다. 교회에 오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옵니다. 자기의 성공, 자기의 건강, 자기의 가정, 자기의 축복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기도를 해도 자기 교회, 자기 민족, 자기 나라를 위해서만 합니다. 자기 교단, 자기 교회 목사만 최고로 복을 주시고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기적이며 물질적이며 지배적이며 투쟁적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과연 나는 어떤 삶의 원리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머리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흠뻑 빠지고 싶은데 왜 안됩니까? 머리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관념이나 지성이나 지식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해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론이나 학문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비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은 교리나 신학에 매인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가슴을 열고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해야 할 분입니다. 그분은 지금 내 앞에 계신 분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또한 목숨을 바쳐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적당히 믿으려 하면서 하나님을 만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한가하신 분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듯,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이 병들었든 건강하든, 아내가 이쁘든 아니면 미웁든 그런 것 상관없이 무조건 사랑해야 하듯이 무조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시하게 사랑해 놓고 어찌 하나님의 커다란 사랑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생명걸고 사랑해 주셨듯이 우리도 생명 걸고 그분에게 보답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의 사랑이 변덕스러우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자기의 사랑이 이기적이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이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온 정성을 다하여, 모든 생각과 의지를 동원하여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 돈, 시간, 정열, 은사 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고 영광도 없고 빛도 없을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상대적이거나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최상, 최고의 존재이니 우리도 최상의 것 최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예배요,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예배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드린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 최상의 것을 드리지 않으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시간이 있으니까 나와주고, 돈이 남으니까 헌금 좀 하고, 심심하니까 봉사좀 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요, 우주를 만드신 분이요, 영광과 권세와 존귀를 받으실만한 최선 ,최상, 최후의 존재입니다.
아무리 주일에 교회에 와서 앉아있어도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자! 그분에게 나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최선의 것을 드려서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체험합시다. 이 세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놀랍고 거룩하고 신비하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찬 것을 느껴봅시다. *
드디어 바리새인 가운데 특별히 '율법사'가 등장합니다. 율법사는 율법에 정통한 사람으로 율법 해석의 전문가입니다. 마가는 '서기관' 누가는 '교법사'라 하였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율법에 많은 해석과 주석을 다는 일의 전문가였습니다. 율법을 613개로 나누고 248개는 적극적인 율법, 365개는 소극적인 율법이라 하여 사람들을 율법으로 꼼짝 못하게 묶어버렸습니다. 그런 대단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과연 율법사다운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받고 거침없이 대답을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37-38절)
한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기쁘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모든 인생의 가장 마땅한 본분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는 율법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자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자기의 존재의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배대신 섬기고, 경쟁 대신 희생하고, 소유 대신 나누어주고, 받는 대신 주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반대는 '자기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사랑, 자기 만족, 자아 성취를 위해 싸우고 서로 착취하면서 살아갑니다. 교회에 오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옵니다. 자기의 성공, 자기의 건강, 자기의 가정, 자기의 축복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기도를 해도 자기 교회, 자기 민족, 자기 나라를 위해서만 합니다. 자기 교단, 자기 교회 목사만 최고로 복을 주시고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기적이며 물질적이며 지배적이며 투쟁적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과연 나는 어떤 삶의 원리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머리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흠뻑 빠지고 싶은데 왜 안됩니까? 머리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관념이나 지성이나 지식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해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론이나 학문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비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은 교리나 신학에 매인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가슴을 열고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해야 할 분입니다. 그분은 지금 내 앞에 계신 분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또한 목숨을 바쳐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적당히 믿으려 하면서 하나님을 만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한가하신 분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듯,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이 병들었든 건강하든, 아내가 이쁘든 아니면 미웁든 그런 것 상관없이 무조건 사랑해야 하듯이 무조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시하게 사랑해 놓고 어찌 하나님의 커다란 사랑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생명걸고 사랑해 주셨듯이 우리도 생명 걸고 그분에게 보답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의 사랑이 변덕스러우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자기의 사랑이 이기적이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이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온 정성을 다하여, 모든 생각과 의지를 동원하여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 돈, 시간, 정열, 은사 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고 영광도 없고 빛도 없을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상대적이거나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최상, 최고의 존재이니 우리도 최상의 것 최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예배요,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예배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드린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 최상의 것을 드리지 않으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시간이 있으니까 나와주고, 돈이 남으니까 헌금 좀 하고, 심심하니까 봉사좀 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요, 우주를 만드신 분이요, 영광과 권세와 존귀를 받으실만한 최선 ,최상, 최후의 존재입니다.
아무리 주일에 교회에 와서 앉아있어도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자! 그분에게 나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최선의 것을 드려서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체험합시다. 이 세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놀랍고 거룩하고 신비하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찬 것을 느껴봅시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