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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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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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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본문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열길 물 속은 몰라도 한길 사람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헤아리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을지 몰라도 예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참된 신앙은 속지 않으시는 예수님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용이나 결과 보다는 언제나 동기와 과정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형식을 좋아하는 사람들, 세속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는 사람들을 보고 분노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따라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율법은 땅의 소산을 드리라고 하였는데 열심히 특심인 이사람들은 한술 더 떠서 드리지 않아도 상관없는 박하, 회향, 근채의 십일조까지 떼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요리를 하는데 조미료를 치면서 그 조미료의 십분의 일을 덜어내 십일조로 드리고, 음식을 먹은 후 입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은단을 먹으면서 그 작은 알갱이의 개수를 세어 십분의 일을 떼어내는 모습을... 아주 작고 미세한 것까지도 쪼개는 그 기가막힌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가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까지 엄격하고 완벽하게 갈라내어 드리는 그들의 철저한 십일조 생활은 현대인들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문에 보이는 것들은 철저하고 엄격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소홀히 했던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버렸다고 했습니다. 무관심해서 못 지킨 것이 아니라 아예 무시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제 가슴이 뜨끔합니다. 저는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보이는 것조차도 무시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십일조란 무엇입니까? 바로 의(義)와 인(仁)과 신(信)입니다.
의(Justice)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인(Mercy)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입니다.
신(Faithfulness)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그런 것 말고 내 안에 '정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가장 확실한 표적은 '정직'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정직'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정직'입니다. 정직하십니까? 정말 정직하십니까? 누가 내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음란하고 더럽고 거짓이 있고 음모와 술수와 온갖 응큼한 것을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겉으로 구제하고 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마음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찬송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순결함이 있는가? 정직함이 있는가? 혹 나쁜 동기나, 이기적인 계산은 없는가? 하나님은 이것을 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 가장 밑바닥에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하고 감춰놓은 그것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생활비를 아껴서 하는 구제나 선교, 심지어 집을 팔아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그런 대단한 믿음(?)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펼치는 그런 구제와 선교와 믿음의 행위에 하나님의 어질음(인애)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가. 정말 하나님의 긍휼이 있고 사랑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무서운 것은 냉랭함과 무관심입니다. 관념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고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내 안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측정하는 한가지 기준은 그 사람이 늘 변함이 없는가. 아니면 수시로 변하는 변덕장이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 신앙인인가 가짜 신앙인인가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뜨겁고 열정적이고 능력을 행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적절한 판단 기준이 못됩니다. 처음이나 끝이나 변함이 없는 사람, 한 길을 가는 사람, 환경의 고통이 올지라도, 폭풍이 내리치고 천둥이 치고 지진이 날 지라도 변하지 않는 믿음, 이 믿음이 진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소산의 십일조는 지나치도록 철저하게 드리면서 정말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구나! 어디 있느냐?" 아무리 거룩하게 몸단장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럴듯하게 기도하고 돈을 다리미로 다려서 헌금을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속에 위선과 불의가 있다면 하나님은 나를 인정하지 않으실 것 입니다. 우리의 신앙 안에 무관심과 용서하지 못하는 분노와 미움이 있다면 예수님은 "너는 누구냐?" 나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절)하셨습니다.
소산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철저하게 드리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목욕재개하고 새옷 입고 정성스럽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십시오. 구겨진 돈도 다려서 깨끗하게 헌금 하시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버리면 안됩니다. 거기에 머물러 버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내용을 채우십시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열길 물 속은 몰라도 한길 사람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헤아리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을지 몰라도 예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참된 신앙은 속지 않으시는 예수님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용이나 결과 보다는 언제나 동기와 과정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형식을 좋아하는 사람들, 세속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는 사람들을 보고 분노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따라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율법은 땅의 소산을 드리라고 하였는데 열심히 특심인 이사람들은 한술 더 떠서 드리지 않아도 상관없는 박하, 회향, 근채의 십일조까지 떼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요리를 하는데 조미료를 치면서 그 조미료의 십분의 일을 덜어내 십일조로 드리고, 음식을 먹은 후 입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은단을 먹으면서 그 작은 알갱이의 개수를 세어 십분의 일을 떼어내는 모습을... 아주 작고 미세한 것까지도 쪼개는 그 기가막힌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가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까지 엄격하고 완벽하게 갈라내어 드리는 그들의 철저한 십일조 생활은 현대인들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문에 보이는 것들은 철저하고 엄격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소홀히 했던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버렸다고 했습니다. 무관심해서 못 지킨 것이 아니라 아예 무시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제 가슴이 뜨끔합니다. 저는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보이는 것조차도 무시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십일조란 무엇입니까? 바로 의(義)와 인(仁)과 신(信)입니다.
의(Justice)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인(Mercy)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입니다.
신(Faithfulness)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그런 것 말고 내 안에 '정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가장 확실한 표적은 '정직'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정직'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정직'입니다. 정직하십니까? 정말 정직하십니까? 누가 내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음란하고 더럽고 거짓이 있고 음모와 술수와 온갖 응큼한 것을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겉으로 구제하고 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마음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찬송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순결함이 있는가? 정직함이 있는가? 혹 나쁜 동기나, 이기적인 계산은 없는가? 하나님은 이것을 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 가장 밑바닥에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하고 감춰놓은 그것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생활비를 아껴서 하는 구제나 선교, 심지어 집을 팔아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그런 대단한 믿음(?)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펼치는 그런 구제와 선교와 믿음의 행위에 하나님의 어질음(인애)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가. 정말 하나님의 긍휼이 있고 사랑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무서운 것은 냉랭함과 무관심입니다. 관념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고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내 안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측정하는 한가지 기준은 그 사람이 늘 변함이 없는가. 아니면 수시로 변하는 변덕장이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 신앙인인가 가짜 신앙인인가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뜨겁고 열정적이고 능력을 행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적절한 판단 기준이 못됩니다. 처음이나 끝이나 변함이 없는 사람, 한 길을 가는 사람, 환경의 고통이 올지라도, 폭풍이 내리치고 천둥이 치고 지진이 날 지라도 변하지 않는 믿음, 이 믿음이 진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소산의 십일조는 지나치도록 철저하게 드리면서 정말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구나! 어디 있느냐?" 아무리 거룩하게 몸단장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럴듯하게 기도하고 돈을 다리미로 다려서 헌금을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속에 위선과 불의가 있다면 하나님은 나를 인정하지 않으실 것 입니다. 우리의 신앙 안에 무관심과 용서하지 못하는 분노와 미움이 있다면 예수님은 "너는 누구냐?" 나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절)하셨습니다.
소산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철저하게 드리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목욕재개하고 새옷 입고 정성스럽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십시오. 구겨진 돈도 다려서 깨끗하게 헌금 하시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버리면 안됩니다. 거기에 머물러 버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내용을 채우십시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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