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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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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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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본문 26:14 그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를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가막힌 사건이 어둠 속에서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제자중 한 사람이 자기의 스승 예수를 은 삼십을 받고 적군들에게 팔아 넘긴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열두제자의 한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고,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그분의 기적을 친히 목격하고,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의 말씀을 듣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신 가장 가치있는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베드로는 모든 면에서 가룟 유다보다 나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질이 급해서 실수도 더 많았고, 예수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능력이 있고 냉철하였으며 머리회전이 빨랐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회계로 선택한 것은 분명히 그가 좋은 자질과 은사와 조건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식한 베드로는 '반석'이 되었고 똑똑한 유다는 배반자가 되어 창자가 터져 자살로 인생을 끝맺는 저주의 대명사가 되다니요.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지금부터 2천년전에 가룟유다에게서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나의 성품 가운데에도 그런 조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자신있게 유다를 욕하고 저주하고 탓하기엔 유다는 나의 틀림없는 자화상입니다.
가룟 유다는 도둑놈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 아마도 당시에도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고 귀신을 쫒아낼 때마다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헌금을 했고 그 헌금은 가룟 유다가 관리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예수교회의 회계로 삼은 것은 그가 돈을 관리하는데 탁월한 계산력과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훌륭한 재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여 자신의 배를 채웠습니다.
무서운 탐욕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진 헌금에 손을 댈수 있단 말입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애정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제삼자의 입장이었습니다. 자기는 개입하지 않고 언제나 옆에서 구경하는 구경꾼이요 방관자이고 참견꾼이었습니다. 절대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구경하며 방해하개나 판단하는 사람이 제일 얄밉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눈물한번 흘려본 일도 없고, 가슴 졸여 보거나, 몸부림쳐본적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냉혈동물처럼 차고 냉랭하게 예수님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었습니다.
혹 나의 모습은? 예수님을 사랑하지는 않고 따라다니기만 했던 유다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예수님을 팔아먹는 사람은 아닌가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부하는 사람의 영혼은 미친 영혼입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모습을 보고는 미쳐버렸습니다. 그것은 뉘우침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구원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지만 가짜 회개는 모양만 있을 뿐 그 결과는 스스로 죽는 '자살'입니다. 똑같이 죽을 죄를 지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의 옆에 달렸던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하며 회개를 했고 가룟 유다는 창자가 터지도록 자신을 자해하여 자살해버렸습니다.
가룟 유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가룟 유다를 그토록 파멸시킨 마귀가 지금 내 등 뒤에서 눈을 번뜩이며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놈은 예수님께도 세 번씩이나 나타나서 유혹을 했던 놈입니다. 마귀는 베드로에게도 나타났습니다.
마귀가 심방을 오거든 아예 문도 열어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내가 연약할 때, 곤고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또는 일이 잘 되었을 때, 혼자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 옵니다. 찾아와서는 그럴듯한 속삭임으로 나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이 심방을 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서 마귀가 심방 오면 얼른 열고 맞이하여 커피까지 대접한단 말이예요.
영적 전쟁입니다. 날마다 이런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가슴 저미는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이 가륫 유다를 망하게 한 그 마귀를 물리치는 비결입니다. *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가막힌 사건이 어둠 속에서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제자중 한 사람이 자기의 스승 예수를 은 삼십을 받고 적군들에게 팔아 넘긴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열두제자의 한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고,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그분의 기적을 친히 목격하고,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의 말씀을 듣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신 가장 가치있는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베드로는 모든 면에서 가룟 유다보다 나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질이 급해서 실수도 더 많았고, 예수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능력이 있고 냉철하였으며 머리회전이 빨랐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회계로 선택한 것은 분명히 그가 좋은 자질과 은사와 조건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식한 베드로는 '반석'이 되었고 똑똑한 유다는 배반자가 되어 창자가 터져 자살로 인생을 끝맺는 저주의 대명사가 되다니요.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지금부터 2천년전에 가룟유다에게서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나의 성품 가운데에도 그런 조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자신있게 유다를 욕하고 저주하고 탓하기엔 유다는 나의 틀림없는 자화상입니다.
가룟 유다는 도둑놈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 아마도 당시에도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고 귀신을 쫒아낼 때마다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헌금을 했고 그 헌금은 가룟 유다가 관리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예수교회의 회계로 삼은 것은 그가 돈을 관리하는데 탁월한 계산력과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훌륭한 재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여 자신의 배를 채웠습니다.
무서운 탐욕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진 헌금에 손을 댈수 있단 말입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애정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제삼자의 입장이었습니다. 자기는 개입하지 않고 언제나 옆에서 구경하는 구경꾼이요 방관자이고 참견꾼이었습니다. 절대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구경하며 방해하개나 판단하는 사람이 제일 얄밉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눈물한번 흘려본 일도 없고, 가슴 졸여 보거나, 몸부림쳐본적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냉혈동물처럼 차고 냉랭하게 예수님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었습니다.
혹 나의 모습은? 예수님을 사랑하지는 않고 따라다니기만 했던 유다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예수님을 팔아먹는 사람은 아닌가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부하는 사람의 영혼은 미친 영혼입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모습을 보고는 미쳐버렸습니다. 그것은 뉘우침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구원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지만 가짜 회개는 모양만 있을 뿐 그 결과는 스스로 죽는 '자살'입니다. 똑같이 죽을 죄를 지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의 옆에 달렸던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하며 회개를 했고 가룟 유다는 창자가 터지도록 자신을 자해하여 자살해버렸습니다.
가룟 유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가룟 유다를 그토록 파멸시킨 마귀가 지금 내 등 뒤에서 눈을 번뜩이며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놈은 예수님께도 세 번씩이나 나타나서 유혹을 했던 놈입니다. 마귀는 베드로에게도 나타났습니다.
마귀가 심방을 오거든 아예 문도 열어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내가 연약할 때, 곤고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또는 일이 잘 되었을 때, 혼자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 옵니다. 찾아와서는 그럴듯한 속삭임으로 나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이 심방을 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서 마귀가 심방 오면 얼른 열고 맞이하여 커피까지 대접한단 말이예요.
영적 전쟁입니다. 날마다 이런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가슴 저미는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이 가륫 유다를 망하게 한 그 마귀를 물리치는 비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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