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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가복음9:1-13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초라함

마가복음 마가복음26............... 조회 수 2807 추천 수 0 2002.04.23 0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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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구분 :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들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샤랴에 있는 여러 마을들을 지나시다가 제자들에게 갑자기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막8:27)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8:29)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의 고백 뒤에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8:31) 즉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한 첫 언급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엿세후에 오늘 본문 말씀의 변화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영광스런 부활을 제자들에게 잠시나마 체험케 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도 듣고 감격하고 다짐만 해서는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장담과 똑 같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얼마나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이 초라한 것인지, 그리고 그에 비해 하늘의 영광은 얼마나 찬란한 것인지를 경험해봅시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이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모세, 엘리야, 예수님이십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풀어내기 위해 유월절 희생제사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엘리야 또한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왕상18장)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우상에 빠져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드렸던 희생제물은 이같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속박을 끊고 여호와께로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께서도 자신들처럼 백성들을 위한 '희생의 제사'를 드리고 그 백성들을 죄악에서 탈출시킬 것을 말합니다. (눅9:3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 여기서 '별세'라는 말은 원문에는 '출애굽(Exodus)'입니다. 표준번역성경은 '출애굽하실 것'이라고 잘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세, 엘리야, 예수님은 똑같이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동일한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고, 엘리야는 메시야가 오기 전에 나타날 선지자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학수 고대하며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말3:1, 4:5) 이러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함께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메시야의 구원에 대한 구약의 예표나 예언들이 예수님의 '별세'에 의해서 성취될 것을 말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모두 오래전에 이 세상을 떠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함께 지상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현세 너머에 분명히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증거해 줍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등장은 영원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문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찌 하나님이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느냐? 하셨습니다.(마22:32)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었다고 땅에 파묻어버린 그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고 천국에서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도 십자가에서 그냥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날(부활) 것에 대한 간접적인 보증입니다.

예수님의 옷과 용모가 찬란하게 빛난 것은 영원세계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며, 주님이 부활 이후에 받게 될 커다란 영광에 대한 맛보기인 셈입니다. 변화산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장 정확하게 계시하신 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 그리스도 이십니다.(막1:1)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고난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채찍에 맞고 속절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가련한 종이 아니고, 만왕의 왕으로 영광중에 다시 나타나실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에게 지금 눈앞에 보여지는 사건은 그 동안 보아온 이적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커다란 뉴스거리인데 더구나 그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다정하게 이야기 하는 장면을 바라보며서 그들은 그 동안 따라다녔던 초라한 스승 예수님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을 법도 합니다. 예수님의 옷은 새하얀 광채를 발하였고 영롱한 구름이 신비의 베일처럼 제자들을 덮었으며 하늘에서는 신령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무나도 황홀한 장면입니다. 이 보다 더 나은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감격한 베드로가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고 외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 않습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서 목격한 놀라운 광경에 완전히 압도되어 말을 잃었습니다.(9:6절) 누가복음에는 그들이 곤히 졸다가 주님의 영광을 목격했다고 했고(눅9:32) 넋을 잃은 베드로가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눅9:33) 라고 한 말도 거의 무의식중에 한 말입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마음 속 생각을 말 할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평소에 하나님의 나라가 곧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정치적 메시야로 행세하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이같은 '사람의 일을 생각'(8:33)하던 제자들에게 일주일 전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9장1절) 하신 말씀을 떠올리고 과연 그때가 지금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은 신령한 장소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신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 모셔두고 그곳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변화산 정산에 초막 셋을 짓고 그곳에 모세, 엘리야, 예수님이 계시면서 누구든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나준다면 아마도 그곳은 세계적으로 소문이 난 성지가 될 것이고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에 그러한 신전이 수없이 많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베드로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도 베드로처럼 장소나 건축물에 종교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헛되다는 것은 모세와 엘리야가 금방 사라져버린 사실에서 역력히 증명이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서 아직도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8:29)라고 고백했던 그가 "랍비여 우리가..."(9장5절) 하고 말합니다. 그의 신앙고백과 삶이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을 위해 각각 초막을 짓는다는 발상도 세사람을 비슷한 수준의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즉각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7절)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초막 건립 제안은 그가 계속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8;33)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님의 십자가 기을 막았을 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졸고 있다가 또다시 예수님 앞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기가 예수님께 드린 말씀은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것이었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엔 십자가의 고난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없는 영광만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9:5)라고 기뻐하였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 보다 변화산의 그 영광스러움을 좋아하는 것은 베드로뿐만 아니라 오늘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초막 건립 제안은 결국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길을 포기하라는 요구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은 영원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에 대한 간섭입니다. 잘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이롭게 한다 하는 우리들의 생각은 이렇듯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때가 있습니다.

이 경이로운 변화산 사건은 가장 시시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도 실망스럽습니다.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더라"(8절) 그토록 가슴 벅차게 했던 그 모든 무대 장치와 등장인물들과 신령한 분위기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터덜거리며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화산의 참 의미는 산을 내려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초막을 짓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산을 내려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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