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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가복음 15:33-47 나를 위한 십자가의 죽음

마가복음 마가복음51............... 조회 수 3073 추천 수 0 2002.05.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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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구분 :  
15:37-39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하나님은 영이신데 말씀으로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생명력과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는 사람은 말씀으로 움직이게 됩니다.(고전4:19)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이해만 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안되고 반드시 말씀으로 인도함까지 받아야 합니다.(히4;12)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말씀에 대하여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쓰여진 말씀'과 '임하는 말씀'입니다. 쓰여진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돌판에 새겨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이 돌판에 새겨진 쓰여진 말씀, 즉 성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경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말씀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임한' 말씀으로 이스라엘이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란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성경학자들이 아니고 그때그때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누가 선지자입니까? 교회의 목사님들입니까? 아니면 저 숲속 기도원에서 예언기도를 해주는 기도원 원장입니까? 선지자는 이 시대와 세상에 대하여 깨어있는 시각을 가지고 높은 망대에 서서 세상을 조명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지자의 자격은 무슨 신학교를 나와야 되는 것도 아니고, 40일 금식기도를 마쳐야 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교단에 소속되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자격은 오로지 하나님이 내려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그분의 임재하심을 풍성하게 누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열어 당신과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 선지자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까? 세상이 죄로 가득하여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죄'의 문제를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세워 그 죄를 해결하시려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그 죄의 문제를 매듭짓고자 하셨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제 육 시 곧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날이 밝고 해가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캄캄한 어두움이 임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위에 내려지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기절하시고, 다시 그 고통으로 인해 깨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무서운 저주와 고통을 당하시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침뱉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여기서 볼 때 예수님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보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이었습니다.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버림받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일생 버림받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사야 53:3은 말씀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에게 버린 바 되어 냄새나는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빌라도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섬긴 무리와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것 때문에 고민하시거나 고통하시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습니다. 120대의 채찍에 맞으시고, 침뱉음을 받으시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는 동안에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은 너무나 견디기가 힘들어서 큰 소리로 절규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가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가 가져올 결과를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죄가 보편화되고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이를 합리화하고 변명합니다. "나만 그런가? 다 그런데" 하며 부담 없이 죄를 짓고 즐깁니다.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줄도 알지 못한 채 함부로 죄를 짓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사람들이 이 참혹한 형벌을 보고 죄를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경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섭고, 죄로 인한 그 결과와 형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죄로 인한 마음의 고통과 깊은 내면의 상처가 생깁니다. 죄의식과 수치심,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하게 됩니다. 죄는 마음의 평화를 앗아갑니다. 무엇보다 죄가 가져오는 가장 무서운 결과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죄를 결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을 단절시켜 하나님의 긍휼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을 때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는 것은 영원한 파멸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와 조롱과 침뱉음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저주와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을 볼 때 나의 죄가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가를 깊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만일 우리가 양심대로 나의 죄값을 다 치른다면 죄를 지은 수만큼 채찍에 맞고, 수치와 멸시를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더러운 피를 다 쏟고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내 대신 채찍에 맞게 하시고, 조롱과 멸시와 수치를 당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버림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임할 저주와 진노를 예수님께 쏟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를 사랑하는 독생자에게 다 뒤집어 씌워서 십자가에서 저주와 심판을 받게 하심으로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 방법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53:5,6)."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4,25)."

예수님께서 내 대신 120대의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열등감과 패배감의 상처, 미움과 증오심의 상처에서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부끄러운 정욕의 죄 때문에 조롱과 침뱉음을 받으시고 온갖 수치와 정죄를 받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고개를 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버림받으시고 내대신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이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조건 없이 죄를 용서받고 아름다운 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죄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욕의 죄로 인한 상처로 인해 죄의식에 시달리며 수치심으로 괴로워 합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파괴된 가정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깊은 슬픔에 잠긴 사람도 있습니다. 미움과 증오심, 열등감과 운명주의로 무기력한 삶을 사는 분도 있습니다. 완벽주의로 인해 늘 불안하고, 냉소주의와 우울증으로 마음에 병이 든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이 마음의 죄 문제와 인생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고상한 철학이나 예술, 스포츠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단전호흡이나 명상을 한다고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죄로 인한 고통과 내면의 상처들은 오직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버림받으신 예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혼자 괴로워 할 것이 아닙니다. 나의 허물과 죄악을 짊어지고 비참하게 살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무거운 짐들을 내 대신 버림받으신 예수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때 모든 죄의 고통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화가 내 마음에 임하게 됩니다.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께 나아올 때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건강하고 희망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달간 갈릴리마을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갈릴리마을을 참으로 귀하게 쓰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 어떤 자매, 악한 영이 준 투시의 능력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던 형제, 교도소에서 금방 출소한 자매, 남편 목사님에게 매를 맞고 퉁퉁 부은얼굴로 밤중에 찾아온 어떤 사모님, 혹 아이 하나 데리고 혼자(남편 없이) 오는 아주머니에 대해서 갈릴리마을 식구들은 바짝 긴장을 합니다. 왜냐하면 거의 남편과의 불화로 피난 온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밝힐 수 없는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갈릴리마을에 찾아와 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식구들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거나 도와줄 힘은 없습니다. 그저 오신 분들에게 잠자리 제공하고 우리 갈릴리마을 식구들의 식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함께 밤을 나누어 먹을 뿐입니다.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아침저녁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로 갈릴리마을이 쓰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습니다.(37절)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이 때 놀랍게도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커튼으로서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장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장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온전한 성전이 되시고,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되셨습니다(히10:19,20). 예수님의 죽으심을 지켜본 로마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하였습니다.(39절) 이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요, 메시야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임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42-47절을 보십시오.    날이 저물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숨어서 예수님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목격한 후에 심령이 담대해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세마포로 싸 자신의 새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완전히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의 죄도 완전히 죽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롬6:10,1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나의 모든 상처를 치료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만이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그 죄의 문제를 매듭짓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마음에 끌리는 대로 방자히 행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패역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시대에 선지자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까? 세상이 죄로 가득하여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죄'의 문제를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세워 그 죄를 해결하시려 하였던 것 같이 오늘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무명의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죄'의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임하는 말씀(케류그마)'을 들으십시오!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지금은 교회의 설교단에서도 '회개의 멧세지'가 강력하고 집요하게 선포되어져야 할 때입니다. 성공하는 법이나, 돈 많이 버는 법이나, 축복 받는 법이나, 문화 교양강좌는 이제 그만 하시고, 성도들의 마음 밑바닥에 숨어 있는 죄의 찌꺼기들을 확 뒤집어 끌어 올려야 합니다. 마음이 찔려서 다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있더라도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혼나지 않으려면 맡겨주신 성도들의 죄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들꽃편지 223호 (2001.3.15)
2000.10.8.주 믿음교회 주일오전 설교



댓글 '1'

예수쟁이

2002.07.31 22:50:57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 불순종하여서 주님께 엄청난 매를 맞은적이
있지요. 불순종이 얼마나 큰 죄인지 그때야 알았습니다.
온전한 회개가 될때까지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지요.
용서해주실때까지 주님을 붙들게 하시더니,때가되매,
주님이 용서해주시고 다시,주의 영이 오셨지요.
죄는 하나님과 나를 단절시키더군요.그렇지만,끝까지 나를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복할뿐입니다.
마음에 찔려 악해지지않고,늘,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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