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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4:14-30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누가복음 누가복음14............... 조회 수 8842 추천 수 0 2002.08.31 00: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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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구분 :  
4: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시험에서 이기신 후 비로소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이 심상치 않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어부들과 농부들이 어울려 사는 반 이교도적인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거룩한성이며 예언자들의 도시 다윗의 성 예루살렘도 아니고, 세례 요한이 활동했던 유다 지방도 아닌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리 지방에서 예수님의 첫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사야서 9:1절의 성취입니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갈릴리란 어느 한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의 변방인 북족지역을 통 털어서 갈릴리라 하였습니다. "이 갈릴리 지역이 멸시를 당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간 이유는? - 14절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시니" 예수님께서 어디로 갈까?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성령님께서 "갈릴리로 가라!"해서 갈릴리로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갈릴리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같이 지극히 종교적인 곳에는 참 복음을 주시지 않습니다.(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세련된 종교인들이었던 유대인들이 멸시하고 죄인 취급하는 이방지역 갈릴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이 뜻이 바로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보통 인간들과 똑같이 산 30년이고, 3년간의 공생애 사역 중 대부분인 전반부의 생애, 그리고 짧은 후반부의 생애입니다. 4복음서의 내용은 거의 예수님의 전반부 생애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전반부의 생애는 "성령의 권능"의 생애입니다. 성령의 권능에 의한 생애의 특징은 '표적과 기사'입니다. 역시 오늘날 기독교도 예수님의 전반부 생애를 전파하고 증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권능으로 사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오직 답답하셨으면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하셨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세 번째 후반부 생애는 "그리스도 증거 사역"의 생애입니다. 성경에는 요한복음 14-17장에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과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과의 껍데기는 사과를 상하지 않게 감싸고 있는 보호막입니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사과의 속살은 일종의 양식입니다. 사과의 씨가 싹이 터 떡잎이 나오게 되면 사과의 속살은 자연히 썩게 되고 씨앗은 그 썩은 영양분으로 뿌리가 내릴 때까지 자라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전반부 생애는 바로 사과의 속살을 먹는 것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후반부 생애는 사과의 속살을 양분으로 하여 씨가 싹트는 것에 해당됩니다. 사람들은 사과의 속살을 맛나게 먹는데에만 관심이 있지, 씨앗이 싹트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제 힘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후반 부 생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온통 전반부 생애에만 촛점을 맞추고 거기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뵈온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승천 한 이후 예수님의 후반기 생애에 촛점이 맞추어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대부분 핵심 교리는 예수님의 후반부 생애를 산 바울에 의해 그 기초가 세워집니다. 예수님의 후반부 사역을 오늘 우리가 주목할 수 있게 된 것도 예수님의 제자들 때문이 아니라 바울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맹목적으로 믿지 마시라. 그것처럼 우매한 일이 없으리니.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배척 당했습니다.
   배척당한 이유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18-19절) 이 말씀은 이사야61장 1-2절에 예언된 말씀으로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되어야 할 말씀인데, 그 말씀의 성취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참 기이하도다 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한마디로 말은 참으로 기이하고 맞는 말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순수복음을 잘 전해도 그 사람이 어느 신학교에서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안수는 받았느냐? 교회는 얼마나 크냐? 성도들은 얼마나 모이느냐? 박사학위는 있느냐? 등등 따져봅니다. 아무리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경박사학위를 받았어도 안수를 받지 않았다면 강도권(설교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일개 전도사는 사실은 이렇게 말씀을 전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원래 교단 헌법에 설교할 수 있는 자격은  강도사(준목)이상에게만 있지 저같은 전도사는 설교를 하면 불법입니다. 저는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신학공부를 하고 선교지로 파송된 동기가 있었는데 한사람은 목사안수를 받고 파송되었고, 한사람은 급한 사정이 있어서 안수를 받지 못하고 먼저 출국을 하였습니다. 현지에서는 안수를 받은 목사님만 선교사로 인정하여 선교사모임에 끼워주었고, 안수를 받지 못한 선교사는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 전도자 무디도 설교권이 없는데 평생토록 설교를 하고 다녔으니 불법을 저지른 것이고, 동양이 낳은 기독교 최대의 저술가이자 강연가인 중국의 웥취만 니 형제도 설교권 없이 설교를 했다고 해서 일부 교단에서 '이단'시비를 건 것이고,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유대 규율에 어긋난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일개 목수의 아들인 동네 청년 예수가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했으니 말은 맞는것 같은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서도 말씀을 전하게 하실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이름이 구원시켜주고, 교회가 구원시켜 주고, 박사 학위가 구원시켜 줍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무슨 자격? 왜 예수님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셨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18절)" 여기서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 도적적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 안에서 영적인 가난과 겸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많은 교회는 마지막 심판때에 세상보다 먼저 심판을 받습니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즉 '꽉 찼느니라'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 성취의 복음이 오늘 우리들의 귀에 꽉 차도록 들려오고 있는데, 왜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한다는 소리가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고 혈통이나 따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본질을 보아야 하는데 먼저 외형을 보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행한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가 바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이 바로 출발신호 총소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첫 출발부터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은 이 배척자들에 대하여 무어라 하십니까?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해 여섯달 동안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만.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한 사람만이 깨끗함을 받은 사실. 바로 이것이 오늘 이시대에 나타나고 있고 이루어져 가는 예수의 후반기 사역 즉, 진리의 성령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잘 보세요. 엘리야-흉년-과부, 그리고 엘리사-문둥병-수리아사람 나아만. 이 의미있는 관계성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사렙다 과부에게 은총이 내리고 나아만 장군은 끝까지 순종해서 문둥병을 고쳤다고 엿장수 맘대로 해석하지 말고 관계성을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나 자신이 엘리야 시대의 흉년을 당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흉년을 당한 자가 아니면 엘리야의 위대성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엘리사 시대의 문둥병자가 되어 문둥병의 쓰라린 고통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엘리사의 은총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많은 과부 중의 하나, 많은 문둥병자 중의 하나가 되는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 유대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환영은 커녕 배척하다 못해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끌고 낭떠러지까지 갔다고 했습니다. 왜 낭떠러지까지 가요? 밀어 떨어뜨려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같지 않다고 너무 쉽게 '너는 틀려! 너는 이단이야! 너의 신앙이 의심스러운데' 하면서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찍어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 배척만 당하신 것은 아닙니다. 가버나움 에서는 환영을 받으면서 가지 말라고 붙잡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1.귀신을 몰아내었습니다. 2.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쳤습니다. 3.각색 병을 고쳤습니다. 이토록 많은 이적을 본 무리들이 "자기들을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며(42절)"

    나사렛 사람들의 예수 배척과 가버나움 사람들의 예수 환영은 서로 반대인 것 같지만 실제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예수 배척입니다. 배척이나 환영이나 모두 예수의 껍데기를 보고 한 행동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적인 것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배척의 모습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환영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까? 병고침 사건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인기를 얻기 위해서,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인생들이 불쌍해서,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서 병을 고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병고침은 그 자체가 죄사함 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죄사함의 그림자입니다. 병고침이나 기사와 이적은 죄사함의 과정입니다. 병을 고쳐놓고 죄를 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죄사함의 한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버나움 사람들은 무엇을 원했는가 하면 죄사함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병고침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능력으로 병을 고쳐 줄터이니 예수 열심히 믿으라고 합니다. 예수 열심히 믿으라. 여기에 모순이 있습니다. 무조건 예수 열심히 믿으라고 한다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병고침은 죄사함의 그림자이니 그림자가 실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니 병고침을 받고도 허상을 쫒다가 결국 실족하고 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목으로 돌아가서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목수 요셉의 아들, 그 어머니는 마리아. 이러한 사실로 인해 예수님은 배척을 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에서 천군천사들과 함께 장엄하게 오셨다면,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그 앞에 엎으려 경배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예수님은 그렇게 오시기로 예정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경배의 대상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초월적인 존재로 이땅에 오셨다면 인간들을 심판할 권한이 없어지게 됩니다. 인간을 심판하려면 먼저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를 외모로 보고 한 말입니다. 즉 땅의 것을 보는 사람들의 안목입니다.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면 어떻고 목수였으면 어떻습니까.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이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이면적 즉 감추인 면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지명도가 있느냐, 교회가 크냐, 박사 학위가 있느냐 등을 보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평등합니다.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적 존재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이지 외적인 모든 것은 상관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멸망 받을 사람들에게는 심히 걸림이 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13:4)   최용우 2002.9.1 주일낮예배 설교

댓글 '2'

이경선

2002.09.02 08:35:38

겉모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제 남편의 모습을 나의 악세서리로 생각하는 나의 깊은 곳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를 위하고 사랑하며 가족을 위해하는것 같았는데......
큰소리 쳤는데....
하나님께 두 무릎을 꿇었을 때에야 나의 속 마음을 알수 있엇서 씁씁하고 허전하고 나의 모습에 실망 실망 왜 때때로 무너지고 깨어지는지 나날이 충만함으로 살아갈수는 없는지...
또 범하는 잘못은 남과 비교 되기 시작 ......
하나님 비교하고 자신을 참소하지 않게 하소서 울며 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습니다.
형편이없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이모습 이대로를 사랑하신대요.

이재한

2004.01.22 17:54:56

이제는 목사 안수 받으신 것 아릴 까요...시간 적으로 님은 훌륭한 교역자가 되시리라 믿어집니다. 일선에서 목회하면서 보니 님 같으신 분만 계시다면 우엇이 문제 겠습니까.. 그러나 다는 아니지만 갑자기 어제날 (작년에 ) 집사가 목사 입네 하고 명함을 주면 상당히 황당합니다. 님 께서도 이제 목회 후보생을 살펴 보실때 건너 띠지 않은 목회 후보생을 먼저 생각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지방이나 대도시에서 마구 배출 되시는 목회자들은 더욱 겸손과 진리에 몰입한 뒤에 목회에 임해하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학 박사 이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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