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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만 있어도 힘이되는 친구다!…
그룹 ‘부활’ 김태원의 ‘그 목사 친구’ 장동명 목사
“1991년, 음악적으로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매일 소주병을 들고 있었죠. 연습실 바닥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찾아옵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와줬던 친구였습니다. ‘불광동에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 있다. 곧 올 거다’라는 말을 남기고 친구가 떠납니다. 며칠 뒤 김재기가 제 발로 연습실에 걸어 들어옵니다.”
김재기는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부활 3집 ‘사랑할수록’이라는 노래를 남기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비운의 천재 보컬리스트다.
지난달 30일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나와 했던 말이다. 그는 당시 초등학교 동창이 소개한 김재기와 함께 ‘사랑할수록’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김태원의 친구, 궁금했다.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멘토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김태원. 어렵던 시절 그에게 힘을 줬던 사람은 누구였는지 말이다.
그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어렵게 알아낸 메일 주소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지칠 때쯤, 전화 한 통이 왔다. 19일 그를 만났다. 김태원의 친구 장동명(47). 제주 순복음행복한교회 담임목사다. 조그만 지하 교회, 좁디좁은 담임목사 사무실에서 그의 기억 속 김태원을 나눴다.
순수한 사람 김태원
초등학교 땐 이름만 알 정도였어요. 태원이와 처음 말을 해본 건 중학교 때였을 겁니다. 제 교회 친구 광진이가 태원이와 친했거든요. 광진이가 그 친구를 서울 구산동 구산장로교회에 데리고 왔었죠.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녀석이 기타를 그렇게 잘 치더군요, 태원이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둘 다 음악과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해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뒤 한번은 광진이가 제게 말했죠. “태원이 이번에 공연을 하는데 같이 가서 응원하자.” 광진이는 그 전부터 한결같이 제게 말했어요. 태원이에게 같이 힘이 돼 줬으면 좋겠다고…. 아마도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해주자는 뜻이었겠죠.
태원이는 참 순수했습니다. 저도 음악을 했기 때문에 아는데 그 바닥, 순수하기 힘든 곳입니다. 그 친구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음악 하는 친구들 중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 많았는데 태원이는 따뜻했어요. 기타 칠 것 다 치면서도 친구들과 대화하며 밤을 새우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녀석과 나눴던 대화의 주제는 사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너, 사랑해봤니. 어떤 사랑을 해봤니. 죽고 싶을 만큼 아픈 사랑도 해봤니?” 태원이가 면접하듯 묻고 나서 대답을 하면 “그래 그 기분 안다”며 자기 얘기를 이어갔죠.
김재기를 소개했던 90년대 초, 태원이는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죠. 도움이 될 게 없을까 고민하고 기도하던 차에 후배 소개로 우연히 김재기를 만났죠. 그의 음성은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순간 태원이가 생각났어요. ‘둘이 힘을 합치면 대단한 무언가가 나오겠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하루는 태원이가 저를 집으로 불러 재기와 함께 음악을 들려줬어요. 그게 바로 ‘사랑할수록’이었습니다, 노래를 듣는 순간 ‘태원이가 재기할 수 있겠다’ 하는 느낌이 제 마음에 들어와 박혔습니다.
힘들 때 곁에 서다
마약. 한순간 실수로 늪에 빠졌지만 전 태원이를 믿었어요. 그 친구 원래가 강하고 남자다운 사람이에요. ‘이게 아니다’ 생각하면 잘라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힘들 텐데도 한발 한발 내딛는 친구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며 기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태원이는 참 복이 많은 친굽니다. 아버지, 아내, 친구…. 그를 사랑하고 힘을 북돋워주려는 사람이 여럿 있었으니까요. 제가 뭐 할 게 있었겠어요?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뿐이었죠. 태원이에게 힘을 주려는 노력은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함께했습니다. 태원이가 평소 친구들에게 베푼 게 있어서예요. 정말 친구관계가 좋았습니다.
하루하루 회복하고 힘을 내는 모습을 곁에서 보며 ‘역시 김태원이다’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잘 될 줄 저와 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태원이가 텔레비전에 많이 나와서 참 기뻐요. 서로 바빠 예전만큼 연락은 못하지만 저는 자주 보니까 왠지 더 친해진 느낌이랄까요. 제주도에서 공연을 할 때면 으레 먼저 전화해 “공연을 꼭 보러 오라” 하는 태원이가 고맙죠.
힘을 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
장 목사는 고등학생 시절 하나님을 만났다. 인생에 대한 괜한 회의감이 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하나님은 그때 어린 동명을 붙잡았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대로 된 삶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 같다고 했다.
“저도 참 풍파가 많았던 인생이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병에 걸려 죽을 뻔하기도 했고 태원이와 마찬가지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고요.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다보니 사회에 적응을 못한 채 힘겨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클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스물아홉. 늦게 신학을 시작했다.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담당하던 그는 2000년 12월 제주도에 내려와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제가 김태원을 도왔다…. 아닙니다. 전 친구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며 옆에 있어줬을 뿐이죠. 태원이가 스스로 이겨낸 거예요.”
하지만 친구 김태원과의 오랜 관계 속에서 분명히 느낀 게 있었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 곁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줄 수 있다는 것. 기댈 곳 없고, 쉴 곳 없는 청소년, 이웃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장 목사는 청소년을 위한 문화선교를 하려 한다. 그래서 20대 후반 이후 하지 않았던 작곡도 지난해 다시 시작했다. 하다 보니 예전 감각이 살아난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저를 통해 힘을 얻고 하나님을 믿었으면 합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고 싶은 거죠. 기도 끝에 친구들 중 상당수가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몰라요. 태원이를 위해서도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모진 풍파를 겪은 만큼 앞으로는 어려움 없이 멋진 인생을 살게 해 달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기도할 겁니다.”
김태원의 기억 속 친구 장동명
장 목사를 만나고 제주에서 올라온 20일 오후 김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장 목사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사람은 원래 주는 게 있으면 받고 싶어하는 게 본성입니다. 그런데 동명이는 유일하게 일방적으로 주는 친구였어요. 일방적으로 주고, 받는 것에 대한 기다림을 포기하는 마음을 그 친구에게 배웠습니다. 참 고마운 친구죠.”
그가 가장 힘들었던 90년대 초 김재기를 소개해 준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김재기뿐만 아니라 당시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를 모두 연결해준 친구가 바로 그 친굽니다. 이런저런 사건이 많았고 정신적으로 최악의 상태였죠. 그 누구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소외감을 온몸으로 안고 있던 그때 유일하게 나를 바라봐준 사람이 동명이었습니다.”
두 사람. 하고 있는 일이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지만 지향점은 맞닿아 있었다. 밤샘 촬영이 이어지는 바쁜 일정 중 짬을 내 김씨는 최근 글을 쓰기 시작했다. 12월쯤 책이 나올 예정이라 했다.
“제가 소외를 당했던, 어려움을 겪었던 당사자였지 않습니까? 소외당하고 사회에 적응 못하는 사람을 위해 제가 경험한 것, 이겨냈던 과정을 에세이나 일기 형식으로 엮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잘난 사람이야 돕지 않아도 잘 살잖아요. 콤플렉스가 있거나 환경 때문에 아예 꿈도 못 꾸는 사람에게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힌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서로 바라보면 닮아간다고 했던가. 그 둘, 역시 친구는 친구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2011.4.20 국민일보
제주=글 조국현 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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