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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 목사님
예배시작 30분 전.
헤진 가방 옆구리에 끼고
급히 3층 계단을 올라와서
컴컴한 벽 더듬어 똑!
스위치를 올리고
십자가 네온 전기 코드를 꽂고
석유난로 스위치를 몇번 딸깍! 딸깍!
석유가 다 떨어졌나?
만에서 공을 가리키는 눈금
살아날 것 같지 않은 난로
창문 열어 환기 시키고
강대상 뒤로 돌아가
앰프 스위치 몇 개 올리고
마이크 아! 아! 테스트 한번 해보고
그리곤 쓰러지듯 무릎을 꿇습니다.
예배시작 10분 전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귀는 쫑긋!
아래서 슬리퍼를 끌고
누군가 올라오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
10분 넘겨 예배 시작
벌써부터 조는 할머니
대여섯명 성도들
늘 그 사람이 늘 그 자리에 앉아
오늘도 똑같은 예배를 5년째 드리다
이미 설교를 누구 들으라고 하는 건 아니다.
힐끔 시계를 보다가
이쯤해서 끝내도 되겠지.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고
반가운 척 서로서로 인사하고
올 때는 하나 둘 드문드문
갈 때는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석유난로 스위치 내리고
앰프 스위치 끄고
화분에 물 한번 주고
마지막으로 교회 전등 스위치 내리고
어둠속을 더듬거리며 문 열고 나와
계단을 내려간다.
그 어깨에 뭔지 모를 쓸쓸함이
무지하게 얹혀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개척교회 목사님
199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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