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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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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2:1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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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
2008.11.16
희망의 복음 시리즈(1)
"그래도 희망은 있다"
(Hope Emerges from Repentence)
누가복음 12:13-21
1.
지금,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월 스트릿(Wall Street)에서 시작된 경제 지진의 여파가 개인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주식 시세에서만 느껴지던 절망감이 우리의 살림살이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집을 내어 주고 나앉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사업체를 내어주고 빚더미 위에 앉는 사람들, 줄어가는 매상으로 인해 하루하루 시름이 깊어가는 사람들, 회사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뜯을 때마다 해고 통지서가 아닌가 가슴 졸이는 사람들, 그리고 일감을 찾아 가족과 떨어져 타지를 전전해야 하는 사람들. 다 열거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지금 이 위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전문가에 따라 서로 다른 전망을 내어 놓습니다. 내년 봄이면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가을쯤이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으로 최소한 2년 정도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든 짧든 결국은 경기가 회복될 것이며 안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불안감이 경기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굳어지고 있습니다. 절망감은 더 깊어가고 두려움은 점점 커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월 스트릿에서 지진이 시작된 날로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를 두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중에,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희망을 말할 수 있으며, 마땅히 희망을 선포해야 할 때라는 믿음에 이르렀습니다. 미국 경제에 거품이 가라앉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기로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야심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한 푼 없이 집을 사겠다는 꿈이 허황된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황이 좋을 때 힘에 부치도록 큰 집을 산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값비싼 차를 사 놓고 이제 와서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업을 지나치게 확장했던 것을 뼈아프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참 잘 나갈 때, 마음이 크게 부풀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고 한숨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부푼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건강한 희망이 아니라 내 욕심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부풀게 했던 것은 희망의 복음(gospel of hope)이 아니라 환상의 복음(gospel of illusion)이었던 것입니다.
거짓 희망이 힘을 잃고 있으니,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희망의 복음 위에 우리의 가정을, 직장을, 미래를, 그리고 인생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인생은 마치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진 집처럼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것입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그리고 이 경제 위기가 얼마나 지속되든 상관없이, 이 기회에 우리의 인생을 바른 복음 위에 세워야 합니다.
2.
영국 속담에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위기를 당할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그 때에야 인간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게 되며, 하나님을 참되게 만나는 사건은 문제 해결의 새로운 실마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상황은 위기를 겪기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편 저자처럼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시 119:71)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위기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를 지혜롭게 대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위기를 당하여 혼비백산하는 사람도 있고, 심하게 요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기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실제의 위기보다 더 큰 위기를 당한 것처럼 절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기를 당하여 임시변통으로 문제를 대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위기를 대처하는 데 있어서 인간적인 수단 외에는 다른 도움을 찾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위기가 수 십 번 찾아오더라도 결코 하나님의 기회가 될 수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위기를 당했을 때, 우리의 이성은 감정에 휩싸여 마비되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목소리가 떨리며, 눈동자가 멈추지 못합니다. 잠시도 앉아 있을 수 없고,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건강 문제이든, 직장 문제이든, 자녀 문제이든 혹은 신분 문제이든, 근본적인 성격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라 그 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위기가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당면한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무너지게 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대공황을 당면하여 국민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고 이유를 알 수 없으며 아무런 근거 없는 두려움. 그것은 후퇴를 진보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노력을 마비시키는 힘입니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nameless, unreasoning, unjustified terror which paralyzes needed efforts to convert retreat into advance.)
우리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위기를 당하여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반대쪽으로 마음이 기울도록 힘써야 합니다. 믿음은 인간의 위기를 하나님의 기회로 바꾸는 참된 능력입니다. 우리는 망가진, 아주 심하게 망가진 경제 구조 속에 살고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때로 희생을 당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병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가끔 그 피해를 모면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 같은 위기를 당하여 그것을 극복해 내는 힘이 되며, 자신과 사회를 제대로 보게 해 주는 힘이고, 든든한 기초 위에 다시 인생의 벽돌을 쌓아 가도록 만들어 주는 힘입니다.
3.
위기를 당하여 믿음은 우리를 가장 먼저 회개로 인도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위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희망을 찾습니다. 희망을 찾기 위해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 희망을 봅니다. 이 위기를 당하여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기를 대처하는 성서적 지혜의 첫 번째 요소입니다.
국가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경제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응급 처방만을 궁리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경제의 체질을 바꾸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회개할 때입니다. 큰 회사의 운영자들이 그들의 부도덕한 회사 운영 방식과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왑(Klaus Schwab)은 지금의 경제 위기는 정부와 대기업 운영자들의 죄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더 심각한 죄를 짓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교회도 회개해야 합니다. 얼마전 <타임 매거진> (2008년 10월 3일자)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 이러했습니다. "아마도 서브 프라임 혼란에 대해 하나님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Maybe We Should Blame God for the Subprime Mess). 요지는, 그동안 메가 교회들(mega churches)이 팔아 온 ‘번영의 복음’(gospel of prosperity)이 이번 경제 위기의 주범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번영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만, University of California at Davis에서 가르치고 있는 밀몬 해리슨(Milmon Harrison)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번영의 복음을 파는 설교들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번영의 복음은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계약에 근거하여 돈이나 가정이나 건강 혹은 직업 등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지명(name)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실 것으로 믿고 그것을 청구(claim)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둘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명하고 청구하는(naming it and claiming it) 데 있어서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없으며, 구하면 분명히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셋째,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과 물질적인 부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번영의 복음을 설교하는 설교자들은 어김없이 거액의 헌금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는 증거를 보이라고 도전합니다.
이같은 번영의 복음은 주일 아침 TV를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TV 설교자들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번영의 복음을 팔아 왔고, 지난 세월 동안 그 복음은 마법처럼 사람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들은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과 탐욕이 결탁하여 만들어 낸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신용(credit)이 별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융자가 나오면, 그것을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신용이 나쁘고 수입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집을 살 수 있었다"고 감격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점에서 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메가 교회 설교자들만이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회개해야 합니다. 저도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 심각하게 회개하고 있습니다. 거품이 막 일어나고 있을 때, 모두 다 정신없이 탐욕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을 때, 모두 다 ‘대박’을 바라고 숨이 차도록 뛰고 있을 때, 정신 차리라고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망한다고 경고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교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4.
개인적으로도 지금은 회개할 때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탐욕’을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듯이 보였던 지난 세월 동안 믿는다는 우리가 사회가 부추기는 대로 탐욕을 샀고 그 탐욕에 의해 살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탐욕을 부렸다고 그러십니까?’라고 묻고 싶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욕심’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이기심’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소유욕’이라고 하면 더 나을까요? ‘탐욕’의 본래 뜻은 ‘더 가지려는 욕심’입니다. 거대한 욕심만이 탐욕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작은 욕심도 탐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무도 예외 없이 모두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경제 위기를 진단하면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문제의 주범으로서 ‘제어되지 않은 탐욕’(unbridled greed)을 지목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종교인이 아닙니다. 경제 전문가들이 한 말입니다. 정부 관료의 탐욕, 기업가의 탐욕, 회사의 탐욕, 시장의 탐욕, 개인의 탐욕이 결합되어 이같은 문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이 만든 영화 <월 스트릿>(Wall Street)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투자의 귀재 고든 게코(Gordon Gekko)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열연한 게코는 텔다 종이 회사(Teldar Paper)의 주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탐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내 말의 요지는 "탐욕은 좋은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더 알맞은 단어를 찾을 수가 없군요. 탐욕은 옳습니다. 탐욕은 효력이 있습니다. 탐욕은 분명하게 하고, 돌파하게 하며, 진화 정신의 핵심입니다. 생명을 위한 탐욕이든, 돈을 위한 탐욕이든, 사랑을 위한 탐욕이든, 지식을 위한 탐욕이든, 모든 형태의 탐욕은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는 추진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말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은 텔다 종이 회사를 구할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회사까지 구할 것입니다. (The point is, ladies and gentleman, that greed ― for lack of a better word ― is good. Greed is right. Greed works. Greed clarifies, cuts through, and captures the essence of the evolutionary spirit. Greed, in all of its forms ― greed for life, for money, for love, knowledge ― has marked the upward surge of mankind. And greed ― you mark my words ― will not only save Teldar Paper, but that other malfunctioning corporation called the USA.)
이 대사는 시나리오 작가가 창작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반 뵈스키(Ivan Boesky)라는 전설적인 투자가가UC Berkeley에서 행한 연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월 스트릿의 철학이며 믿음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미국 사회의 신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탐욕이 미덕으로 칭송받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5.
하지만 탐욕은 정말 좋은 것입니까?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이 형제와 유산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랍비인 줄 알고 찾아와 그 분쟁을 해결해 주기를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음을 밝히고 나서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있지 않다"(15절). 그러고 나서 비유를 하나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어느 해에 엄청난 곡식을 추수했습니다. 그가 가진 창고로는 그 곡식을 모두 저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부자는 궁리를 합니다. 뭐라고 궁리하는지 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내 소출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17-18절). 우리는 그의 말에서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 소출", "내 곳간", ‘내 곡식", "내 물건"?자기 밖에는 안중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19절).
이 사람은 세상적인 견지에서 보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월 스트릿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이재(money making)에 밝고 기회에 민첩한 사람입니다. 그는 고든 게코처럼 "탐욕은 좋은 것이야. 탐욕은 옳은 것이지. 탐욕이야말로 내 인생의 주춧돌이지"라고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을 ‘어리석다’고 판정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그리고는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21절).
그는 사람의 생명이 물질에 있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물질을 모으는 일에 전심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도 잊고 이웃도 없이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과 이웃을 얻는 것인데, 이 부자는 하나님과 이웃 대신 물질을 선택했습니다. 그 물질이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보장할 것처럼 믿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어리석음입니다.
6.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보시기에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동안 상황이 좋을 때,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 탐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잃더라도 물질은 잃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도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까? 나의 삶에는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 얼마나 컸습니까? 나의 수입 중에서 하나님을 위한 지출이 얼마나 컸습니까? 내 지출 중에서 이웃을 위한 지출은 또 얼마나 컸습니까? 탐욕스럽게 큰 집을 사고 비싼 차를 사고 사업을 확장하느라, 하나님께도 인색했고 이웃을 위해서도 야박했던 것은 아닙니까? 그것을 우리는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는 어떻습니까?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 물질, 그리고 그 물질이 보장해 주리라고 믿었던 행복이 지금 그대로 있습니까? 과연, 우리가 희망을 두고 살았던 그 돈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입니까? 누군가 성공에 대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상에 가까왔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는 또한 벼랑에 선 것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Every time we got closer to the top, we felt like we got closer to the edge, too.). 누군가 물질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다 가졌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또한 모두 다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낍니다."(When we felt like we had it all, we also felt like we will lose it all.) 이것이 물질의 속성이요, 이것이 탐욕의 속성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예수님은 게코와 정반대로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게코의 대사를 사용하여 오늘의 비유에 나온 예수님의 가르침을 풀어 보자면 이렇습니다.
내 말의 요지는 "탐욕은 나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탐욕은 옳지 않습니다. 탐욕은 효력이 있어 보이지만 나중에는 역효과를 냅니다. 탐욕은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고, 궁지에 몰리게 만듭니다. 그것은 창조 정신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위한 탐욕이든, 돈을 위한 탐욕이든, 사랑을 위한 탐욕이든, 지식을 위한 탐욕이든, 모든 형태의 탐욕은 인류의 타락의 추진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말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은 텔다 종이 회사를 멸망시킬 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회사까지 망하게 할 것입니다.
월 스트릿을 대변하는 고든 게코의 말과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어느 편이 진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게코의 말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에서 게코의 말은 얼마나 공허하게 들립니까? 반면, 예수님의 말씀은 강력한 진리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진리는 위기에 때에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사실을 이번 경제 위기는 선명하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기업적으로, 교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탐욕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탐욕에서 나온 모든 잘못된 행실들을 점검하여 회개하고, 탐욕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지나쳤던 소비를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지나쳤던 욕심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인색했던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이웃에게 냉담했던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경쟁심과 허영심과 사치의 마음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에 희망과 믿음을 두었던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것들을 낱낱이 회개하고 탐욕을 내려놓아야 하겠습니다
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위기 앞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조용히 머물러 앉아 회개하십시다. 여러분이 어떤 죄를 저질러서 그런 위기가 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슨 대단한 탐욕을 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위기를 당면하여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살피며 아주 작은 탐욕이라도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잠시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만, 결국 이겨낼 것입니다.
혹시, "나는 아직 괜찮다"고 안심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분들도 이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회개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지 않고는 진정한 안전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든든한 기초가 언제 흔들릴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 다 당하는 위기를 모면한 것에 대해 다행으로 여기며 과거의 생활 방식 그대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아직 어려움이 닥치지 않았을 때 회개하면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토대 위에 설 것입니다.
회개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힘입니다. 회개하면 마음이 비어집니다. 탐욕도 사라지고 집착도 사라집니다. 회개하면 높아졌던 눈이 낮아집니다. 낮아진 눈에 세상은 달라 보입니다. 회개하면 좁아졌던 시야가 넓어집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도 보이고, 이웃도 보입니다. 회개하면 오그라들었던 손이 펴집니다. 손을 펴서 이웃의 손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비정하고 빈틈없어 보이던 사람이 회개하면 다정하고 넉넉해집니다. 회개하면 꼭꼭 닫아 두었던 창고를 열만한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위해 넉넉히 바치고 이웃을 위해 너그러이 베풀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찢고 슬퍼 울며 회개하고 난 후입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슬피 울 때입니다.
회개가 희망입니다. 회개가 길입니다. 참된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을 낮추고 깨뜨리고 비우는 것, 그 회개가 희망의 시작입니다. 이 회개의 은총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함께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주님,
회개의 영을 주소서.
지금 당하는 경제 위기는
회개하라는 부름입니다.
저희의 탐욕을,
저희의 이기심을,
저희의 물질주의를,
저희의 비정한 경쟁심을,
저희의 지나친 소비를
회개합니다.
물질에는 부유하고
하나님께는 인색하고
이웃에게는 냉담했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진실하게 회개하오니
이 위기를
하나님의 기회로 삼으소서.
아멘.
희망의 복음 시리즈(1)
"그래도 희망은 있다"
(Hope Emerges from Repentence)
누가복음 12:13-21
1.
지금,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월 스트릿(Wall Street)에서 시작된 경제 지진의 여파가 개인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주식 시세에서만 느껴지던 절망감이 우리의 살림살이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집을 내어 주고 나앉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사업체를 내어주고 빚더미 위에 앉는 사람들, 줄어가는 매상으로 인해 하루하루 시름이 깊어가는 사람들, 회사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뜯을 때마다 해고 통지서가 아닌가 가슴 졸이는 사람들, 그리고 일감을 찾아 가족과 떨어져 타지를 전전해야 하는 사람들. 다 열거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지금 이 위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전문가에 따라 서로 다른 전망을 내어 놓습니다. 내년 봄이면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가을쯤이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으로 최소한 2년 정도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든 짧든 결국은 경기가 회복될 것이며 안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불안감이 경기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굳어지고 있습니다. 절망감은 더 깊어가고 두려움은 점점 커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월 스트릿에서 지진이 시작된 날로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를 두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중에,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희망을 말할 수 있으며, 마땅히 희망을 선포해야 할 때라는 믿음에 이르렀습니다. 미국 경제에 거품이 가라앉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기로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야심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한 푼 없이 집을 사겠다는 꿈이 허황된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황이 좋을 때 힘에 부치도록 큰 집을 산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값비싼 차를 사 놓고 이제 와서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업을 지나치게 확장했던 것을 뼈아프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참 잘 나갈 때, 마음이 크게 부풀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고 한숨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부푼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건강한 희망이 아니라 내 욕심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부풀게 했던 것은 희망의 복음(gospel of hope)이 아니라 환상의 복음(gospel of illusion)이었던 것입니다.
거짓 희망이 힘을 잃고 있으니,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희망의 복음 위에 우리의 가정을, 직장을, 미래를, 그리고 인생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인생은 마치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진 집처럼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것입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그리고 이 경제 위기가 얼마나 지속되든 상관없이, 이 기회에 우리의 인생을 바른 복음 위에 세워야 합니다.
2.
영국 속담에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위기를 당할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그 때에야 인간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게 되며, 하나님을 참되게 만나는 사건은 문제 해결의 새로운 실마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상황은 위기를 겪기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편 저자처럼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시 119:71)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위기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를 지혜롭게 대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위기를 당하여 혼비백산하는 사람도 있고, 심하게 요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기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실제의 위기보다 더 큰 위기를 당한 것처럼 절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기를 당하여 임시변통으로 문제를 대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위기를 대처하는 데 있어서 인간적인 수단 외에는 다른 도움을 찾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위기가 수 십 번 찾아오더라도 결코 하나님의 기회가 될 수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위기를 당했을 때, 우리의 이성은 감정에 휩싸여 마비되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목소리가 떨리며, 눈동자가 멈추지 못합니다. 잠시도 앉아 있을 수 없고,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건강 문제이든, 직장 문제이든, 자녀 문제이든 혹은 신분 문제이든, 근본적인 성격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라 그 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위기가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당면한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무너지게 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대공황을 당면하여 국민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고 이유를 알 수 없으며 아무런 근거 없는 두려움. 그것은 후퇴를 진보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노력을 마비시키는 힘입니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nameless, unreasoning, unjustified terror which paralyzes needed efforts to convert retreat into advance.)
우리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위기를 당하여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반대쪽으로 마음이 기울도록 힘써야 합니다. 믿음은 인간의 위기를 하나님의 기회로 바꾸는 참된 능력입니다. 우리는 망가진, 아주 심하게 망가진 경제 구조 속에 살고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때로 희생을 당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병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가끔 그 피해를 모면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 같은 위기를 당하여 그것을 극복해 내는 힘이 되며, 자신과 사회를 제대로 보게 해 주는 힘이고, 든든한 기초 위에 다시 인생의 벽돌을 쌓아 가도록 만들어 주는 힘입니다.
3.
위기를 당하여 믿음은 우리를 가장 먼저 회개로 인도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위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희망을 찾습니다. 희망을 찾기 위해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 희망을 봅니다. 이 위기를 당하여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기를 대처하는 성서적 지혜의 첫 번째 요소입니다.
국가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경제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응급 처방만을 궁리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경제의 체질을 바꾸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회개할 때입니다. 큰 회사의 운영자들이 그들의 부도덕한 회사 운영 방식과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왑(Klaus Schwab)은 지금의 경제 위기는 정부와 대기업 운영자들의 죄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더 심각한 죄를 짓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교회도 회개해야 합니다. 얼마전 <타임 매거진> (2008년 10월 3일자)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 이러했습니다. "아마도 서브 프라임 혼란에 대해 하나님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Maybe We Should Blame God for the Subprime Mess). 요지는, 그동안 메가 교회들(mega churches)이 팔아 온 ‘번영의 복음’(gospel of prosperity)이 이번 경제 위기의 주범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번영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만, University of California at Davis에서 가르치고 있는 밀몬 해리슨(Milmon Harrison)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번영의 복음을 파는 설교들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번영의 복음은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계약에 근거하여 돈이나 가정이나 건강 혹은 직업 등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지명(name)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실 것으로 믿고 그것을 청구(claim)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둘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명하고 청구하는(naming it and claiming it) 데 있어서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없으며, 구하면 분명히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셋째,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과 물질적인 부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번영의 복음을 설교하는 설교자들은 어김없이 거액의 헌금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는 증거를 보이라고 도전합니다.
이같은 번영의 복음은 주일 아침 TV를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TV 설교자들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번영의 복음을 팔아 왔고, 지난 세월 동안 그 복음은 마법처럼 사람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들은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과 탐욕이 결탁하여 만들어 낸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신용(credit)이 별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융자가 나오면, 그것을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신용이 나쁘고 수입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집을 살 수 있었다"고 감격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점에서 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메가 교회 설교자들만이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회개해야 합니다. 저도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 심각하게 회개하고 있습니다. 거품이 막 일어나고 있을 때, 모두 다 정신없이 탐욕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을 때, 모두 다 ‘대박’을 바라고 숨이 차도록 뛰고 있을 때, 정신 차리라고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망한다고 경고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교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4.
개인적으로도 지금은 회개할 때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탐욕’을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듯이 보였던 지난 세월 동안 믿는다는 우리가 사회가 부추기는 대로 탐욕을 샀고 그 탐욕에 의해 살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탐욕을 부렸다고 그러십니까?’라고 묻고 싶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욕심’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이기심’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소유욕’이라고 하면 더 나을까요? ‘탐욕’의 본래 뜻은 ‘더 가지려는 욕심’입니다. 거대한 욕심만이 탐욕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작은 욕심도 탐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무도 예외 없이 모두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경제 위기를 진단하면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문제의 주범으로서 ‘제어되지 않은 탐욕’(unbridled greed)을 지목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종교인이 아닙니다. 경제 전문가들이 한 말입니다. 정부 관료의 탐욕, 기업가의 탐욕, 회사의 탐욕, 시장의 탐욕, 개인의 탐욕이 결합되어 이같은 문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이 만든 영화 <월 스트릿>(Wall Street)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투자의 귀재 고든 게코(Gordon Gekko)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열연한 게코는 텔다 종이 회사(Teldar Paper)의 주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탐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내 말의 요지는 "탐욕은 좋은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더 알맞은 단어를 찾을 수가 없군요. 탐욕은 옳습니다. 탐욕은 효력이 있습니다. 탐욕은 분명하게 하고, 돌파하게 하며, 진화 정신의 핵심입니다. 생명을 위한 탐욕이든, 돈을 위한 탐욕이든, 사랑을 위한 탐욕이든, 지식을 위한 탐욕이든, 모든 형태의 탐욕은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는 추진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말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은 텔다 종이 회사를 구할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회사까지 구할 것입니다. (The point is, ladies and gentleman, that greed ― for lack of a better word ― is good. Greed is right. Greed works. Greed clarifies, cuts through, and captures the essence of the evolutionary spirit. Greed, in all of its forms ― greed for life, for money, for love, knowledge ― has marked the upward surge of mankind. And greed ― you mark my words ― will not only save Teldar Paper, but that other malfunctioning corporation called the USA.)
이 대사는 시나리오 작가가 창작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반 뵈스키(Ivan Boesky)라는 전설적인 투자가가UC Berkeley에서 행한 연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월 스트릿의 철학이며 믿음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미국 사회의 신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탐욕이 미덕으로 칭송받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5.
하지만 탐욕은 정말 좋은 것입니까?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이 형제와 유산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랍비인 줄 알고 찾아와 그 분쟁을 해결해 주기를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음을 밝히고 나서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있지 않다"(15절). 그러고 나서 비유를 하나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어느 해에 엄청난 곡식을 추수했습니다. 그가 가진 창고로는 그 곡식을 모두 저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부자는 궁리를 합니다. 뭐라고 궁리하는지 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내 소출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17-18절). 우리는 그의 말에서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 소출", "내 곳간", ‘내 곡식", "내 물건"?자기 밖에는 안중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19절).
이 사람은 세상적인 견지에서 보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월 스트릿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이재(money making)에 밝고 기회에 민첩한 사람입니다. 그는 고든 게코처럼 "탐욕은 좋은 것이야. 탐욕은 옳은 것이지. 탐욕이야말로 내 인생의 주춧돌이지"라고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을 ‘어리석다’고 판정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그리고는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21절).
그는 사람의 생명이 물질에 있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물질을 모으는 일에 전심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도 잊고 이웃도 없이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과 이웃을 얻는 것인데, 이 부자는 하나님과 이웃 대신 물질을 선택했습니다. 그 물질이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보장할 것처럼 믿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어리석음입니다.
6.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보시기에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동안 상황이 좋을 때,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 탐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잃더라도 물질은 잃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도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까? 나의 삶에는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 얼마나 컸습니까? 나의 수입 중에서 하나님을 위한 지출이 얼마나 컸습니까? 내 지출 중에서 이웃을 위한 지출은 또 얼마나 컸습니까? 탐욕스럽게 큰 집을 사고 비싼 차를 사고 사업을 확장하느라, 하나님께도 인색했고 이웃을 위해서도 야박했던 것은 아닙니까? 그것을 우리는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는 어떻습니까?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 물질, 그리고 그 물질이 보장해 주리라고 믿었던 행복이 지금 그대로 있습니까? 과연, 우리가 희망을 두고 살았던 그 돈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입니까? 누군가 성공에 대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상에 가까왔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는 또한 벼랑에 선 것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Every time we got closer to the top, we felt like we got closer to the edge, too.). 누군가 물질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다 가졌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또한 모두 다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낍니다."(When we felt like we had it all, we also felt like we will lose it all.) 이것이 물질의 속성이요, 이것이 탐욕의 속성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예수님은 게코와 정반대로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게코의 대사를 사용하여 오늘의 비유에 나온 예수님의 가르침을 풀어 보자면 이렇습니다.
내 말의 요지는 "탐욕은 나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탐욕은 옳지 않습니다. 탐욕은 효력이 있어 보이지만 나중에는 역효과를 냅니다. 탐욕은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고, 궁지에 몰리게 만듭니다. 그것은 창조 정신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위한 탐욕이든, 돈을 위한 탐욕이든, 사랑을 위한 탐욕이든, 지식을 위한 탐욕이든, 모든 형태의 탐욕은 인류의 타락의 추진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말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은 텔다 종이 회사를 멸망시킬 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회사까지 망하게 할 것입니다.
월 스트릿을 대변하는 고든 게코의 말과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어느 편이 진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게코의 말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에서 게코의 말은 얼마나 공허하게 들립니까? 반면, 예수님의 말씀은 강력한 진리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진리는 위기에 때에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사실을 이번 경제 위기는 선명하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기업적으로, 교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탐욕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탐욕에서 나온 모든 잘못된 행실들을 점검하여 회개하고, 탐욕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지나쳤던 소비를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지나쳤던 욕심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인색했던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이웃에게 냉담했던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경쟁심과 허영심과 사치의 마음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에 희망과 믿음을 두었던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것들을 낱낱이 회개하고 탐욕을 내려놓아야 하겠습니다
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위기 앞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조용히 머물러 앉아 회개하십시다. 여러분이 어떤 죄를 저질러서 그런 위기가 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슨 대단한 탐욕을 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위기를 당면하여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살피며 아주 작은 탐욕이라도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잠시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만, 결국 이겨낼 것입니다.
혹시, "나는 아직 괜찮다"고 안심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분들도 이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회개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지 않고는 진정한 안전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든든한 기초가 언제 흔들릴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 다 당하는 위기를 모면한 것에 대해 다행으로 여기며 과거의 생활 방식 그대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아직 어려움이 닥치지 않았을 때 회개하면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토대 위에 설 것입니다.
회개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힘입니다. 회개하면 마음이 비어집니다. 탐욕도 사라지고 집착도 사라집니다. 회개하면 높아졌던 눈이 낮아집니다. 낮아진 눈에 세상은 달라 보입니다. 회개하면 좁아졌던 시야가 넓어집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도 보이고, 이웃도 보입니다. 회개하면 오그라들었던 손이 펴집니다. 손을 펴서 이웃의 손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비정하고 빈틈없어 보이던 사람이 회개하면 다정하고 넉넉해집니다. 회개하면 꼭꼭 닫아 두었던 창고를 열만한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위해 넉넉히 바치고 이웃을 위해 너그러이 베풀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찢고 슬퍼 울며 회개하고 난 후입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슬피 울 때입니다.
회개가 희망입니다. 회개가 길입니다. 참된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을 낮추고 깨뜨리고 비우는 것, 그 회개가 희망의 시작입니다. 이 회개의 은총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함께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주님,
회개의 영을 주소서.
지금 당하는 경제 위기는
회개하라는 부름입니다.
저희의 탐욕을,
저희의 이기심을,
저희의 물질주의를,
저희의 비정한 경쟁심을,
저희의 지나친 소비를
회개합니다.
물질에는 부유하고
하나님께는 인색하고
이웃에게는 냉담했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진실하게 회개하오니
이 위기를
하나님의 기회로 삼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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