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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싸움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750 추천 수 0 2011.05.01 23: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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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싸움

시골 면 소재지에서 서커스 공연이 있었습니다. 산동네들로 구성된 면이었습니다. 아주 깊은 산골인지라 나무를 하다 눈을 다친 사람들이 많았는데 시각 장애인들만 모여 사는 "맹천국"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서커스 공연단은 연일 산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선전을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서커스 공연단이 들어 왔으니 꼭 나와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평생 한 번 보는 것도 행운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선전으로 호기심이 머리끝까지 채워진 그들은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희망자는 지팡이를 들고 마을 이장의 안내를 받아 서커스 구경에 나섰습니다. 외줄 타기도 하고 자전거 타기고 하고, 공중 곡예를 하였지만 시각 장애인들의 눈에는 그림의 떡 정도도 되지 않았습니다.

풍악 소리만 들릴 뿐 각종 공연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공연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공연하는 동안 장애인들은 이것 저것들을 만져 보았습니다. 물론 주최측의 농간을 투덜거리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공연료를 돌려달라고 데모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럴만한 힘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강매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선전을 했을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수적으로 열세였습니다. 공연이 파한 후 동네 사람들은 다시 이장의 안내를 받으며 산골 동네로 돌아 와 마을 사랑방에 모였습니다.

저녁이 되자 구경하지 못한 시각 장애인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 산골 동네의 사람들은 이장만 한 쪽 눈이 있었고 모두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이장의 안내를 받아 어렵게 구경을 하고 온 김 서방이 동네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오늘 서커스 너무 좋았어, 음, 그 코끼리 대단하데, 걸어다니는 뱀인가봐 그렇게 긴 것이 달려있어, 징그럽더군" 구경거리 없다고 투덜거리던 낮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코끼리는 뱀처럼 길게 생긴 동물이라고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호응하며 좋아했습니다. "나도 만져 보았으면 좋았을 걸" 한 아낙네가 말했습니다. 여인들은 김 서방에게 더 좋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이 서방은 김 서방이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고 욕을 하면서 코끼리는 뱀같은 동물이 아니라 기둥같은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 내가 분명히 만져 보았는데 코끼리는 기둥 같았어, 확실해, 아마 만져 보았다면 뱀같다고 결코 말하지 못할 것이어. 김 서방은 만져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만 듣고 쓸데없는 소리를 허는 기여. " 역시 구경을 가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서방의 말이 맞을 것이라고 호응해 주었습니다. 특히 여인들은 이 서방에게 어떻게 생겼냐고 자세하게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김 서방은 화가 났습니다. " 이서방, 나도 만져 보았다고 왜 그려, 내가 만져 보니 뱀처럼 징그럽게 긴 것이 있었어. 분명히 만져 보았다고, 최 서방에게 물어보아. 최 서방도 함께 만져 보았으니까? " 최 서방은 김 서방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 나도 같이 만져 보았어 김 서방의 말이 마저 그려" 최 서방은 김 서방의 동서였습니다. 그래서 늘 같이 다녔고 김 서방이 코끼리를 만질 때 함께 똑같이 코끼리 코를 만져 보았습니다. 이 서방도 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분명히 만져 보았다니까? 서 서방도 함께 만져 보았으니 서 서방에게 물어 보아." 서 서방은 이 서방 옆집에 사는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함께 다녔고 그 날 역시 같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져 보았습니다. "그래, 내가 보증할 수 있어. 나도 같이 만져 보았는데 코끼리는 분명 기둥처럼 생긴 동물이야." 사람들은 잘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김 서방 이야기를 들으면 코끼리는 뱀같이 생각이 되었고 이 서방 말을 들으면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때 같이 구경에 나선 한 서방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나도 만져 보았는데 코끼리는 평평한 벽같던데, 기둥 같지도 않고 뱀같지도 않고 평평하더라구." 사람들은 "그게 정말이어"라고 한 서방에게 물었습니다. 한 서방은 평소에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날 밤 코끼리에 대한 논쟁은 두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뱀같다는 편과 기둥같다는 편이었습니다. 김 서방도 이 서방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우기며 욕을 하는데 욕은 더욱 험해졌습니다. 평소 동네 일로 의견 다툼이 생길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김 서방 편을 드는 사람들은 김서방의 일가 친척과 김서방 집 근처에 사는 사람들, 김 서방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김 서방과 같은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서방 편을 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중에는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 도시에 나가 코끼리를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코끼리에 대하여 바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 서방의 친척들은 김 서방의 편을 들어 김 서방이 옳다고 말해 주었고 이 서방의 친척들은 이 서방의 편을 들어 이 서방이 옳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말싸움에서 몸싸움으로 번졌습니다. 마을 이장이 호롱불을 켜 놓고 갔는데 결국 싸움으로 호롱불이 넘어졌습니다. 엉겨붙은 사람들은 그 방을 빠져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볼 수 없지만 불길은 번져 이 서방의 집도, 김 서방의 집도 태우며 서커스 공연장까지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코끼리 싸움/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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