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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가평군과 포천군의 경계에 위치한 운악산(935.5m)은 가을 정취가 빼어난 산이다. 깊은산에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기암절벽과 바위가 활엽수의 단풍과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뽐낸다.
운악산은 암벽 코스와 평탄한 등산로를 함께 지녀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산행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산 전체가 바위산이라 길이 아닌 곳은 다른 산에 비해 위험하다. 산행 기점은 석거리 주차장을 중심으로 정상까지 올랐다가 돌아서 내려오거나 산 넘어 서쪽으로 가면 된다. 반대로 포천땅인 길원목장이나 운주사를 기점으로 잡을 수도 있다.
운악산 산행은 1㎞에 걸쳐 펼쳐지는 푸른 소나무 숲부터 시작된다. 소나무 숲이 끝나면 떡갈나무 숲으로 다시 장관을 이룬다. 이어 산중턱에 있는 고찰 현등사까지 가는 길은 평범한 산책로와 같다.
산길따라 왼쪽에는 운악계곡이 흐른다. 운악계곡은 힘차거나 거창하지 않으며 투박하지도 않다. 대신 정교하다. 석공이 다듬어 놓은 듯 정밀한 아름다움이 있다. 계곡 전체가 마치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듯 물의 흐름따라 바위도 따라 흐른다.
고려 때 지어진 운악산 입구 현등사 경내.
올라가는 길에서는 백년폭포와 무우폭포를 만날 수 있다. 이 폭포들은 천둥처럼 떨어지거나 까마득히 먼 하늘에서 물줄기가 실타래처럼 풀어지며 흐르는 폭포는 아니다. 그냥 작고 소박하다. 흐르는 물이 바위를 타고 내려가 떨어지면서 아래는 맑은 못을 이루고 있는 다정한 폭포다.
현등사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정상을 향하는 동안 내내 거대한 바위와 가파른 돌길과 한 낮에도 어둡게 느껴질 짙은 나무 숲을 뚫고 지나가게 된다.
중간에 만나는 병풍바위와 미륵바위는 절경이다. 직립하여 서있는 쇠사다리를 올라야 하는 등 만만치 않은 코스지만 정상에 오르면 바위로 된 정상은 사방이 탁 트여 통쾌함이 다른 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주봉인 망경대를 중심으로 우람한 바위들이 봉우리마다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모습은 볼거리 중 볼거리다.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차장부터 등산로 입구까지 나란히 있는 두부집들이다. 두부전골·두부부침·순두부·콩비지 등 가평에서 나는 국산 콩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들이 있다. 여기에 가평 특산물인 잣 막걸리라도 한잔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다른 하나는 포도다. 운악산 주변은 산세가 깊어 낮과 밤은 기온차가 심하다. 한낮 뜨거운 태양에 한껏 양분을 빨아들인 포도나무들이 밤이 돼 기온이 떨어지면 모든 영양분을 포도알에 저장하기 때문에 단맛이 강하다.
주변 명소로는 유명산 휴양림이 있다.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용문면 사이에 있다. 5㎞를 힘차게 내려오는 계곡이 암반을 깎고 내려가 작은 연못들을 이루고 있어 가족단위 여행이나 휴양을 목적으로 찾기에 좋은 곳이다.
가파른 오솔길 끝에 천년 고찰 현등사 우뚝
운악산 동쪽 산자락에는 천년 고찰 현등사(懸燈寺)가 자리해 있다. 현등사는 가파른 산등성이 위에 여러층의 돌담을 쌓아 공간을 만든 뒤 그 위에 지은 절이다.
높다란 축대 위에 터를 잡은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514년) 때 불법의 진수를 전하기 위해 목숨 걸고 동방으로 찾아온 인도승 마라하미(摩羅訶彌)를 위해 왕이 지어주었다고 전해졌지만 이후 폐허가 되었다.
지금의 현등사는 고려 희종때 보조국사 지눌이 전국을 순회하던 중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는데 산속에서 환한 광채가 나 올라가 보니 폐허의 절터에 있는 석등에 빛이 환하여 절을 중건하고 현등사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현등은 ‘부처의 가르침을 드러낸다’는 뜻도 담고 있다.
수백년간 수차례의 폐사와 재건을 반복한 불행한 전력이 있지만 경내에는 극락보전과 아미타삼존상, 그리고 범종 등이 보존되어 있다.
이 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높이 3.7m)에는 조선 세조 15년(1470) 현등사를 증수한 기록이 새겨진 사리용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석탑을 구성하는 각 부의 양식과 문양 등으로 보아 고려말이나 조선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등사는 운악산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평군 현리를 지나 하판리에 도착해 마을 입구에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가면 된다.
이 오솔길은 여느 산사의 진입로와는 느낌이 다르다. 군데군데 가파른 오르막길이 많아서인지 흙길보다 시멘트 포장 도로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이곳은 비가 올 때 찾아도 질척거림 없이 오를 수 있다.
오솔길을 50분가량 오르다 보면 가파른 산비탈에 고찰 분위기를 간직한 현등사를 볼 수 있다.
<가평|최인진기자 ij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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