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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1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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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10·01·22
주님께서 연약한 우리에게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변화시키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하려면 반드시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두려움과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완전히 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부활하신 주님을 전했는데 그 누구도, 죽음까지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 온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제자들이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대로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자 제자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하고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찾는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을까요? 제자들처럼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먼저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굳게 붙잡고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모여 합심해서 기도함으로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능력 있게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하기도 어려운 난감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며 최선을 다했는데 일이 실패로 돌아가는가 하면, 믿음 좋은 성도가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아이티 지진과 같은 엄청난 일도 일어납니다. 당신은 이런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럴 때는 하나님께서 속 시원하게 음성을 들려주시든지, 어떤 확실한 답을 보여주시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경우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난감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초대 교회의 두 가지 난점
이런 난감한 일들은 교회 역사상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복음 전파에 큰 걸림돌이 되는 난감한 일이 두 가지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와 가룟 유다의 배반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킬 영웅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영웅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십자가야말로 복음의 진수요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표현임을 논증했습니다.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도 역시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어떻게 한낱 제자의 손에 팔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처럼 초대 교회의 걸림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멸망의 길로 나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우신 12사도 가운데 결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제자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대로 되었다!
120명의 제자들이 모였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가룟 유다의 일에 대해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삼십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에 대한 베드로의 의견은 이러했습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16절) 가룟 유다에 대한 베드로의 이 해석은 대단히 중요한 해석입니다. 그는 이 난처한 문제를 인간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또는 심리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경에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일은 이미 예언된 것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정확하고 확실한 설명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용한 구약의 예언은 시편41:9, 69:25, 109:8이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41:9)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원리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특히 그 일이 난감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수록,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당신이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 몇 장 몇 절에 의해서 그것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만일 성경에 해답이 없거든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세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크신 경륜 속에 있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보며, 모든 문제의 해답을 성경에서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고 있습니까?
가룟 유다의 범죄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이렇게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룟 유다가 성경에 예언된 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가룟 유다 자신은 예수님을 배반한 일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성경을 오해한 데서 생긴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칼빈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유다는 예언을 이루고자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악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 가룟 유다는 예언을 이루기 위한 열심을 가지고 주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악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이미 예언했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가룟 유다는 범죄한 후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꼈습니다. 돈도 모든 것도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은을 가지고 가서 자기가 저지른 일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참하게 자살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18절) 죄의 결과는 언제나 이렇게 무섭고 비참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죄를 짓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탄이 사람들의 눈을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만 얻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사라가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우리를 이렇게 유혹하여 넘어뜨리려 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눈을 가리지 않도록 언제나 믿음에 굳게 서서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빈자리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도의 직분을 맡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버리고 멸망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도 다른 제자들처럼 주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배웠고, 이적과 권능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일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모든 성도는 주님께로부터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명과 직분을 끝까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중에 탈선하고 낙오하여 그 날에 주님 앞에 설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가룟 유다의 범죄는 그를 파멸에 이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열두 사도직의 공백을 초래했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사도를 임명하셨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주님께서는 ‘열두 보좌’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룟 유다가 제외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빈자리를 채우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한 사람을 택하심
제자들은 먼저 사도의 자격을 규정하고 여기에 맞는 두 사람을 천거하여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한 사도를 보선하는 제자들의 이러한 모든 과정은 그들이 이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도의 자격은 ‘세례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21-22)
그런 자격이 있는 두 사람, 유스도와 맛디아가 천거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놓고 그들은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았는데, 맛디아가 선출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24-26)
어떤 사람들은 이 날 베드로가 나서서 맛디아를 보선한 것은 실수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그 후로 성경에 맛디아의 활약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주님께서는 이미 바울을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택하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12사도의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베드로가 실수하게 내버려두셨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맛디아만이 아니라 바돌로매나 도마, 다대오, 시몬 등의 활약상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문제 삼아 맛디아의 보선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단정 짓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더구나 지금의 베드로는 성미가 급하고 늘 실수를 연발하던 옛날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문제를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확고한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결정이 옳았으며, 주님께서도 그것을 인정하셨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맛디아의 보선 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가?
이렇게 해서 초대 교회는 당시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가룟 유다의 문제와 결원된 사도를 보선하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찾아 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중대한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개인도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한동대 총장인 김영길 박사가 설립을 앞둔 한동대 총장직을 제의받았을 때 어떻게 말씀을 통해 인도하심을 받았는지 보십시오. 「갈대상자」라는 책에 그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박사 부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면서 목사님의 설교, 성경 묵상, 기도 등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채널들을 모두 열어놓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가장 먼저 주일 설교 때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시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들은 설교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그래도 사모님은 하나님께 한 번 더 말씀해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며칠 후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느헤미야를 묵상하라는 권면을 들었습니다. 느혜미야는 어려운 시대에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김영길 박사 부부는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 동안 겪었던 무수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일을 꿋꿋이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 말씀을 통해 인도하심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확인되고 인도하심을 받으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너무 성급하게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으로 그 일을 해석해보십시오. 특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하십시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확인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림 없이 전진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주님께서 연약한 우리에게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변화시키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하려면 반드시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두려움과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완전히 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부활하신 주님을 전했는데 그 누구도, 죽음까지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 온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제자들이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대로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자 제자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하고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찾는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을까요? 제자들처럼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먼저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굳게 붙잡고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모여 합심해서 기도함으로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능력 있게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하기도 어려운 난감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며 최선을 다했는데 일이 실패로 돌아가는가 하면, 믿음 좋은 성도가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아이티 지진과 같은 엄청난 일도 일어납니다. 당신은 이런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럴 때는 하나님께서 속 시원하게 음성을 들려주시든지, 어떤 확실한 답을 보여주시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경우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난감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초대 교회의 두 가지 난점
이런 난감한 일들은 교회 역사상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복음 전파에 큰 걸림돌이 되는 난감한 일이 두 가지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와 가룟 유다의 배반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킬 영웅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영웅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십자가야말로 복음의 진수요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표현임을 논증했습니다.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도 역시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어떻게 한낱 제자의 손에 팔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처럼 초대 교회의 걸림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멸망의 길로 나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우신 12사도 가운데 결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제자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대로 되었다!
120명의 제자들이 모였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가룟 유다의 일에 대해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삼십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에 대한 베드로의 의견은 이러했습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16절) 가룟 유다에 대한 베드로의 이 해석은 대단히 중요한 해석입니다. 그는 이 난처한 문제를 인간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또는 심리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경에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일은 이미 예언된 것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정확하고 확실한 설명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용한 구약의 예언은 시편41:9, 69:25, 109:8이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41:9)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원리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특히 그 일이 난감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수록,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당신이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 몇 장 몇 절에 의해서 그것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만일 성경에 해답이 없거든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세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크신 경륜 속에 있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보며, 모든 문제의 해답을 성경에서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고 있습니까?
가룟 유다의 범죄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이렇게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룟 유다가 성경에 예언된 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가룟 유다 자신은 예수님을 배반한 일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성경을 오해한 데서 생긴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칼빈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유다는 예언을 이루고자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악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 가룟 유다는 예언을 이루기 위한 열심을 가지고 주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악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이미 예언했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가룟 유다는 범죄한 후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꼈습니다. 돈도 모든 것도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은을 가지고 가서 자기가 저지른 일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참하게 자살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18절) 죄의 결과는 언제나 이렇게 무섭고 비참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죄를 짓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탄이 사람들의 눈을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만 얻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사라가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우리를 이렇게 유혹하여 넘어뜨리려 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눈을 가리지 않도록 언제나 믿음에 굳게 서서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빈자리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도의 직분을 맡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버리고 멸망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도 다른 제자들처럼 주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배웠고, 이적과 권능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일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모든 성도는 주님께로부터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명과 직분을 끝까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중에 탈선하고 낙오하여 그 날에 주님 앞에 설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가룟 유다의 범죄는 그를 파멸에 이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열두 사도직의 공백을 초래했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사도를 임명하셨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주님께서는 ‘열두 보좌’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룟 유다가 제외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빈자리를 채우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한 사람을 택하심
제자들은 먼저 사도의 자격을 규정하고 여기에 맞는 두 사람을 천거하여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한 사도를 보선하는 제자들의 이러한 모든 과정은 그들이 이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도의 자격은 ‘세례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21-22)
그런 자격이 있는 두 사람, 유스도와 맛디아가 천거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놓고 그들은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았는데, 맛디아가 선출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24-26)
어떤 사람들은 이 날 베드로가 나서서 맛디아를 보선한 것은 실수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그 후로 성경에 맛디아의 활약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주님께서는 이미 바울을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택하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12사도의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베드로가 실수하게 내버려두셨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맛디아만이 아니라 바돌로매나 도마, 다대오, 시몬 등의 활약상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문제 삼아 맛디아의 보선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단정 짓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더구나 지금의 베드로는 성미가 급하고 늘 실수를 연발하던 옛날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문제를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확고한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결정이 옳았으며, 주님께서도 그것을 인정하셨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맛디아의 보선 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가?
이렇게 해서 초대 교회는 당시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가룟 유다의 문제와 결원된 사도를 보선하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찾아 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중대한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개인도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한동대 총장인 김영길 박사가 설립을 앞둔 한동대 총장직을 제의받았을 때 어떻게 말씀을 통해 인도하심을 받았는지 보십시오. 「갈대상자」라는 책에 그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박사 부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면서 목사님의 설교, 성경 묵상, 기도 등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채널들을 모두 열어놓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가장 먼저 주일 설교 때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시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들은 설교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그래도 사모님은 하나님께 한 번 더 말씀해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며칠 후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느헤미야를 묵상하라는 권면을 들었습니다. 느혜미야는 어려운 시대에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김영길 박사 부부는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 동안 겪었던 무수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일을 꿋꿋이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 말씀을 통해 인도하심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확인되고 인도하심을 받으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너무 성급하게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으로 그 일을 해석해보십시오. 특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하십시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확인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림 없이 전진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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