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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4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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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10·02·12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초대교회는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셨으며, 사도들은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쳤고, 성도들은 쉬지 않고 기도하며 교제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과 큰 기쁨이 있었으며, 이러한 가운데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많아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참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힘썼던 것은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전도, 그리고 교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참다운 교회,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되려면 이러한 본질적인 일들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초대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42절) 성령의 강림으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으나, 초대교회의 기초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들이 많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말씀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에 힘썼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성령이 충만할수록 말씀을 더욱 사모하며 배우기에 힘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으로 놀라운 체험이 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말씀으로 그것을 점검받고 확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며, 하나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에 말씀 없이는 우리의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서는 우리 육체가 자랄 수 없고 힘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등한시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 앞에 진지하게 서기만 한다면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며, 우리 모든 문제의 해답을 제시해 주며, 인생의 방향을 지시해 줍니다. 우리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에 힘써야 하며, 성도는 이 말씀을 배우는 데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교회는 든든히 서가며, 이렇게 하는 성도는 믿음 있고 칭찬받는 아름답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풍성한 축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 배우기를 힘쓰며, 가정에서도 이 말씀을 열심히 사모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자녀들의 장래, 그리고 국가의 장래는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30:15-20)
기도
초대교회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42절)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께 말씀을 드릴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온갖 보화들을 꺼내어 올 수 있습니다. 이 기도의 맛과 능력을 아는 사람은 더욱 기도하려고 애씁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마음속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우신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삶과 봉사를 위한 능력을 제공받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친히 기도에 몰두하셨고, 기도 외에는 능력이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마9:28-29) 기도는 성도의 가장 큰 특권입니다.
일찍이 능력 있게 살았던 우리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기도에 열중했던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날 정도였습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출34:29) 시편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이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만능이었습니다. 이들은 기도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렸으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았습니다.
거대한 로마 교회에 맞서서 종교 개혁을 수행했던 루터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2시간씩 기도했는데, 바쁜 날에는 3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낙스는 기도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대적 메리 여왕은 영국의 모든 군대보다 존 낙스 한 사람의 기도가 더 무섭다고 고백할 지경이었습니다. 기도로 능력 있고 풍성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이 밖에도 수 없이 많습니다. 이 특권과 축복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며, 언제나 무슨 일에나 늘 기도하는 성도가 됩시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은혜를 공급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
초대교회에는 날마다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구원받는 무리가 날마다 더하게 된 것은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을 다했다는 증거입니다. 전도는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곧 구원의 도를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우리 주님의 최후의 유언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전도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전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존재할 이유를 상실해 버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천국에 가면 전도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전도하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주님의 가장 큰 명령을 수행할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전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해외 선교를 위해 협력하는 것도 같은 일입니다. 성경은 전도하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히 비취리라.”(단12:3) 장차 우리가 받을 상중에서 가장 큰 상은 전도한 것에 대한 상일 것입니다.
교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4-46절)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아주 재미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교회를 매우 딱딱하고 재미없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교회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교제가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교제란 단순히 둘러 앉아 잡담하며 쓸 데 없는 이야기나 늘어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제는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제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인 κοινωνια는 ‘공유하다, 서로 나누다, 동반자가 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제란 서로 나누며, 동반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같은 주님을 섬기는 형제들로서 위대한 비전과 슬픔과 기쁨을 같이 나눔으로써 서로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간혹 이런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열심을 내며, 누구보다 기도도 많이 하고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그 사람 곁에 가기가 편치 않고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많으면 그 교회는 굳어지고 재미가 없어집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자신만 생각하지 다른 사람은 조금도 생각할 줄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교제가 풍성한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형제를 내 생명처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얼마나 강조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서로 나누며 돌보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음으로 이기심이 사라진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 누군가 어려운 사람이 생각나 그 사람을 도와야만 하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가 곤경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서로 모여서 말만 무성한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 모일 뿐 아니라 각각 집에 모여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식사를 함께 하며 교제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어울려 형제의 가정을 찾아가 조촐하게 준비한 식사를 함께 나누는 것은 더 정겹고 풍성한 교제의 기회가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렇다고 경박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우 진지했고 순전했습니다. 이런 교회에 믿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불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다함께 힘씁시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 예배하는 교회였으며, 말씀과 기도와 전도, 그리고 교제에 충실한 교회였습니다. 오늘 우리 참사랑교회가 이처럼 아름답고 온전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말씀에 굳게 서고 기도에 힘쓰며, 전도와 교제에 힘씀으로 아름답고 온전한 교회를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초대교회는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셨으며, 사도들은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쳤고, 성도들은 쉬지 않고 기도하며 교제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과 큰 기쁨이 있었으며, 이러한 가운데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많아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참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힘썼던 것은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전도, 그리고 교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참다운 교회,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되려면 이러한 본질적인 일들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초대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42절) 성령의 강림으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으나, 초대교회의 기초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들이 많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말씀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에 힘썼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성령이 충만할수록 말씀을 더욱 사모하며 배우기에 힘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으로 놀라운 체험이 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말씀으로 그것을 점검받고 확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며, 하나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에 말씀 없이는 우리의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서는 우리 육체가 자랄 수 없고 힘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등한시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 앞에 진지하게 서기만 한다면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며, 우리 모든 문제의 해답을 제시해 주며, 인생의 방향을 지시해 줍니다. 우리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에 힘써야 하며, 성도는 이 말씀을 배우는 데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교회는 든든히 서가며, 이렇게 하는 성도는 믿음 있고 칭찬받는 아름답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풍성한 축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 배우기를 힘쓰며, 가정에서도 이 말씀을 열심히 사모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자녀들의 장래, 그리고 국가의 장래는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30:15-20)
기도
초대교회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42절)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께 말씀을 드릴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온갖 보화들을 꺼내어 올 수 있습니다. 이 기도의 맛과 능력을 아는 사람은 더욱 기도하려고 애씁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마음속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우신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삶과 봉사를 위한 능력을 제공받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친히 기도에 몰두하셨고, 기도 외에는 능력이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마9:28-29) 기도는 성도의 가장 큰 특권입니다.
일찍이 능력 있게 살았던 우리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기도에 열중했던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날 정도였습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출34:29) 시편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이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만능이었습니다. 이들은 기도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렸으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았습니다.
거대한 로마 교회에 맞서서 종교 개혁을 수행했던 루터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2시간씩 기도했는데, 바쁜 날에는 3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낙스는 기도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대적 메리 여왕은 영국의 모든 군대보다 존 낙스 한 사람의 기도가 더 무섭다고 고백할 지경이었습니다. 기도로 능력 있고 풍성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이 밖에도 수 없이 많습니다. 이 특권과 축복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며, 언제나 무슨 일에나 늘 기도하는 성도가 됩시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은혜를 공급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
초대교회에는 날마다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구원받는 무리가 날마다 더하게 된 것은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을 다했다는 증거입니다. 전도는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곧 구원의 도를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우리 주님의 최후의 유언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전도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전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존재할 이유를 상실해 버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천국에 가면 전도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전도하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주님의 가장 큰 명령을 수행할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전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해외 선교를 위해 협력하는 것도 같은 일입니다. 성경은 전도하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히 비취리라.”(단12:3) 장차 우리가 받을 상중에서 가장 큰 상은 전도한 것에 대한 상일 것입니다.
교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4-46절)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아주 재미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교회를 매우 딱딱하고 재미없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교회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교제가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교제란 단순히 둘러 앉아 잡담하며 쓸 데 없는 이야기나 늘어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제는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제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인 κοινωνια는 ‘공유하다, 서로 나누다, 동반자가 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제란 서로 나누며, 동반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같은 주님을 섬기는 형제들로서 위대한 비전과 슬픔과 기쁨을 같이 나눔으로써 서로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간혹 이런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열심을 내며, 누구보다 기도도 많이 하고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그 사람 곁에 가기가 편치 않고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많으면 그 교회는 굳어지고 재미가 없어집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자신만 생각하지 다른 사람은 조금도 생각할 줄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교제가 풍성한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형제를 내 생명처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얼마나 강조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서로 나누며 돌보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음으로 이기심이 사라진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 누군가 어려운 사람이 생각나 그 사람을 도와야만 하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가 곤경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서로 모여서 말만 무성한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 모일 뿐 아니라 각각 집에 모여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식사를 함께 하며 교제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어울려 형제의 가정을 찾아가 조촐하게 준비한 식사를 함께 나누는 것은 더 정겹고 풍성한 교제의 기회가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렇다고 경박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우 진지했고 순전했습니다. 이런 교회에 믿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불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다함께 힘씁시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 예배하는 교회였으며, 말씀과 기도와 전도, 그리고 교제에 충실한 교회였습니다. 오늘 우리 참사랑교회가 이처럼 아름답고 온전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말씀에 굳게 서고 기도에 힘쓰며, 전도와 교제에 힘씀으로 아름답고 온전한 교회를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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