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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메시지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556 추천 수 0 2011.05.07 23: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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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3:11-26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10·02·26

우리는 예수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다시 죄를 짓습니다. 우리의 삶이 연약하고 곤고한 것은 바로 이 죄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죄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죄를 그냥 두면 그 죄에 매이게 됩니다. 그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 죄 때문에 기도가 응답받지 못합니다. 그 죄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지 못합니다. 이 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중에 매일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깨끗이 용서해주십니다. 죄 사함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슨 죄든지 즉시 회개하여 해결 받고 있습니까?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자 모든 백성이 놀라며 솔로몬 행각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설교를 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앉은뱅이가 일어난 이적은 베드로와 요한, 즉 사람이 행한 것이 아니다. 이 이적은 그들이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부활하셔서 지금 다스리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된 것이다. 부활하시어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치셨다.”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와 마찬가지로 이 두 번째 설교의 중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모든 설교의 중심은 언제나 그리스도여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으며, 회개할 때 받는 복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중요한 점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설교는 해석이다.

베드로의 설교는 일어난 사건을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설교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라는 사건을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이렇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번째 설교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을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이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깜짝 놀라 베드로에게 몰려들자, 베드로는 이 사건에 대하여 그들에게 설명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이 이적은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행하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셔서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복음의 핵심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으니 회개하고 돌이키라.”라고 촉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설교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과 지금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행한 두 번의 설교에서 당시에 일어난 사건을 해석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라는 사건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이 일어난 이 사건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베드로는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면서 이 사건들을 해석했습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그 말씀으로 오늘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그 말씀을 깨닫고 해석할 수 있습니까?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에 대하여 무지하면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해석하면서 이 놀라운 이적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고, 소경을 고치셨으며, 앉은뱅이를 일으키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러한 일을 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영으로 베드로와 함께 하고 계셨으며, 베드로를 통하여 이 앉은뱅이를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하시던 일을 지금 베드로를 통하여 계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계실 때 하셨던 일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베드로의 이 해석이 얼마나 정확하고 분명합니까?

그런데 이 점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로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인 우리는 주님께서 하셨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친히 당신의 몸된 교회에 함께 계시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병자를 고치시는 일만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시고 가르치신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교회를 통하여 전파하시고 가르치시며 고치시는 일을 계속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주님의 일들을 충성되게, 능력 있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자신을 통하여 이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을 ‘그 이름으로’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절)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이 일으켰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친히 일으키셨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 이름을 부름과 함께 그 이름의 존재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 사건이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예수님의 사건이 되고, 그 이름을 부름으로 그 사람이 예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아무리 두려운 세력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정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귀신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두려워하며 물러갑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고 고침 받는 사건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은 이방인들이 외우는 주문과는 다릅니다. 무조건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가 주의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 앞에 서며, 믿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믿음도 없이, 맹목적으로 부르는 것은 이방인들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병자를 보고 소리를 지른다고 낫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귀신을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행19:13-16)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어려운 일을 만난 형제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응답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줘도 마음에 아무런 감동도 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며 확신이 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람의 믿음과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어 옵니다. 이런 경우는 기도가 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응답이 속히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과 뜨거운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믿음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회개하라.

베드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을 증거한 다음,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베드로가 지한
백성들의 죄는 그들이 예수님을 넘겨주었다는 것,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정한 것을 거절한 것, 그리고 오히려 살인한 자를 놓아 주기를 구한 것, 생명의 주를 죽인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13하-15상)

이렇게 죄를 지적하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죄를 지적받고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고 오히려 더욱 강퍅해져서 대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적하는 설교가 참으로 능력 있는 설교입니다. 베드로가 그의 설교를 통하여 백성들의 죄를 이렇게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했을 때 무려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4:4)

죄를 지적하지 않는 설교와 설교자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성도들은 죄를 지적하거나 하나님 앞에 바로 설 것을 권면하면 싫어하고 심지어는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저 듣기 좋은 축복의 말씀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 회개하는 것이 진정으로 복 받는 비결입니다. 베드로는 백성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한 후, 회개하는 자가 받을 복을 제시했습니다.

회개한 자가 받을 복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죄는 얼마나 강력하고 끈질긴지… 우리는 죄를 이기지 못하고 범죄합니다. 얼마나 곤혹스럽고 하나님 앞에 송구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개하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회개한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더해주시기까지 하십니다.

베드로는 회개한 자가 받을 복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죄 없이 함을 받는 것, 새롭게 되는 것, 그리고 예정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 등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19-20절) 죄 없이 함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개역성경에서는 '유쾌하게'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예화를 통해 우리는 유쾌하게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소년이 장난을 치고 놀다가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도자기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깨진 도자기 파편들을 몰래 갖다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목격한 가정부가 일러바치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소년은 무엇이든 가정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정부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해왔기 때문에 소년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소년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그 일을 다 알고 있었다면서, 소년이 직접 그 일을 고백하고 용서 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소년을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께 용서를 받은 소년이 밖으로 나갔을 때 못된 가정부가 와서 다시 협박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 고백하고 용서를 받았으므로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죄를 해결 받지 못하고 간직한 채로 살면 죄의 노예가 되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청산하면 유쾌함을 얻습니다. 나의 고집과 자아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를 포기하고 주님께 복종하며 온전히 헌신할 때도 우리는 이러한 유쾌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유쾌하게 되는 것은 다만 심리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과 축복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유쾌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회개하는 자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는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23절)

주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지만 주님께서 행하시던 모든 일들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참으로 미약하고 부끄럽습니다. 왜 초대 교회와 같은 경건과 능력이 없을까요? 그것은 회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있는 곳,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일을 능력 있게 계속해 나가려면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회개함으로 죄 없이 함을 받으며, 유쾌함을 얻으며, 주님의 일을 능력 있게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교회와 성도는 주님께서 오실 때 큰 축복과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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