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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약점과 실수

창세기 복음............... 조회 수 3291 추천 수 0 2011.05.10 19: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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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0:1-18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아브라함의 약점과 실수

본문: 창세기 20: 1- 18

훗날 미국의 원수가 된 맥아더가 육군학교 교장을 맡고 있던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미국 국방위원들이 시찰을 나왔습니다. 맥아더는 각종 보고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안내하였습니다. 방안에는 아무런 가구도 없고 단지 야전용 쇠 침대 하나만이 놓여있었습니다.
"여기가 제가 생활하는 방입니다. 이곳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주일에만 집으로 갑니다."
맥아더는 내심 자기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가를 말하려고 목에 힘을 주며 쇠 침대에서 자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시찰이 끝난 후 만찬이 베풀어졌고 금 접시에 멋진 요리들이 담겨 나왔습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모두들 돌아간 뒤에 금 접시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맥아더는 괘씸하게 생각하고서 범인을 잡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국방위원들을 의심한 맥아더는 서신을 보내어 금 접시의 행방을 캐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음과 같은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만일 장군님께서 그 날 밤 야전용 쇠 침대에서 주무셨다면 벌써 금 접시를 찾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모포 밑에 접시를 넣어두었거든요.”
점잖은 체면에 톡톡히 망신만 당한 맥아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짓말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4:25)

본장은 롯에 이어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겪은 수치스러운 일이 소개됩니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있는 그랄로 이주한 직후에 발생한 실수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는 자기 아내 사라를 그랄 왕에게 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이십사 년 전 애굽에서 저질렀던 실수의 재현이었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아브라함은 때로는 믿음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오르락내리락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허물을 덮으시고 그랄 왕이 범죄하지 못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약점과 실수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살던 아브라함은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있는 그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거처'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곳은 팔레스타인 남부, 사해 서쪽에 위치하였던 조그마한 성읍입니다(참조, 창10:19) 이곳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내려갔던 땅이기도 하며(참조, 창26:1-6), 또한 훗날 아사 왕이 구스 군을 추격해 왔던 곳이기도 합니다(참조, 대하14:13).

그랄로 거처를 옮긴 아브라함은 그 곳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눈에 보이는 인간적 위협들을 물리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믿음을 잃고 수치를 당하며 타락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질이 급한 것이 약점이어서 항상 그것 때문에 실수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약합니다. 그런 사람은 돈 문제만 나오면 벌벌 떠는 좁고 치사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은 술 때문에 그렇게 낭패를 당하고도 결정적인 때 또 여지없이 술 때문에 실수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이 많아서 항상 그 말 때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세상에 약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러한 사람의 약점은 예수 믿고 난 후에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위대한 영웅들을 보면 다 약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완벽주의자였으며,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해야만 안심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며 철들 나이가 되도록 응석받이로 자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교활하고 사기성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항상 큰 소리를 쳤지만 뒷감당은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지식은 많았고 문장력은 뛰어났지만 말이 어눌하고 인물이 시원치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의 약점은 무엇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도와주셨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약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기의 아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빼어난 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도 10년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우리는 간혹 별로 잘생기지 못한 남자들이 미인 아내를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남편이 다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런 경우 남편은 아내에 대한 콤플랙스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다른 남자들이 넘보지는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아내를 데리고 사는 값을 톡톡히 치루는 셈이지요.

아브라함이 바로 이러한 콤플랙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지역으로 가서 살게 될 때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가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절). 그 곳에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삼기 위해서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은 20 여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갔었는데, 그 때도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그 결과 바로가 사라를 아내로 삼기 위해서 데려갔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사라를 돌려보내게 하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사라는 바로의 아내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금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에 대한 콤플랙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낯선 곳에 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 여자는 내 누이라고 속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라의 나이는 몇 살이었겠습니까? 90세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자기 아내 사라를 빼앗아가기 위해서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라가 90세나 되는 할머니였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아내에 대한 콤플렉스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25년 전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 때마다 아브라함은 불안감과 두려움과 어색함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특히 자기 아내 사라는 뛰어난 미인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낯선 사람들은 처음 대할 때 대개 무뚝뚝하고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사라와 자기를 그러한 눈으로 쳐다볼 때마다 아브라함의 불안감은 더 심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과 두려움은 낯선 곳으로 옮겨갈 때마다 더 심해졌을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이혼할 때와 가까운 사람이 죽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그 다음에는 이사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집을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다시 사귀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사 다니는 것이 싫었고, 또 말주변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목사로 만드셨습니다. 제가 생각해봐도 모를 일입니다.

각자 내용은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약점을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약점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수 믿은 후에 안 믿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전도하는 일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겠습니까? 나 아니라도 전도 잘하는 다른 사람이 하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어느 누군가가 전도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금년에는 우리의 이러한 약점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전도에 힘써야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다 약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런 약점을 주셨을까요? 이런 약점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좀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러한 약점들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도 바울의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고질적인 병으로 매우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고쳐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12:7-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점을 주신 이유는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 약점들이 없다면 우리가 얼마나 교만했겠습니까? 그런데 잘 나가다가 꼭 그 대목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넘어지면서 우리는 다시 기억합니다. “그래, 나는 역시 부족해. 나는 죄인이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안돼!”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교만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제파악을 못하는 중병입니다. 인간이 교만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짓인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교만해지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교만해진 우리를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약점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가지고 있던 약점 때문에 또 다시 큰 낭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랄 지방에 이사했을 때 아브라함은 사람들에게 사라는 자기의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 결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삼기 위해서 데려가고 말았습니다(2절). 80세나 되는 사라를 이렇게 당장에 데려간 것을 보면 사라가 얼마나 미인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아브라함이 사라는 자기의 아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라가 남편 없는 여자라고 하니까 별 문제 없이 데려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20여 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사라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지도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럴 만도 했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더구나 사라는 지금 약속의 아들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내를 지키지 못하고 누이라고 속인 나머지 빼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보여줍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고, 이제 사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아들이 태어나게 될 것을 생각했다면 어떻게 사라를 그렇게 쉽게 내줄 수가 있었겠습니까? 목숨을 걸고 지켰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보기에도 아브라함이 얼마나 한심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러 번 그에게 나타나 말씀해주셨고, 이제 곧 약속의 아들이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지 말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라를 빼앗기지 말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음을 지키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위해 싸워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나도 쉽게 포기해버렸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서 내가 아브라함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주시고 큰 은혜를 주셨습니까? 얼마나 우리를 오래 참아주셨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취하거나 어려움을 피하기에 급급합니다. 그래서 번번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집니다. 유혹을 당할 때 너무나도 쉽게 넘어집니다. 내가 과연 50년 가까이 하나님을 믿어온 사람이며 목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나무랄 형편이 못됩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24년 동안이나 모든 것을 준비해오셨습니다. 늘 믿음 없이 주저앉기 일쑤였던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불어넣어주셨고, 24년 동안이나 준비하게 하신 후 이제 드디어 사라에게 약속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제 조만간에 사라는 24년 동안이나 기다려왔던 약속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껏 모든 것을 준비해오셨고 이제 그 일이 이루어지려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단번에 망쳐놓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아브라함이 아내를 빼앗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아들을 낳을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오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라를 불신자, 이방인의 손에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매우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은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그 약속을 취소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신 약속이 이방인에게 순결을 짓밟힌 사라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까요?

결코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불신앙으로 초래된 실망스런 문제를 가장 선하고 완벽하게 해결해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 집안에 어떤 질병을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사라를 가까이 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6절). 그리하여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일단 사라의 순결을 철저하게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꿈을 통하여 아비멜렉을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니리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3절) 아비멜렉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아브라함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신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강하게 붙잡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죄와 불신앙 때문에 수치와 비난과 괴로움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해주셨고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개입하셔서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고이 돌려보내었을 뿐만 아니라 사라와 아브라함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해서 선물까지 주었습니다(14-16절).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며, 인류의 모든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 절대주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이 잘못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당신을 의지하는 백성들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불신앙으로 어려운 일을 초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랄 왕 아비멜렉은 사라를 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꿈으로 나타나셔서 그의 하는 일이 부당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아비멜렉의 집안에는 불임의 화가 미쳤으니 이는 결국 '네가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적으로 적용된 것입니다. 사라를 보호하는 이 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은 장차 태어날 이삭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비백산한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를 위하여 기도하면 그를 살려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7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보호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아비멜렉의 목숨이 아브라함에게 달려 있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셨고, 사라를 무사히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선지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안 믿는 사람들의 선지자입니다. 비록 그들이 우리에게 적대적이거나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그들을 구원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좋아질수록 안 믿는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불편하고 손해 보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들의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약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약점 때문에 번번이 넘어집니다. 때로는 이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창피해서 차라리 교회를 그만 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점은 우리로 하여금 교만하지 못하도록 세워주신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보면서 더욱 겸손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얼마든지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점 때문에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를 입혀주셔서 그 약점을 덮고도 남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약점을 이길 수 있는 큰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란 단순하게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인간의 꾀를 부리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도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성경적이지 못한 방법,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방법도 서슴지 않고 동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겼으면 하나님께서 선하게 해결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좀 힘들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우리의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해결해보려고 하면 일은 더 어렵게 되고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큰 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의 자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며 가나안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가 낳을 아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철저하게, 절대적으로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12:3)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비록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방황하는 나그네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온전히 지켜주실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갈 때마다 두려워하고 불안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철저하게 보호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빼앗아가기 위해서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한 불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게 되자 인간적인 꾀를 써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불신앙은 두 번씩이나 아내를 빼앗겨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술수를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어떤 수단을 써야만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합시다. 믿음이란 단순하게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는 성도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랄 지방으로 이사했던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결과 아내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꾀를 쓴 것 때문에 일이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내를 빼앗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라는 지금 약속의 아들을 낳아야 할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라가 이방인의 아내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준비하시고 이끌어 오신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직접 개입하셔서 모든 것을 가장 선하게 해결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의 집안에 무서운 질병을 보내셔서 아비멜렉이 사라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온 것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호되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그가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앙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선하신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시켜 나가셨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불신앙 때문에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범죄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도 그것 때문에 좌절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불신앙과 범죄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때로는 징계를 받아 고통을 당하게 되기도 하며, 아브라함처럼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일로 인하여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 아비멜렉의 즉각적인 순종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아비멜렉은 이튿날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신복들 앞에서 시인하고 그들을 주의시켰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의 겸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8절).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아비멜렉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즉시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아비멜렉은 두려워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마음속으로는 순종하겠다고 결정을 해놓고도 자꾸만 뒤로 미룹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운 분이신 줄을 알면서도 즉시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 역시 불신앙입니다. 순종하는 성도는 즉시 일어나 행동합니다. 주저하거나 뒤로 미루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있는 동안은 결코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그래서 즉시 일어나 순종하게 됩니다. 이렇게 순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되찾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순종하기로 작정해놓고 뒤로 미루는 것이 없습니다. 새해에 새롭게 결심한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아직도 행동에 옮기지 못한 것은 없습니까? 지금 즉시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는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순종할 때까지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즉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아브라함을 책망하는 아비멜렉

신하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던 아비멜렉은 이제는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다'고 책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된 말과 행위로 말미암아 아비멜렉은 간음죄를 범할 뻔하였습니다. 뿐만 실제로 곧 신성 모독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사라를 돌려보내게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그를 책망하면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9-10절). 하나님의 사람이 이방인에게 책망을 받고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뭔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자기 땅에 들어와서 자기 아내와 짜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아비멜렉을 큰 죄에 빠지게 한 후, 그와 그의 나라를 하나님의 재앙으로 망하게 하려 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물었습니다.

(3) 아브라함의 변명

아비멜렉은 이 사건에 대해서 아브라함을 추궁했습니다.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여기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대답한 말들은 정말 구차하고 어이없는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회는 하나님을 전하기 좋은 기회였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한 것은 고작 “하나님께서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셨다”는 말이 전부였습니다(12절).

그리고 아비멜렉의 책망에 대해 아브라함은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악을 쉽게 저지를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게 닥칠 화를 두려워하여 거짓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불신자의 행위를 두려워하여 거짓말을 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비멜렉을 손보아 놓으신 상태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에 매우 좋은 기회였는데, 아브라함은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가진 신앙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어야 하거나 해명을 요구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 때는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여러분이 왜 예수를 믿는지, 예수를 믿고 나서 여러분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해서 간증을 준비해두십시오. 의외로 여러분의 간증과 전도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잘 전하기만 하면 그들은 쉽게 주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모습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아름다운 향기가 풍기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감탄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입술과 삶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발견하고 구원의 길로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추궁에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창20:11-12) 두려워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일이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왜 그런 오해를 받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그랄 사람들을 두려워했으며, 그래서 무엇보다 표정이 어두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랄 사람들은 “그 사람 들어올 때부터 보니까 인상이 안 좋더니 아마도 뭔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해칠 작정이었나 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는 거짓말의 동기는 11절에서 밝히는 것처럼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스스로 타협의 길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직장에서나 동네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계십니까? 한국 사람들은 대개 굳은 표정을 짓고 다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더 그렇습니다. 아마도 마음속에 영적인 갈등이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그렇잖아도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부담스런 존재인데, 거기다가 인상을 쓰고 다니면 뭔가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게 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어쩌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곱빼기로 욕을 먹고 비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표정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축복과 감격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기뻐하는 모습, 긍정적인 모습,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감동을 주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를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봉사활동을 통해서 주님을 전하는 방법들도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세차를 해주고 전도지를 꽂아놓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를 청소해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주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을 하겠습니까?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인색하고 매몰차게 처신을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4) 기도를 요청하는 아비멜렉

본문 17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이는 자신의 거짓말과 아비멜렉의 불의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아비멜렉의 손 집안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해주셨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기도해줄 것을 부탁했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과 그 집안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의 집안에 미쳤던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직접 아비멜렉의 집안을 고쳐주시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고쳐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직접 고쳐주실 수 있으신데 말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당신의 종을 높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회복시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높여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기도해줄 것을 요청해야 했고, 아브라함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고쳐주셨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그 이후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두려워했고 함부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좌우되었습니다. 오늘의 유럽이 있게 된 것은 사도 바울이 선교의 방향을 아시아에서 유럽 쪽으로 바꾼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영국이 공산국가가 되는 것을 막은 사람은 존 웨슬리였다고 말합니다. 흑인을 해방시켰던 링컨 대통령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오늘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를 부흥시킬 사람들, 하나님의 크신 일에 쓰임 받을 사람들은 기도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인간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깨질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더욱 든든히 세워나가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전히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오늘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범죄하고 실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우리를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어떤 형편에 처해지더라도 안심할 수 있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의심하지 않으며, 인간의 꾀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단순하고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환난 후 임한 축복

환난 후 아브라함은 재물의 보상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잃을 뻔했던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었고 그 수치를 씻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축복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자기를 한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랄로 내려간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전과 똑같은(참조, 창12:10-20)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비도덕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택한 민족의 순결성을 보전하시기 위해 사라를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성도가 일상생활 가운데서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으나 하나님의 지키심이 계속됨을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 방탕한 자식의 소행과 그 책임을 감당하는 부모의 사랑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세밀한 것까지 관심을 가지시고 도우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시기에 능력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하늘나라의 법을 힘써 선포하며 생활에 있어서도 이를 저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좋으신 분임을 알고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저의 약점과 한계를 느낍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겠습니다. 뛰겠습니다. 올라가겠습니다. 우리 가정의 약점이 장점이 되게 하옵소서. 연약한 저희들을 붙들어주시고 힘들고 지칠 때 쓰러지지 않도록 새 힘을 주시옵소서. 연약할 때가 가장 강한 때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거룩한 주의 날 성령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 한 분 한 분을 사랑하시고 또 예배를 받으시며 머리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재하여 주셔서 우리 마음에 어두움이 다 물러가고 우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낙심을 주고 절망을 주는 원수 마귀를 늘 대적하고 주님의 은혜로 주님을 피난처로 삼아 만대에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으로 인해 강건하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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