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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전9: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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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전도서(26) 축복을 막는 4가지 장벽 (전도서 9장 13-18절)
1. 감사가 없는 삶
전도자는 자신이 살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13절).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 작은 성읍에 큰 왕이 쳐들어왔는데 그 성읍을 한 가난한 지혜자가 지혜를 발휘해서 그 성읍을 구원했지만 아무도 그 가난한 지혜자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14-15절). 왜 그랬을까요? 그 지혜자가 가난했던 것도 이유가 되었겠지만 또 한 가지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의 감사가 없는 본성 때문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처럼 저주스런 삶은 없습니다.
일본의 선각자 우찌무라 간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과 실패와 배신과 죽음으로 저주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과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와 감사할 줄 모르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그처럼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가장 지혜가 없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삶입니다.
2. 외모로 판단하는 삶
전도자는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지혜가 멸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가난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고 합니다(16절) 부가 의와 땀의 산물만은 아닌 것처럼 가난이 불의와 게으름의 산물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의롭게 살려고 했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고 나눔을 실천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가난은 ‘의로운 가난’이고 ‘거룩한 가난’입니다.
또한 가난과 더불어 작은 것도 무시하지 마십시오. 작은 것 중에도 보석과 같은 것들이 있고, 외모는 좋지 않아도 내용이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가끔 보면 외형과 디자인이 볼품없는 중소기업 제품이 품질과 기능은 탁월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처럼 외형이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외형보다 내면을 볼 줄 알아야 삶의 지혜를 잃지 않습니다.
3. 소리만 큰 삶
지혜가 있으면 큰소리를 치면서 누군가를 윽박지르고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17절). 큰소리를 치는 것은 지혜와는 가장 반대되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요새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리만 큰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쓰는 병실에서 지나치게 큰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사찰 마당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좋게 보면 열정적인 신앙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몰염치와 몰상식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가면서 다른 생각과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가차 없이 정죄하고, 심지어는 불상에 낙서를 하고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파괴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종교인 때문에 기독교의 진실한 신앙이 가려지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교회는 조용히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그것을 최고의 영성으로 여김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4. 회개가 없는 삶
지혜가 큰 힘이 있어도 한 죄인의 작은 죄가 지혜의 힘을 무력하게 만들고 선을 망가뜨립니다(18절).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아간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서 패하고 사기가 크게 꺾인 것을 보십시오. 그런 죄와 죄인의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거칠 것 없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개처럼 소중한 것은 없고 가장 지혜로운 삶은 바로 회개하는 삶입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는 주님을 똑같이 배반했지만 가룟 유다는 영원한 실패자가 되었고 베드로는 영원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회개의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 회개했습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주님을 은 30냥에 팔고 목매어 자살할 만큼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가 버림받은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살다 보면 잘못할 수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그때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그러면 다시 한 번 새 출발의 기회도 주어지고 축복도 주어질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1. 감사가 없는 삶
전도자는 자신이 살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13절).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 작은 성읍에 큰 왕이 쳐들어왔는데 그 성읍을 한 가난한 지혜자가 지혜를 발휘해서 그 성읍을 구원했지만 아무도 그 가난한 지혜자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14-15절). 왜 그랬을까요? 그 지혜자가 가난했던 것도 이유가 되었겠지만 또 한 가지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의 감사가 없는 본성 때문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처럼 저주스런 삶은 없습니다.
일본의 선각자 우찌무라 간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과 실패와 배신과 죽음으로 저주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과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와 감사할 줄 모르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그처럼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가장 지혜가 없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삶입니다.
2. 외모로 판단하는 삶
전도자는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지혜가 멸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가난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고 합니다(16절) 부가 의와 땀의 산물만은 아닌 것처럼 가난이 불의와 게으름의 산물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의롭게 살려고 했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고 나눔을 실천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가난은 ‘의로운 가난’이고 ‘거룩한 가난’입니다.
또한 가난과 더불어 작은 것도 무시하지 마십시오. 작은 것 중에도 보석과 같은 것들이 있고, 외모는 좋지 않아도 내용이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가끔 보면 외형과 디자인이 볼품없는 중소기업 제품이 품질과 기능은 탁월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처럼 외형이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외형보다 내면을 볼 줄 알아야 삶의 지혜를 잃지 않습니다.
3. 소리만 큰 삶
지혜가 있으면 큰소리를 치면서 누군가를 윽박지르고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17절). 큰소리를 치는 것은 지혜와는 가장 반대되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요새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리만 큰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쓰는 병실에서 지나치게 큰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사찰 마당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좋게 보면 열정적인 신앙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몰염치와 몰상식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가면서 다른 생각과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가차 없이 정죄하고, 심지어는 불상에 낙서를 하고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파괴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종교인 때문에 기독교의 진실한 신앙이 가려지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교회는 조용히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그것을 최고의 영성으로 여김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4. 회개가 없는 삶
지혜가 큰 힘이 있어도 한 죄인의 작은 죄가 지혜의 힘을 무력하게 만들고 선을 망가뜨립니다(18절).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아간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서 패하고 사기가 크게 꺾인 것을 보십시오. 그런 죄와 죄인의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거칠 것 없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개처럼 소중한 것은 없고 가장 지혜로운 삶은 바로 회개하는 삶입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는 주님을 똑같이 배반했지만 가룟 유다는 영원한 실패자가 되었고 베드로는 영원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회개의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 회개했습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주님을 은 30냥에 팔고 목매어 자살할 만큼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가 버림받은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살다 보면 잘못할 수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그때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그러면 다시 한 번 새 출발의 기회도 주어지고 축복도 주어질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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