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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대니얼 호손(1804∼1864)의 ‘주홍글씨’(1850)는 미국 소설문학의 전통을 확립하고 미국문학을 세계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걸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헨리 제임스와 같은 후세의 소설가는 이런 이유로 ‘주홍글씨’의 출판을 미국문학사의 으뜸가는 이정표적 사건으로 간주한 바 있다.
‘주홍글씨’가 살아 있는 고전으로서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읽혀온 것은 미국적 이념과 그것에 입각한 바람직한 삶의 길을 탐구한 지극히 ‘미국적’인 소설이면서 동시에 근대사회의 보편적 관심사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삶의 진실과 인식, 여성의 정체성과 권익 문제 등을 깊이 성찰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주홍글씨’는 1640년대의 보스턴 청교도 사회를 무대로 하는 역사 소설이다. 호손은 이처럼 초창기의 미국사회, 곧 종교적 계율이 법으로 통했던 청교도 사회에서 열정에 이끌려 계율을 범한 한 청교도 목사와 그의 사생아를 낳은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를 작가 스스로 로맨스라고 부른 독특한 양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태동기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역사의 무게 때문에 ‘주홍글씨’를 읽으면서 독자는 미국의 기원과 식민의 대의 및 미국적 이념의 정당성을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호손의 시대에 청교도주의는 특히 예표(豫表·예언 따위를 미리 보여 주는 조짐)론적 시각에서 독립혁명 정신의 이념적 씨앗으로 상찬되었다. 그러나 호손은 이렇게 미국정신의 원류로 간주된 청교도주의가 실상은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한 이데올로기임을 드러냄으로써 이념의 맹목적 추수와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념의 도그마화에 대한 비판이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을 단죄하는 청교도 사회뿐만 아니라 그 희생자인 그녀 자신에게도 행해진다는 점이 이 소설의 묘미 중의 하나이다. 헤스터가 죄의 표식인 ‘A’자를 가슴에 달고 청교도 사회가 요구하는 참회의 삶을 사는 듯이 보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징벌에 승복하지 않고서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수용하여 과격한 여권론자로서의 모습을 드러낼 때 작가는 그런 삶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공감어린 시선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주홍글씨’는 이처럼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라는 근대적 주제의 천착을 통해 미국 사회의 지배 이념과 역사 인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소설이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삶의 현실은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단선적 시각으로는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성찰 또한 포스트모던한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현대적 관심사로 인해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소설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헤스터와 더불어 내적 열정에 이끌려 잠시 청교도 질서 밖으로 일탈했던 딤즈데일의 극심한 죄의식과 내적 고뇌에 대한 치밀한 심리 묘사는 동시대의 소설가 허먼 멜빌의 찬탄을 자아낸 바 있지만, 인간의 내면 심리를 파헤치고자 한 헨리 제임스를 비롯한 후세 모더니스트들에게 무엇보다도 훌륭한 참고가 되었다.
이 소설은 흔히 ‘주홍글씨’로 번역되었고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졌지만, 우리말 어법상 ‘주홍글자’로 번역해야 옳다. 우리말 번역본 중에서는 양병탁 선생이 번역한 ‘주홍글씨’(동화출판공사, 1973)와 김종운 선생이 번역한 ‘주홍글자’(삼중당, 1975)가 추천할 만하다.
신문수 서울대 교수·영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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