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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후2: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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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마음 그릇을 깨끗이 하라
본문: 딤후2: 20- 21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지만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 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 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를 치려고 담요를 깔아 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요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 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사람은 마음에 담은 대로 됩니다. 성경 속에서 대제사장, 가룟 유다, 마리아 세 사람의 마음을 봤습니다. 예수님이 식사를 하시는데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몸에 부었습니다. 상당히 비싼 향유였습니다. 저는 그 마음에 담긴 사랑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를 보고 가룟 유다는 그녀에게 "왜 비싼 것을 허비하느냐, 팔아서 가난한 자를 주면 얼마나 유용하겠느냐"라고 야단칩니다. 그러나 실상은 돈 관리를 맡은 그가 떼어먹고 싶어서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는 도둑이다"라고 정채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마음 안에서 탐심을 봤습니다. 탐심이 있으면 사람이 이익의 수단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방법 찾기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여야 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 속에서 미움을 봤습니다. 미움이 있으면 사람을 없애 버리려고 합니다. 동일하신 한 분 예수님을 놓고 한 사람에게서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서는 탐심을, 또 다른 사람에게서는 미움을 봤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각기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나 태도나 행동은 그를 향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마음 안에 무엇을 담고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담은 대로 나타냅니다. 사람은 마음에 담은 대로 됩니다. 마음 안에 무엇을 담고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를 향한 내 마음에 담긴 것이 그대로 그에게 말로, 태도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담은 대로 됩니다. 마음에 ‘사랑’을 담으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같은 성경을 읽어도 사람마다 느끼고 깨닫는 것이 다릅니다. 특히 믿음을 가지고 보는 것과 의심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말씀은 내게 기쁨과 평안과 은혜를 줍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니라'(잠23:7)
차 두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 주려고 달리는 앰블런스였고, 또 한 대는 최신식 모델의 세단이었으나, 차선을 마구 달리면서 다른 차를 추월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위험스럽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남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을 사고를 저지르고 말 형세였습니다. 이들 두 대의 차량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에서 왔을까요? 엔진? 차체의 모양? 값의 차이? 아닙니다. 유일한 차이는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였습니다. 하나는 사랑과 봉사의 목적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하는 술취한 운전사였습니다. 부정적이고 더럽고 악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 긍정적이고 성령 충만하여 좋은 열매가 가득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의 삶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삶의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1초 후의 일도 알 수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내 마음의 운전수는 창조주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면 유한하고 지치고 무거운 짐진 괴로운 나 자신입니까? 허물과 질병, 미움과 질투의 교차로를 달리면서 생의 목적지도 모른 채 황급하게 내달리기만 하려하는 나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영생의 지도인 성경을 펴놓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목자 예수님이신가요? 삶의 운전석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조정실의 열쇠를 전능하신 사랑의 왕 예수님께 드리고 그 보좌에 앉으시게 하십시오. 그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왕좌인 심령에 거처를 가지실 뿐 아니라 그 보좌에 앉아 결정자가 되게 하십시오.
마음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내 마음을 주님께서 운전하게 하십시다. 그리하면 영원한 생명의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수백 수천 평의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배의 가장 조그만 부분인 키에 달려 있습니다.키에 의해 인천에서 부산으로 갈 수도 있고 미국이나 일본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에 있어서 키와 같은 것은 마음입니다.마음은 우리의 육체를 움직일 뿐 아니라 인생을 움직입니다. 마음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 행복 그리고 성공에까지 영향을 줍니다.베임스 앨런이란 사람은 ‘육체는 마음의 노예다’ 라고 말했습니다.육체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마음은 우리의 모든 행동과 감정의 기초가 됩니다.마음은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그런데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떤 생각이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우리 육체의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줍니다.마음의 생각은 우리의 현실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생각은 우리의 성공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내 주변의 상황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엉망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이 엉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이 그런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 삶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나를 만들고 내 삶을 만듭니다.
오리알을 품으면 오리가 나옵니다. 독수리알을 품으면 독수리가 나옵니다. 내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품느냐가 나를 만들고 삶을 만듭니다. 아치발트 하트는 그의 책 <마음의 습관>에서 “나의 생각의 결과” 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렇습니다.지금의 나는 내가 어떻게 생각했느냐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이 필요합니다.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은 암이 우리의 육체를 파괴하듯 우리의 삶을 파괴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사람은 종종 그릇에 비유됩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금으로 만든 그릇, 은으로 만든 그릇, 스테인레스로 만든 그릇, 종이로 만든 그릇 등등, 그러나 그릇 자체보다는 그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릇은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마음 그릇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같은 온갖 좋지 않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은 지요? 여러분의 마음 그릇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 그릇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쉼과 기쁨을 얻을 것이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장 아끼는 그릇으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롬9:21, 벧전3:7)
영국속담에 “마음을 빼앗기면 눈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의 결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허탕한 것들을 우상화하고 섬길 때 그것에 가리워서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더러운 것들을 치워버리고 깨끗이 할 때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고 우리 몸이 성령님이 거하는 전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고,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매일 같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생활하는 가운데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손을 씻듯이 매일 우리의 마음을 씻어버립시다. 우리의 마음문을 열고 주님을 바라보면 속에 있던 더러운 것은 사라지고 우리 마음속에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평강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때 성결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왕이 친구가 되느니라”(잠22:11)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배설물이 아니라 악한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을 TV로 중계할지라도 부끄럽지 않을 청결한 마음을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청결하고 정직하여야 하나님께서 돌아보십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욥8:6)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비워두면 오히려 더 악한 귀신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12: 43- 45)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 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첫째, 사랑의 마음입니다.(요13:1)
주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마12:2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8)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엡5:1-2)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둘째, 겸손한 마음입니다.(잠18:12, 롬12:16)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마구간에서 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겸양의 덕을 지니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무릇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빌2:1-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셋째, 순종의 마음입니다.(롬5:19, 고전9:27)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그리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복종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아골 골짜기라도 가야하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면 목숨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순종의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넷째, 온유한 마음입니다.(마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엡4:2)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마5:7, 시145:8-9 )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중세 천주교 세력이 강해지다보니 반대파들과 거역하는 자를 마구 잡아 화형시켰고, 영국의 청교도 혁명은 너무 엄격하게 하다보니 자비가 없어 나중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섯째, 용서하는 마음입니다.(막11:25, 눅6:37)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 큰 죄를 용서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작은 허물이 있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마6:14-15, 마18:21-22, 눅11:4, 눅17-3-4, 골3:12-14)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이제부터 우리들은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리심이라”(빌2:5-11)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셔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기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오늘 하루 주님 앞에서 저희의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변화되길 원합니다.사랑이 없는 마음에 사랑이 풍성하기를, 소망이 없는 마음에 소망이 깃들기를, 믿음이 없는 마음에 믿음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우리의 생각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길 원합니다.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한태완 목사
본문: 딤후2: 20- 21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지만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 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 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를 치려고 담요를 깔아 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요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 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사람은 마음에 담은 대로 됩니다. 성경 속에서 대제사장, 가룟 유다, 마리아 세 사람의 마음을 봤습니다. 예수님이 식사를 하시는데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몸에 부었습니다. 상당히 비싼 향유였습니다. 저는 그 마음에 담긴 사랑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를 보고 가룟 유다는 그녀에게 "왜 비싼 것을 허비하느냐, 팔아서 가난한 자를 주면 얼마나 유용하겠느냐"라고 야단칩니다. 그러나 실상은 돈 관리를 맡은 그가 떼어먹고 싶어서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는 도둑이다"라고 정채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마음 안에서 탐심을 봤습니다. 탐심이 있으면 사람이 이익의 수단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방법 찾기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여야 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 속에서 미움을 봤습니다. 미움이 있으면 사람을 없애 버리려고 합니다. 동일하신 한 분 예수님을 놓고 한 사람에게서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서는 탐심을, 또 다른 사람에게서는 미움을 봤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각기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나 태도나 행동은 그를 향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마음 안에 무엇을 담고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담은 대로 나타냅니다. 사람은 마음에 담은 대로 됩니다. 마음 안에 무엇을 담고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를 향한 내 마음에 담긴 것이 그대로 그에게 말로, 태도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담은 대로 됩니다. 마음에 ‘사랑’을 담으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같은 성경을 읽어도 사람마다 느끼고 깨닫는 것이 다릅니다. 특히 믿음을 가지고 보는 것과 의심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말씀은 내게 기쁨과 평안과 은혜를 줍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니라'(잠23:7)
차 두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 주려고 달리는 앰블런스였고, 또 한 대는 최신식 모델의 세단이었으나, 차선을 마구 달리면서 다른 차를 추월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위험스럽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남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을 사고를 저지르고 말 형세였습니다. 이들 두 대의 차량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에서 왔을까요? 엔진? 차체의 모양? 값의 차이? 아닙니다. 유일한 차이는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였습니다. 하나는 사랑과 봉사의 목적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하는 술취한 운전사였습니다. 부정적이고 더럽고 악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 긍정적이고 성령 충만하여 좋은 열매가 가득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의 삶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삶의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1초 후의 일도 알 수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내 마음의 운전수는 창조주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면 유한하고 지치고 무거운 짐진 괴로운 나 자신입니까? 허물과 질병, 미움과 질투의 교차로를 달리면서 생의 목적지도 모른 채 황급하게 내달리기만 하려하는 나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영생의 지도인 성경을 펴놓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목자 예수님이신가요? 삶의 운전석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조정실의 열쇠를 전능하신 사랑의 왕 예수님께 드리고 그 보좌에 앉으시게 하십시오. 그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왕좌인 심령에 거처를 가지실 뿐 아니라 그 보좌에 앉아 결정자가 되게 하십시오.
마음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내 마음을 주님께서 운전하게 하십시다. 그리하면 영원한 생명의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수백 수천 평의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배의 가장 조그만 부분인 키에 달려 있습니다.키에 의해 인천에서 부산으로 갈 수도 있고 미국이나 일본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에 있어서 키와 같은 것은 마음입니다.마음은 우리의 육체를 움직일 뿐 아니라 인생을 움직입니다. 마음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 행복 그리고 성공에까지 영향을 줍니다.베임스 앨런이란 사람은 ‘육체는 마음의 노예다’ 라고 말했습니다.육체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마음은 우리의 모든 행동과 감정의 기초가 됩니다.마음은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그런데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떤 생각이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우리 육체의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줍니다.마음의 생각은 우리의 현실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생각은 우리의 성공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내 주변의 상황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엉망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이 엉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이 그런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 삶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나를 만들고 내 삶을 만듭니다.
오리알을 품으면 오리가 나옵니다. 독수리알을 품으면 독수리가 나옵니다. 내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품느냐가 나를 만들고 삶을 만듭니다. 아치발트 하트는 그의 책 <마음의 습관>에서 “나의 생각의 결과” 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렇습니다.지금의 나는 내가 어떻게 생각했느냐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이 필요합니다.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은 암이 우리의 육체를 파괴하듯 우리의 삶을 파괴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사람은 종종 그릇에 비유됩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금으로 만든 그릇, 은으로 만든 그릇, 스테인레스로 만든 그릇, 종이로 만든 그릇 등등, 그러나 그릇 자체보다는 그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릇은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마음 그릇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같은 온갖 좋지 않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은 지요? 여러분의 마음 그릇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 그릇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쉼과 기쁨을 얻을 것이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장 아끼는 그릇으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롬9:21, 벧전3:7)
영국속담에 “마음을 빼앗기면 눈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의 결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허탕한 것들을 우상화하고 섬길 때 그것에 가리워서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더러운 것들을 치워버리고 깨끗이 할 때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고 우리 몸이 성령님이 거하는 전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고,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매일 같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생활하는 가운데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손을 씻듯이 매일 우리의 마음을 씻어버립시다. 우리의 마음문을 열고 주님을 바라보면 속에 있던 더러운 것은 사라지고 우리 마음속에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평강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때 성결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왕이 친구가 되느니라”(잠22:11)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배설물이 아니라 악한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을 TV로 중계할지라도 부끄럽지 않을 청결한 마음을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청결하고 정직하여야 하나님께서 돌아보십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욥8:6)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비워두면 오히려 더 악한 귀신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12: 43- 45)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 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첫째, 사랑의 마음입니다.(요13:1)
주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마12:2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8)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엡5:1-2)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둘째, 겸손한 마음입니다.(잠18:12, 롬12:16)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마구간에서 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겸양의 덕을 지니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무릇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빌2:1-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셋째, 순종의 마음입니다.(롬5:19, 고전9:27)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그리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복종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아골 골짜기라도 가야하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면 목숨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순종의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넷째, 온유한 마음입니다.(마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엡4:2)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마5:7, 시145:8-9 )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중세 천주교 세력이 강해지다보니 반대파들과 거역하는 자를 마구 잡아 화형시켰고, 영국의 청교도 혁명은 너무 엄격하게 하다보니 자비가 없어 나중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섯째, 용서하는 마음입니다.(막11:25, 눅6:37)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 큰 죄를 용서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작은 허물이 있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마6:14-15, 마18:21-22, 눅11:4, 눅17-3-4, 골3:12-14)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이제부터 우리들은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리심이라”(빌2:5-11)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셔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기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오늘 하루 주님 앞에서 저희의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변화되길 원합니다.사랑이 없는 마음에 사랑이 풍성하기를, 소망이 없는 마음에 소망이 깃들기를, 믿음이 없는 마음에 믿음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우리의 생각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길 원합니다.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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