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사29:13-14 |
---|---|
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有神論的 無神論者
본문/ 사29:13-14, 막7:1-23, 마15:1-20
1. 들어가는 이야기
우리는 지난 두 주일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사상(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묵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제3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말과 입술로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서도 현실 생활은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유신론적 무신론자)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7-9)
2.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의 특성
첫째.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로써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여 다툼을 일 삼습니다(딤전6:5, 딤후3:5). 이들은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암8:5)” 합니다. 헛된 제물과 행사로 하나님을 피곤하게 합니다(사1:10-15).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인이라 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심지어 안식일 제사 조차도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 저는 것, 병든 것을 바치면서 우리는 하나님 섬길 일을 다 하였다고 합니다(말1:6-14).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러합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성의 없이 마지못해 대충대충 때우는 식으로 참석하는 사람, 예배보다 자기가 꼭 만나야 할 사람 만나려고 예배에 참예하는 사람, 예배 후 가야 할 놀이-구경-관광-여가모임에 정신이 팔려 예배가 지루하고 초조한 사람 등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유신론적 무신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은 본질적인 것(하나님)과 지엽적인 것(물질-쾌락)의 순서를 바꾸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먹고사는 물질-쾌락 문제는 그 다음에 구하라 하셨는데, 이들은 물질-쾌락을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구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卽近道矣(세상 이치에는 본질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고, 일에는 처음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다. 무릇 이를 바로 알아 현실 삶에서 실천하며 산다면 그 사람은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 할만하다)고 하였습니다. 바둑에는 수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순이 잘 못되면 바둑은 패합니다.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은 수순을 잘 못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물질-쾌락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아니, 물질-쾌락 중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갈망하며 소원하며 志向(지향)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전3:11). 그런데 영원하신 하나님을 입술로만 인정하였지 구체적인 삶으로 인정치 않는 사람이 차선으로 구할 것은 물질-쾌락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자 전통은 하나님 중심을 떠나 물질-쾌락 중심으로 사는 나라나 개인의 미래는 멸망이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父子(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의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암2:6-8)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 하느뇨.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느뇨(사3:13-15, 5:8)
로고테라피(의미요법)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은 임상 연구 결과을 통하여 “사람은 자기 삶의 궁극적 의미 추구에 좌절하였거나 상실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대용물로서 물질이나 쾌락에 몰두하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로고테라피의 이론과 실제, 분도출판사, 98-99쪽).
3. 유신론적 무신론자의 경계 탈출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니 다른 사람의 마음은 모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유신론자도 아닙니다. 나는 유신론적 무신론자에 가깝습니다. 나는 진정한 유신론자로 살고 싶습니다. 어찌 할 것인가?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다음과 같은 경건 훈련을 통하여 유신론적 무신론자의 경계를 탈출하려고 합니다.
獨一靜處 專精思惟(독일정처 전정사유): 홀로 정갈하고 고요한 곳에 머물러 마음을 오로지 하여 깊이 생각할 것입니다.
心不返照 看經無益(심불반조 간경무익):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건성으로 읽는 성경은 백독이 무익하니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것입니다.
祈之禱之 聖靈通知(기지도지 성령통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깨달아 알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본문/ 사29:13-14, 막7:1-23, 마15:1-20
1. 들어가는 이야기
우리는 지난 두 주일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사상(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묵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제3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말과 입술로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서도 현실 생활은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유신론적 무신론자)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7-9)
2.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의 특성
첫째.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로써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여 다툼을 일 삼습니다(딤전6:5, 딤후3:5). 이들은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암8:5)” 합니다. 헛된 제물과 행사로 하나님을 피곤하게 합니다(사1:10-15).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인이라 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심지어 안식일 제사 조차도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 저는 것, 병든 것을 바치면서 우리는 하나님 섬길 일을 다 하였다고 합니다(말1:6-14).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러합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성의 없이 마지못해 대충대충 때우는 식으로 참석하는 사람, 예배보다 자기가 꼭 만나야 할 사람 만나려고 예배에 참예하는 사람, 예배 후 가야 할 놀이-구경-관광-여가모임에 정신이 팔려 예배가 지루하고 초조한 사람 등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유신론적 무신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은 본질적인 것(하나님)과 지엽적인 것(물질-쾌락)의 순서를 바꾸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먹고사는 물질-쾌락 문제는 그 다음에 구하라 하셨는데, 이들은 물질-쾌락을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구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卽近道矣(세상 이치에는 본질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고, 일에는 처음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다. 무릇 이를 바로 알아 현실 삶에서 실천하며 산다면 그 사람은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 할만하다)고 하였습니다. 바둑에는 수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순이 잘 못되면 바둑은 패합니다.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은 수순을 잘 못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유신론적 무신론자들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물질-쾌락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아니, 물질-쾌락 중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갈망하며 소원하며 志向(지향)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전3:11). 그런데 영원하신 하나님을 입술로만 인정하였지 구체적인 삶으로 인정치 않는 사람이 차선으로 구할 것은 물질-쾌락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자 전통은 하나님 중심을 떠나 물질-쾌락 중심으로 사는 나라나 개인의 미래는 멸망이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父子(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의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암2:6-8)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 하느뇨.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느뇨(사3:13-15, 5:8)
로고테라피(의미요법)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은 임상 연구 결과을 통하여 “사람은 자기 삶의 궁극적 의미 추구에 좌절하였거나 상실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대용물로서 물질이나 쾌락에 몰두하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로고테라피의 이론과 실제, 분도출판사, 98-99쪽).
3. 유신론적 무신론자의 경계 탈출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니 다른 사람의 마음은 모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유신론자도 아닙니다. 나는 유신론적 무신론자에 가깝습니다. 나는 진정한 유신론자로 살고 싶습니다. 어찌 할 것인가?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다음과 같은 경건 훈련을 통하여 유신론적 무신론자의 경계를 탈출하려고 합니다.
獨一靜處 專精思惟(독일정처 전정사유): 홀로 정갈하고 고요한 곳에 머물러 마음을 오로지 하여 깊이 생각할 것입니다.
心不返照 看經無益(심불반조 간경무익):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건성으로 읽는 성경은 백독이 무익하니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것입니다.
祈之禱之 聖靈通知(기지도지 성령통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깨달아 알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