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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5: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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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85세로 서거하였습니다. 최근의 일기장이 일부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읽어 보았습니다. 그 내용 중 “찬미 예수 건강 백세”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올해 첫날 일기에서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고 쓰시면서 ‘찬미예수 건강백세’라고 끝에 써 놓았습니다. 4월27일 투석치료를 받고 난 후 일기에도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찬미예수 백세건강”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대부분 일기는 허위나 가식보다 자기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세가 드시고 한 때 최고의 권력과 명예를 누렸던 분이 찬미 예수를 기록한 것을 보면 상당히 신앙심이 깊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아 매일 매일 기도생활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1월15일자 일기에서 “긴 인생이었다”며 자신의 85년 인생을 회고하고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한 길을 갈 것”이라며 예수님의 명령 대한 철저한 순종을 다짐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성도님들이 일기를 남긴다면 일기 속에 이런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내세에 대하여 어떤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내세를 믿는 사람,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입니다. 내세를 믿는 사람 중에서도 세 부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내세보다 현세를 중요시하며 내세를 현세를 위한 이용물로 생각하는 신앙인입니다. 둘째 부류는 반대로 내세를 현세보다 중요시하며 현세를 내세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신앙인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현세와 내세를 비중을 적절히 조화하며 둘다 다 중요시 생각하면서 삶의 긴장을 잘 조절해 나가는 신앙인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부류같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개인적으로 일기를 쓰면서 찬미 예수라고 마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는 홍해를 무사히 건넌 후 하나님께 찬양하는 찬양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홍해를 건넌 후 백성들이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찬양한 노래의 가사입니다(1,20). 1절 하반절의 내용과 21절 미리암의 노래가 같은 것을 보아 남자와 여자가 나누어 서로 화답하며 찬양한 듯 보입니다. 승리한 후, 성공한 후, 완치된 후, 우리가 구원받은 후, 어떤 일을 성취한 후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할까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크고 작은 일을 성취한 후에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1. 우리는 성취한 후 우리를 구원하여 승리케 해 주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높여야 합니다(2-6).
/ 구원하시고 승리케 하신 하나님
사람은 어떤 것을 이루면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이 되려하고 짐승이 되려고 합니다. 어려운 역경을 물리치고 사업에 성공하였습니다. 18년 동안 공부하여 바라고 바라던 직장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고난을 견디며 고시 준비하여 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지긋지긋한 질병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치유받았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며 자녀를 잘 길러 성공시켰습니다. 수년동안 연애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성공했다고 술 파티 가고 노래방 가서 “영자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라고 노래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를 악에서, 수렁에서, 실패에서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승리케 해 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취업을 하고, 유학을 하고, 군대에서 전역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시험을 보고 가장 먼저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능시험을 보고 바로 교회에 온 학생을 보았습니다. 참 아름답게 여겼습니다. 인간이 볼 때도 아름다운데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축구 선수 중에 골을 넣은 후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선수들을 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는 승리한 후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거국적으로 찬양합니다. 무엇을 찬양합니까?
오늘 시편은 크게 세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용이나 형식적으로 나누어 볼 때 1절과 18절은 서론과 결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절부터 17절까지가 본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3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후렴구가 6절과 11절 17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연은 각 연마다 다 고백, 서술, 응답으로 되어 있습니다.
2절부터 6절까지를 내용적으로 1연으로 보면 1연의 중심적인 단어는 3절에 나온 “여호와는 용사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용사이십니까? 6절에 보는 것처럼 오른 손에 권능을 가시고 계시는 용사이십니다. 그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는 것입니까?
4절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장관을 홍해에 잠기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시적인 표현입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군대입니다.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장교들입니다. 그런데 큰 물이 그들을 덮어 버리고 그들은 돌처럼 홍해 깊이 내려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바로 병거와 군대를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승리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고백합니다.
용사로서 애굽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절 3절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2).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2절) 여호와는 나의 노래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6절을 보십시오. 주의 오른 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며 주의 오른 손으로 원수를 부수었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고백(2-3)을 통해, 홍해를 기적을 서술(4-5)함으로, 후렴구인 백성의 응답(6)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2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라고 모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홍해를 만났을 그 홍해를 건넌 후에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내가 내가 하다가는 나가가 됩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의 모습을 조각한 상을 실은 나귀가 동네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 존경받는 사람의 조각상을 보고 공손하게 절을 하였답니다. 그러자 나귀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절하는 줄 알고 교만한 마음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처럼 나를 존경하는데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 때 주인이 회초리로 나귀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답니다. 그러자 교만해진 나귀가 앞발을 들고 벌떡 곤두서면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뻗대었답니다. 주인은 더 굵은 몽둥이로 나귀를 후려치며 소리쳤답니다. "바보 같은 나귀 새끼야, 사람들이 너를 보고 절을 하는 듯 싶으냐? 잘 들어둬라. 너는 지금 훌륭하신 분의 상을 등에 싣고 있단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승리했을 때 마치 내가 얻은 전략물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이 [천지창조]를 작곡해 비엔나에서 공연하였을 때 그는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었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답니다.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자리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켰답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은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답니다. 이 때 하이든이 갑자기 청중들을 중단시키면서 말했답니다. 그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말했답니다.
2. 우리는 성취한 후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7-11)./ 유일하신 하나님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면 자신이 심판자가 되려고 합니다. “내 지혜, 내 돈, 내 능력”으로 적들을 제거해 버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다 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처리합니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배후에 있는 영적 존재를 무시하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참고하려고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대적 바로를 어떻게 심판했다고 고백합니까?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심판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2연은 7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1연과 비슷한 것같지만 강조점이 조금 다릅니다. 백성들이 함께 화답하는 후렴구 응답을 보십시오. 11절입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이 외치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의 시체가 바다 위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오직 여호와만 신중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여러 신을 믿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여호와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믿는 신은 홍해 앞에서 애굽 사람들을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까?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면에서 하나님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신 분도 여호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도 여호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자는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11a)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11b)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11c)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대적들을 진멸하였다는 것입니다. 누가 진멸했다는 것입니까? 유일하신 하나님이 진멸했다는 것입니다. 기고만장한 대적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뭐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까? “내가 그들을 뒤쫓아가 전리품을 나눠 가지면 이 마음이 흡족하리라. 내 칼 뽑아 들고 그들을 베어 버리리라.” 그러나 어떻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주께서 손수 바람을 일으켜서 바닷물이 원수들을 덮쳤다는 것입니다.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물결속으로 원수들이 납덩어리처럼 첨벙 잠겨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떻게 고백합니까? 7,8절을 보십시오.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 자를 엎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진노를 발하여 그들을 초개와 같이 사르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콧김 한번 불으시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2연에서도 고백(7-8), 서술(9-10), 응답(11)을 통해 오직 심판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며 그 하나님이 대적하는 애굽 사람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여러 신들을 믿고 있지만 그 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단지 인간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들은 영적 존재를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귀신도 사탄도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사람들은 마귀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중 한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귀에 대해 도에 지나친 관심을 쏟거나, 마귀의 존재 자체를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 자체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악(evil)'이라는 단어에 d라는 철자를 더하면 ’마귀(devil)'가 됩니다. 악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지만 악의 근원이 마귀다는 것은 부인하려고 합니다. 악(evil)과 악한 자(The Devil)를 분리시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행복론, 합리주의, 과학만능주의에 젖어 영적 존재를 부인하는 현대 사조 속에 살기 때문에 신앙인마저 사탄, 지옥, 천국, 성령 같은 단어들을 개념화해 버리고 상징화해 버립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단의 최대 전략입니다. 전쟁에서 자기 정체를 노출하지 않는 것은 전술의 최대 전략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라고 사단의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애굽사람과 이스라엘과의 싸움은 단순한 힘의 전쟁이 아닙니다. 해방을 위한 전쟁, 자유를 찾기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가 사단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라고 말씀했듯이 십자가에서 사단의 권세를 예수님이 꺾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으로부터 정죄로부터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같은 악한 사람일지라도 인간끼리 싸움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인간을 싸움의 대상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인간을 싸움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미워합니다. 증오하게 합니다. 그러면 실패합니다. 내가 심판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를 이기는 길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나가는 것처럼 오늘날 승리의 비결도 단순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히 11:33)” 믿음입니다. 죽음에서 승리하고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되며 삶의 행복을 성취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케 하셨다고 믿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을 무너뜨리고 늘 승리케 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성취한 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12-17)./인도하시는 하나님
3연도 형식은 고백(12-13), 서술(14-16a), 응답(16b-17)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백성들의 함께 찬양 드리는 후렴구를 보십시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출 15:17)”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홍해에서 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주의 기업의 산입니다. 주의 기업의 산에 심는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업의 산을 어떻게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까?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장차 가나안 땅에 세워질 하나님의 성소 곧 성전을 믿음의 눈으로 미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신다는 것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헤세드 즉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힘으로 인도하십니다. 어디까지입니까? 주의 성결한 처소까지입니다. 언약의 장소 시내산, 약속의 장소 가나안, 예배의 장소 성전, 우리의 영원한 본향 영원한 천국에 이를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열방들,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13-16절까지 보십시오.
뭇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무서워 떨고 블레셋 주민들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에돔 부족 우두머리들이 놀라고, 모압의 실권자들이 부들두들 떨고 가나안 주민들이 모두 넋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고 겁에 질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억센 팔을 바라만 보고도 돌덩이같이 잠잠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의 사신 백성이 다 통과하기 까지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입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 무궁하시도다.”입니다. 이 찬양이 우리의 찬양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은혜로 갈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이방 민족들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하나님,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홍해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열방과 블레셋 거민과 에돔의 방백, 모압의 영웅 가나안의 거민을 보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보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죽지 않을까? 사업에 실패하지 않을까? 시험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즈음 ‘신종플루’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구의 1/3이 감염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는 전염병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감염질환 전문가들도 14세기 유럽인구의 3분의1을 몰살시켰던 페스트(흑사병) 재앙이 21세기에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1347년부터 4년간 유럽전역과 아시아를 휩쓸어버린 흑사병으로 무려 7천 5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와같은 재앙이 임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마차 위에 할머니 한 분이 올라탔습니다. 마부가 물었습니다. "이 마차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데 누구십니까?" "나는 호열자요" "그렇다면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나는 당신을 태워 갈 수 없습니다" "여보 젊은이 내가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꼭 세 사람만 죽게 할테니 제발 나를 태워다 주시오" "세 사람 이상 죽게 되면 어떻게 하겠소?" "그 때는 이 칼로 나를 죽이시오" 마부는 할머니가 주는 칼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마차가 성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얼마 후 알렉산드리아 시에 호열자가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단 세 사람만 죽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할머니가 많은 사람을 죽이자 마부는 화가 나서 칼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얼마 후 마부가 성문에서 할머니를 만나 죽이려 하자 할머니는 "왜 나를 죽이려 하오? 라고 물었습니다. 마부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내게 세 사람만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저렇게 무수한 사람이 죽었으니 약속대로 당신을 죽이겠소"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죽인 사람은 단지 세 사람에 지나지 않았소. 나머지는 호열자란 말을 듣고 놀라서 두려워하다가 죽은 거요"
이 때 사람들은 40일 동안 격리시키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격리시켰다가 살아나면 살고 죽으면 그대로 죽는 것ㅇ비니다. 페스트로 인하여 무역은 부진해지고 노동자의 죽음으로 경작지는 급속히 감소했으며 지주들이 파산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회는 공황에 빠졌고 성직자들은 위기 속에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신종 플루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미래의 상황이 어떻게 우리 앞에 전개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과정은 다 다양하겠지만 우리는 죽음도 고통도 불안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살 것이고 그곳에 이르도록 우리를 하나님은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은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리아 산에 올라갔습니다. 결과는 여호와 이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도를 믿고 나아가는 모세의 앞길에 하나님은 갖가지 필요한 것으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인도를 믿고 나아가는 바울의 앞에 하나님은 신실한 동역자와 후원자들을 준비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미독 나아가는 여호수아 앞길에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다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우리를 확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하겠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434장 1절)”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 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8.23
1. 우리는 성취한 후 우리를 구원하여 승리케 해 주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높여야 합니다(2-6).
/ 구원하시고 승리케 하신 하나님
사람은 어떤 것을 이루면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이 되려하고 짐승이 되려고 합니다. 어려운 역경을 물리치고 사업에 성공하였습니다. 18년 동안 공부하여 바라고 바라던 직장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고난을 견디며 고시 준비하여 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지긋지긋한 질병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치유받았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며 자녀를 잘 길러 성공시켰습니다. 수년동안 연애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성공했다고 술 파티 가고 노래방 가서 “영자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라고 노래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를 악에서, 수렁에서, 실패에서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승리케 해 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취업을 하고, 유학을 하고, 군대에서 전역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시험을 보고 가장 먼저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능시험을 보고 바로 교회에 온 학생을 보았습니다. 참 아름답게 여겼습니다. 인간이 볼 때도 아름다운데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축구 선수 중에 골을 넣은 후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선수들을 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는 승리한 후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거국적으로 찬양합니다. 무엇을 찬양합니까?
오늘 시편은 크게 세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용이나 형식적으로 나누어 볼 때 1절과 18절은 서론과 결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절부터 17절까지가 본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3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후렴구가 6절과 11절 17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연은 각 연마다 다 고백, 서술, 응답으로 되어 있습니다.
2절부터 6절까지를 내용적으로 1연으로 보면 1연의 중심적인 단어는 3절에 나온 “여호와는 용사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용사이십니까? 6절에 보는 것처럼 오른 손에 권능을 가시고 계시는 용사이십니다. 그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는 것입니까?
4절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장관을 홍해에 잠기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시적인 표현입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군대입니다.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장교들입니다. 그런데 큰 물이 그들을 덮어 버리고 그들은 돌처럼 홍해 깊이 내려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바로 병거와 군대를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승리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고백합니다.
용사로서 애굽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절 3절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2).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2절) 여호와는 나의 노래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6절을 보십시오. 주의 오른 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며 주의 오른 손으로 원수를 부수었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고백(2-3)을 통해, 홍해를 기적을 서술(4-5)함으로, 후렴구인 백성의 응답(6)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2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라고 모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홍해를 만났을 그 홍해를 건넌 후에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내가 내가 하다가는 나가가 됩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의 모습을 조각한 상을 실은 나귀가 동네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 존경받는 사람의 조각상을 보고 공손하게 절을 하였답니다. 그러자 나귀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절하는 줄 알고 교만한 마음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처럼 나를 존경하는데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 때 주인이 회초리로 나귀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답니다. 그러자 교만해진 나귀가 앞발을 들고 벌떡 곤두서면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뻗대었답니다. 주인은 더 굵은 몽둥이로 나귀를 후려치며 소리쳤답니다. "바보 같은 나귀 새끼야, 사람들이 너를 보고 절을 하는 듯 싶으냐? 잘 들어둬라. 너는 지금 훌륭하신 분의 상을 등에 싣고 있단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승리했을 때 마치 내가 얻은 전략물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이 [천지창조]를 작곡해 비엔나에서 공연하였을 때 그는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었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답니다.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자리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켰답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은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답니다. 이 때 하이든이 갑자기 청중들을 중단시키면서 말했답니다. 그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말했답니다.
2. 우리는 성취한 후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7-11)./ 유일하신 하나님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면 자신이 심판자가 되려고 합니다. “내 지혜, 내 돈, 내 능력”으로 적들을 제거해 버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다 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처리합니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배후에 있는 영적 존재를 무시하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참고하려고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대적 바로를 어떻게 심판했다고 고백합니까?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심판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2연은 7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1연과 비슷한 것같지만 강조점이 조금 다릅니다. 백성들이 함께 화답하는 후렴구 응답을 보십시오. 11절입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이 외치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의 시체가 바다 위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오직 여호와만 신중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여러 신을 믿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여호와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믿는 신은 홍해 앞에서 애굽 사람들을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까?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면에서 하나님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신 분도 여호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도 여호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자는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11a)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11b)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11c)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대적들을 진멸하였다는 것입니다. 누가 진멸했다는 것입니까? 유일하신 하나님이 진멸했다는 것입니다. 기고만장한 대적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뭐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까? “내가 그들을 뒤쫓아가 전리품을 나눠 가지면 이 마음이 흡족하리라. 내 칼 뽑아 들고 그들을 베어 버리리라.” 그러나 어떻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주께서 손수 바람을 일으켜서 바닷물이 원수들을 덮쳤다는 것입니다.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물결속으로 원수들이 납덩어리처럼 첨벙 잠겨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떻게 고백합니까? 7,8절을 보십시오.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 자를 엎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진노를 발하여 그들을 초개와 같이 사르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콧김 한번 불으시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2연에서도 고백(7-8), 서술(9-10), 응답(11)을 통해 오직 심판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며 그 하나님이 대적하는 애굽 사람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여러 신들을 믿고 있지만 그 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단지 인간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들은 영적 존재를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귀신도 사탄도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사람들은 마귀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중 한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귀에 대해 도에 지나친 관심을 쏟거나, 마귀의 존재 자체를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 자체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악(evil)'이라는 단어에 d라는 철자를 더하면 ’마귀(devil)'가 됩니다. 악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지만 악의 근원이 마귀다는 것은 부인하려고 합니다. 악(evil)과 악한 자(The Devil)를 분리시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행복론, 합리주의, 과학만능주의에 젖어 영적 존재를 부인하는 현대 사조 속에 살기 때문에 신앙인마저 사탄, 지옥, 천국, 성령 같은 단어들을 개념화해 버리고 상징화해 버립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단의 최대 전략입니다. 전쟁에서 자기 정체를 노출하지 않는 것은 전술의 최대 전략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라고 사단의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애굽사람과 이스라엘과의 싸움은 단순한 힘의 전쟁이 아닙니다. 해방을 위한 전쟁, 자유를 찾기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가 사단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라고 말씀했듯이 십자가에서 사단의 권세를 예수님이 꺾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으로부터 정죄로부터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같은 악한 사람일지라도 인간끼리 싸움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인간을 싸움의 대상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인간을 싸움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미워합니다. 증오하게 합니다. 그러면 실패합니다. 내가 심판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를 이기는 길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나가는 것처럼 오늘날 승리의 비결도 단순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히 11:33)” 믿음입니다. 죽음에서 승리하고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되며 삶의 행복을 성취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케 하셨다고 믿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을 무너뜨리고 늘 승리케 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성취한 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12-17)./인도하시는 하나님
3연도 형식은 고백(12-13), 서술(14-16a), 응답(16b-17)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백성들의 함께 찬양 드리는 후렴구를 보십시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출 15:17)”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홍해에서 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주의 기업의 산입니다. 주의 기업의 산에 심는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업의 산을 어떻게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까?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장차 가나안 땅에 세워질 하나님의 성소 곧 성전을 믿음의 눈으로 미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신다는 것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헤세드 즉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힘으로 인도하십니다. 어디까지입니까? 주의 성결한 처소까지입니다. 언약의 장소 시내산, 약속의 장소 가나안, 예배의 장소 성전, 우리의 영원한 본향 영원한 천국에 이를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열방들,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13-16절까지 보십시오.
뭇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무서워 떨고 블레셋 주민들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에돔 부족 우두머리들이 놀라고, 모압의 실권자들이 부들두들 떨고 가나안 주민들이 모두 넋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고 겁에 질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억센 팔을 바라만 보고도 돌덩이같이 잠잠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의 사신 백성이 다 통과하기 까지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입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 무궁하시도다.”입니다. 이 찬양이 우리의 찬양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은혜로 갈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이방 민족들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하나님,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홍해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열방과 블레셋 거민과 에돔의 방백, 모압의 영웅 가나안의 거민을 보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보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죽지 않을까? 사업에 실패하지 않을까? 시험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즈음 ‘신종플루’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구의 1/3이 감염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는 전염병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감염질환 전문가들도 14세기 유럽인구의 3분의1을 몰살시켰던 페스트(흑사병) 재앙이 21세기에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1347년부터 4년간 유럽전역과 아시아를 휩쓸어버린 흑사병으로 무려 7천 5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와같은 재앙이 임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마차 위에 할머니 한 분이 올라탔습니다. 마부가 물었습니다. "이 마차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데 누구십니까?" "나는 호열자요" "그렇다면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나는 당신을 태워 갈 수 없습니다" "여보 젊은이 내가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꼭 세 사람만 죽게 할테니 제발 나를 태워다 주시오" "세 사람 이상 죽게 되면 어떻게 하겠소?" "그 때는 이 칼로 나를 죽이시오" 마부는 할머니가 주는 칼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마차가 성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얼마 후 알렉산드리아 시에 호열자가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단 세 사람만 죽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할머니가 많은 사람을 죽이자 마부는 화가 나서 칼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얼마 후 마부가 성문에서 할머니를 만나 죽이려 하자 할머니는 "왜 나를 죽이려 하오? 라고 물었습니다. 마부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내게 세 사람만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저렇게 무수한 사람이 죽었으니 약속대로 당신을 죽이겠소"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죽인 사람은 단지 세 사람에 지나지 않았소. 나머지는 호열자란 말을 듣고 놀라서 두려워하다가 죽은 거요"
이 때 사람들은 40일 동안 격리시키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격리시켰다가 살아나면 살고 죽으면 그대로 죽는 것ㅇ비니다. 페스트로 인하여 무역은 부진해지고 노동자의 죽음으로 경작지는 급속히 감소했으며 지주들이 파산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회는 공황에 빠졌고 성직자들은 위기 속에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신종 플루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미래의 상황이 어떻게 우리 앞에 전개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과정은 다 다양하겠지만 우리는 죽음도 고통도 불안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살 것이고 그곳에 이르도록 우리를 하나님은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은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리아 산에 올라갔습니다. 결과는 여호와 이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도를 믿고 나아가는 모세의 앞길에 하나님은 갖가지 필요한 것으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인도를 믿고 나아가는 바울의 앞에 하나님은 신실한 동역자와 후원자들을 준비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미독 나아가는 여호수아 앞길에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다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우리를 확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하겠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434장 1절)”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 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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