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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출19: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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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하나님과의 만남
출19:7-25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는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이 있었답니다. 신앙이 좋은 의사라 많은 목을 많이 쓰는 목사님들이 찾아와 진료를 받았답니다. 그날도 두 분의 목사님이 연이어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았답니다. 두 분 모두 성대를 과다하게 사용하여서 성대에 무리가 와서 치료받으러 왔답니다. 첫 번째 목사님에게 의사가 말했답니다. "목사님, 성대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설교를 하실 때 목소리를 낮추고 말씀하시고, 찬송가는 가급적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이어 다음 목사님이 진료를 받았답니다. 똑같은 증상이었답니다. 그 목사님에게 말했답니다. "목사님, 성대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설교 시간을 대폭 줄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찬송가도 짧은 것으로 부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료가 끝난 후 옆에서 이를 지켜본 간호사가 의사에게 물었답니다. "아니 제가 볼 때 증세가 똑같은데, 처방은 다르시네요." 의사가 웃으며 대답했답니다. "두 번째 목사님은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이거든."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교회 잘 다니는 성도들도 설교 길게 하는 것 싫어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많이 사모했던 예전에는 사경회가 있으면 저녁 9시에 시작하면 12시까지 또는 새벽 1시 넘게까지 말씀을 들으며 감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몇 년 전 중국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중국에 있는 교인들이 아주 말씀을 사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두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는데 그 교회를 담임하는 전도사님 두 분이 같이 따라다니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교회에서는 길게 하였는데 한 교회에서는 시간 상 40여분 설교를 하였습니다. 나중에 전도사님이 왜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짧게 하였냐고 항의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배시간은 집중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설교시간은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시지 않은 하나님을 말씀을 통하여 만나는 시간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로 말씀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부한 자, 권력있는 자, 명예있는 자, 열심있는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이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가인은 예배에 실패해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예배에 실패해 가문이 멸망했습니다.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며 오늘 이 시대에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시는 약속,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시는 교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위로, 회개, 소망, 책망, 비전, 지혜 등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들어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행17:11)”였다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한 통치자이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한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난다는 사건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입니까?
어제 어떤 인터넷 일간지를 보니까 미국의 자선 경매에서 할리우드 스타 '샤를리즈 테론과 7초간의 키스' 경매로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1억 6천만 원을 써내어 키스를 했다는 보도를 보고 혼자 웃었습니다. 유명인 만나는 것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미국에서 매년 빈민구제를 위해 시행하는 워런 버핏과 점심 식사를 하는 경매가 있습니다. 지난해 경매를 하는데 한 번 식사하는데 무려 211만 100달러(약 24억)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168만 300달러(약 21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그 수익금은 샌프란시스코 빈민구제에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와 만남을 가진 사람들이 그 많은 돈을 내고도 아까와 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좋은 인생의 교훈, 인생의 경험, 투자의 교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돈 많은 부자 워런 버피를 만나는 정도이겠습니까? 인기 스타 테론을 만나는 정도이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 “특별한 보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계약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기 위한 준비를 요구하십니다.
1.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무엇을 준비시키십니까?
첫째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하나님과 맺은 계약 즉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7-8).
7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와를 만난 후 백성의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서 나의 특별한 소유가 되고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우리가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말씀 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제가 행하겠나이다.” 이런 자세가 중요합니다. “말씀 하옵소서 내가 시험들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내가 삐지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내가 따지겠나이다. 내가 말씀을 써먹겠나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주일 학교에 잘 다니던 아이 셋이 교회에 감이 열리니까 몰래 따먹다 사모님에게 들켰답니다. 그러자 사모님이 "너희는 성경이 도둑들에게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그러자 아이들 "물론이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합창하더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형통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특별한 보배로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습니다. 똑같이 예배드리고 똑같이 말씀을 듣지만 어떤 다짐을 하고 참여하느냐에 따라 그 후의 삶이 달라집니다. 보이지 않지만 콩나무 자라듯 자라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과 만나기 위해 성결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10-15).
모세가 백성이 하는 다짐을 여호와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성결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백성(10,14)과 제사장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22). 성결하도록 네 가지를 준비시키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첫째는 기간을 말합니다. 이틀 동안 백성을 성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식상으로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옷을 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하나님을 만날 날을 위해 성적으로도 정결하라는 것입니다(15). 셋째는 뿔 나팔 소리가 날 때까지 하나님 맞을 준비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11, 13하). 넷째 현현장소를 성역화하고 그곳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2-13)
죄악된 인간이 성결함이 없이는 결코 거룩한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적 성결을 위해 외적 성결까지 유지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틀 동안 몸을 씻고 옷을 빠는 최대한 성결을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결하지 않고는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게 가까지 가지 못합니다. 경계를 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결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 입니다(레19:2).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성결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무엇으로 거룩하고 깨끗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의식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만큼 거룩해 질 수 있습니까?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완전하고 흠이 없는 상태에 어떻게 이르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완전한 성결은 인간 스스로 될 수가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고 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롬3:10)”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만한 절대적인 성결은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19)”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9:13-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절대적으로는 이미 거룩해졌습니다. 믿습니까? 성결에는 절대적 성결과 상대적 성결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성결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행15:9)”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아 있는 것은 상대적인 성결입니다. 매일 매일 삶 가운데 짓는 더러운 죄를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 인간은 지음받았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상실한 거룩성을 예수님을 통하여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엡1:4절을 보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결은 우리를 향한 영원 전부터의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벧1:15절에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자라 되라" 믿는 우리에게 성결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결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4:3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해씁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상대적인 성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내부에 잠재해 있는 정신이 어떻게 성결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외부적인 생활 습관이 어떻게 성결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와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자꾸 은폐하거나 미화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죄입니다.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임신 중절을 ‘산자의 인권’으로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탐욕을 ‘선의 경쟁’이라고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을 ‘표현의 자유’라고 미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로멘스’라고 미화시키며 자랑을 ‘PR’이라고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허영을 ‘패션 감각’이라이라고, 노욕을 ‘노후 대책’이라고 미화시키며 죄의 수렁으로 들어가면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작은 것이라도 정직하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살인죄를 지고 간음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하고 성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니니아와 삽비라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죽었습니다. 아간은 도둑질을 했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온 가족이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되풀이 하면 무디어 지고 무디어지면 마비되는 것입니다. 죄를 자꾸 다른 이름을 붙여 미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늘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좋아하는 집사님이 계셨답니다. 목사님이, 장로님이, 권사님이, 집사님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늘 비난하는 집사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셔서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 입구에 엄청나게 많은 시계가 걸려있고 그 밑에는 사람들이 이름이 써 있었답니다. 자기가 늘 비난했던 자기 교회 목사님 이름, 장로님 이름, 권사님 집사님 이름이 써있었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물었답니다. 이게 뭡니까? 그러자 "여기에 걸려있는 시계는 자신이 세상에서 살 때 나쁜 일을 한 만큼 시계 바늘이 빠르게 돌고 있느니라."라고 그랬답니다. 자신의 시계가 없어 기분 좋게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천사에게 물었답니다. 내 시계는 없지요? 그러자 천사가 "당신의 시계는 너무 빨리 돌고 있어서 모세 할아버지가 지금 선풍기로 쓰고 있소!"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여야 합니다.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면 잡초가 자랄 수 있는 빈공간을 남겨 놓으면 안됩니다.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며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불러 아들을 불러 훈계를 하였답니다. 그러자 아들은 가출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방탕한 자식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을 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녔지만 아들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답니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뉘우침의 표시로 삭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회개하고 돌아 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기쁨으로 받아 주었답니다. 아버지는 바로 이발소에 가서 자신도 삭발을 하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에 무릎을 꿇었답니다. 삭발한 아버지 품에서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며 통곡하였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를 우리 하나님은 깨끗케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만나 주십니다.
2.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성결을 준비시킨 후 어떻게 만나 주십니까?(16-25)
17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 진 가운데서 백성들을 데리고 나와 산기슭에 서 있었습니다.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시내산 아래서 200여만 명의 백성들이 서 있는 장면을 연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서 있는 것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하여 자신들을 애굽의 바로의 손아귀로부터 탈출시켜주신 하나님, 홍해를 기적적으로 가르신 하나님,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기대가 되겠습니다. 최초로 우주선이 달나라에 갈 때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는 것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재림하신다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서 있겠습니까?
드디어 셋째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만나 주었습니까?
첫째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만나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일곱 가지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천둥입니다. 둘째는 번개가 요란하였습니다. 셋째는 빽빽한 구름이 쫙 깔렸습니다. 넷째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모두 무서워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가졌습니다. 다섯째는 시내산이 자욱한 연기에 휩싸였습니다. 여섯째는 옹기 가마에서 치솟아 오르는 연기처럼 불이 뿜어 나왔습니다. 일곱째는 온 산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자연적인 계시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 주십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6)”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그러나 인간이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1:28)”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초자연적 방법, 지진이나 꿈이나 환상, 이적, 표적을 통해 인간을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꿈을 통해 만나 주었습니다(창20:3).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만나 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기적적으로 불치의 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만나 주십니다. 전신마비 미식축구 영웅 스콧 브룸필드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는 7세 때부터 풋볼을 시작해 한때 '천재적인 선수'로 불렸답니다. 관중을 매료시켰던 그에게 어느 날 불행이 다가 왔답니다. 1996년 11월3일 볼티모어 레이분스와의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졌답니다. 전신마비가 된 것입니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말했답니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이 한 순간에 뒤틀린 것입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그에게는 가족 외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수술 후 이틀이 지난 중환자실에 30대 후반의 불청객이 나타났답니다. 아내가 제지하는데도 자신의 아들이 브룸필드 선수를 가장 존경한다며 사랑하는 아들의 영원한 스타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휠체어에 한 아이를 태우고 나타났답니다. 8세 소년은 백혈병으로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소년은 브룸필드의 손을 잡고 울먹였답니다. "나의 스타 브룸필드씨, 힘을 내세요.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주실 거예요. 저는 3개월밖에 살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기도해요. 저와 함께 기도하세요." 소년이 기도할 때는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답니다. “교만했던 삶, 감사를 몰랐던 무례한 인생, 액세서리처럼 치장됐던 신앙….” 갑자기 회개기도가 터졌다고 합니다. 그는 소년에게 약속했답니다. "내년에 신시내티로 돌아가 선수로 다시 뛸 것이다. 그때까지 건강하거라. 그때는 반드시 네가 응원을 와야 한다." 수술 후 그는 기적처럼 정상으로 돌아왔고 소년도 치료됐었답니다. 그는 신시내티로 돌아와 선수로 복귀했고 백혈병 소년의 응원이 이어졌답니다. 그는 지금은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고난 가운데 만나 주십니다. 일간지에서 암투병하며 신바람 경영을 펴는 중앙대 의료원장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올해 나이 69세라고 합니다. 병원장이 되어 병원 운영 체계를 획기적으로 만들어 놓고 신바람 나는 일터로 만들어 놓았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속이 더부룩하고 맥박이 빨라져 복부 CT를 찍은 결과, 췌장에서 암이 발견되었답니다. 하지만 계속 출근하며 멋진 인생을 사시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암에 걸리고 나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암을 선물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푸른 하늘과 맑은 새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모르고 죽을 뻔했다. 매일같이 나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친구들이 정말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을 지나칠 뻔했다. 집사람과 손잡고 산보하고, 매주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교회 가고, 식사하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우리 병원 의사들 20여명이 매주 한 번 나의 쾌유를 빌며 기도회를 갖는다. 너무나 황송한 일이다. 나이 일흔이 돼서야 철이 든 기분이다." 질병 가운데 하나님을 더 진지하고 깊고 인격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으로 만나 주었습니다.
그런 초자연적 현상 가운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9절 보십시오. 나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모세가 소리쳐 하나님을 부르자 하나님께서는 천둥 소리 같은 말씀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성경은 2만 4천 가지 번역본이 있으며 40여명의 기록자가 1500년(50세대)와 3대륙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통해 인생이 변화됩니다. 비전이 바꾸어집니다.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1694-1778)는 하나님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는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
신가는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불신앙에 빠진 시민들은 그의 무신론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신이 난 그는 파리의 대로에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십시오!” 그러나 그에게 죽음이 찾아 왔습니다. 사실인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회진 온 의사에게 간절히 부탁했다고 합니다. “만약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답니다. “볼테르 선생님! 선생님의 생명은 6개월은 고사하고 이제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그는 “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세월은 흘러 볼테르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호언장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신론 책을 펴내던 그의 인쇄기는 성경을 인쇄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의 저택은 성경 보관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말씀은 영원합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사업가로서 60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답니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답변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는 듯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2달러 75센트를 주고 예쁜 가죽 성경 한 권을 구입했어요.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영국 엘리자베드 여왕은 성경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영국의 모든 영토를 버릴지라도 성경은 버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 날 방탕하게 살아던 미국의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그의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방탕한 청년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오직 성경의 힘입니다."라고 울먹였답니다.
밀림의 성자 앨버트 슈바이쩌(Albert Schweitzer)박사는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읽으면서 거지나사로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사는 아프리카의 흑인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흑인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이 변화됩니다. 뽀나르 목사님은 “내가 피곤할 때에 성경이 나의 침대가 되고 내가 어둠 속에 있을 때에 성경이 나의 빛이 되고 내가 굶주릴때에 성경이 나의 떡이 되고 내가 무서울때에 나의 갑옷이요 내가 병들었을 때에 성경이 나를 고쳐주는 양약이 되며 적적할 때에는 성경에서 내가 많은 친구를 찾는다. 만일 내가 일하려면 성경이 나의 기구요 놀때에는 성경이 나의 즐거운 풍류로다 만일 내가 무식하면 성경이 나의 학교요 만일 내가 빠지게 되면 성경이 나의 굳은 땅이로다. 만일 내가 추우면 성경이 나에게 열이되며 만일 내가 떠오르면 성경은 나의 날개로다 성경은 나의 지도자, 의복, 피난처, 꽃동산, 태양, 샘물, 신선한 공기로다. 위대한 책이여!”라고 읊었습니다.
셋째는 중보자를 통해 만나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 꼭대기에 현현하셔서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내려가서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어라는 것입니다. 모세를 중보자로 세워 만나십니다. 그리고 아론을 같이 불러 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보려고 호기심을 가지고 올라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도 몸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호기심으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거나 성결을 등한시 하면 결국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가 대제사장 아론과 함께 오라오라는 것입니다. 결국 중보자를 세워 만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를 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보자인 모세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고 모든 백성이 항상 모세를 믿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신 중보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모세는 왕직과 선지자 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론은 제사장 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왕직 선지자직 제사장 직을 가지고 있는 중보자를 통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메시야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를 모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왕직과 선지자직과 제사장 직을 가지고 이 땅의 진정한 중보자로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왕직과 제사장 직과 선지자직을 동시에 가지고 오신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악한 영적 세력들을 물릴 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 1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 3:6)”
가장 인생의 큰 행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고기가 물을 만나야 하고 초목이 흙을 만나야 하듯이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야 행복하고 즐거움과 평안이 있습니다. 레일을 떠난 기차는 넘어집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는 죽습니다. 흙을 떠난 나무는 결국 말라 비틀어집니다. 우리는 매일 생활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잘했다 칭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적 가운데 만났든, 말씀으로 만났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났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제는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결한 삶으로 하나님 만난 사람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0.25
출19:7-25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는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이 있었답니다. 신앙이 좋은 의사라 많은 목을 많이 쓰는 목사님들이 찾아와 진료를 받았답니다. 그날도 두 분의 목사님이 연이어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았답니다. 두 분 모두 성대를 과다하게 사용하여서 성대에 무리가 와서 치료받으러 왔답니다. 첫 번째 목사님에게 의사가 말했답니다. "목사님, 성대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설교를 하실 때 목소리를 낮추고 말씀하시고, 찬송가는 가급적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이어 다음 목사님이 진료를 받았답니다. 똑같은 증상이었답니다. 그 목사님에게 말했답니다. "목사님, 성대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설교 시간을 대폭 줄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찬송가도 짧은 것으로 부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료가 끝난 후 옆에서 이를 지켜본 간호사가 의사에게 물었답니다. "아니 제가 볼 때 증세가 똑같은데, 처방은 다르시네요." 의사가 웃으며 대답했답니다. "두 번째 목사님은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이거든."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교회 잘 다니는 성도들도 설교 길게 하는 것 싫어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많이 사모했던 예전에는 사경회가 있으면 저녁 9시에 시작하면 12시까지 또는 새벽 1시 넘게까지 말씀을 들으며 감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몇 년 전 중국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중국에 있는 교인들이 아주 말씀을 사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두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는데 그 교회를 담임하는 전도사님 두 분이 같이 따라다니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교회에서는 길게 하였는데 한 교회에서는 시간 상 40여분 설교를 하였습니다. 나중에 전도사님이 왜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짧게 하였냐고 항의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배시간은 집중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설교시간은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시지 않은 하나님을 말씀을 통하여 만나는 시간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로 말씀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부한 자, 권력있는 자, 명예있는 자, 열심있는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이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가인은 예배에 실패해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예배에 실패해 가문이 멸망했습니다.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며 오늘 이 시대에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시는 약속,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시는 교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위로, 회개, 소망, 책망, 비전, 지혜 등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들어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행17:11)”였다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한 통치자이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한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난다는 사건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입니까?
어제 어떤 인터넷 일간지를 보니까 미국의 자선 경매에서 할리우드 스타 '샤를리즈 테론과 7초간의 키스' 경매로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1억 6천만 원을 써내어 키스를 했다는 보도를 보고 혼자 웃었습니다. 유명인 만나는 것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미국에서 매년 빈민구제를 위해 시행하는 워런 버핏과 점심 식사를 하는 경매가 있습니다. 지난해 경매를 하는데 한 번 식사하는데 무려 211만 100달러(약 24억)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168만 300달러(약 21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그 수익금은 샌프란시스코 빈민구제에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와 만남을 가진 사람들이 그 많은 돈을 내고도 아까와 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좋은 인생의 교훈, 인생의 경험, 투자의 교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돈 많은 부자 워런 버피를 만나는 정도이겠습니까? 인기 스타 테론을 만나는 정도이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 “특별한 보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계약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기 위한 준비를 요구하십니다.
1.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무엇을 준비시키십니까?
첫째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하나님과 맺은 계약 즉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7-8).
7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와를 만난 후 백성의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서 나의 특별한 소유가 되고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우리가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말씀 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제가 행하겠나이다.” 이런 자세가 중요합니다. “말씀 하옵소서 내가 시험들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내가 삐지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내가 따지겠나이다. 내가 말씀을 써먹겠나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주일 학교에 잘 다니던 아이 셋이 교회에 감이 열리니까 몰래 따먹다 사모님에게 들켰답니다. 그러자 사모님이 "너희는 성경이 도둑들에게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그러자 아이들 "물론이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합창하더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형통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특별한 보배로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습니다. 똑같이 예배드리고 똑같이 말씀을 듣지만 어떤 다짐을 하고 참여하느냐에 따라 그 후의 삶이 달라집니다. 보이지 않지만 콩나무 자라듯 자라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과 만나기 위해 성결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10-15).
모세가 백성이 하는 다짐을 여호와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성결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백성(10,14)과 제사장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22). 성결하도록 네 가지를 준비시키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첫째는 기간을 말합니다. 이틀 동안 백성을 성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식상으로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옷을 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하나님을 만날 날을 위해 성적으로도 정결하라는 것입니다(15). 셋째는 뿔 나팔 소리가 날 때까지 하나님 맞을 준비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11, 13하). 넷째 현현장소를 성역화하고 그곳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2-13)
죄악된 인간이 성결함이 없이는 결코 거룩한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적 성결을 위해 외적 성결까지 유지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틀 동안 몸을 씻고 옷을 빠는 최대한 성결을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결하지 않고는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게 가까지 가지 못합니다. 경계를 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결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 입니다(레19:2).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성결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무엇으로 거룩하고 깨끗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의식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만큼 거룩해 질 수 있습니까?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완전하고 흠이 없는 상태에 어떻게 이르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완전한 성결은 인간 스스로 될 수가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고 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롬3:10)”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만한 절대적인 성결은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19)”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9:13-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절대적으로는 이미 거룩해졌습니다. 믿습니까? 성결에는 절대적 성결과 상대적 성결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성결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행15:9)”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아 있는 것은 상대적인 성결입니다. 매일 매일 삶 가운데 짓는 더러운 죄를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 인간은 지음받았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상실한 거룩성을 예수님을 통하여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엡1:4절을 보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결은 우리를 향한 영원 전부터의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벧1:15절에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자라 되라" 믿는 우리에게 성결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결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4:3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해씁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상대적인 성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내부에 잠재해 있는 정신이 어떻게 성결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외부적인 생활 습관이 어떻게 성결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와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자꾸 은폐하거나 미화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죄입니다.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임신 중절을 ‘산자의 인권’으로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탐욕을 ‘선의 경쟁’이라고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을 ‘표현의 자유’라고 미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로멘스’라고 미화시키며 자랑을 ‘PR’이라고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허영을 ‘패션 감각’이라이라고, 노욕을 ‘노후 대책’이라고 미화시키며 죄의 수렁으로 들어가면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작은 것이라도 정직하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살인죄를 지고 간음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하고 성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니니아와 삽비라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죽었습니다. 아간은 도둑질을 했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온 가족이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되풀이 하면 무디어 지고 무디어지면 마비되는 것입니다. 죄를 자꾸 다른 이름을 붙여 미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늘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좋아하는 집사님이 계셨답니다. 목사님이, 장로님이, 권사님이, 집사님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늘 비난하는 집사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셔서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 입구에 엄청나게 많은 시계가 걸려있고 그 밑에는 사람들이 이름이 써 있었답니다. 자기가 늘 비난했던 자기 교회 목사님 이름, 장로님 이름, 권사님 집사님 이름이 써있었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물었답니다. 이게 뭡니까? 그러자 "여기에 걸려있는 시계는 자신이 세상에서 살 때 나쁜 일을 한 만큼 시계 바늘이 빠르게 돌고 있느니라."라고 그랬답니다. 자신의 시계가 없어 기분 좋게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천사에게 물었답니다. 내 시계는 없지요? 그러자 천사가 "당신의 시계는 너무 빨리 돌고 있어서 모세 할아버지가 지금 선풍기로 쓰고 있소!"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여야 합니다.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면 잡초가 자랄 수 있는 빈공간을 남겨 놓으면 안됩니다.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며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불러 아들을 불러 훈계를 하였답니다. 그러자 아들은 가출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방탕한 자식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을 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녔지만 아들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답니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뉘우침의 표시로 삭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회개하고 돌아 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기쁨으로 받아 주었답니다. 아버지는 바로 이발소에 가서 자신도 삭발을 하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에 무릎을 꿇었답니다. 삭발한 아버지 품에서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며 통곡하였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를 우리 하나님은 깨끗케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만나 주십니다.
2.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성결을 준비시킨 후 어떻게 만나 주십니까?(16-25)
17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 진 가운데서 백성들을 데리고 나와 산기슭에 서 있었습니다.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시내산 아래서 200여만 명의 백성들이 서 있는 장면을 연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서 있는 것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하여 자신들을 애굽의 바로의 손아귀로부터 탈출시켜주신 하나님, 홍해를 기적적으로 가르신 하나님,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기대가 되겠습니다. 최초로 우주선이 달나라에 갈 때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는 것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재림하신다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서 있겠습니까?
드디어 셋째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만나 주었습니까?
첫째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만나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일곱 가지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천둥입니다. 둘째는 번개가 요란하였습니다. 셋째는 빽빽한 구름이 쫙 깔렸습니다. 넷째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모두 무서워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가졌습니다. 다섯째는 시내산이 자욱한 연기에 휩싸였습니다. 여섯째는 옹기 가마에서 치솟아 오르는 연기처럼 불이 뿜어 나왔습니다. 일곱째는 온 산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자연적인 계시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 주십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6)”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그러나 인간이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1:28)”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초자연적 방법, 지진이나 꿈이나 환상, 이적, 표적을 통해 인간을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꿈을 통해 만나 주었습니다(창20:3).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만나 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기적적으로 불치의 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만나 주십니다. 전신마비 미식축구 영웅 스콧 브룸필드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는 7세 때부터 풋볼을 시작해 한때 '천재적인 선수'로 불렸답니다. 관중을 매료시켰던 그에게 어느 날 불행이 다가 왔답니다. 1996년 11월3일 볼티모어 레이분스와의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졌답니다. 전신마비가 된 것입니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말했답니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이 한 순간에 뒤틀린 것입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그에게는 가족 외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수술 후 이틀이 지난 중환자실에 30대 후반의 불청객이 나타났답니다. 아내가 제지하는데도 자신의 아들이 브룸필드 선수를 가장 존경한다며 사랑하는 아들의 영원한 스타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휠체어에 한 아이를 태우고 나타났답니다. 8세 소년은 백혈병으로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소년은 브룸필드의 손을 잡고 울먹였답니다. "나의 스타 브룸필드씨, 힘을 내세요.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주실 거예요. 저는 3개월밖에 살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기도해요. 저와 함께 기도하세요." 소년이 기도할 때는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답니다. “교만했던 삶, 감사를 몰랐던 무례한 인생, 액세서리처럼 치장됐던 신앙….” 갑자기 회개기도가 터졌다고 합니다. 그는 소년에게 약속했답니다. "내년에 신시내티로 돌아가 선수로 다시 뛸 것이다. 그때까지 건강하거라. 그때는 반드시 네가 응원을 와야 한다." 수술 후 그는 기적처럼 정상으로 돌아왔고 소년도 치료됐었답니다. 그는 신시내티로 돌아와 선수로 복귀했고 백혈병 소년의 응원이 이어졌답니다. 그는 지금은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고난 가운데 만나 주십니다. 일간지에서 암투병하며 신바람 경영을 펴는 중앙대 의료원장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올해 나이 69세라고 합니다. 병원장이 되어 병원 운영 체계를 획기적으로 만들어 놓고 신바람 나는 일터로 만들어 놓았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속이 더부룩하고 맥박이 빨라져 복부 CT를 찍은 결과, 췌장에서 암이 발견되었답니다. 하지만 계속 출근하며 멋진 인생을 사시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암에 걸리고 나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암을 선물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푸른 하늘과 맑은 새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모르고 죽을 뻔했다. 매일같이 나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친구들이 정말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을 지나칠 뻔했다. 집사람과 손잡고 산보하고, 매주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교회 가고, 식사하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우리 병원 의사들 20여명이 매주 한 번 나의 쾌유를 빌며 기도회를 갖는다. 너무나 황송한 일이다. 나이 일흔이 돼서야 철이 든 기분이다." 질병 가운데 하나님을 더 진지하고 깊고 인격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으로 만나 주었습니다.
그런 초자연적 현상 가운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9절 보십시오. 나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모세가 소리쳐 하나님을 부르자 하나님께서는 천둥 소리 같은 말씀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성경은 2만 4천 가지 번역본이 있으며 40여명의 기록자가 1500년(50세대)와 3대륙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통해 인생이 변화됩니다. 비전이 바꾸어집니다.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1694-1778)는 하나님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는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
신가는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불신앙에 빠진 시민들은 그의 무신론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신이 난 그는 파리의 대로에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십시오!” 그러나 그에게 죽음이 찾아 왔습니다. 사실인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회진 온 의사에게 간절히 부탁했다고 합니다. “만약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답니다. “볼테르 선생님! 선생님의 생명은 6개월은 고사하고 이제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그는 “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세월은 흘러 볼테르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호언장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신론 책을 펴내던 그의 인쇄기는 성경을 인쇄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의 저택은 성경 보관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말씀은 영원합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사업가로서 60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답니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답변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는 듯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2달러 75센트를 주고 예쁜 가죽 성경 한 권을 구입했어요.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영국 엘리자베드 여왕은 성경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영국의 모든 영토를 버릴지라도 성경은 버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 날 방탕하게 살아던 미국의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그의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방탕한 청년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오직 성경의 힘입니다."라고 울먹였답니다.
밀림의 성자 앨버트 슈바이쩌(Albert Schweitzer)박사는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읽으면서 거지나사로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사는 아프리카의 흑인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흑인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이 변화됩니다. 뽀나르 목사님은 “내가 피곤할 때에 성경이 나의 침대가 되고 내가 어둠 속에 있을 때에 성경이 나의 빛이 되고 내가 굶주릴때에 성경이 나의 떡이 되고 내가 무서울때에 나의 갑옷이요 내가 병들었을 때에 성경이 나를 고쳐주는 양약이 되며 적적할 때에는 성경에서 내가 많은 친구를 찾는다. 만일 내가 일하려면 성경이 나의 기구요 놀때에는 성경이 나의 즐거운 풍류로다 만일 내가 무식하면 성경이 나의 학교요 만일 내가 빠지게 되면 성경이 나의 굳은 땅이로다. 만일 내가 추우면 성경이 나에게 열이되며 만일 내가 떠오르면 성경은 나의 날개로다 성경은 나의 지도자, 의복, 피난처, 꽃동산, 태양, 샘물, 신선한 공기로다. 위대한 책이여!”라고 읊었습니다.
셋째는 중보자를 통해 만나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 꼭대기에 현현하셔서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내려가서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어라는 것입니다. 모세를 중보자로 세워 만나십니다. 그리고 아론을 같이 불러 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보려고 호기심을 가지고 올라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도 몸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호기심으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거나 성결을 등한시 하면 결국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가 대제사장 아론과 함께 오라오라는 것입니다. 결국 중보자를 세워 만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를 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보자인 모세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고 모든 백성이 항상 모세를 믿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신 중보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모세는 왕직과 선지자 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론은 제사장 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왕직 선지자직 제사장 직을 가지고 있는 중보자를 통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메시야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를 모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왕직과 선지자직과 제사장 직을 가지고 이 땅의 진정한 중보자로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왕직과 제사장 직과 선지자직을 동시에 가지고 오신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악한 영적 세력들을 물릴 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 1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 3:6)”
가장 인생의 큰 행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고기가 물을 만나야 하고 초목이 흙을 만나야 하듯이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야 행복하고 즐거움과 평안이 있습니다. 레일을 떠난 기차는 넘어집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는 죽습니다. 흙을 떠난 나무는 결국 말라 비틀어집니다. 우리는 매일 생활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잘했다 칭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적 가운데 만났든, 말씀으로 만났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났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제는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결한 삶으로 하나님 만난 사람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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