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출20:1-17 |
---|---|
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하나님 나라의 헌법 십계명 1
출20:1-17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이 주례가 있어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급히 차를 몰고 갔답니다. 그런데 앞에 차들이 막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마음이 초조하여 급히 불법 유턴을 했는데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더라는 것입니다. 차를 세우자 다가온 경찰관이 “아니 목사님 아니십니까?” 거수 경례를 하는 것입니다. 경찰로 근무하는 자기 교회 집사님이었답니다. “집사님, 결혼 주례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러자 “목사님 싼 것으로 하나 떼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체면상 보아달라고 할 수 없고 “고맙다”고 말하고 결혼 주례식에 갔답니다. 그런데 한 주 지나 여사무원이 목사님 앞에 와서 우물쭈물하며 “목사님 목사님 차 범칙금 통지서가 나왔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하고 보았더니 '노상방뇨죄(路上放尿罪)'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불법 유턴보다 싼 것으로 끊어준 것입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법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헌법입니다. 방송법이 합법인가 불법인가 얼마전 헌법 제판소에서 판결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헌법은 상위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최상급의 법규범입니다. 헌법의 법률이나 명령, 규칙 등의 입법기준이 되고 해석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바로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 오경에는 십계명을 제외하고 613개의 법률이 나오는데 십계명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첫 번째는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토라)으로 출19장 민수기 10장 10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모압 평지에서 주신 말씀으로 신명기 12장부터 26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토라 말씀 6백 13개 조항 중에 248개 긍정적인 계명이고 365개 부정적인 계명이라고 합니다. 이를 최초로 분류한 사람은 중세시대의 저명한 랍비이며 사상가로 알려진 마이모니데스입니다. 긍정적인 수는 사람의 뼈마디의 수와 같으며 부정적인 수는 일년의 날짜 수와 일치하여 유대인들은 사람은 온 몸의 2백 48개의 뼈마디 하나 하나를 모두 합하여 일년 36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결같이 613개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레위기의 제사법, 성결법, 신명기의 법률은 다 그 근거가 십계명에 있습니다. 십계명은 오늘 본문과 신명기 5:6-2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신정국가의 통치 원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2절은 전문만 살펴 보며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나라가 세워지면 나라마다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에는 전문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으로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이어받아, 조국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개혁하고 평화통일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며, 정의-인도와 동포애로 굳게 단결하여 정치-경제-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이 균등한 기회에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생활 수준을 높이고, 나아가 영원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여,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자유와 행복을 끝없이 누리도록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한 뒤 여덟 번 손질한 헌법을 이제 국회에서 의결하여 국민투표로 개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헌법의 성립 유래, 헌법제정권자, 헌법의 제정 목적과 기본 원칙이 제시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은 헌법의 전문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 헌법 제정의 유래가 나옵니다. “애굽 땅”에서의 역사적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헌법 제정권 자에 대하여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1)”라고 말씀합니다. 헌법의 제정권자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헌법의 제정 목적입니다.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라는 말씀을 통해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을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넷째 헌법 제정의 기본 원칙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듯이 “모든 말씀으로” 십계명을 주시므로 창조의 원칙을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오늘 1-2절 십계명 서문이 교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만들기 위해 십계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유래에 대하여 아주 간략하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언약을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 스스로를 소개하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십계명을 지키고 살아야 할 사람들은 과거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애굽의 법에 지배받는 노예들이었습니다. 스스로 헌법을 가질만한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종으로, 노예로 시키는 대로 살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시켰습니다. 자유민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기적에 기적을 거듭 행하면서 구출했습니다. 정치적 자유를 주었습니다. 신체의 구속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신앙적 자유를 주었습니다. 우상숭배로 감염된 애굽에서 구출했습니다. 매를 숭배하고 새를 숭배하고 황소를 숭배하였습니다. 더렵혀진 땅 죄가 지배하는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약을 하면서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면 이 말씀을 지키며 살라는 것입니다.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답게 살려면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려면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답게 살려면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주의하여 묵상해야 합니다. 이미 구원한 후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면 구원해 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지킴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헌법은 그 나라 백성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신정통치를 하는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십계명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자들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고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킴으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롬 3:10)”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3: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그 사실을 믿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십계명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에 대하여 두 번째 오해는 십계명은 구약의 계명이니까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 율법주의 자들입니다. 율법 폐기론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왜 우리가 구약의 십계명을 지키냐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롬 7:7,12,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
둘째가 예수님께 인도하는 기능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서는 몽학선생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갈3:24)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행28:23)”
셋째가 우리를 성화시키는 기능입니다.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해 주십니다. 우드(Wood)는 “율법은 소극적으로는 죄인들의 입을 막고, 죄를 각성 시키지만 적극적으로는 인간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녀들의 온전한 삶의 규범이 무엇인지 깨우쳐 준다”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은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성화를 위해,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질서를 위해 필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제 6계명은 마 5:21-22에서 말씀하시기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의 정신을 더욱더 강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내가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버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을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합니다. 십계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헌법적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면 인류가, 국가가, 사회가,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킬 때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이 주어집니다. 남종이나 여종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안식일을 지킬 때 진정한 평등권이 이루어집니다. 이웃의 집을 탐내지 않을 때 재산권이 보장되고 도둑질 하지 않은 때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가 보장됩니다. 계명을 지킬 때 사회적 경제적 자유권이 보장됩니다. 거짓 증거하지 않을 때 청구권적 기본권이 보장됩니다. 십계명을 지킬 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주어지고 혼인과 가족 보건에 관한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가정 윤리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모시고 행복하게 살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신 분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입니다. 하나님이 입법자라는 것입니다. 지혜와 권위를 가진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을 하나님이 입법했다는 말입니다. 십계명의 일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입니까? 2절에 보세요.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의 하나님은 “엘로힘”입니다. 2절의 너희 하나님도 “엘로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 하나님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라고 말씀합니다. 본질적으로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라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주시면서 계약을 하시는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다(여호와)”라는 것입입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삼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바로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즉 “야훼”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름 세가지가 첫째 “엘로힘”입니다. 하나님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능력의 창조자, 만물의 원천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아도나이입니다. 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인과종의 관계는 사랑과 충성관계를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도 거룩한 하나님의 여호와를 부를 수 없다 하여 나의 주인이란 뜻의 아도나이를 썼습니다. 세째가 2절에 나오는 여호와 또는 야훼입니다. 그 뜻은 “존재하다. 되다.”입니다. 여호와란 하나님의 거룩성. 전지성. 편재성. 전능성을 보여 줍니다. 항상 살아계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출 3:14) 감히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다는 것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고후6:1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우리 하나님은 폭군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억제하고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세상의 헌법에 왜 주어졌겠습니까? 백성들을 행복하게 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를 경영하는데도 오너가 귀를 열리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의사의 처방대로 하지 않으면 치료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 15:26) 앞길에 예비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말입니다(창 22:13∼14). 여호와 닛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 17:15). 여호와 샬롬,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삿 6:24). 여호와 로이,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이십니다(시23:1). 여호와 삼마,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겔 48:35).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직을 16년간이나 맡았던 어느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이었답니다. 아버지가 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5:39)라는 말씀을 강조해 말씀해 주었답니다. 어느 날 하교 길에 친구와 싸움을 하였답니다. 서로 뺨을 후려갈기며 쌈을 하였답니다. 서로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울퉁불퉁 부어오랐답니다. 이때 목사님이신 아버지께서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주님께서 마태복음 5장 39절 말씀에 뭐라 하셨느냐?”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도 돌려 대라고 하셨습니다.”아버지가 “그런데 왜 싸우고 있어?”라고 말하자 “저도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글쎄 이 녀석이 왼편 뺨을 먼저 때리잖아요! 오른편 뺨을 먼저 때리면 참을 수 있었는데…”라고 했답니다. 말씀을 이렇게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짐이 됩니다. 이 장로님이 어른이 되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후 군대에 갔답니다. 고참이 갑자기 뺨을 때리며“ 내 담배 훔쳐간 놈이 너지?”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배를 잡고 웃으며 킥킥거렸답니다. 그 때 고참이 계속 뺨을 때리며 “예수 믿는다더니 너 미쳤구나?”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고참님, 담배 훔쳐간 녀석은 딴 놈인데 제 뺨을 때리시니까 우습죠! 제 뺨이 얼얼한데 고참님 손바닥은 얼마나 아프겠어요?”라고 했답니다. 그 후 고참은 갑자기 감동을 받고 “야! 나도 너처럼 예수 믿고 미쳐보자!”고 교회에 같이 나가게 되었답니다. 말씀을 지키면 나도 행복해 지고 너도 행복해지고 우리가 행복해 집니다. 십계명에 대하여 하나님을 독제자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위해 인간을 혹사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계명이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계명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멍에이고 쇠사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십계명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울타리입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께 우리에게 행복한 가정 생활, 행복한 사회생활, 행복한 교회생활, 행복한 국민생활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면 탈선됩니다. 자유가 아닙니다. 죽음입니다. 새가 공기가 싫다고 공기를 벗어나면 죽음입니다. 물고기가 물이 거치적거린다고 육지로 나오면 자유가 아니라 죽음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1-4계명까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10계명까지가 바른 인간관계로 통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 자유인의 신분을 누리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헌법의 제정 목적은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라는 말씀을 통해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을 바꾸어 주고 그 자유인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십계명을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국민된 삶을 누리도록 주신 것입니다. 황국 시민에서 해방되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삶을 살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은 이제 종이 아닙니다. 죽음의 종이 아닙니다. 죄의 종, 사탄의 종이 아닙니다. 헌법 제정의 기본 원칙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듯이 “모든 말씀으로” 십계명을 주시므로 창조의 원칙을 그대로 사용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조 질서 확립과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주신 말씀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범죄 후 상태가 변화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단절되었습니다. 생명의 단절로 영적 사망(중생)이 왔습니다. 육적 사망이 왔습니다(부활) 영원적 사망이 왔습니다(영화)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영적 사망에서 중생을 시켰습니다. 육적 사망에서 부활시킬 것입니다. 영원적 사망이 영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의 단절로 영적소경, 죄의 지배, 친죄 성향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의와 거룩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고전7:22)”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고 말씀합니다.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사하는 것 하나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결혼식 하는데도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죽음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여성 할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백성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지참금과 혼수가 적다고 며느리를 태워 죽인 시어머니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인도 여자들은 혼인 지참금 때문에 해마다 약 오천 명이 죽어간다고 합니다. 1시간 40분마다 한 명이 혼인 지참금 때문에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통계이고 실제적으로는 이보다 몇 배의 여성이 혼수와 지참금으로 학대받다 급기야는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딸 낳기를 싫어하고 어떤 딸들은 부모의 무거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아예 혼인하기 전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 안에 들어오면 그릇된 틀을 벗어 던지고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실수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보상이 아니라 노력에 있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결과의 노예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자신의 아집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 중에는 고통이 없는 성공이 없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성공 앞에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어린 시절로 끝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남을 판단하는 노예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은 힘든 것이라"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행복의 노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심는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게으름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면 진리가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십계명은 인생의 진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하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니체는 주먹의 철학으로 참 자유를 누리려고 했고, 마르크스주의는 밥통의 철학으로, 프로이드는 성기의 심리학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분으로 생각하였고 기독교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속박의 종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동성애도 자유라고 생각하고 간음도 자유라고 생각하고 생명의 선택도 자유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은 결국 자유를 제한하게 됩니다. 죄의 늪에 갇히면 결코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성적 자유를 누린다고 15세 소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의 풍요로운 자유는 결국 제한되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누리는 자유는 죄도 죽음도 올무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하여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인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1.1
출20:1-17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이 주례가 있어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급히 차를 몰고 갔답니다. 그런데 앞에 차들이 막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마음이 초조하여 급히 불법 유턴을 했는데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더라는 것입니다. 차를 세우자 다가온 경찰관이 “아니 목사님 아니십니까?” 거수 경례를 하는 것입니다. 경찰로 근무하는 자기 교회 집사님이었답니다. “집사님, 결혼 주례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러자 “목사님 싼 것으로 하나 떼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체면상 보아달라고 할 수 없고 “고맙다”고 말하고 결혼 주례식에 갔답니다. 그런데 한 주 지나 여사무원이 목사님 앞에 와서 우물쭈물하며 “목사님 목사님 차 범칙금 통지서가 나왔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하고 보았더니 '노상방뇨죄(路上放尿罪)'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불법 유턴보다 싼 것으로 끊어준 것입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법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헌법입니다. 방송법이 합법인가 불법인가 얼마전 헌법 제판소에서 판결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헌법은 상위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최상급의 법규범입니다. 헌법의 법률이나 명령, 규칙 등의 입법기준이 되고 해석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바로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 오경에는 십계명을 제외하고 613개의 법률이 나오는데 십계명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첫 번째는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토라)으로 출19장 민수기 10장 10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모압 평지에서 주신 말씀으로 신명기 12장부터 26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토라 말씀 6백 13개 조항 중에 248개 긍정적인 계명이고 365개 부정적인 계명이라고 합니다. 이를 최초로 분류한 사람은 중세시대의 저명한 랍비이며 사상가로 알려진 마이모니데스입니다. 긍정적인 수는 사람의 뼈마디의 수와 같으며 부정적인 수는 일년의 날짜 수와 일치하여 유대인들은 사람은 온 몸의 2백 48개의 뼈마디 하나 하나를 모두 합하여 일년 36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결같이 613개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레위기의 제사법, 성결법, 신명기의 법률은 다 그 근거가 십계명에 있습니다. 십계명은 오늘 본문과 신명기 5:6-2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신정국가의 통치 원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2절은 전문만 살펴 보며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나라가 세워지면 나라마다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에는 전문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으로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이어받아, 조국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개혁하고 평화통일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며, 정의-인도와 동포애로 굳게 단결하여 정치-경제-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이 균등한 기회에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생활 수준을 높이고, 나아가 영원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여,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자유와 행복을 끝없이 누리도록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한 뒤 여덟 번 손질한 헌법을 이제 국회에서 의결하여 국민투표로 개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헌법의 성립 유래, 헌법제정권자, 헌법의 제정 목적과 기본 원칙이 제시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은 헌법의 전문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 헌법 제정의 유래가 나옵니다. “애굽 땅”에서의 역사적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헌법 제정권 자에 대하여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1)”라고 말씀합니다. 헌법의 제정권자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헌법의 제정 목적입니다.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라는 말씀을 통해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을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넷째 헌법 제정의 기본 원칙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듯이 “모든 말씀으로” 십계명을 주시므로 창조의 원칙을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오늘 1-2절 십계명 서문이 교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만들기 위해 십계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유래에 대하여 아주 간략하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언약을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 스스로를 소개하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십계명을 지키고 살아야 할 사람들은 과거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애굽의 법에 지배받는 노예들이었습니다. 스스로 헌법을 가질만한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종으로, 노예로 시키는 대로 살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시켰습니다. 자유민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기적에 기적을 거듭 행하면서 구출했습니다. 정치적 자유를 주었습니다. 신체의 구속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신앙적 자유를 주었습니다. 우상숭배로 감염된 애굽에서 구출했습니다. 매를 숭배하고 새를 숭배하고 황소를 숭배하였습니다. 더렵혀진 땅 죄가 지배하는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약을 하면서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면 이 말씀을 지키며 살라는 것입니다.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답게 살려면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려면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답게 살려면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주의하여 묵상해야 합니다. 이미 구원한 후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면 구원해 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지킴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헌법은 그 나라 백성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신정통치를 하는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십계명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자들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고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킴으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롬 3:10)”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3: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그 사실을 믿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십계명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에 대하여 두 번째 오해는 십계명은 구약의 계명이니까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 율법주의 자들입니다. 율법 폐기론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왜 우리가 구약의 십계명을 지키냐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롬 7:7,12,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
둘째가 예수님께 인도하는 기능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서는 몽학선생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갈3:24)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행28:23)”
셋째가 우리를 성화시키는 기능입니다.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해 주십니다. 우드(Wood)는 “율법은 소극적으로는 죄인들의 입을 막고, 죄를 각성 시키지만 적극적으로는 인간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녀들의 온전한 삶의 규범이 무엇인지 깨우쳐 준다”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은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성화를 위해,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질서를 위해 필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제 6계명은 마 5:21-22에서 말씀하시기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의 정신을 더욱더 강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내가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버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을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합니다. 십계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헌법적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면 인류가, 국가가, 사회가,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킬 때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이 주어집니다. 남종이나 여종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안식일을 지킬 때 진정한 평등권이 이루어집니다. 이웃의 집을 탐내지 않을 때 재산권이 보장되고 도둑질 하지 않은 때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가 보장됩니다. 계명을 지킬 때 사회적 경제적 자유권이 보장됩니다. 거짓 증거하지 않을 때 청구권적 기본권이 보장됩니다. 십계명을 지킬 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주어지고 혼인과 가족 보건에 관한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가정 윤리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모시고 행복하게 살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신 분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입니다. 하나님이 입법자라는 것입니다. 지혜와 권위를 가진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을 하나님이 입법했다는 말입니다. 십계명의 일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입니까? 2절에 보세요.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의 하나님은 “엘로힘”입니다. 2절의 너희 하나님도 “엘로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 하나님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라고 말씀합니다. 본질적으로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라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주시면서 계약을 하시는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다(여호와)”라는 것입입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삼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바로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즉 “야훼”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름 세가지가 첫째 “엘로힘”입니다. 하나님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능력의 창조자, 만물의 원천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아도나이입니다. 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인과종의 관계는 사랑과 충성관계를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도 거룩한 하나님의 여호와를 부를 수 없다 하여 나의 주인이란 뜻의 아도나이를 썼습니다. 세째가 2절에 나오는 여호와 또는 야훼입니다. 그 뜻은 “존재하다. 되다.”입니다. 여호와란 하나님의 거룩성. 전지성. 편재성. 전능성을 보여 줍니다. 항상 살아계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출 3:14) 감히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다는 것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고후6:1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우리 하나님은 폭군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억제하고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세상의 헌법에 왜 주어졌겠습니까? 백성들을 행복하게 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를 경영하는데도 오너가 귀를 열리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의사의 처방대로 하지 않으면 치료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 15:26) 앞길에 예비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말입니다(창 22:13∼14). 여호와 닛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 17:15). 여호와 샬롬,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삿 6:24). 여호와 로이,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이십니다(시23:1). 여호와 삼마,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겔 48:35).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직을 16년간이나 맡았던 어느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이었답니다. 아버지가 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5:39)라는 말씀을 강조해 말씀해 주었답니다. 어느 날 하교 길에 친구와 싸움을 하였답니다. 서로 뺨을 후려갈기며 쌈을 하였답니다. 서로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울퉁불퉁 부어오랐답니다. 이때 목사님이신 아버지께서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주님께서 마태복음 5장 39절 말씀에 뭐라 하셨느냐?”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도 돌려 대라고 하셨습니다.”아버지가 “그런데 왜 싸우고 있어?”라고 말하자 “저도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글쎄 이 녀석이 왼편 뺨을 먼저 때리잖아요! 오른편 뺨을 먼저 때리면 참을 수 있었는데…”라고 했답니다. 말씀을 이렇게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짐이 됩니다. 이 장로님이 어른이 되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후 군대에 갔답니다. 고참이 갑자기 뺨을 때리며“ 내 담배 훔쳐간 놈이 너지?”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배를 잡고 웃으며 킥킥거렸답니다. 그 때 고참이 계속 뺨을 때리며 “예수 믿는다더니 너 미쳤구나?”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고참님, 담배 훔쳐간 녀석은 딴 놈인데 제 뺨을 때리시니까 우습죠! 제 뺨이 얼얼한데 고참님 손바닥은 얼마나 아프겠어요?”라고 했답니다. 그 후 고참은 갑자기 감동을 받고 “야! 나도 너처럼 예수 믿고 미쳐보자!”고 교회에 같이 나가게 되었답니다. 말씀을 지키면 나도 행복해 지고 너도 행복해지고 우리가 행복해 집니다. 십계명에 대하여 하나님을 독제자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위해 인간을 혹사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계명이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계명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멍에이고 쇠사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십계명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울타리입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께 우리에게 행복한 가정 생활, 행복한 사회생활, 행복한 교회생활, 행복한 국민생활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면 탈선됩니다. 자유가 아닙니다. 죽음입니다. 새가 공기가 싫다고 공기를 벗어나면 죽음입니다. 물고기가 물이 거치적거린다고 육지로 나오면 자유가 아니라 죽음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1-4계명까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10계명까지가 바른 인간관계로 통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 자유인의 신분을 누리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헌법의 제정 목적은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라는 말씀을 통해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을 바꾸어 주고 그 자유인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십계명을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국민된 삶을 누리도록 주신 것입니다. 황국 시민에서 해방되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삶을 살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은 이제 종이 아닙니다. 죽음의 종이 아닙니다. 죄의 종, 사탄의 종이 아닙니다. 헌법 제정의 기본 원칙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듯이 “모든 말씀으로” 십계명을 주시므로 창조의 원칙을 그대로 사용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조 질서 확립과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주신 말씀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범죄 후 상태가 변화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단절되었습니다. 생명의 단절로 영적 사망(중생)이 왔습니다. 육적 사망이 왔습니다(부활) 영원적 사망이 왔습니다(영화)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영적 사망에서 중생을 시켰습니다. 육적 사망에서 부활시킬 것입니다. 영원적 사망이 영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의 단절로 영적소경, 죄의 지배, 친죄 성향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의와 거룩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고전7:22)”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고 말씀합니다.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사하는 것 하나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결혼식 하는데도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죽음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여성 할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백성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지참금과 혼수가 적다고 며느리를 태워 죽인 시어머니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인도 여자들은 혼인 지참금 때문에 해마다 약 오천 명이 죽어간다고 합니다. 1시간 40분마다 한 명이 혼인 지참금 때문에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통계이고 실제적으로는 이보다 몇 배의 여성이 혼수와 지참금으로 학대받다 급기야는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딸 낳기를 싫어하고 어떤 딸들은 부모의 무거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아예 혼인하기 전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 안에 들어오면 그릇된 틀을 벗어 던지고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실수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보상이 아니라 노력에 있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결과의 노예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자신의 아집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 중에는 고통이 없는 성공이 없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성공 앞에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어린 시절로 끝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남을 판단하는 노예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은 힘든 것이라"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행복의 노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심는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알 때 우리는 게으름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면 진리가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십계명은 인생의 진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하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니체는 주먹의 철학으로 참 자유를 누리려고 했고, 마르크스주의는 밥통의 철학으로, 프로이드는 성기의 심리학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분으로 생각하였고 기독교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속박의 종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동성애도 자유라고 생각하고 간음도 자유라고 생각하고 생명의 선택도 자유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은 결국 자유를 제한하게 됩니다. 죄의 늪에 갇히면 결코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성적 자유를 누린다고 15세 소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의 풍요로운 자유는 결국 제한되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누리는 자유는 죄도 죽음도 올무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하여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인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1.1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