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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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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 박사가 지은 책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세계사는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거대한 괴물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모든 브랜드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상품은 살아남지만 욕망을 거역하는 상품은 시장에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서양근대화의 힘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이라는 멈추지 않는 열차에 있었다고 합니다. 라이트형제가 인류 최초로 발동기가 달린 비행기로 비행(59초 동안에 243.84미터)에 성공한 것이 1903년의 일인데 아폴로 11호가 우주공간을 38만 킬로미터 이상 이동해 달에 착륙한 것이 1969년입니다. 인간이 하늘을 처음 날기 시작해 달에 발을 내딛기까지 불과 66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 그칠 줄 모르는 '좀 더, 좀 더'라는 압력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토 확장을 위한 제국주의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는 무력으로 제국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돈으로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국의 야망이 가장 심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은 경제 분야라는 것입니다.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된 시장 개방을 거세게 몰아치며 '나의 먹이가 돼라', '내가 너를 먹게 해달라'라고 소리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무력이 아닌 돈의 힘,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제국 침략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Monsters라고 합니다. 괴물입니다. 세계사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사회주의와 파시즘은 100년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고 현대세계는 자본주의에 지배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빈부의 격차',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자본이 자본을 만들어내는 자본의 자기 증식이라는 기현상’과 같은 많은 모순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녹슨 기관차' 같지만 멈추지 않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욕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인간의 본성과 맞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연 발생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과의 투쟁은 인공적인 것이 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세계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입니다. 합리주의와 과학이 발달 된 지금에도 여전히 종교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력을 떨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힘은 때로는 세계의 역사를 바꿔버릴 만큼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그는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는 일신교 3형제의 집안다툼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는 세계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인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거대한 괴물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존 칼빈은 “우리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같아서 계속해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우상공장(Factory of idols)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5)”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탐심이 지배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속의 욕망이 욕심으로, 마음속의 지루함을 못견지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망이 모더니즘으로, 마음속에 있는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제국주의로, 마음속의 소유욕이 자본주의 몬스터로, 마음 속의 영적 욕구가 종교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문명의 산물은 마음의 결과이고 역사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욕구가 싸우는 장터입니다. 사람은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살면서 남보다 잘 살고, 건강하고, 성공하고, 행복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전쟁터에서 자신의 힘이 부족하면 자신을 보다 잘 살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성공하게 만들어 줄 대상을 찾습니다. 그것이 역사 속에 나타나는 각종 우상들입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 되지 전에는 자신보다 초능력을 가진 대상이 자신의 생사화복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여 그것들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겼습니다. 곰을 섬기기도 했고, 태양을, 달을, 산신령을, 바다신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된 지금은 재물을, 권력을, 명예를, 건강을 우상처럼 섬깁니다. 그것들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진 안지만 마음속으로 그것들이 인생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고 끊임없이 그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생사화복의 주관자,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의 헌법, 십계명을 주시면서 진정 대대손손 복받는 길이 어디에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인생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헌법, 십계명을 주시면서 열 계명 가운데 이렇게 약속을 해 주는 계명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고 하나는 인간과 관계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것은 바로 두 번째 계명이고 사람과 관계된 것은 다섯 번째 계명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12절 보세요.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평생 살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천대까지라는 말이 오늘 본문을 포함해서 4회 나옵니다. 그 구절들을 보면 은혜, 인애,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5장 10에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 5:10)"
신명기 7장 9절에서는 인애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 7:9)"
출34장 7절에서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1대가 30년이면 천대면 3만년입니다. 이것을 수사적인 표현도 되겠지만 영원히 하나님이 은혜와 인애와 인자를 베풀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자손들에게 대대로 은혜와 인애와 인자를 받는 비결을 오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대대손손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은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우상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새로운 나라를 보장해 주시는 통치자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상이나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 번이나 만들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까?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은 무엇이고 형상은 무엇입니까? 우상이나 형상이 비슷한 말이나 '우상'(페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실재적인 것을 형상화시켜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을 말합니다. 형상(테무나)은 '자연물'과 같이 형체를 지니는 것을 형상화시켜 경배 대상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즉 우상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에 출발점을 둔 것이고 형상은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하늘(우주공간)위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새들로부터 해와 달, 별들까지 우주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땅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동물이나 인간, 식물 모든 것을 말합니다. 바다에 있는 물고기와 같은 것을 숭배의 대상으로 조형물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우상이 복을 주고 그들 나라를 지켜주고 건강하게 해 준다고 믿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왕들의 형상을 만들어 신처럼 숭배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이 비를 주고, 병을 고쳐 주고, 풍요를 주고, 재앙을 주고, 다산을 주고, 복을 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수양의 머리를 가진 남자, 태양 광선을 가지고 있는 태양 원반, 고양이의 머리를 가진 여자, 머리에 거위를 가진 남자, 올챙이 배를 가진 남자, 매의 머리를 가진 남자, 깃털을 달고 있는 여자 등 갖가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들이 자신들에게 복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앞으로 들어가 살 가나안에는 바알신상, 아세라 신상, 황소 신상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이 너희에게 부와 건강과 성공을 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시각과 시켜 어떤 형상이나 우상으로 만들어 인간의 만든 신으로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예술 행위를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각과를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이나 기타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물의 형상을 조각하고 만드는 것까지 금지시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종교적인 경배나 구복(求福) 등의 목적으로는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인간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可視的)인 형상들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상 제조뿐 아니라 신상 숭배를 금하는 것입니다. '절하다'에 해당하는 '솨하'는 '엎드리다', '몸을 굽히다', '존경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제 군주제에 있어서 절하고 섬기다는 의미는 복종하며 그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보장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에 대한 행위적인 경배뿐만 아니라, 마음으로의 존경을 금한다는 말입니다. 우상화는 숭배와 모방이라는 두 가지의 주요한 구성요소에 기반합니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헌법을 받기 전에 이들은 애굽에 살 때 바로가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바로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살게 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처럼 되었으면하는 모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방이나 숭대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때 천황을 신격화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역대 천황들이 신이 되어 일본 민족을 지켜준다고 하여 신사에서 모셔놓고 우리 민족을 황국 신민을 만들기 위해 그들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천황이 나라를 지켜주고 복을 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북한에서 시행되고 있는 김일성 우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일성이 잘 살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닙니다. 그 배지에 손가락질이라도 했다간 난리가 납니다. 배지도 "휘장"이라 부릅니다. 김일성 동상은 무려36m나 됩니다. 평양의 "주체탑"은 무려 1백70m나 됩니다. `김일성 영수는 조선의 하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수천년 세월 무지와 몽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조선 인민들은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아줄 구원자는 하느님 밖에 없다고 믿어 숭배하고 빌었으나 하나님은 독립을 가져다주지 못했으며 도탄에 빠진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줄 영도자를 목타게 기다린 겨레 앞에 나타난 이가 바로 김일성장군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야말로 하나님의 현신인 유일한 구세주라는 얘기입니다. 김일성 교시를 성경처럼 달달 외우게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사진 앞에서 묵상 기도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곳곳에 김일성 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잘먹고 살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교회 내에서도 우상을 섬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카톨릭 일부에서는 마리아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하고 비는 것을 봅니다. 브라질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38m 높이의 거대 예수상이 있습니다. 칠레에는 22m나 되는 마리아 상이 있습니다. 마리아를 경배하는 칠레사람들은 “성모님은 태평양과 이 세상 모든 재앙으로부터 칠레를 보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예술품으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예수상, 마리아상이 섬김의 대상이 되면 안됩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내 십자가 앞에 나와 절하고 기도하면 그것 역시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셋째는 피조물을 우상과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섬기다'에 해당하는 '타아브딤'은 '종(노예)이 되게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헌법을 주시면서 과거 애굽의 정치적 노예에서 해방되었는데 다시 하나님 외에 보이는 우상과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의 노예로 전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뜻인 '로'를 사용하여 우상숭배를 강력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자유인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자식이 개 한 마리를 만들어 놓고 아침마다 빌고 절하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컴퓨터 노예가 되고 술 중독이 되어 술의 노예가 되고, 마약 중독이 되어 마약의 노예가 되어 산다면 부모의 마음이 좋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죽음과 죄로부터 참 자유인을 만들어 주었는데 다시 우상과 형상의 종이 된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우상을 만들고 절하고 섬기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5절을 다시 보십시오. 형벌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죄를 묵인하지 않고 갚아준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워한다”는 말은 “증오한다. 싫어한다. 적으로 삼다.”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역은 백성으로 극형에 처하는 가장 중한 범죄입니다. 고대는 대부분 반역죄를 저지르면 멸문지화를 시켰습니다. 현대 형법학에서도 자신이 귀속된 국가에 대적하는 경우, 자신의 국가를 모독하는 경우 국헌을 문란케 하는 경우 중형으로 다스립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사는 한 가계를 말합니다. 이런 형벌을 보면 연좌(緣坐) 처벌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현대 법정신에 어긋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대적 잔재 내지는 하나님의 잔혹성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바 '삼, 사대까지 이른다'는 말은 처벌의 차원이 아니라(겔 18:1-4, 20), 자식들에게 미치는 부모들의 죄의 영향력이 심각함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의 알콜 중독이나 약물 복용, 그리고 잘못된 성생활 때문에 2세가 기형아로 태어나거나, 그밖의 질환으로 고통당하는 성병(性病) 등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이상하게 들립니다. “하나님도 헬라나 로마의 각종 신들처럼 시기하시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왕실의 여인들처럼 시기하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을 보다 더 사랑하거나, 혹은 그에게 헌신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심을 강조한 신인 동형동성론적 표현입니다(신 6:15) 하나님이 질투하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34:14;신 4:24).
남편과 아내처럼 마땅한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무이한 주인이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그 어떤 것도 금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대로 놓아둡니다. 사랑하니 계속 바람 피우며 미실이처럼 살아라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라는 말을 표현할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상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진정행복해지고 자손만대까지 복받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대대 손손이 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새로운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복받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사랑 '아하브'는 특히 남녀간의 애정과 육체적인 사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이성간의 사랑은 제3자의 개입을 불허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는데, 여기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우상 숭배와 같은 제3의 요소가 결코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평생 변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대상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앞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13:21, 23:23,28).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신9:3, 31:3)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행할 길을 지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33).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인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습니까?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놓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였습니다. 저 한 사람을 위해 성도님 한 사람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사랑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면 가정은 행복해집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신문 먼저 보지 말고 “주님만 사랑합니다.”를 찬양을 해 보십시오. “주님만 사랑합니다. 주님만 사랑합니다. 예수님만 예수님만 언제나 사랑합니다.” 다윗은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 18:1-2)"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가난한 목사의 아들 존 웨슬레를 보십시오. 아이들에게 가난뱅이 놈이라고 놀림을 받았습니다. "가난뱅이 비렁뱅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19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빚이져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수잔나는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앙으로 그 아이들을 길렀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두 개의 숟가락과 하나의 찻 주전자, 그리고 낡아빠진 코트 한 벌 밖에 없는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감리교가 그를 통해 만들어 졌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합니다. 그의 가족은 5대의 걸쳐 목회자가 나온 가족이었고 요한 웨슬레 이후에도 참으로 좋은 인물들을 배출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무디를 보십시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입니다. 가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 인원 5천만명에게 복음 전하고 1백만 명의 영혼을 주님께 인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정신적인 혁명, 영적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남편이 41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의 어머니는 9명의 자녀를 청교도 신앙으로 길렀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남편의 빚보증으로 모든 것 다 빼앗겼습니다. 심지어는 땔감마저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무디가 16살이 되자 사춘기적 방황과 갈등을 합니다. 더 이상 공부 할 수 없자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희망도 의욕도 없이 교회에 나가지만 늘 같은 목사의 설교만 반복해서 듣는 것 지루해 합니다. "어휴 이젠 좀 그치시지 무슨 할 말이 저리도 많으실까" 이래라 저래하는 것을 숨 막히게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무서워 교회에 나가기는 하지만 교회에 가서 잠을 잡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무디의 어머니는 끝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큰 인물이 되었을 때 나중에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위해 기도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나아가면 결국 형통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삼상 2:3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이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경멸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엘리 가정이 불행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 보다 아들들을 더 중이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니까 더 잘 될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사랑했던 아들 때문에 오히려 그 아들들이 복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진정행복해지고 자손만대까지 복받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3. 우리가 대대 손손 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6절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은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규범체계와 도적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규범체계나 도덕질서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국가나 가정 사회가 안정되고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나라에 평안을 주고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상이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진정 대대로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순종을 낳는 것이고 배신은 거절을 낳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 2: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하면 말씀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니 이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애굽 왕의 통지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통치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통치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바르게 하고 교훈해주고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하게 해 주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세상에 얼마나 많은 성공의 비결, 부자되는 비결, 행복해 지는 비결, 건강의 비결이 나와 있습니까? 물론 그런 지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대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 구원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는 전직 육군 군의관이었으나 난폭한데다 알콜중독자였습니니다. 툴라라는 지방에 작은 농토를 구입했지만 농노들과 심히 다투다 도스토예프스키가 16살 때 그가 보는 앞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 무서운 충격으로 인해 간질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28살 때 반역죄로 사형수가 되었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시베리아 열차에서 장교 부인들이 사형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음료수를 나누어주었답니다. 한 장교의 아내가 더운 차를 내밀었을 때 그는 눈앞에 다가온 죽음의 공포 때문에 그것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교의 아내는 가슴속에서 작은 책 한 권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는데 이 책은 작은 신약성경이었다고 합니다. 움츠크 감옥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신약성경을 읽었고 소망의 빛을 맛본 그는 형 미하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형, 난 다시 태어나 최고에 이를 겁니다." 그는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누가 내게 ‘그리스도는 진리가 아니다’라고 증명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다.나는 진리보다도 차라리 예수와 함께 있고 싶다”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소망의 신앙이 생겼습니다. 그는 총살 2분 전에 황제의 사면령이 내려져 기적적으로 살아나 위대한 기독교 작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제 2의 인생이 탄생됩니다.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을 맛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위로를 누리게 됩니다. 부모는 그를 어떻게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렘15:16에서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George Muller)는 16살 되던 해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술과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뮐러가 20살 되던 해 성경 속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놀랍게도 그의 삶에는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전 재산 13만 5천 달러의 돈을 모두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쌍한 고아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한평생을 고아를 위해서 헌신하였고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부모도 못하는 일을 말씀은 합니다. 대대로 복을 받는 삶을 살게 합니다. 성경에 있는 3만 1,173개의 구절 가운데 한 말씀만 붙들어도 우리의 인생은 바뀌어집니다. 일명 큰 바위얼굴로도 알려진 유명한 미국 블랙힐의 러시모어산 화감암 벽에는 미국인으로부터 존경받는 네명의 대통령 흉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워싱턴, 제퍼슨,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의 대통령입니다. 이들은 다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말씀의 사람이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성경이 아니면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은 성경을 반석으로 삼아 서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라고 말하며 전쟁터에서도 애독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어떤 방면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그가 자신의 생을 참되게 가꾸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성경을 묵상하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1.22
다섯 번째는 세계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입니다. 합리주의와 과학이 발달 된 지금에도 여전히 종교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력을 떨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힘은 때로는 세계의 역사를 바꿔버릴 만큼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그는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는 일신교 3형제의 집안다툼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는 세계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인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거대한 괴물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존 칼빈은 “우리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같아서 계속해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우상공장(Factory of idols)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5)”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탐심이 지배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속의 욕망이 욕심으로, 마음속의 지루함을 못견지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망이 모더니즘으로, 마음속에 있는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제국주의로, 마음속의 소유욕이 자본주의 몬스터로, 마음 속의 영적 욕구가 종교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문명의 산물은 마음의 결과이고 역사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욕구가 싸우는 장터입니다. 사람은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살면서 남보다 잘 살고, 건강하고, 성공하고, 행복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전쟁터에서 자신의 힘이 부족하면 자신을 보다 잘 살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성공하게 만들어 줄 대상을 찾습니다. 그것이 역사 속에 나타나는 각종 우상들입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 되지 전에는 자신보다 초능력을 가진 대상이 자신의 생사화복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여 그것들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겼습니다. 곰을 섬기기도 했고, 태양을, 달을, 산신령을, 바다신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된 지금은 재물을, 권력을, 명예를, 건강을 우상처럼 섬깁니다. 그것들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진 안지만 마음속으로 그것들이 인생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고 끊임없이 그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생사화복의 주관자,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의 헌법, 십계명을 주시면서 진정 대대손손 복받는 길이 어디에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인생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헌법, 십계명을 주시면서 열 계명 가운데 이렇게 약속을 해 주는 계명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고 하나는 인간과 관계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것은 바로 두 번째 계명이고 사람과 관계된 것은 다섯 번째 계명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12절 보세요.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평생 살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천대까지라는 말이 오늘 본문을 포함해서 4회 나옵니다. 그 구절들을 보면 은혜, 인애,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5장 10에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 5:10)"
신명기 7장 9절에서는 인애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 7:9)"
출34장 7절에서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1대가 30년이면 천대면 3만년입니다. 이것을 수사적인 표현도 되겠지만 영원히 하나님이 은혜와 인애와 인자를 베풀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자손들에게 대대로 은혜와 인애와 인자를 받는 비결을 오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대대손손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은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우상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새로운 나라를 보장해 주시는 통치자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상이나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 번이나 만들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까?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은 무엇이고 형상은 무엇입니까? 우상이나 형상이 비슷한 말이나 '우상'(페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실재적인 것을 형상화시켜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을 말합니다. 형상(테무나)은 '자연물'과 같이 형체를 지니는 것을 형상화시켜 경배 대상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즉 우상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에 출발점을 둔 것이고 형상은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하늘(우주공간)위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새들로부터 해와 달, 별들까지 우주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땅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동물이나 인간, 식물 모든 것을 말합니다. 바다에 있는 물고기와 같은 것을 숭배의 대상으로 조형물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우상이 복을 주고 그들 나라를 지켜주고 건강하게 해 준다고 믿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왕들의 형상을 만들어 신처럼 숭배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이 비를 주고, 병을 고쳐 주고, 풍요를 주고, 재앙을 주고, 다산을 주고, 복을 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수양의 머리를 가진 남자, 태양 광선을 가지고 있는 태양 원반, 고양이의 머리를 가진 여자, 머리에 거위를 가진 남자, 올챙이 배를 가진 남자, 매의 머리를 가진 남자, 깃털을 달고 있는 여자 등 갖가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들이 자신들에게 복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앞으로 들어가 살 가나안에는 바알신상, 아세라 신상, 황소 신상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이 너희에게 부와 건강과 성공을 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시각과 시켜 어떤 형상이나 우상으로 만들어 인간의 만든 신으로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예술 행위를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각과를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이나 기타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물의 형상을 조각하고 만드는 것까지 금지시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종교적인 경배나 구복(求福) 등의 목적으로는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인간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可視的)인 형상들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상 제조뿐 아니라 신상 숭배를 금하는 것입니다. '절하다'에 해당하는 '솨하'는 '엎드리다', '몸을 굽히다', '존경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제 군주제에 있어서 절하고 섬기다는 의미는 복종하며 그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보장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에 대한 행위적인 경배뿐만 아니라, 마음으로의 존경을 금한다는 말입니다. 우상화는 숭배와 모방이라는 두 가지의 주요한 구성요소에 기반합니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헌법을 받기 전에 이들은 애굽에 살 때 바로가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바로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살게 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처럼 되었으면하는 모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방이나 숭대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때 천황을 신격화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역대 천황들이 신이 되어 일본 민족을 지켜준다고 하여 신사에서 모셔놓고 우리 민족을 황국 신민을 만들기 위해 그들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천황이 나라를 지켜주고 복을 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북한에서 시행되고 있는 김일성 우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일성이 잘 살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닙니다. 그 배지에 손가락질이라도 했다간 난리가 납니다. 배지도 "휘장"이라 부릅니다. 김일성 동상은 무려36m나 됩니다. 평양의 "주체탑"은 무려 1백70m나 됩니다. `김일성 영수는 조선의 하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수천년 세월 무지와 몽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조선 인민들은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아줄 구원자는 하느님 밖에 없다고 믿어 숭배하고 빌었으나 하나님은 독립을 가져다주지 못했으며 도탄에 빠진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줄 영도자를 목타게 기다린 겨레 앞에 나타난 이가 바로 김일성장군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야말로 하나님의 현신인 유일한 구세주라는 얘기입니다. 김일성 교시를 성경처럼 달달 외우게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사진 앞에서 묵상 기도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곳곳에 김일성 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잘먹고 살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교회 내에서도 우상을 섬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카톨릭 일부에서는 마리아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하고 비는 것을 봅니다. 브라질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38m 높이의 거대 예수상이 있습니다. 칠레에는 22m나 되는 마리아 상이 있습니다. 마리아를 경배하는 칠레사람들은 “성모님은 태평양과 이 세상 모든 재앙으로부터 칠레를 보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예술품으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예수상, 마리아상이 섬김의 대상이 되면 안됩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내 십자가 앞에 나와 절하고 기도하면 그것 역시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셋째는 피조물을 우상과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섬기다'에 해당하는 '타아브딤'은 '종(노예)이 되게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헌법을 주시면서 과거 애굽의 정치적 노예에서 해방되었는데 다시 하나님 외에 보이는 우상과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의 노예로 전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뜻인 '로'를 사용하여 우상숭배를 강력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자유인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자식이 개 한 마리를 만들어 놓고 아침마다 빌고 절하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컴퓨터 노예가 되고 술 중독이 되어 술의 노예가 되고, 마약 중독이 되어 마약의 노예가 되어 산다면 부모의 마음이 좋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죽음과 죄로부터 참 자유인을 만들어 주었는데 다시 우상과 형상의 종이 된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우상을 만들고 절하고 섬기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5절을 다시 보십시오. 형벌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죄를 묵인하지 않고 갚아준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워한다”는 말은 “증오한다. 싫어한다. 적으로 삼다.”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역은 백성으로 극형에 처하는 가장 중한 범죄입니다. 고대는 대부분 반역죄를 저지르면 멸문지화를 시켰습니다. 현대 형법학에서도 자신이 귀속된 국가에 대적하는 경우, 자신의 국가를 모독하는 경우 국헌을 문란케 하는 경우 중형으로 다스립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사는 한 가계를 말합니다. 이런 형벌을 보면 연좌(緣坐) 처벌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현대 법정신에 어긋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대적 잔재 내지는 하나님의 잔혹성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바 '삼, 사대까지 이른다'는 말은 처벌의 차원이 아니라(겔 18:1-4, 20), 자식들에게 미치는 부모들의 죄의 영향력이 심각함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의 알콜 중독이나 약물 복용, 그리고 잘못된 성생활 때문에 2세가 기형아로 태어나거나, 그밖의 질환으로 고통당하는 성병(性病) 등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이상하게 들립니다. “하나님도 헬라나 로마의 각종 신들처럼 시기하시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왕실의 여인들처럼 시기하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을 보다 더 사랑하거나, 혹은 그에게 헌신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심을 강조한 신인 동형동성론적 표현입니다(신 6:15) 하나님이 질투하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34:14;신 4:24).
남편과 아내처럼 마땅한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무이한 주인이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그 어떤 것도 금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대로 놓아둡니다. 사랑하니 계속 바람 피우며 미실이처럼 살아라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라는 말을 표현할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상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진정행복해지고 자손만대까지 복받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대대 손손이 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새로운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복받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사랑 '아하브'는 특히 남녀간의 애정과 육체적인 사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이성간의 사랑은 제3자의 개입을 불허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는데, 여기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우상 숭배와 같은 제3의 요소가 결코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평생 변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대상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앞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13:21, 23:23,28).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신9:3, 31:3)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행할 길을 지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33).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인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습니까?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놓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였습니다. 저 한 사람을 위해 성도님 한 사람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사랑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면 가정은 행복해집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신문 먼저 보지 말고 “주님만 사랑합니다.”를 찬양을 해 보십시오. “주님만 사랑합니다. 주님만 사랑합니다. 예수님만 예수님만 언제나 사랑합니다.” 다윗은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 18:1-2)"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가난한 목사의 아들 존 웨슬레를 보십시오. 아이들에게 가난뱅이 놈이라고 놀림을 받았습니다. "가난뱅이 비렁뱅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19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빚이져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수잔나는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앙으로 그 아이들을 길렀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두 개의 숟가락과 하나의 찻 주전자, 그리고 낡아빠진 코트 한 벌 밖에 없는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감리교가 그를 통해 만들어 졌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합니다. 그의 가족은 5대의 걸쳐 목회자가 나온 가족이었고 요한 웨슬레 이후에도 참으로 좋은 인물들을 배출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무디를 보십시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입니다. 가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 인원 5천만명에게 복음 전하고 1백만 명의 영혼을 주님께 인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정신적인 혁명, 영적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남편이 41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의 어머니는 9명의 자녀를 청교도 신앙으로 길렀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남편의 빚보증으로 모든 것 다 빼앗겼습니다. 심지어는 땔감마저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무디가 16살이 되자 사춘기적 방황과 갈등을 합니다. 더 이상 공부 할 수 없자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희망도 의욕도 없이 교회에 나가지만 늘 같은 목사의 설교만 반복해서 듣는 것 지루해 합니다. "어휴 이젠 좀 그치시지 무슨 할 말이 저리도 많으실까" 이래라 저래하는 것을 숨 막히게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무서워 교회에 나가기는 하지만 교회에 가서 잠을 잡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무디의 어머니는 끝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큰 인물이 되었을 때 나중에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위해 기도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나아가면 결국 형통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삼상 2:3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이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경멸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엘리 가정이 불행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 보다 아들들을 더 중이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니까 더 잘 될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사랑했던 아들 때문에 오히려 그 아들들이 복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진정행복해지고 자손만대까지 복받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3. 우리가 대대 손손 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6절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은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규범체계와 도적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규범체계나 도덕질서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국가나 가정 사회가 안정되고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나라에 평안을 주고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상이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진정 대대로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순종을 낳는 것이고 배신은 거절을 낳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 2: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하면 말씀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니 이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애굽 왕의 통지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통치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통치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바르게 하고 교훈해주고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하게 해 주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세상에 얼마나 많은 성공의 비결, 부자되는 비결, 행복해 지는 비결, 건강의 비결이 나와 있습니까? 물론 그런 지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대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 구원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는 전직 육군 군의관이었으나 난폭한데다 알콜중독자였습니니다. 툴라라는 지방에 작은 농토를 구입했지만 농노들과 심히 다투다 도스토예프스키가 16살 때 그가 보는 앞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 무서운 충격으로 인해 간질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28살 때 반역죄로 사형수가 되었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시베리아 열차에서 장교 부인들이 사형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음료수를 나누어주었답니다. 한 장교의 아내가 더운 차를 내밀었을 때 그는 눈앞에 다가온 죽음의 공포 때문에 그것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교의 아내는 가슴속에서 작은 책 한 권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는데 이 책은 작은 신약성경이었다고 합니다. 움츠크 감옥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신약성경을 읽었고 소망의 빛을 맛본 그는 형 미하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형, 난 다시 태어나 최고에 이를 겁니다." 그는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누가 내게 ‘그리스도는 진리가 아니다’라고 증명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다.나는 진리보다도 차라리 예수와 함께 있고 싶다”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소망의 신앙이 생겼습니다. 그는 총살 2분 전에 황제의 사면령이 내려져 기적적으로 살아나 위대한 기독교 작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제 2의 인생이 탄생됩니다.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을 맛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위로를 누리게 됩니다. 부모는 그를 어떻게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렘15:16에서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George Muller)는 16살 되던 해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술과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뮐러가 20살 되던 해 성경 속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놀랍게도 그의 삶에는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전 재산 13만 5천 달러의 돈을 모두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쌍한 고아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한평생을 고아를 위해서 헌신하였고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부모도 못하는 일을 말씀은 합니다. 대대로 복을 받는 삶을 살게 합니다. 성경에 있는 3만 1,173개의 구절 가운데 한 말씀만 붙들어도 우리의 인생은 바뀌어집니다. 일명 큰 바위얼굴로도 알려진 유명한 미국 블랙힐의 러시모어산 화감암 벽에는 미국인으로부터 존경받는 네명의 대통령 흉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워싱턴, 제퍼슨,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의 대통령입니다. 이들은 다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말씀의 사람이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성경이 아니면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은 성경을 반석으로 삼아 서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라고 말하며 전쟁터에서도 애독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어떤 방면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그가 자신의 생을 참되게 가꾸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성경을 묵상하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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