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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루길 원한다면

마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4747 추천 수 0 2011.05.20 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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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5:21-28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저는 개척한 후 연초가 되면 교인들의 1년 소원을 담은 기도 제목을 받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교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 참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난 주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우리 집사님의 딸이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지만 꿈을 가지고 미국에 갔는데 학비가 만만치 않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자매가 소원을 이룬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집사님께서 집을 사고 이사하여 참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사업을 하시다 부도가 나 참 어려웠습니다. 저희 교회 등록하실 때 지하 물이 차는 곳에서 사셨습니다. 그런데 집을 사는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2010년 세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 열린 교회 성도님들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소원이 성취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소원을 이루기 위한 많은 지혜서들이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잠재의식을 활용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죠셉 머피(Joseph Murphy, 1898~1981)박사에 의해 고안된 머피의 이론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머피 이론은 인간의 잠재의식은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재의식의 힘을 발휘하면 무엇이든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富)도 명예도, 건강도, 성공도 생각대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생생하게 꿈을 꾸라는 것입니다. “목표를 적어라! 시각화하라! 자기확신을 가져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의식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힘”의 저자 사카모토 마사미키는 모든 소원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며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4가지 요소 즉 “생각의 힘(열정·열의), 노력, 초의식(超意識)의 도움, 창조적인 에너지(생명 에너지)의 활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오늘 예수님을 통해 소원을 성취한 가나안 여인을 통해 우리가 올 한 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교훈받기 원합니다.

1. 우리가 소원을 이루기 원한다면 선명한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소원을 이루는데 예수님께 문제를 가져 오지 않고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소원을 이루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부자되는 소원, 건강해 지는 소원, 유명해지는 소원, 대학에 합격하는 소원, 취업하는 소원,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소원 등 수많은 소원들이 예수님과는 상관없이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도 그랬을 것입니다. 딸을 고치기 위한 소원을 가지고 백방 노력했을 것입니다. 유명한 의사로 찾아갔을 것이고, 당시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랍비도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한 6개월 전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께서 자기 동네 두로와 시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님 공생애 기간에 처음으로 들린 곳입니다.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녀는 이방인입니다. 귀신들린 딸을 둔 사람입니다. 여자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기에는 아주 불리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체면 불구하고 주님께 나아가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처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분명하고 선명하게 요구합니다. 막연한 소원이 아닙니다. 되도 되고 안되도 되는 소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꼭 이루어야만 하는 소원입니다. 절박한 소원입니다. 귀신들려 고통받는 딸을 둔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잠을 자도 자는 것같지 않고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정에 행복이 없을 것입니다. 온 가족이 그 사실 하나고 고통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가족의 문제입니다.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결혼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아이를 혼자 놓아 둘 수 있겠습니까? 많은 재산도 허비했을 것이고 산다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새 해가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해결되지 않았어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노력해 보았지만 결국 재산만 없어지고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 그 소원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님께 소원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는 소원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소원입니다. 내가 건강해 지고, 내가 부자가 되고, 내가 출세하고, 내가 이루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명을 이루는 소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이루는 소원입니다.
어떤 소원이든 우리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면 우리 주님이 허락하시면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가정을 통해 이루어야 할 사명, 기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사명, 교회를 통해 이루어야 할 선명하고 분명한 사명의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우리 속에 시작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뜻을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학자들이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들의 약 80%는 직업을 갖는다는 것과 일을 한다는 것 이상의 목표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상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베. 파이어스턴은 그와 같은 인간을 [연자방앗간의 말]이라고 했습니다. 말은 열심히 일하고 일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 곳에도 갈수가 없습니다. 빙글빙글 돌 뿐입니다. 이기적인 소원을 넘어 내 소원이 이루어짐으로 다를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꿈,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할수록 인생은 매혹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소원, 모세의 소원, 요셉의 소원, 에스더의 소원, 바울의 소원이 바로 그런 소원이었습니다.
1963년에 마틴 루터 킹은 노예의 아들들이 노예 주인의 아들들과 형제처럼 살게 되는 꿈, 백인 어린이가 흑인 어린이와 형제와 자매처럼 손을 잡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불가능할 것같은 그의 꿈의 실현되고 있습니다. 2007년, 흑인의 자손들이 미국의 최고위 임명직인 국무장관에까지 올랐습니다. 콜린 파월, 콘돌리자 라이스 모두 흑인이었습니다. 오바마는 이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꿈은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신문에 '비밀 산타'의 존재가 알려져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수십 년간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산타가 나타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현금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가난한 이들에게 100달러, 200달러, 500달러짜리 지폐를 전하고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무려 26년만에 베일이 버겨졌습니다. 58세의 장거리전화회사 사장인 래리 스튜어트였습니다. 1971년 겨울, 노숙자 신세였던 그는 이틀 동안 굶어 허기를 참을 수 없자 무작정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시켜먹었답니다. 그리고 지갑을 잃어버린 척했다고 합니다. 그때 식당 주인이 자리로 와서는 바닥에서 20달러를 주운 척하며 "이 사람아, 자네가 돈을 떨어뜨린 것 같네"라며 돈을 주었답니다. 그는 그 돈으로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하나님께 맹세하며 소원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돈을 벌어 남을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되면 반드시 돕겠습니다.' 그리고 1979년, 크리스마스 2주 전의 어느 날, 그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초라한 차림의 여종업원을 보고 거스름돈 20달러를 팁으로 건넸답니다. 여종업원은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는 곧바로 은행에 가서 200달러를 잔돈으로 인출해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5달러와 10달러짜리 지폐를 나누어주며 '비밀 산타'의 첫 해를 보냈답니다. 이후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나누어주었고 그러는 동안 그의 경제사정은 점점 좋아져 사장이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의 산타 활동은 전국으로 범위를 넓혔으며 선물도 100달러짜리로 커지게 되었고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던 식당 주인을 수소문해 천 달러가 든 선물봉투로 보답했다고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꿈을 이룬 사람은 성공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은 될 수 없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소원을 가진 사람은 큰 부자도 될 수 있고, 큰 성공도 할 수 있지만, 사람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룰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아름 다운 세상에 대한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 나아가 소원을 이루는데 다가오는 모든 장애물을 징검다리고 만드는 열정이 있어야 우리는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 소원을 이루는데는 세 가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침묵입니다. 둘째가 제자들의 방해입니다. 셋째가 예수님의 거절입니다.
첫째 침묵 앞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금방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23절을 보십시오.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외면해 버린 것입니다. 소외된 것입니다.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제게 인사했는데 제가 얼굴을 돌리고 외면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기도했습니다. 응답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포기하는 순간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때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은 자신의 문제를 확실하게 풀어 주실 분이라고 확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든 끝까지 매달립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22절에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메시야에 대한 독특한 칭호입니다. 25절, 27절을 보십시오.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간다고 바로 소원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기계가 아닙니다.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성취하기 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입니다. 다윗은 17여년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을 통해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보험설계사들 가운데 60%가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고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골든 타임을 기다리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고객을 6개월 만에 세 번 찾아갑니다. 처음 찾아갔을 때 보험에 관심이 없었고, 두 번째 찾아갔을 때 고객은 보험을 들 상황이 아니었고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볼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거기서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골든 타임의 기회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친구 남편이 사고로 한창 공부해야 할 아이 셋과 전업맘으로 살아온 아내를 남겨두고 일찍 죽었습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히도 친구는 남편이 죽기 전에 종신보험에 가입해놓았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본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보험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생각하며 보험에 들기로 결심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가 골든 타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골든 타임이 있습니다. 그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방해를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 징검다리로 삼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제자들이 방해합니다. 인의 장벽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쫓아냅니다.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성가시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은 분노합니다. 힘있는 사람은 폭력적으로 대항을 합니다. 아마 이 여인이 힘이 있었다면 "너희들이 뭐야, 내가 장관 부인인데"하며 밀어 붙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원망합니다. 그러나 폭력으로 원망으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 뒤에서 소리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들은채도 하지 않은 예수님의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방해하는 제자들을 통하여 오히려 예수님께 더 접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방해하던 제자들이 오히려 이 여인이 예수님께 접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께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이방인입니다. 여인입니다. 귀신들린 딸을 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장애물을 딛고 일어선 것입니다. 25절에 보니까 이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절하며 도움을 청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소원을 이루고자하는데 방해되는 요인이 있으면 그것을 거침돌이 아니라 장애물이 아니라 디딤돌로 징검다리고 사용해야 합니다. 이 여인이 궁극적으로 만나고자 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보고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분은 우리 예수님입니다. 신앙 생활해보니 직분자들 그렇고 그렇더라 하면 신앙 생활을 멀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그렇고 그렇더라면서 예수님을 멀리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결국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에 매달리는 것이다. 사람의지 했다가는 다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좋을 때 좋은 것입니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못됩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우리 주님이고 사람은 끝없이 용서해야 할 대상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할 사랑의 대상입니다. 산은 넘으라고 있고 물은 건너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장애물에 치어 쓰러지는 사람이 아니라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거절당할 때 자존심을 극복하고 이루어질 때까지 끈기 있게 메달여야 합니다.
이 여인은 아주 굴욕적인 거절을 당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녀를 위해 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26절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교회에서 내가 요구하는 것 목회자가 조금만 거절해도 기분 나쁜데 이 여인은 아주 굴욕적인 말을 듣습니다. 개취급합니다. 자존심 문제입니다. 지금 딸을 고치는데 자존심 싸움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적 싸움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입니다. 칼 바르트는“자존심이야말로 원죄의 뿌리다”라고 단언했습니다.자존심의 벽을 허물고 여인은 겸손하게 주님께 무릎 끓습니다. 거절당하고 무시당합니다. 주님의 냉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주실 것을 호소하면서 겸손히 엎드렸습니다. 어떤 수모를 당하고 수치를 당한다고 할지라도 딸을 위해서는 그 모든 수모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을 보십시오. 27절을 보십시오. 자존심 상한다고 회사 그만 두고, 자존심 상한다고 포기하지 말시기 바랍니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성자일수록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생각하고 도덕적으로 겸손하게 살며, 적당하게 나쁜 사람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제일 악한 사람은 자신이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내 딸이 죽을 지경인데 자존심이 문제이겠습니까? 아무리 짓밟는다고 해도 매달려야 합니다. 들어 줄 때까지 매달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쳐 주었지만 다 고쳐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은혜이고 자비일 뿐입니다. 안 고쳐주면 어쩔 것입니까?
아무리 자존심이 상하고 아무리 거절하여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됩니까?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해도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사람으로 인해 주님께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습니까? 심각하게 자존심 상하도록 거절당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 없이는 어떤 위대한 일도 결코 성취할 수 없다"고 에머슨은 말했습니다.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첨단기술이나 기계보다 인간 그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열정을 지닌 인간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갈파했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열정을 갖고 일하면 성공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소원을 이루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라는 점입니다. '미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아도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방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더 주님게 가까이 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넘어가면 주님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아무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다하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주님 붙들고 네 소원대로 되라는 말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3. 우리는 주님을 만나 믿음으로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결국 무엇으로 소원을 이루었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큰 믿음으로 소원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도저히 믿음을 가질 만한 여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자 중에서는 로마의 백부장이 유일한데 여성 중에서는 이 여인이 유일하게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올 한 해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큰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첫째가 이 여인은 자신의 한계 상황 때문에 이런 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지역에서 자랐습니다. 헬라인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마가복음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족속이라는 말입니다. 베니게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혈통적 배경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방여인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예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에 대해서 아주 좋지 않는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클레멘트 서한에 의하게 되면 이 여인의 이름은 쥬스타라고 합니다. 이 여인의 딸의 이름은 비어니스라고 합니다. 역사가 죠세프스는 이 여인의 딸이 뵈니게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믿음을 가지는데는 태어나고 자라온 배경이 중요합니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불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천주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회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회교도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믿음을 가질 만한 신앙적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당시 헬라권에 속한 사람은 헬라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보아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와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라고 부릅니다(28).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 사람은 이 여인 밖에 없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부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유일하게 이 여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이 내포되어 있는 존칭어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마15:22)"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예수님이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능통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 것이라고 거짓 비난을 하고 있는데 이 여인은 이런 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2년 넘게 좇아 다녔던 제자들도 아직 주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데 이 여인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인간편에서 보면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 속에서 절박성 때문입니다. 절박한 상황이 오면 믿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상황 앞에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오직 딸의 구원을 위해 민족적 반감이나 개인적 자존심을 모두 팽개치고 예수께 메어 달린 것입니다. 예수님 발 앞에 모든 창피를 무릎 쓰고 겸손하게 엎드렸습니다.
정신 의학자 해리스 박사에 의하면 인간은 세 가지 경우에 천성이 변한다고 합니다. 첫째, 현재 상황이 너무 괴로울 때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둘째는 소망이 안보일 때 인간은 변할 수 있으며, 셋째, 유레카 상황(Eureka Stage)에서 인간은 변할 수 있고 합니다.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큰 깨달음이 있을 때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이런 상황이 다가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통이 믿음을 주기 위한 선물이었습니다. 고난의 현장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었습니다.

둘째 자기 위선의 담을 넘어 자신의 치부를 정직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자신의 딸이 더러운 귀신에 들렸으니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가식적이지 않습니다. 잘 되지 않는데 잘 된다고 그저 얼버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렇게 심각한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가식적이지 않는 정직한 고백을 듣고 싶어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적인 기도를 듣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수치스런 가정사를 드러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딸이 귀신들인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앞으로 결혼도 생각해야 하고 당시 저주받아서 귀신들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은폐하는 사람은 믿음이 성장할 수 없지만 드러내는 사람은 믿음이 날로 날로 성장합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로 인격적 모멸감과 훼손된 자존심을 개의치 않고 겸손하게 주의 은총을 간청해야 합니다.
개처럼 취급당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큰 믿음입니다. 어떻게 우리 주님이 응답해 주시던지 그것은 주님이 옳습니다. 100%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어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손해가 되어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 옳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주인되심, 메시아 되심을 인정합니다. 예수의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뭉개져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유대인의 우선권과 특수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비천한 존재 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요구합니까?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달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마치 상아래서 꼬리를 흔들고 주인의 호의를 기다리는 귀여운 강아지도 부스러기를 먹듯이 자신과 자신의 딸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개'라는 말로 자신을 지칭할 때 받는 인격적 모멸감과 훼손된 자존심을 개의치 않고 주의 은총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렇지 못했습니다. 우월의식과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극복하고 오직 은혜만을 바라는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됩니까?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해도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사람으로 인해 주님께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습니까? 심각하게 자존심 상하도록 거절당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큰 믿음을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소원을 이루어 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이해하는 것, 오직 그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확신과 간절한 기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죄인임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겸손과 순종,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 이것이 곧 큰 믿음을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믿음이 큰 만큼 인생은 커지고 믿음의 크기만큼 마음의 크기도 삶의 폭도 넓어집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믿음은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루게 합니다. 믿음은 신비한 에너지가 있어 믿는대로 되어지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자신감을 주고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히11:6)"고 했습니다. 우리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유고에서 태어나 평생을 인도 캘커타의 가난한 동네에서 보내다가 1997년 세상을 떠난 테레사 수녀는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빈손으로 병원과 보육원 등을 세웠고 그 빈손으로 가난한 자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인도 캘커타에 큰 보육원을 짓겠다고 발표했답니다. 그때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그녀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물었답니다. "보육원 건축을 위한 기금은 얼마나 마련되어 있습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대답했답니다. "지금 준비된 기금은 오직 3실링뿐입니다." 그러면서 테레사 수녀는 기자들이 둘러싼 책상 위에 정말 동전 세 닢을 올려놓았답니다. 그녀의 행동에 기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답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답니다. "여러분의 웃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3실링과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3실링이 하나님의 것이 될 때는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저는 이 돈이 반드시 하나님의 의지대로 쓰일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큰 믿음 앞에 기자들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3실링은 테레사 수녀의 큰 믿음대로 움직였습니다. 3실링은 사랑을 실천하는 귀중한 씨앗이 되어 많은 이들의 따뜻한 손길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테레사 수녀는 기자들에게 약속한대로 보육원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굳은 의지와 가능하리라는 큰 믿음, 이것의 바로 테레사 수녀가 일으킨 많은 기적의 열쇠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믿음은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위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옮겨줍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은 질병을 고칩니다. 믿음은 삶의 질을 바꾸어 줍니다. 믿음을 우리를 구원시켜 줍니다. 믿음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만들어 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 이 불신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큰 믿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테레사 수녀처럼 큰 믿음을 가진 한 여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 여자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한 번 외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이 저와 우리 성도님이 순간순간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듣는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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