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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4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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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호 목사 |
참고 : | 2008년 10월12일 높은뜻숭의교회 주일예배 설교 |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열 번째가 조금 넘는 나라입니다. 불과 50여 년 전 세계에서 제일 가난하고 어려웠던 나라인 것을 생각하면 기적도 이런 기적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십년 전 쯤 중국의 목회자 몇 분을 한국으로 초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양재동에 있는 횃불회관으로 숙소를 정하고 공항에서 모시고 가고 있었는데 전도사님 한 분이 저에게 횃불 회관에 전화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순간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전화가 없는 집이 없다고 대답을 해 드리면서 그때 우리나라가 참으로 많이 발전했구나 하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불과 20년 전에 우리도 전화 있는 집이 부잣집이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발전을 하였던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우리는 그동안 또 기적과 같은 발전을 하였습니다. 저희 집만 해도 초등학교 교사 월급의 1/3 정도의 수입으로 살았던 때가 있었고 선풍기를 한 대를 사고 행복해 하고, 트랜지스터 라디오 한 대를 장만하고 감격하고 전화 한 대 놓고 너무 좋아 잠을 못 이루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발전에 대하여 둔감하고 퇴보와 위기에 대하여 민감한 것 같습니다. 발전하다가도 조금만 위기에 처하면 당장 죽게 된 것처럼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은혜와 감사에 대하여 둔감하고 불평과 원망에 대하여 민감한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기적과 같은 발전과 성장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의 그 기적과 같은 발전과 성장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거의 모르는 것처럼 살아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에서부터 밀어닥치고 있는 금융위기 때문에 전 세계가 요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아주 심하게 요동하고 있습니다.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는 폭락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불안 정도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고통을 격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문제는 그렇게 쉽게 지나갈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제 고난은 시작된 것이고 당분간 이 고난은 계속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거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 위기가 아무리 크고 무섭다고 하여도 이 위기로 말미암아 우리나라가 50년 전으로 되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10년 전으로도 돌아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IMF가 내년도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3.5%로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위기로 본래 예상했던 것 보다 일 점 몇 포인트 정도 내려가기는 했으나 내년도에도 우리나라는 성장할 것이라는 것이 IMF의 판단입니다. 국가 전체로 보았을 때 힘들기는 하겠지만 이것 때문에 죽고 망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마음 단단히 먹고 버텨야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은혜와 축복으로 주셔서 누리고 있는 것들을 좀 깍아 먹으면서라도 버텨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경우가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이번 금융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살아남을 만한 충분한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고 좌충우돌해서는 안됩니다.
정신을 차리면 도리어 지금과 같은 위기가 기회가 될 겁니다. 저는 경제도 모르고 정치도 잘 모릅니다만 이번 위기는 반드시 한번 격어야만 할 위기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너무 거품이 많았습니다. 미국 월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금융기법으로 세계 경제가 본래 실력보다 몇 배나 부풀려져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은 언제나 거품입니다. 하는 짓이 언제나 저 잡아먹을 짓만 합니다. 내버려두면 다 망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위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위기들은 긍정적인 면에서 판단한다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나라와 개인에게 이 말은 아주 위험하고 배부른 소리처럼 들려지실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해당이 되지 않는 소리이지만 소위 요즘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대부분은 필요 이상으로 부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필요 이상의 부요함 때문에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구만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나친 풍요함을 누리고 있는 선진국 자체도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비만입니다. 고도비만입니다. 그 비만 때문에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얼마나 피폐해져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끝도 없는 부를 요구하고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부도 누리지 못하고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저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좀 가난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과 국가들이 누리고 있는 부는 절대로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88년도에 영락교회 협동목사로 부임했었습니다. 그때 영락교회가 저에게 담임목사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갑자기 넉넉해지고 풍족해 지게 되었습니다. 88년 연말에 부임하였는데 크리스마스 때가 되자 교인들이 이런 저런 선물을 집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교인들이 워낙 많다보니 광처럼 쓰는 곳에 과일과 케잌 같은 것들이 싸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걱정을 하였습니다. 너무 모든 것이 풍족하여 아이들이 귀한 것을 모르고 감사를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많다보니 귀한 것들이 흔해지게 되어 귀한 줄을 모르고 귀한 것이 없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아내의 걱정을 생각하다가 매우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풍요로움이 오히려 내 아이들을 가난하게 만드록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난은 귀한 것이 없어서 가난한 것보다 더 질이 나쁜 가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가난의 이름을 ‘악성가난’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들에게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떻게하면 좋겠느냐고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큰 아이가 수학적으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많아서 가난하게 되었다면 그 지나친 것들을 없이하면 다시 부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던 모든 것들을 수십 개의 비닐 팩에 담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내에게 사과 한 알 먹자고 하였더니 없다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어서 가게에 가서 몇 알 사다가 깍아 먹었습니다. 큰 아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우리도 부자다.’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젠 우리 집도 사과가 귀하다.’ 귀한 것이 있게 되었으니 이제 드디어 우리도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나라들의 악성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이번에 이와 같은 금융위기를 허락하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아직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때에 위기를 주십니다. 사탄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때 위기를 주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때에만 위기를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감당 못할 시험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를 조성하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혹시 물 가운데와 불 가운데로 지난다고 하여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쉽게 이해하지 못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당신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왜 우리가 물을 만나고 불을 만나게 하시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을 만나고 불을 만나야만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엄청난 위기를 만났습니다. 물을 만났습니다. 보통 물이 아니라 큰 물 아주 큰 물을 만났습니다. 불을 만났습니다. 보통 불이 아니라 큰 불 아주 큰 불을 만났습니다. 사실 이 물과 불은 우리 때문에 당하게 된 물과 불입니다. 우리의 욕심과 그 욕심 때문에 생겨나 어리석음 때문에 생겨난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우리를 그 물과 불을 통과하지 않게 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물과 불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 물을 통하여 우리의 욕심을 씻어 버리고, 그 불을 통하여 우리의 죄악을 태워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어리석음을 정리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위기는 망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는 망하지 말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번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위기도 망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망하지 말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겁나겠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이 위기 때문에 죽고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그렇게 속이겠지만 여러분 절대로 사탄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죽으라고 위기를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물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시고 불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이유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물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시고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물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실 때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죽지 않도록 언제나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그와 같은 사실을 믿음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유명한 시편 23편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심이니이다.> 아멘.
세상에 다윗처럼 어려운 일을 많이 격었던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절망하거나 자신의 삶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죽음의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시편 27:13 ) 아멘.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믿음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그 우리의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OECD 국가 중 자살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최근에 유명한 배우와 탤런트들이 자살을 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방한 자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자살을 한 두 배우들의 장례식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비쳐졌습니다. 참 당황스럽고 목사인 저를 부끄럽게 하였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이름 앞에 ‘성도’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모두다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석해 주실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살은 불신앙입니다. 자살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얻습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그 착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구원을 얻을만큼 착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살이 치명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살은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흔들리다가 다시 자리를 잡습니다.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자살은 회복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자신의 삶의 끝이 된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정말 죽을 것만 같고 죽고 싶더라도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죽으면 모든 끝난다고 속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참고 버티면 넘어갈 수 있었던 정도의 문제는 자살로 해결될 수 있겠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정말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정말 끝이 없습니다. 세상의 문제는 다 끝이 없을 것 같아 보여도 다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정말 끝이 없습니다.
자살은 끝낼 수 있는 문제를 영원히 끝낼 수 없는 문제로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행동과 결단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우리나라와 같이 미국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게는 아주 힘든 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구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고 이미 그 위기 속에 빠져 들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견뎌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필요하여 격게는 하시겠지만 이 위기로 말미암아 죽고 망하게 하시지는 않으실겁니다.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 말씀을 붙들고 일어섰습니다. 살아 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사야 43장의 말씀을 붙들고 모든 위기를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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