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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경주에서 승리하라

고린도전 복음............... 조회 수 3019 추천 수 0 2011.05.29 13:20:11
.........
성경본문 : 고전9:24-27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인생 경주에서 승리하라

 

본문 : 고린도전서 9장 24~ 27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1945년 중국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43세 된 남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동료 포로들을 효과적으로 섬기고 이끌어 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비도 없고 지원도 없었지만 그는 자체적으로 만든 임시 학교에서 많은 어린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주일학교에서도 가르쳤고 어른들을 위해서는 성경 공부반을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노약자들을 돌보았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그는 청소년 스포츠 행사들을 조직해서 건강을 증진하고 사기를 진작시켰습니다. 그는 운동선수들과 함께 아이들을 돕는 일을 특별히 즐거워했습니다. 자신이 운동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영국과 고향 스코틀랜드에서는 아주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날아다니는 스코틀랜드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경기장에서 이룬 그의 위업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불의 전차>라는 영화에 나오는 에릭 리델입니다. 재능과 훈련을 겸비한 100미터 주자였던 그는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경기가 주일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주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주일에 달리는 것이 안식일 규례를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왕이나 조국이나 올림픽의 영광을 위해서도 타협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견해 때문에 사람들은 에릭 리델을 배신자라고 욕했습니다. <불의 전차>는 리델과 몇몇 다른 영국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델은 어떤 경주에서 부딪혀 넘어졌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학생」지 (1924년 10월 22일호)에서는 그날의 경주에 대해 생생한 설명을 들려줍니다. 잠시 리델은 포기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순식간에 다른 선수들 뒤로 따라붙었습니다. 주자들과 20미터나 벌어졌는데 리델은 계속해서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다가 최후 직선 코스에 들어서서 그는 놀라운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그와 부딪혔던) 질리스 선수 뒤를 10미터 가까이 따라붙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우승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결승점 40미터 앞에서 그는 3위였고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힘을 내어 결승선에 들어왔습니다. 마침내 질리스를 2미터 차로 제치고 우승했습니다. 1924년 올림픽 때도 리델이 동일한 모습을 보여 줬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100미터 경주를 포기한 대신 리델은 400미터 경주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는 400미터를 훈련한 적이 없었지만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우승했을 뿐 아니라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위대한 사명의 사람 리델이 영국에서 받은 환영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하지만 조국 스코틀랜드에서 받은 축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얻은 명성에 대해서 그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조용히 과학과 신학 학위를 마친 뒤 1925년 중국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거의 20년 동안 그는 중국인들과 함께 일하며 가르치고 신앙을 나누고 수많은 방법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한때는 적십자와 함께 일하면서 중국의 먼 변방까지 폭넓게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일본군의 중국 침략 이후 적십자와 함께 일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중국인 한 명이 부상을 당해서 절에 누워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현지인들은 돕기를 주저했습니다. 일본군의 잔인한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리델은 그 사람을 돕기 위해 이틀에 걸려 찾아갔습니다. 마침내 그 사람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일본군에 의해서 목이 베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 베이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리델은 그 사람을 구해 내어 머리 뒤에서부터 입까지 벌어진 틈을 꿰매 주었고 마침내 그는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사명을 다하다 1943년 에릭 리델은 ‘적대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 1,800명과 함께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거기서도 리델은 자신이 섬길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섬겼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특별히 그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주일에 달리기를 거부했던 그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아이들이었습니다. 리델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수용소 내 어른들에게도 사랑받았고 일본군들로부터도 존경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1945년 초에 리델은 큰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델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계속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1945년 2월 21일 종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그는 예기치 않은 뇌종양에 걸려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수용소 담 밖에 있는 작은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에는 에릭 리델이 달리기 선수로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그와 함께 삶을 나눴던 사람들은 그를 리더로 기억합니다. 그는 ‘누구를 어디로 인도하느냐’보다 ‘어떻게 인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힘이 닿는 대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항상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삶으로 본을 보이며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올림픽 경기가 아니라 크리스천의 삶의 경주야말로 리델에게는 가장 중요한 경주였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

 

육상 경기 종목 중에 장애물 경주가 있습니다.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면서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경기입니다. 인생이란 단순한 경주가 아니라 장애물 경주입니다. 아무리 잘 달려도 그 많은 장애물 중 하나에 걸려 넘어지면 경기를 망치게 됩니다. 창세기 39장 7~10절에 보면 요셉의 생애에서 처음으로 겪은 장애물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노예로 팔려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혜롭게 현실을 잘 극복해 나갔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모든 노예를 관리할 뿐 아니라 그 집의 재물과 재산까지 관리하는 2인자의 자리였습니다.

 

요셉의 생애에 두 번째 장애물이 닥쳐왔습니다. 그것은 주인 보디발의 부인을 통한 성적인 유혹이었습니다. 더더욱 이 유혹은 집을 떠난 상태에서 찾아왔습니다. 그에게도 외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유혹하는 여자는 보디발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권력과 미모를 가진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이 유혹에 대해 어떻게 승리하였습니까?

 

첫째,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창39: 8). 유혹 앞에 우물쭈물하거나 쭈뼛쭈뼛해서는 안 됩니다.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묵상하거나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자꾸 묵상하면 죄악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지기 쉽습니다. 어떤 신학교의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러주기를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니요(NO)!”하고 거절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신학생에게 있어서는 희랍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둘째, 듣지도 않고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창39: 10).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은 듣지 마십시오. 이런 내용을 끝까지 다 듣고 결정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들으면 공상하게 만들고 사탄은 그때 속삭입니다. 얼마나 근사한가? 얼마나 멋있는가? 유혹하는 자와 함께 있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유혹받는 환경이나 장소에서 고민하는 것은 심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셋째,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창39: 12). 박해는 참아야 하고 마귀는 대적해야 합니다.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강한가를 시험하기 위해 그 자리에 남아 있다면 미련한 짓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분은 술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노름을 좋아하는 분은 그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이성의 유혹에 약한 사람은 유혹받을 자리에 가지 마십시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딤후 2:2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유혹의 자리로 달려가는 것은, 당신의 손가락을 불 속에 집어넣고 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경주에서 이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고의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또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길을 가는데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요, 사랑이요 기쁨이요, 우리의 복이 되심을 잊지 맙시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여 우리의 달려가는 것은 오직 한 명만 상을 받는 세상의 경주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그는 얼마 있지 않아서 목표지점에 도달할 때 주어질 영광스러운 상과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바라고 있었으며, 우리는 잘만 달린다면 한 사람만이 아닌 모두가 상을 받을 여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통하여 그는 이 세상 삶의 영광스러운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해 줍니다.

 

첫째, 인생경주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앞을 바라보고 달려야지 뒤를 돌아보면 않됩니다. 어렸을 때 언덕 위의 높은 나무에서 언덕 밑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높이를 생각해보면 아파트 10층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죽지 않고 크게 다치지도 않게 지켜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상처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떨어질 때 느꼈던 공포가 내면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층의 복도식 아파트를 지날 때면 극도의 두려움으로 살금살금 기다시피합니다. 특히 당시의 높이로 느껴질 때는 기절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세계 속에 그대로 남아 괴롭히고 힘들게 합니다. 과거에 매여 있을수록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듭니다. 좋지 않았던 과거는 빨리 잊어야 미래를 향한 힘찬 경주를 할 수 있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19: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둘째, 인생 경주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우리는 절제를 해야 합니다. 인간생활에서 넘치는 것을 어느 정도 절제할 때 대단한 승리의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시간을 절제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도 우리에게 무진장한 것은 아닙니다. 알찬 수확을 위해 우리는 시간을 잘 절제하는 가운데 그 시간을 선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에너지, 곧 힘도 절제하면서 그것이 꼭 필요할 때 폭발시켜 천 배, 만 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힘을 저장해야 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셋째, 인생 경주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우리의 달려가는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합니다. 헬라인의 경주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 우승할 수 있기 때문에 경기자들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경주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게으름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모든 일이 향방 없는 자 같은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주도면밀하면서도 세심하고 잘 정돈된 삶을 살아야 됩니다. 기도하는 데 있어서도 기도의 목적이 명확해야 하고, 그 일을 위해서 조직적으로 진행해 나갈 때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달리는 자에게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는 뚜렷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선한 목표이어야 합니다. 선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음으로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이사야 40:31)

 

여호와만을 앙망하고 삽시다. 그가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로 전진하여 나아갑시다(빌 4:6-7).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전심전력을 다하여 달리는 인생을 삽시다.(딤전4:15).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고 사는 자는 결코 패하거나 실패하는 자가 없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고 사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있으며 땅위의 일들의 형통과 축복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넷째, 인생 경주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최후의 종착점에서도 심판관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운 말로서 구원의 전파자도 다른 사람은 천국으로 인도하고 자기 자신은 탈락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버림을 당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꾸준히 섬기기 위해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켰다면 우리들이야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욕심 많은 나, 고집 많은 나, 혈기 많은 나, 이런 나를 완전히 쳐서 주님 앞에 복종시킬 때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인생경주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인내해야 합니다. 인생이라는 경주에서는 가장 빠른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그 자리에서 가장 빨리 일어나는 자가 승리합니다.

게리 헤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다지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도 하지만 더 이상 나올 실수가 없을 때까지 붙들고 늘어집니다. 해법은 실수에서 배우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길에서 순탄한 길만을 걸어온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낙심하고, 좌절하고, 어려움이 닥칠 때 얼마나 인내력을 발휘하여 끈기 있게 노력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공여부는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매우 단 이치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서는 힘찬 하루 열어 갔으면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

 

여섯째, 인생경주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투철한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이 땅을 살 때에는 환난 핍박 받으며 신앙 생활하였지마는 인생의 최종 종착역인 죽음 앞에서는 지난날의 인생길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며 하나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감사 드렸던 것입니다. 어떻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사도 바울과 같이 후회없는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일평생 이루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좀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평생 사명을 가지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 평생 사명이 있는가? 일시적인 것에 삶을 투자하고 있지 않는가? 삶의 중심은 무엇인가? 삶을 통하여 무엇을 기여할까? 지금 내 삶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평생 사명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날 가족과 믿음의 식구,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까?" 등의 질문들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4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땅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상의 경주에서 이긴 사람들은 결국 시들고 마는 올리브 나무나 월계수의 나뭇가지 또는 그 잎으로 만든 관을 쓰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썩지 않고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많은 군중의 환호와 시드는 풀잎 관을 위해서도 그렇게 절제하고 달리는데 우리는 권능의 재판장이 예비하신 영광된 면류관을 위해 육체의 악한 성향을 억누르고 자신을 쳐 복종시키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딤후4:7, 8)고 그는 믿고 앞을 내다보았습니다.

 

운동경기를 하면서 중간에는 1등하여도 나중 경기 종료 때 성적이 나쁘면 그 사람이나 그 팀은 상을 받지 못하며 칭찬도 받지 못합니다. 중간에는 좀 성적이 부진하여도 경기 종료 때 1등 하면 그 사람이나 그 팀이 상을 받으며 크게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최후의 승자는 중간에서 1등을 하는 자가 아니며, 최후에 1등을 하는 자가 진정 최후 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에 있어서도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육신의 쾌락을 다 즐기고 살았어도, 죽음 앞에서 헛된 인생을 살았다고 후회하는 사람은 인생의 실패자입니다. 인생길이 최후의 승자도 역시 인생의 최후 종착역인 죽음의 길에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진정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지난날의 인생길을 후회하며 헛된길 걸어왔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이 땅에 두고 가기 때문이며, 과거의 그 화려했던 모든 부귀영화가 풀잎과 꽃잎과 같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는데(히 9:27) 그 심판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판 받음을 깨닫고 (롬 2:6)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사도바울과 같이 인생경주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인생 경주에서 승리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투철한 사명감을 주시고 우리가 유혹받을 자리에 서지 않게 하시고, 늘 성령충만하여 유혹에 승리하게 하옵소서, 나와 우리 가족이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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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8 빌립보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4:4-7  김동호 목사  2011-05-28 3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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