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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

골로새서 한태완 목사............... 조회 수 3700 추천 수 0 2011.06.04 11: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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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골3:12-17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
본문: 골로새서 3장 12- 17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자, 그리스도를 닮은 자라는 뜻입니다. 온유 겸손하신 예수님, 죄인을 구원해주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닮은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란 말은 처음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이 섞인 호칭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신문을 받는 중 그 기회를 이용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깜짝 놀라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바울을 책망합니다.왕은 자신에게 그리스도인이란 라벨이 붙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침을 뱉듯이 외면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를 가르키는 별명입니다 원래 이 이름은 그리 명예스러운 내용으로 불리운 이름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신자들은 그들에게 붙여진 부끄러운 별명을 받아 오히려 놀라운 신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라는 빛나고 존귀한 이름이 되도록 우리에게 좋은 영적 유산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주후 313년에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는 빛나는 이름을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현대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틸리히 교수는 현재 기성교인 중에 10%는 이미 죽었고, 80%는 잠들어 있고, 오직 10%만 이 살아서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알렌 교수는 교인 중 20%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25%는 기도를 드려 보지 못했고, 35%는 가정에서 성경을 읽는 일이 없고, 40%는 하나님의 명령인 십일조 헌금을 안하고 있고,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으며, 75%는 교회에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85%는 전도를 한 명도 못했으나 교인들 100%는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 알곡과 죽정이,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이 밝혀질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이 집사는 노방전도대의 팀원이었습니다. 전도대가 어느 날 지방 소도시를 찾아 거리에 나섰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외지인에 대해 예우를 해주는 것인지 주민들은 그렇게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에 귀를 기울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 집사가 가장 많이들은 말은 ‘아니오’였고 덧붙이는 말들이 이 집사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 형님이 장로요. 그런 형님이 믿는 예수가 난 싫소.” “내 옆집 사람이 집사입니다. 말도 마십시오.”
하나둘이 아니라 번번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집사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예수 믿는 놈을 믿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나라는 전 국민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지천인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사람’을 만나기가 매우 힘듭니다.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시골에서 뉴욕 아들집에 놀러온 노부부가 한국 슈퍼마켓에서 “순 참기름’이라는 제품을 사서 먹었더니 가짜라는 겁니다. 자신들이 한국의 시골에서 직접 짜서 만들어 먹던 그 진짜의 맛이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노부부는 자신들이 한국에서 직접 참기름을 짜서 이곳 뉴욕에 와서 장사를 하면 엄청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해 한국에 돌아가 진짜 참기름을 짜서 미국에 가져와 가게에서는 팔 수 없어 주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참기름의 이름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진짜 순 참기름’.
엄청나게 팔릴 줄 알았던 그 참기름은 팔리지 않아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먹어본 사람이 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든 것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맛으로 증명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맛을 아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많은 한국인들의 입맛은 이미 가짜에 적응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짜가 진짜를 이긴 것입니다.
어디 이것이 참기름만의 이야기입니까?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가짜들이 진짜를 이기고 있습니까? 얼마 전에 쓰레기 만두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 두 회사의 불량식품으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는 만두 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가짜 만두가 진짜 만두를 이긴 겁니다.
가짜 상표가 진짜 상표를 이깁니다. 전 세계에서 가짜를 제일 잘 만드는 민족이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짜가 진짜를 이기지 못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가짜 그리스도인은 진짜 그리스도인을 이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성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도 가짜가 많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갖췄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이 많습니다. 예배드리는 자는 많으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십일조 하는 교인은 많으나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교인도 많지는 않습니다. 봉사하는 교인은 많으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목사는 많지만 헌신된 성령 충만한 주의 종은 많지 않습니다. 교회는 많으나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과 자람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둔 뿌리깊은 영성을 가진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빛이 되는 것이고 소금이 되는 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첫째는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온유하고 겸손한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십자가에서 온전히 나타났습니다. 원수들이 욕하고, 비웃고, 저주했지만 예수님은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사53:7) 온유하게 모든 것을 참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온유가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겼으며, 결국 우리가 그 승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온유란 부드럽고 따뜻함을 이야기합니다. 교육학에는 '하아로우의 실험'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하아로우 교수가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젖을 먹는 아기 원숭이들 앞에 엄마 원숭이 대신 두 개의 인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철사로 엄마 원숭이처럼 만들어 그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고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 그 가슴에 우유병을 넣었습니다. 아기 원숭이들은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엄마 원숭이 인형의 우유만을 먹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동물들도 부드럽고 온유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교만하고 날카롭고 딱딱하고 매정한 사람보다 겸손하고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을 서로 찾습니다. 같은 재능, 같은 기술,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겸손하고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기 마련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이 있는 곳에 훈훈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건전한 사회생활이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팔복 중 하나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경직된 관계도 부드러워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도 깊어져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사랑이 충만해지며 화평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둘째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두 농부가 한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 농부는 그리스도인이고 다른 농부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논은 지형상 항상 물이 고여 있도록 된 논이고, 불신자의 논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는 밤중에 몰래 그리스도인의 논에서 물을 빼서 자기 논에 채웠습니다. 아침에 논에 나갔다가 자기 논의 물이 다 빠지고 옆의 논에 물이 차있는 것을 본 그리스도인은 그 불신자에게 따졌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자기가 물을 끌어간 것이 아니라 저절로 흘러 들어온 거라고 잡아뗐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화가 나서 불신자의 논에서 물을 빼 자기 논에 다시 채웠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연히 취할 권리를 취했는데도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왜 정당한 것만 주장하느냐? 왜 네 논의 물이 필요한 이웃에게 스스로 물을 대주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인에게 깨우침이 왔습니다. 그날 저녁에 그리스도인은 자진해서 자기 논의 물을 불신자의 논에 대주었습니다. 밤에 자기 논에 물을 대려고 나왔던 불신자는 이미 물이 찬 것을 보고 금방 영문을 알아차렸습니다. 다음날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그 이웃이 호미를 빌리러 왔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호미를 챙겨주었습니다. 이웃이 가고 난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은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빌려주어야 하나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복수와 증오란다. 하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것은 용서이자 사랑이란다." 지금 내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요? 용서와 사랑은 복수와 증오의 마음을 덮을 수 있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셋째는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어느 맹인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에 그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요란하게 짖어댑니다. 사모님이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시커먼 사람이 앞마당에 서있습니다. 사모님은 겁에 잔뜩 질려서 어찌 할 바를 모릅니다. 그러다가 상황을 앞이 보이지 않는 목사님께 말합니다. 목사님은 사모님을 안심시키고는 밖으로 나와 밤손님에게 정중하게 인사합니다. "추운 밤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입니다. 우리 방에 들어가시지요.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끓여서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나는 돈은 없지만, 필요하시다면 옷가지나 여비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절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을 못 봅니다." 목사님의 말을 다 들은 후 도둑은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냥 가겠습니다." 하고는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목사님이 버스에서 내려 육교를 넘어오는데, 어떤 사람이 그의 등을 툭툭 치면서 말을 건넵니다. "실례합니다. 저는 얼마 전 밤에 목사님 댁에 찾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날 밤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마음을 바꾸어 땀 흘려 일하면서 떳떳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번데기 장사를 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돈 많이 벌면 목사님을 꼭 찾아뵙겠습니다."
목사님은 이 사건으로 매우 귀한 것을 깨달았는데, 한 사람을 사랑으로 대한 결과가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도둑이 그의 집을 찾아온 밤에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쳤다면 궁지에 몰린 도둑이 흉기로 사람을 다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그를 따뜻하게 대하매 그의 마음까지도 움직여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5:1-2)

넷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 5-7)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을 기복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고,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을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께서 골고다로 가시매 우리도 골고다로 가야 합니다. 주께서 눈물을 흘리셨기에 우리도 그 눈물의 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모든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종을 통해서 주와 하나되는 놀라운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를 위해서 사망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로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붙여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살 수 있도록 운명 지워진 하나님의 포로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까지 들먹이며 하나님을 경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영원한 죽음에서 도망하는 길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더 이상 슬프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성의 최후의 발걸음은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무수히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인생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학 1:13)."
과거에 부족했을지라도 회개하고 순종의 길로 들어서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맞아 주십니다. 불순종은 사망의 길이요, 순종은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의인은 가장 사소한 일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누가 주님을 가장 잘 아는 자일까요? 주님을 잘 아는 자는 성경학자나 신학박사도 아니고 신학생도 아닙니다. 주님을 가장 잘 아는 자는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눈먼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꽃동산이 필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신학적, 성경적 지식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들은 어찌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최대한의 외침보다 최소한의 실천을 중요시하는 모습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12:50)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다섯째는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쉬지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유리는 앞이 잘 보입니다. 상대방의 모습도, 불평할 만한 현실의 모습도 잘 보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모습만 보입니다. 똑같은 유리인데도 뒤에 수은이 발라졌기 때문에 거울에는 내 모습만 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그리스도인인데도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불평할 상황만 보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성도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만 보입니다. 자신의 허물이 보이고 약점이 보이며 죄스런 모습만 보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 받는 모습,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한 몸에 입은 모습, 하나님의 축복을 통째로 받은 모습만 보입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나를 왜 이리 사랑해주신 단 말인가? 왜 이리 은혜를 베풀어주신 단 말인가?”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감사만 합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유리 성도입니까? 아니면 거울 성도입니까?
옛날, 신앙심이 돈독한 어떤 성주(城主)가 식사를 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신하들의 자세를 고치기로 하고 한 거지를 식탁에 초청했습니다. 거지는 분에 넘치는 식사를 마음껏 한 후 성주의 배려에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나가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신하들은 "저런,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구"라고 분개하면서 거지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성주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대들도 거지와 똑같소. 그대들도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있잖소" 인간의 부족한 심성은 자기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실수만 책하는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감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격분하면서도 자신의 부족에 대하여는 경각심을 갖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도 얼마만큼 감사하고 찬송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감사와 찬송, 기도의 소리가 없으면 거짓 그리스도인이요, 생명이 없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삼하22:50)

여섯째는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일상 생활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를 친밀하게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적대시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집사는 서울 근교에 있는 물류회사의 모범사원입니다. 회사가 시외에 있어서 좀 힘들 터인데도 지각하는 일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조금 일찍 나와서 업무 준비를 하는 편입니다. 누가 “집이 가까운 우리보다 먼저 나오셨습니다”고 말하면 “조금만 서둘러 출발하면 차가 막히지 않는 덕을 볼 수 있거든요”라고 대답합니다. 대개는 정시에 퇴근하지만 언제라도 상황이 발생하면 밤을 새우며 책임을 다합니다. 그럴 때면 미리 집에 연락하는 것 또한 잊지 않습니다. 그만큼 가정에도 충실합니다. 그의 성실함은 회사의 모든 사람이 알고 거래처 사람들도 한결 같이 그를 칭찬해마지 않습니다. 입사 5년 차의 그가 한 주요부서의 팀장을 맡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이 집사가 듣는 아쉬운 말 한 마디. 그것은 “그 사람, 예수 믿는 것만 빼면 참 좋은 사람인데”입니다. 동료들의 술자리에서, 일요일의 산행길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 사람, 예수 믿는 것만 빼면 좋겠는데….” 이 말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들어야 하는 ‘훈장’입니다. (고전4:1-2, 롬14: 18-19)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온유하고 겸손하고, 오래참고,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참된 크리스천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이름

한국의 선교 역사에는 수많은 신앙의 거인들이 있었다. 저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한국 초기 선교사로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연동교회의 담임목사였던 게일은 자신이 만난 가장 위대한 신앙인으로 연동교회 초대장로였던 고찬익을 꼽았다. 고찬익은 원래 원산에서 게일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원산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였다. 가난한 신자들의 방 자리 밑에서 알 수 없는 돈이 나오고 혹은 뜰에서 쌀자루가 발견되었다. 또 원산 거리에서 거지가 매우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했으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고찬익이 게일을 따라서 서울로 가게 되었고 그후에는 이런 이상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 사건들이 고찬익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온 고찬익은 게일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서 연동교회에서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찬익이 하루는 20세 전후의 청년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나는 의식이 빈궁해서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고찬익은 “노동을 하면 먹을 것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양반 출신이어서 노동을 천하게 생각했다. 고찬익은 청년에게 “내일 아침 일찍 아침식사 전에 우리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고찬익은 집에 가서 지게와 수건을 둘씩 준비하고 아내에게 밥을 한 그릇 더 지으라고 했다. 다음날 청년이 약속시간에 고찬익의 집에 왔다. 고찬익은 청년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지게를 하나씩 지고 인근 선교사댁 건축 공사장에 가서 함께 종일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받은 노임을 그 청년에게 주었다. 고찬익은 청년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소중함까지 가르쳐주었다. 길선주 목사는 고찬익 장로를 “경성교회 기초사역에서 가장 유능한 전도자”라고 평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패한 세상에 소금 노릇을 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가?
0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가?
0 나는 주의 의로우심을 본받아 내 생활도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가?
0 바울처럼 내가 본받을 만한 신앙인이 주위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나는 본받을 만한 신앙인입니까?
0 내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삶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0 언행과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혹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진 않습니까?
0 나는 내가 속해있는 현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0 나는 주님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인가?
0 나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0 당신은 범사에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0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세상 사람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2002년 10월 어느 날,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어느 형무소에서 한 여성이 독극물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는 연쇄살인범으로서, 경찰을 비웃듯이 오랫동안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그러다가 결국은 꼬리가 길어서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그 여인의 살인수법은 혀를 내두를만하다. 그는 먼저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난 것처럼 가장했다. 그러면 동정심 많은 중년 남자들이 그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여자는 그런 남자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그는 창녀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를 쉽게 유혹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외딴 곳으로 가서 그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척 하다가는 갑자기 총을 꺼내 그 남자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대담하게도 그 남자의 시체를 고속도로 주변에 내던졌다. 그렇게 해서 일곱 명의 남자가 그에 의해 살해되었다. 결국 그 여자는 체포되어, 12년 동안의 재판을 거친 후에 사형에 처해졌다. 그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것은 24세부터 34세까지의 10년간이었다. 한창 인생의 꽃을 피울 나이였다. 그리고 그가 처형된 것은 46세 때였다. 그는 사형판결이 내려지자 자기를 빨리 사형에 처해 달라고 악을 쓰며 몸부림을 했다. 자기 몸 속에는 증오심이 들끓고 있어서 기회만 되면 다시금 살인을 자행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이린이었다. 그 이름의 뜻은 평화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이름과는 정반대 여자가 되었다. 마치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의 경우와 같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이름과는 정반대가 되는 삶을 살았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이름에 적합한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 예화(2): 천국의 기둥시계

미국의 프로 야구팀인 "멧츠"에 허들( Clint Hurdel )이라는 선수가 꿈에 천국을 갔습니다. 천국에는 많은 기둥시계가 걸려 있었습니다. 시계마다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시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여 주었는데, " 각자가 남을 위하여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을 때 이 시계는 1분씩 전진한다. 심판 날에 이 시계를 하나님이 참고하실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허들은 자기 자신의 시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 네 시계는 이미 24시간 1440분이 지났기 때문에 불량자 창고에 넣어 버렸다 " 고 하였습니다. 그는 1977년에 선수로 발탁이 되어 20 만 불의 연봉을 받고 호숫가에 집을 사고 미녀와 결혼하고 골프를 즐겼으며 0.328의 타율로 인기 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81년 이후 갑자기 기울기 시작하여 후보 선수로 밀려나고 이혼하였으며 집도 팔고 인생의 쓰라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가 깨달은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타난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남의 상처를 싸매 주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성도는 이미 성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라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 주어야 할까요? 섬기는 자로 살 때 그 모습을 보고 우리를 성도라고 할 것입니다.

* 예화: (3): 믿음과 유행

'오스기네스'라는 유대인이 구소련에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당국에 의하여 정치법으로 15년 간 투옥되어 있었다.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면서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은밀히 예수에 대한 복음이 전해졌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부터, 언젠가는 자신의 4살 난 아들을 보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15년을 견디어 냈다. 마침내 그가 석방이 되었을 때 가슴이 울렁거리는 흥분으로 자기 아들과의 재회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들을 만났다. 아들을 포옹하려는 순간 자신의 아들이 가슴에 십자가를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아버지는 너무나 감격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가운데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들이 지니고 있다니. 포옹을 풀고 그동안의 쌓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 이제 19세가 된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뜻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있니?"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말을 기대하면서 늠름하게 자라난 아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들의 대답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거 유행이예요."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희망이었다. 소망이었으며, 위로였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나 아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행이었던 것이다.


* 예화(4):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

주님을 알고 난 후 우리 안에 넘치는 기쁨과 평안은 마치 생수의 강물과 같아, 흐르고 넘쳐 주변을 풍성하게 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고, 구원의 비밀을 알리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사람.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크리스천의 모습, 혹시 ‘사랑’ 보다는 ‘죄’를 이야기하기에 바쁜 사람들은 아닌지요. 죄에 대해 설교하는 것만으로는 죄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를 자각하게 하고 더불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 나은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라고 원하시는 것 중에서 가장 어렵고 또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웃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듭났다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묻기 전에 먼저 우리의 모든 것을 용납하고 사랑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크리스천의 다른 점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먼저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들. 죄를 묻기보다는 용납하고 품어주는 사람들.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가진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4. 찬송: (518장) 신자되기 원합니다.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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