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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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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렁마다 둑길마다 풀이 야단이렷다. 풀더미 우거진 풀숲, 창백한 얼굴을 한 누룩뱀이 슥 지나가며 토끼풀을 뭉갠다. 한 여자의 평생 징역이었을 저 고추밭. 억세디 억센 토끼풀이 엉금성금 기어들어와 같이 동거하자며 억지를 부리는데, 이를 절대 허락할 리 없는 아낙. 털부덕 밭에 오그리고 앉아설랑 진종일 풀매기에 여념 없어라.
송홧가루 분분하구나. 게다가 황사까지 겹쳐 마치 일식하는 날처럼 뿌옇고 침침한 한낮이다. 아낙은 보리밭고랑, 고추밭고랑 옮겨 다니며 기진맥진, 손에 든 호미조차 무겁다는 표정이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인가. 아까시나무 이파리를 두들기며 라흐마니노프처럼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바람을 나는 보았다. 바람은 아낙의 파마머리를 동여맨 수건에 달려가서 흐르는 땀을 쓱싹 닦았다. 아낙은 이제 발목 없는 문둥병자처럼 엉덩이를 질질 끌며 풀을 매다가 바람에다 대고 넋두리 하소연을 풀어놓았다. “퇴깽이(토끼) 대가족을 딱 풀어 부렀음 좋겄네잉. 그라믄 이 고상도 덜할 거신디 말이여.” 바람이 맞아맞아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고개를 끄덕일 때는 나뭇잎이 위아래로 나울나울 흔들거릴 때….
토끼풀을 볼 때마다 나도 새하얗고 털이 복실복실한 토끼 한 쌍 키우고 싶어진다. 안마당도 잔디보다 토끼풀이 더 우북하게 자라서 토끼가 배부르게 먹고 살 만한 환경은 충분히 된다. 귀염둥이 아기 토끼는 방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잠이 들기도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토끼풀만 아깝게 버려지고, 죄스럽게 저걸 뽑고 또 베어내고….
세상에 필요 없이 존재하는 생명이 어디에 있겠는가. 토끼풀은 토끼를 위해 태어나 자라는데, 산에 들에 집에도 정작 토끼가 없구나. 토끼풀만 외롭게 우북우북 자란다. 아낙이 뽑아서 버린 토끼풀 더미가 밭고랑 응달 쪽에 가엾은 아기무덤이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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