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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603 추천 수 0 2011.06.08 20: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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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jpg  영국 속담에 “하루를 기쁘게 살려면 이발을 하라. 한 주일을 기쁘게 살려면 승마(자동차)를 사라. 한 달을 기쁘게 살려면 결혼을 하라. 한 해를 기쁘게 살려면 새집을 지어라. 평생을 기쁘게 살려면 정직하게 살아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발을 하면 적어도 하루의 기쁨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머리카락은 사람의 인상과 멋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체 조직입니다. 머리를 잘 손질하면 그 만큼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머리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과 머리를 상품화시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머리털을 자르고 표백하고 꾸미는 방식으로 머리의 모양을 바꾸어 왔습니다. 삭발. 장발. 난발. 변발. 단발 등 시대마다 머리의 길이가 달라졌고 색깔도 다양하게 달라져 요즈음은 무지개 색깔의 머리도 나왔습니다.

머리를 통하여 개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장면은 광고의 모델에게서 더욱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모두가 머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별로 머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머리 가꾸는데 별로 돈을 투자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머리 손질을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 머리가 자라는 것에 대하여 귀찮게 생각하고 머리 깎는 일이 짐이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예 머리를 깍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방치하거나 머리에 대하여 당분간은 잊고 살 정도로 아주 짧게 깎아 버리는 것입니다. 불교의 스님들은 석가모니가 출가할 때 "나는 지금 사람들과 더불어 고에서 해탈할 것을 서원하는 뜻으로 삭발을 하겠다"고 말한 후 머리를 깎고 수행길에 오릅니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흔히 번뇌초 혹은 무명초라고 하여 삭발하는 것이 몸에 무성하게 자라는 무지와 번뇌의 풀을 끊어 없앤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금욕생활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톤스라라는 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신분석학자 버그는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거세를 뜻한다고 합니다.

과거 우리 나라에서는 머리를 삭발하는 것은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윤리관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형벌로 행실이 좋지 못한 부녀자들 이나 형무소 죄수들이나 삭발을 하였지 일반인들은 흔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1895 년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전국 도처에서 유생들은 "손발은 자를지언정 머리는 못자른다" 고 반발하였고 단발에 항거한 자살이 꼬리를 물었다고 합니다. 보은현감 이규백(李圭白)의 아내 창령 성씨는 남편이 직책상 단발하지 않을 수 없음을 비관하고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녀는 “삼강오륜은 머리카락과 같이 끊어지고 나의 혼백은 윤강(倫綱)을 따라 끊어지도다.”라는 유언을 남겼답니다. 심지어 춘천에서는 단발반란까지 일어났었습니다.

머리에 얽힌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머리털에 대하여 그렇게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단지 미와 편리의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매달 평균 13㎜씩 자라는 10만~13만개의 머리 카락을 손질하기 귀찮은 사람들은 그저 짧게 깎는 헤어스타일을 좋아합니다. 19세기 서양에서 보편화된 남성의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은 프랑스의 기계 제조회사인 '바리캉 에 마르(Bariquand et Marre)'가 만들어낸 이발기(일명 바리캉)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머리를 깎는데 시간을 단축해 주었고 효율성을 높여 주었습니다. 어느 때 보면 머리를 깍는데 손톱을 깍아 주는 이발소가 있습니다. 그 때는 다시는 그 이발관에 가지 않습니다. 지난 목요일 성도님들 가정을 심방하다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 이발하기 위해 교회 근처 이발관을 갔습니다. 낮선 이발관을 찾았는데 이발소에는 거울과 이발기구, 의자와 이발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까운터에 어떤 남자가 앉아있었습니다. 안으로 복도가 나있고 어두운 곳에 조명이 켜있는 방이 있었습니다. 벽에 보니 여인의 나신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발소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둘러보니 일반 이발관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퇴폐 이발관이었습니다. 다른 이발관을 찾았습니다. 그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교회 근처에서 이발하는 것을 포기하고 동네 이발소를 갔습니다. 이발소도 시대마다 변화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옛날 시골에는 엿장수처럼 삼박자 가위를 울리는 방랑 이발사가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지금도 나무 밑 이발소가 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발이 옥내에 정착하여 사랑방 구실을 하였다고 터너의 기술 발달사는 적고 있습니다. 지금도 스위스의 지방 이발소에는 이발 손님보다 놀러 오는 손님이 많다고 합니다. 개척시대의 미국 이발소는 정보를 교환하는 사랑방 구실을 했다고 합니다. 이발소라고 해서 꼭 이발만 하라는 법은 없겠지만 칸막이와 샤워 시설까지 해놓고 `안마와 색(色)'까지 도입하는 것은 평범한 서민에게는 이상한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이발소는 이발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다 이름에 맞는 제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이탈할 때는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 발/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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