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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3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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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옥한흠 목사 |
참고 : |
공동체 고백대로 살기
본문: 행2:37-47
언젠가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설교하신 독일 목사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크리스티안 A. 슈바르츠라고 하는 목사님인데, 세계적으로 아주 저명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책을 보면 '최소치 요소의 중요성'이란 제목 하에 물통 비유를 들어 중요한 영적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물통은 적당한 넓이의 널빤지를 이어 동그랗게 두른 후, 대나무 같은 것으로 바깥에서 얽어 조여 맨 옛날 물통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물통을 만들 때 길이가 각각 다른 널빤지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여기에 물을 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얼마만큼의 물을 부을 수 있을까요? 긴 널빤지만큼 부을 수 있을까요? 가장 짧은 널빤지만큼 부을 수 있을까요? 열 개의 널빤지를 가지고 만든 물통이라면, 그 중 가장 짧은 널빤지의 높이만큼만 물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 이상은 아무리 물을 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짧은 널빤지 위로 다 흘러나와 버릴 것입니다. 나머지 아홉 개의 널빤지가 아무리 높고 튼튼해도 물을 채우는 데는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그 물통의 물은 가장 짧은 널빤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소치 요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영적 원리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들이 있는데, 본문에서도 이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처음 생긴 교회요, 때묻지 않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첫 믿음, 첫 사랑을 가지고 성령충만해서 시작한 교회요, 몇 천 명이나 되는 성도들의 공동체였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 5가지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길 원합니까? 능력 있게 하길 원합니까?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적어도 다음 5가지는 반드시 구비해야 합니다. 저는 이 5가지를 요약 정리하여 공동체고백이라는 것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가 공식적으로 이 공동체고백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을 것입니다. 99년도 1월부터 이 고백을 사용한 것을 시작하여 이제는 다른 형제 교회들 중에도 이 고백을 그대로 받아들여 예배 때마다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고백 안에는 신앙생활의 필수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5가지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예배, 둘째는 전도, 셋째는 교제, 넷째는 봉사, 마지막 다섯째는 교육 혹은 훈련입니다. 이 5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행복해집니다. 우리의 영적 삶이 풍성해집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이 5가지 가운데 1가지는 적당히 하고, 나머지 4가지만 잘하면 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한번 손가락을 볼까요? 5개의 손가락 중 제일 짧은 새끼 손가락을 예배라고 합시다. 만일 "나는 예배에 대해서 성의가 없어. 교회 출석도 잘 못하고, 가정 예배를 그렇게 드리는 것도 아니니까 예배가 좀 약해. 하지만 다른 것은 잘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영적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 1가지만 못하고 다른 4가지는 잘하므로 그의 신앙생활의 건강지수가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4가지를 아무리 잘해도 만약 이 예배가 가장 짧은 널빤지의 역할을 한다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는 그 수준 이상 올라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어줘도 다 쏟아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우선 5가지를 하나하나 검토해보면서 나에게는 무엇이 가장 짧은 널빤지인지, 내가 금년에 힘을 다하고 정성을 쏟아 보완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찾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짧은 것을 보완해서 높이면 그만큼 내 신앙생활은 풍성해지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예배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 참 예배하는 공동체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42절을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설교도 듣고, 훈련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었습니다. 떡을 뗀다는 말은 성만찬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이 모두가 다 예배입니다. 이어서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좋아했습니다. 곧 성전에서 예배 드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성전에서 흩어졌을 때에도 가정으로 돌아가서 떡을 떼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따라서 그 공동체를 보면,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열정이 모든 성도들의 가슴에 불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밤낮으로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 거룩하신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순간 순간 끓어올랐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도들의 모습은 예배하는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만큼 예배가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놓고 우리는 공동체고백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예배자가 됩시다." 이 예배는 지상에서 연습하고, 하나님나라에 가서는 영원히 지속될 우리의 본업이 됩니다. 그만큼 예배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5장 3절, 4절을 보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천군천사들이 주를 찬송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위대한 영적 거인이라 할 수 있는 요한 웨슬레는 이런 찬송을 작사했습니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입이 만 개라면 만 개의 입을 다 벌려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주님의 은총을 찬송하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싶어 열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는 지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예배의 심정이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항상 할 수가 있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도, 혼자 있을 때도 예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일정한 시간을 정하여 일정한 내용과 틀을 가지고 예배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 중 하나로 주일 예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일을 지키고, 주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이 주일 예배를 통해서 기독교가 이어져왔고, 이 세상을 바꾸어 왔습니다. 예배에 오면 찬양과, 말씀, 기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배 시간 동안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해 실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영혼이 기뻐 춤을 춥니다. 우리 영혼의 세포가 기뻐 춤을 춥니다. 우리가 제대로만 예배를 드리며 이러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해 계시는데 어떻게 은혜를 받지 못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는데, 그 영광 앞에 어떻게 춤을 추지 않겠습니까? 이런 놀라운 은혜가 분명히 이 자리에 있음을 우리 모두가 믿어야 됩니다. 어떤 분이 예배의 감격을 대해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었습니다. 저처럼 어릴 때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은 바닷가가 주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추억들이 많습니다. 썰물 때가 되면 물이 다 빠집니다. 옛날만해도 바다 밑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물이 다 빠지면 물 밑에 있던 바닥이 다 드러납니다. 거기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습니다. 바다 조개, 고동, 해파리, 성게, 미역 등등. 그런데 요즘 바닷가는 너무나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썰물이 되어 물이 다 빠져나가면 고무신 짝이 돌아다니고, 나무 조각이 사방에 널려 있고, 죽은 성게, 중독되어 이상하게 죽은 물고기 등 지저분합니다. 그러다가 밀물이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발목을 적시고, 점점 물이 많아지면서 무릎까지 차오릅니다. 나중에는 물이 해안가를 가득 채웁니다. 그러면 썰물 때 보았던 바다 밑에 있던 온통 더러운 것들이 싹없어집니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바다는 풍요로운 물결과 파도소리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배라는 의식을 행함으로 밀물과도 같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 예배에 나올 때만 해도 세상에서 고생하며 사느라고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마음 이곳 저곳에 구멍이 나 있을 정도로 상처도 많이 입고, 여러 가지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뒤집어 쓰기도 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 범한 죄로 영혼이 고약한 냄새를 피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이런 저런 잡동사니를 마음에 안고 그대로 예배에 나옵니다. 대부분 예배 드리러 나오면 "주님, 지난 한 주간 잘 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고 회개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썰물 때 물이 빠져 나간 후의 더러운 바닷가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를 시작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서 두 손을 들기 시작하면, 하늘로부터 밀물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은혜의 밀물이 우리 마음을 덮고는 그 안에 있는 잡동사니를 쓸어내 버립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열어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근심걱정이 조용히 물러갑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은혜가 예배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시간을 정해 놓는 주일예배 외에 또 중요한 것이 있다면 것이 있다면 가정 예배입니다. 가정에서 가족끼리 함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필수적인 일입니다. 이번 '우리지'에 보면 '우리 가족 행복의 열쇠는 가정예배'라는 제목 가운데 국영진 집사님과 구미선 집사님의 가정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주일 저녁이면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과 2학년에 있는 자녀들도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그리고 한 주간을 살아가는데 이 예배가 많은 도움이 돼요."
1월호 가정예배 시리즈에 실린 표지 사진을 보면 김재일 집사님과 한금옥 집사님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 가정도 직장에 다니는 자녀들이 돌아오려면 귀가 시간이 제 각각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다렸다가 매일 저녁마다 가족들이 다 모이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좋은 점은 가족이 모두 한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 교육에는 기도가 최고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고 거기에 능력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5가지 중 예배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운데 예배가 짧은 널빤지에 해당되는 분은 있습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면, 금년 한해는 여러분이 이 예배에 정성을 쏟길 바랍니다. 주일 예배도 매주 정성을 쏟아 드리길 바랍니다. 가정 예배도 매일 드릴 수 없다면 1주일에 1번이라도 드리도록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짧은 널빤지를 좀더 길게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키우는 것만큼 은혜의 물이 물통에 차는 것입니다. 내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가 차오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전도입니다. 47절을 보면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날마다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교인들은 전도도 안 하는데 하나님께서 매일 사람들을 교회로 보내주는 것 같이 착각하기 쉽습니다. 사실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구원 받고 은혜로 가슴이 뜨거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 믿도록 해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전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전도는 참 중요합니다. 전도란 하나님나라가 완성될 것을 기다리는 비전입니다. 영원한 멸망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마음에 작정하고 날마다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힘있게 전하는 열정입니다. 여러분은 전도에 얼마만큼 정성을 쏟고 있습니까?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어느 정도 전도에 마음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망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특별히 한두 분 정도 선교사님을 정해 놓고 날마다 기도해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전도를 더 잘하기 위해서 어떤 전도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배우려고 노력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전도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이 선교와 전도에 잘 쓰이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전도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웃에 대해 기회가 있으면 복음을 전하고자 날마다 그와 접촉하길 원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1년 중 나를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나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을 가지고 한번 자신을 검토해 보십시오.
그런데 대여섯 가지 질문을 던져도 다 그렇지 못 하다고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전도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전도가 짧은 널빤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분은 받는 은혜를 그때그때 쏟아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의 내면의 은혜의 세계에 물이 차오르지를 못합니다. 이점을 꼭 기억하십시오. 적어도 신년도에는 이 전도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는 작심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교제입니다. 42절 이하를 보면, 예루살렘 공동체는 아름다운 신앙의 교제를 하고 있는 공동체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만나면 행복해서 못 견디고, 헤어지면 서로 보고 싶어서 하루를 못 넘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들끼리 너무나도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든, 집에서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항상 주변에 믿음 좋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나 홀로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나 홀로 아파트는 있어도 나 홀로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다음 말을 읽으면서 참 공감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여행할 때 혼자 외롭게 여행하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행을 하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많이 경험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 자기가 신앙생활을 좀더 잘 하고 싶어도 자기 힘으로는 잘 안되더라 는 말입니다. 자기 혼자 있으면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싶어도 성실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항상 기도해주는 사람, 격려해주는 사람, 도전해주는 형제 자매들이 필요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과연 여러분도 이런 교제 권에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 형편을 보면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현대 문명은 사람들을 점점 개인주의자로 만듭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정에 들어가면 부모 자식은 말할 것도 없고 부부 사이도 점점 소원해집니다. 모든 사람들의 관계가 점점 깨어지고 있습니다. 일부는 마음에 생기는 고독과 불안정을 이기지 못해 도 박 이나 마약, 불륜 관계에 빠지기도 합니다. 여자들이 채팅을 하다가 잘못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채팅을 왜 합니까? 상대방이 사탄인지, 가룟 유다인지, 발람인지도 모르면서 상대방이 물어오면, "나 외로운데 너무 나하고 말이 잘 통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라고 글을 띄웁니까? 이것은 혼자서 지금 죽어가는 있음을 말합니다. 병이 들어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오늘날 대형교회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의 교제를 잘 할 수 있도록 묶어 줄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락방이 가장 대표적인 교제의 장입니다. 다락방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번 '우리지'에 보면 다락방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압구정동 제5다락방에 김응수 집사님이 순장으로 섬기고 계시는 다락방입니다. 거기에 있는 어느 순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결혼하자마자 이 다락방에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10년 차가 되었습니다...다락방은 삶 가운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순원들은 말씀과 일주일의 삶을 나누면서 삶의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다락방에 있는 몇 명의 형제들이 서로 돕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영적인 교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초청하고 있습니다. "일단 다락방에 나와보세요. '남자들이 모여 무엇을 하나?' 싶지만,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모임 속에서 한 주간 동안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이처럼 다락방안에서 영적으로 교제를 나누며 그 안에서 은혜를 받으면 한 주일 사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가 주는 능력입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까? 있으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짧은 널빤지가 되어 신앙생활이 충만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금년에는 이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성도의 교제 권에 들어가 영적으로 좀더 풍성하게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면서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네 번째는 봉사입니다. 44절, 45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도들은 희한한 일을 합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기도 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는 구제를 실천합니다. 내 것이라고 아끼지 않고 가난한 자, 고통 당하는 자, 실패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내는 헌금을 통해서 많은 이웃들에게 사랑의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당장 우리 주변에는 세상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내가 쓰는 것을 절약하고 나누어주는 사랑의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봉사의 비밀이 각자의 신앙생활에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내 영혼이 힘을 얻고 춤을 추는 것입니다. 조지 맥도날드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은 이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웃봉사, 이웃 사랑은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다." "우리가 받기만 하고 내어주지를 않는다면, 사랑을 받고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면, 잠그기만 하고 문을 열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 사람의 영적인 생명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이 봉사가 짧은 널빤지가 되어 있는 분은 없습니까?
예배도 잘 드리고, 전도도 나름대로 하고, 교제도 잘하는데, 이 봉사만 못하지는 않습니까? 내 몸을 던져서 남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까? 그래서 헌금을 내는 것으로 해치우려 하진 않습니까? 가난한 사람,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보아도 마음을 열지 않습니까? 만약 이 문제가 여러분에게 짧은 널빤지가 되어 있다면 이것은 치명적입니다. 금년 한해는 이 짧은 널빤지를 좀더 긴 널빤지로 바꿀 수 있도록 주님 앞에 기도하고, 우리 모두의 삶을 다시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훈련입니다. 42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에 힘썼다고 나옵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배우는데 전념했다는 것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교육, 훈련을 말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신앙은 자라야 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 성장하고 성숙해야 됨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수준까지 계속 성화되어야 함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어떤 정상을 행해 함께 계속 전진하면서 자라고 성숙하고 성화되는 단계에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어떤 지점에 앉아서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계속 자라는 것입니다. 계속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 위한 마지막 정상을 앞에 놓고 우리의 인격과 삶을 거기에 맞추고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기 위하여 전력을 쏟는 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 모두의 영적인 어머니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말씀을 배웁니다.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내 믿음이 자라도록 합니다. 내 신앙인격이 계속 주님을 닮아 성숙하도록 노력합니다. 신앙생활은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한 자리에 안주하면 안됩니다. 뒤만 돌아보면 안됩니다. 앞으로 계속 나가면서 올라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지킬 때까지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 인격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계속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훈련한다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처럼 우리의 인격이 변해가고, 그분이 원하는 삶을 살고, 세상에서 그분을 향해 계속 배우고 훈련 받고 노력하면서 천국 문까지 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그의 부인이면서 전에 유명한 영화배우이기도 했던 윤정희 씨 부부가 한국에 왔을 때 기자와 나눈 대담내용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백건우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입니다. 나이도 60세에 가까워 아주 완숙한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남편에 대해 윤정희 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남편은 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을 듣고 기자가 놀라서 반문했습니다. "남들은 백 선생님을 정상에 오른 사람으로 평가하는데요?" 그러자 윤정희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올라가는 게 한이 없잖아요. 우리는 정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이처럼 위대한 예술가들이 예술의 경지를 앞에 놓고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봅니다. 백건우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틈만 나면 연습을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레퍼토리가 충분한 사람인데 집요하게 노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설정한 어떤 정상이 있기 때문에 그 정상을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피아노의 스피릿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 4~5년 동안 연주해야 될 스케줄이 꽉 차있을 정도로 살아 있습니다. 예술의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도 이런데, 하물며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광스러운 신분에 있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에 게을리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서 '성경 좀더 배워야겠는데, 훈련 좀 받아야 되겠는데, 지금껏 시간도 내지 못했구나. 지금까지 이런 부분에서 투자를 못했구나.' 하는 분이 있으면 그에게는 훈련 자체가 짧은 널빤지입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해 한해에는 내가 훈련이 부족하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좀더 배우길 바랍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십시오. 이럴 때 바로 되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5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주일마다 우리는 공동체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두 가지만 잘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나머지를 아무리 잘해도 한 가지가 빠지면, 그것 때문에 우리가 신앙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볼 수 있고,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5가지 중에서 여러분에게 가장 빠지고, 가장 짧은 널빤지가 어느 것인지 각자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겐 짧은 널빤지가 하나 있습니다. "옥 목사가 왜 짧은 게 있어. 다 똑같지." 아마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게 있는 이 짧은 것이 조금만 길어지면 '좀더 은혜가 넘치는 목사,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목사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계속 교회 안에서만 있고, 교회 일에 시달리다 보니 저는 안 믿는 사람을 못 만납니다. 아파트 같은 데서도 저만 보면 슬슬 다 피해버립니다. 가까이 가고 싶어도 도망가서 도무지 만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제 마음에 두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몇 있지만 만나서 좋은 교제를 나누고, 기회가 주어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1년에 그 가운데 한 분이라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열매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잘 안됩니다. 물론 저는 여러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들어 여러분의 입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는 일에 부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저도 나가서 실제로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잘 안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대로 두면 이것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성령 충만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분이 모자랍니까? 해답을 얻었으면 묻어버리지 말고 꽉 쥐어 금년 한해의 기도 제목으로 삼아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그 짧은 것을 키울 수 있습니다. 키우는 것만큼 우리의 영혼은 풍성해집니다. 능력이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흘러 넘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격과 삶이 건강해질 것입니다.
* 기도: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좀더 풍성한 신앙생활, 영력이 넘치는 신앙생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처럼 예배와 전도와 교제와 봉사와 훈련에 전심을 다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짧은 널빤지가 무엇인지 잘 찾아서 금년 한해는 그것을 좀더 높게, 길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옥한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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