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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정원 목사............... 조회 수 2972 추천 수 0 2011.06.15 10: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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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jpg[나는 할 수 없어요. 주님이 해주세요..]

[나는 사랑할 수 없어요. 주님이 사랑해주세요]

이러한 고백들을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이나 글에서 자주 하는 표현들이죠.

 

이러한 고백들은 진리의 일면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고 승리할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오직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히 옳은 것이고 진리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거에요.

 

하지만 이러한 고백들은 약점도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주님께 넘기고 책임을 미루어버리는 면도 있을 수 있는 거에요.

예를 들면 자신이 믿음으로 용서를 시인하고 믿음으로 선언해야 할 것을 [저는 못해요. 어떻게 제 힘으로 용서가 되겠어요. 주님이 해 주시겠죠..] 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러한 것은 말씀의 진리를 제대로 적용한 것이 아니겠지요.

 

생각해보세요. 주님께서 요단강을 건너라고 하는데 우리가 [오, 주님.. 저는 할 수 없어요. 주님이 요단강을 대신 건너가주세요] 라고 한다든지, 여리고성을 돌라고 하시는데 [오, 주님.. 저는 돌 수 없어요. 저는 빈혈이 좀 있어서 현기증이 나거든요. 주님께서 돌아주세요] 한다면,

여리고성을 향해서 외치라고 하시는데 [오, 주님. 저는 할 수 없어요. 의사선생님이 저의 성대에 문제가 생겼다고 성대 결절이 오지 않도록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하셨거든요. 주님이 대신 외쳐주세요.]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분명히 우리가 주님을 믿으므로 우리가 행하고 시인하고 움직여야 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광야를 거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아갔지요.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영적 발전 단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해요.

 

애굽 상태.. 이것은 육신적인 수준과 상태를 말합니다. 육신, 겉사람의 마음과 의식으로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때지요. 광야 상태.. 이것은 육신이 죽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이며 상태입니다.

 

가나안 상태.. 이것은 어느 정도 육신, 겉사람의 죽음과 처리가 이루어져서 영, 속사람으로 살며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않고 약속의 말씀으로 살며 천국의 실제를 누리고 죄에서 해방과 승리의 삶을 맛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죠.

 

애굽으로 표현되는 육신의 상태에서는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 감각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삽니다. 이 수준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고백은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이런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고, 긍정적인 사고..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지요. 아직 겉사람의 죽음과 죄성,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마냥 낙관적인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애굽의 왕자로 있던 모세의 의식이 이런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으면서 애굽의 모든 학술을 배웠고 전쟁에도 공을 세웠고 모든 능함이 가득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는 자기 힘으로 동족을 돕고 구원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나는 할 수 있다] 의 상태에 있었지요.

 

영적 발전단계에서 다음 단계, 광야로 가면 그 자신감들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온갖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마음에 온갖 상상을 동원해서 행복과 좋은 세상을 창조하려고 해도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절망의 고백이 나오지요. [나는 할 수 없다]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광야로 도망하며 처절한 절망의 나락에 빠졌고 모든 꿈과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아무 것도 못한다] 이 의식 수준은 첫 번째 의식과 고백보다는 조금 나아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임하기 위한 준비의 단계입니다. 탕자가 집안에 있는 상태가 첫 번째 애굽의 상태였다면, 처절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고 집에 돌아오는 과정은 두 번째의 의식 과정,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구나.. 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 번째의 의식 수준, 잔치의 풍성함을 맛보기 전에 경험해야 하는 단계이죠.

 

누구나 인생의 발전 단계에서 이 광야의 과정, 절망과 실패의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광야의 단계에서는 믿었던 모든 것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무너지게 되지요. 사랑하던 이에게, 믿었던 것들, 좋아했던 것들,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신에게 속고 실망하고.. 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이것은 보이는 것, 물질세계의 모든 것들이 그림자이며 허상임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누구나 어릴 때에는 애굽에 있지만 조금 자라고 섭리의 시간이 오면 광야의 허망함에서 허무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실제적으로 영이 깨어나며 하나님의 실제가 가까이 오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이유는 광야에서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오래 있어서 애굽의 때가 벗겨지지 않고 애굽의 사상과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그 때를 벗기기 위해서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아직도 자기 겉사람에 희망이 있는 줄로 알고 낙관을 가지고 자아를 붙들고 생명이신 주를 붙잡지 않으니 그 육신의 모든 때가 벗겨지고 자아의 모든 희망이 소멸되어 죽음에 이르도록 광야의 십자가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애굽 탈출의 근본 목적은 가나안의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잘났다]도 웃기는 거지만, [흑흑.. 나는 못해요. 저는 할 수 없어요.. 저는 죄인이에요.. 인생은 고통이에요..] 하는 것도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영광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할 수 있다]도 틀렸고, [저는 못해요]도 틀렸다면 정답은 무엇입니까? 가나안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울의 고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어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하는 말씀이죠.

 

거기에는 [할 수 있다]는 고백이 들어가지요. 그런데 거기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즉 능력의 근원에 대한 고백이 들어가요.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없지만, 그분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내가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무능하고 우리는 죄인이고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 안에서 운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을 믿을 때. 신뢰할 때, 고백할 때.. 우리 안에서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거에요..

 

모세도 처음 40년 동안에는 [나는 할 수 있다]고 설치다가 망했고, 그 다음 40년 동안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하면서 눌려 살았고, 마지막 40년은 [나는 할 수 없지만, 나는 하나님과 함께 간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 하면서 놀라운 사역을 이루었지요.

 

애굽 신앙을 [창조신앙] 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금 나쁘게 표현하자면 [기복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것을 나쁘게 보는 이들도 있는데 저는 기복신앙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복 받기를 원하지 저주를 받으려고 믿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애굽, 육신의 차원에 있을 때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차원의 복, 조금 낮은 차원의 복을 구하게 되어요. 더 풍성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근원적인 보화를 볼 수 있는 눈이 아직은 없기 때문에 그렇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린 것이지 악한 것은 아닙니다. 어린 것은 자라면 되지요. 어린 아이가 구구단을 못 외운다고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잘 사랑하고 돌보아주면 어린 아이는 자라게 되고 그러면 차츰 장난감을 버리고 좀 더 재미있는 것을 찾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억지로 빼앗고 눈을 부라리면서 학습지를 암기하라고 할 필요는 없어요. 영성이든 무엇이든 억지로 하지 말고 수준에 맞는 눈높이 교육이 좋아요.

 

광야 신앙을 [십자가 신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의 중심은 자기 부인입니다. 십자가의 놀라운 역사를 모르고 이것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자칫 잘못하면 창백하고 메마르고 초췌한 신앙에 머물러 있을 수 있어요.

 

못한다. 힘들다. 죽겠다.. 하면서 억지로 간신히 인내를 해가면서 주님 오실 날만 기다리고 죄책과 눌림에 빠져서 피곤하고 힘든 삶을 지탱해갈 수도 있어요.

 

자기의 사망성에 대해서, 육체의 사망성에 대해서 빨리 이해할수록 십자가를 빨리 적용하게 되고 십자가의 경험이 곧 천국의 경험인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어서 그 실제적인 죽음의 역사, 심장의 죽음과 몸의 죽음 경험을 구하게 되죠. 이해와 경험이 빠르면 빠르게 이 단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가나안 신앙을 [부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에는 누림이 있고 해방이 있고 천국의 열매가 있어요. 천국이 사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누리는 시기이죠. 우리의 목표는 바로 이 지점이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장소도 바로 이곳입니다.

 

광야에는 오래 있을 필요가 없는 거에요. 물리적으로 2주일이면 가는 곳을 이스라엘 백성이 고집을 부려서 40년 평생을 살게 되었는데, 우리 인생도 한 평생을 광야에서 보내서는 안 됩니다.

 

잠시의 공부와 훈련 후에는 많은 시간들을 자유함과 성취의 공간에서 보내야 해요. 그것이 가나안입니다. 주님은 기쁨과 사랑과 평화와 승리가 가득한 가나안의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가나안의 삶을 지향해야 하며 가나안의 고백을 지향해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하며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것은 풍성한 삶과 승리하는 삶을 위한 중요한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죄인이다.] [나는 쓰레기다.] 이런 고백은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죄인이다. 주님이 그 피로 나를 사해주셨고 눈보다 희게 만들어주셨다] [나는 쓰레기지만 주님은 나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내 안에 거하신다] 이런 고백으로 나아가야 해요.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은 거기서 끝이 나서는 안 되고 나의 부족함을 고백함으로, 내가 혼자 살 수 없으며 오직 주님이 필요하며 주님을 갈망하는 고백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고백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어요. 나는 못해요. 나는 부족해요] 가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나는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백해야 해요.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부족한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온전하신 분,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운행하시는 사랑과 권능이 가득하신 분을 바라보며 우리의 시선을 그분께 맞추어야 하는 것이에요.

 

기억하세요.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세요. 우리가 움직일 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분도 움직이시죠. 우리가 지하철을 타면 그분도 지하철에 같이 타시는 거에요.

 

우리 연약한 육체 가운데 무한하신 그분이 거하십니다. 우리는 믿음과 의식을 따라 그분을 제한할 수도 있고 또한 무한하고 풍성하신 그분의 역사를 보고 경험할 수도 있어요.

 

오늘도 내일도 우리 안에서 그분의 운행하심과 역사하심을 믿으세요. 그리고 고백하세요. 날마다 이것이 습관이 될 때 우리는 더 많은 변화, 승리 자유, 열매.. 천국에서 오는 더 많은 은총들을 더욱 더 누려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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