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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기독교가 실상이다

정원 목사............... 조회 수 1641 추천 수 0 2011.06.15 10: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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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jpg머리의 기독교는 실상이 아니에요. 성경의 말씀이 머리에만 가득하고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허상이에요. 모든 열매는 심장에서 와요. 내면에서 와요. 가슴에서 오는 것이죠.

 

머리는 물질적인 영역과 관련된 거예요. 머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인식하는 존재죠. 머리의 영역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실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뉴스에 민감하고 세상의 정보에 민감하고 보이는 것에 민감한 것이 머리의 성향이죠.

 

머리는 편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복잡하지만 유용한 기구일 뿐 실제의 내가 아닙니다. 내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죠. 몸도 나의 실제가 아니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일 뿐이에요. 머리는 이 몸이 실제의 나라고 착각하는, 매트릭스에 속고 있는 안타까운 존재에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머리의 기능은 많이 제한되었지요.

우리는 이 머리를 그 기능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이 머리에 속고 있어요.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의 정보와 의견에 끌려가는 것이죠.

 

머리는 청지기일 뿐인데, 얘가 지금 주인 노릇을 하고 있어요. 하긴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그랬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생명나무인 주님을 먹고 마셨으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해요. 더 이상 머리가 혼자서 주인이 되게 해서는 안돼요. 머리는 주님께 굴복되어야 해요.

 

실제의 나는 영혼, 속사람, 심령이에요. 물질적인 육체가 내가 아니고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내면에 있는 영혼이 우리 자신이죠.

언젠가 우리는 겉사람의 몸과 겉사람의 의식을 벗고 속사람으로, 본질적인 생명으로 우리의 본향을 찾아갈 거에요. 구원받고 하늘의 본향에 주소가 있는 사람들은 그 시간을 몹시 기다리겠죠.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우리는 실제의 나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해요. 몸이 나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머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의식의 허망함에서 벗어나야 해요.

 

물질적인 의식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머리는 본질을 보지 못해요. 껍데기, 외형을 인식할 뿐이죠.

그래서 이 외형의 기독교, 머리의 기독교는 외적으로 풍성하면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요. 교회 건물을 크게 짓고 헌금이 많이 모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것을 부흥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흥이란 천국이 이 땅에 임하는 것이에요.


 

생명이란, 부흥이란 항상 그 열매를 통해서 증거되죠. 천국의 향취, 천국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것이 부흥이에요. 그리스도의 마음이 임하고 천국의 기쁨이 임하고 천국의 빛과 사랑.. 그것이 넘치는 것이 부흥이에요.

 

머리는 바깥을 향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머리는 내적인 공간이 아니죠. 머리에는 많은 것을 담아도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어요. 머리에 많은 말씀이 이해되고 저장되어 있어도 그것은 열매를 맺을 수 없어요. 그것은 가슴으로 내려와야 해요. 오직 가슴에 임하는 말씀이 열매를 맺게 되어요.

 

주님은 말씀하셨어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집 주인이 문을 닫은 후에 너희가 두드리면서 열어달라고 할 때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그 때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다고 하겠지만,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자신이 주님을 잘 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수도 있어요. 만약 주님이 그들을 모른다고 대답하시면 그것은 정말 비참한 일이 되겠죠.

 

그렇다면 내가 착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신이 맺고 있는 열매를 보면 돼요. 내게서 주님의 열매가 나타나면 나는 주님을 조금 알고 있는 것이고 나에게서 자신의 열매만 나타난다면 나는 주님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죠.

 

그들은 항의해요. 주님.. 길거리에서 저희를 가르치지 않으셨냐고.. 왜 모른 척 하시느냐고 따지죠.

길거리는 공개적인 공간이에요. 이것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죠.

길가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해요. 길가에 뿌린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죠. 길가에서, 시장에서 바리새인들이 긴 옷을 입고 기도했지만 그 기도에는 열매가 없어요.

 

길가는 공개된 공간이고 사람들이 오고 가는 복잡한 공간이에요. 길가에서 기도할 때는 사람을 의식하게 되죠. ‘아.. 내 기도가 경건하게 보일까? 오늘 이 기도가 은혜를 끼쳤을까?’하는 식으로 생각이 복잡해져요. 그런 외적인 기도들은 하나님께 이르지 못해요.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죠.

 

길가는 지나가는 곳이지 안식하는 곳이 아니에요. 길가는 교제하는 곳이 아니에요. 길가는 쉴 수 있는 곳도 아니죠. 길에서 잠을 잘 수도 없잖아요? 길에서 자면 그건 집이 없는 노숙자겠죠.

그처럼 길가는 개방된 곳이므로 사람들의 눈이 많아요. 사람의 눈이 많은 곳에서는 자신의 속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고 외식하기 쉬운 상태가 되죠. 그러니 길가는 기도하는 장소로는 적절한 곳이 아니에요. 길가에서 기도하는 것은 외적인 기독교를 보여주는 것이죠.

 

공적인 공간에는 열매가 없어요.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의 장소는 골방이에요. 거기는 주님과 자기 밖에 아무도 없죠. 남이 내 기도를 들을까 신경 쓰지 않고 회개기도든지, 뭐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골방기도와 같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이고 은밀한 기도에 주님이 가까이 오세요. 그렇게 주님이 오시면 응답이 있고 열매가 생기죠. 문제에, 삶에, 인격에.. 모든 것에 응답과 변화와 열매가 생겨요.


 

머리는 공적인 영역이에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이죠. 가슴은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사적인 공간이에요. 그러므로 머리에 말씀이 가득하고 가슴에는 말씀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면 그것은 주님께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의 선언을 받는 상태와 같아요. 가슴에 임하지 않은 말씀은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으니까요.

 

삭개오가 나무 위에서 내려와 주님을 자기 집에 영접한 것처럼 우리의 의식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해요. 그래야 실제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교제할 수 있어요.

 

머리는 남자를 의미하고 심장은 여자를 의미해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지만 남자의 심장은 여성이에요. 이것은 누가 우월한 가의 문제가 아니고 조화의 문제에요. 맡겨진 영역이 다른 것이죠. 남자는 외적인 질서를 맡았고 여자는 생명과 열매의 책임을 맡았어요.

 

머리가 망가지면 그래도 뇌사상태이기는 하지만 살아는 있어요. 그러나 심장이 망가지면 즉시로 죽어요. 바로 몸이 썩기 시작하죠. 그처럼 생명은 여자에게 있고 심장에 있어요.

남자를 무시하는 여자는 외적 질서를 무시함으로 불안하고 공허하고 내적인 만족이 없고 생기와 활력과 행복을 잃죠. 사나와지고 허전해지요.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는 불행하고 비참하고 기쁨이 없고 그 생명이 길지 않고 약해져요.

 

여자는 남자를 존경할 때 행복해지고 남자는 여자를 자기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할 때 행복해져요. 그러므로 가장 불행한 여자는 존경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여자에요. 자기 남편이 마냥 한심하게 보이는 여자이죠.

가장 불행한 남자는 자기 아내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죠. 그게 바로 지옥과 같은 삶을 불러와요.

 

열매는 남자가 직접 맺을 수 없어요. 여자를 통해서만 맺을 수 있죠. 남자는 스스로 아기를 낳을 수 없어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씨를 여자에게 주어야 해요. 그럴 때 여자가 아이를 낳지요.

마찬가지로 머리는 말씀을 많이 보고 읽고 암송해도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어요. 말씀은 머리가 먹는 것이 아니고 심령이 먹는 거예요. 그러므로 심장에게 전달해주어야 해요.

 

심장이 말씀을 받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아파하는지.. 그 반응을 살펴야 해요. 반응에 따라서 조심스럽게 말씀을 먹여야 해요. 그 소화력과 소화 상태에 따라서 적절하게 음식을 주어야 해요. 심령은 위장과도 같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소화할 수 없어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심장으로 말씀을 먹지 않고 머리로 먹으려고 애써요. 그래서 머리는 꽉 차 있고 심령은 텅 비어 있어요. 가슴이 공허하고 마음은 쫓기며 행복하지 않고 걱정 근심이 많고 툭하면 화가 나죠. 자기가 깨달은 것, 아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서 안달이 안 분들은 많지만 말씀의 풍성한 열매, 그 충만함을 경험하는 이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아요.

 

심장이, 우리의 심령, 우리의 영혼이 말씀을 먹게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요. 천국의 풍성함들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죠. 말씀에는 권세가 있고 능력이 나타나고 치유가 있고 변화를 일으키고 천국의 많은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요.

 

말씀에 대한 많은 복잡한 설명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말씀을 먹음을 통해서.. 많은 역사들이 이루어져요. 용서와 회복과 치유와 기쁨과 사랑과..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요.

우리는 머리의 기독교, 겉사람의 기독교에서 심장의 기독교, 속사람의 기독교로 들어가야 해요. 그것은 외부적인 복이 아니라 내면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천국의 생명이에요.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죠. 가치관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 사람의 변화죠.

 

세상에 속한 사람이 천국인으로 바뀌는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사나운 사람들이 온유해지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섬기는 것으로 기쁨을 삼게 되어요. 거칠은 언어 행동의 파장들이 부드럽고 아름답고 향기가 가득한 것으로 조금씩 달라져가게 되어요. 머리는 날카롭고 차갑고 거칠은 세계지만 심장은 아름답고 온유하고 사랑스럽고 천국의 기쁨이 가득한 세계에요.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머리의 기독교에 속해 있어요. 그래서 머리속에 많은 관념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심령은 굶주리고 메말라서 해골과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므로 항상 마음이 급하고 쫓기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두렵고 근심 걱정이 많고 온갖 눌림 속에서 사는 것이죠.

 

심령을 일으켜야 해요. 심장의 기독교를 경험해야 해요. 그 배에서 솟아오르는 생수를 맛보아야 해요. 말씀이 심령에 심겨져야 해요.

보이는 모든 것들은 실상이 아니에요. 우리의 문제는 환경이 아니고 가난이 아니에요. 우리의 문제는 심령이 너무 배고프고 굶주린 상태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육을 채우고 머리를 채우는 것에 열심이었지만 심령을 채우는 것에는 힘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심령을 채워야 해요.

심령에 말씀이 채워질 때, 심령에 주의 임재가 가득해질 때 우리의 변화는 시작되어요. 하늘의 기쁨이 임하고 환경을 초월하는 내면의 평화를 알게 되어요. 온갖 공격과 비난을 받아도 기쁨과 사랑을 잃지 않고 자유함을 누리게 되어요. 그 모든 것들이 심령에서 일어나요.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신자가 되어야 해요. 그 모든 열매는 심령에서 나와요.

심령이 일어나면 열매를 맺게 되어요. 아가는 배에서 나오지만 성령의 열매는 심령에서,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죠.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이런 것들은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심령을 일으키세요. 당신의 심령에 말씀이 가득하게 하세요. 당신의 심령에 마음을 집중하세요. 심령이 일어나고 충만 되기를 구하고 사모하세요.

 

진정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신자가 되기를 갈망하고 구하세요. 심령이 일어나면 누구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여인이 씨를 받고 잉태할 때 속에서 움직이는 생명의 약동이 실제적인 것처럼, 심령에 씨앗이 떨어지면 실제적으로 그 영의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어요.

 

진정 구하는 자에게, 진정 사모하는 자에게 주님은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심령을 채우시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를 주실 거예요. 그러한 아름다움과 충만함을 위해서, 심령의 일어남을 위해서.. 우리 모두 날마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사모하며 나아가십시다.

 

오, 주님.. 우리의 심령에 충만하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열매, 천국의 열매를 맺게 해주옵소서..

항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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