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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여러분들, 모두 평안하시지요?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들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최근에 저에게 영적 전쟁에서의 도움을 원하는 요청이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악한 영들에게 시달리며 각종 고통의 증상을 호소하면서 간절히 한번만 저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부터 이러한 요청이 많이 있었지만 최근에 다음 카페로 이전하면서부터는 정말 많군요.
그동안 너무나 고통을 겪었으며 이제 남은 소망은 목사님을 만나고 기도를 받는 것 외에는 없다는 분들, 지금 당장 비행기타고 가겠다는 분들, 대적기도 책을 읽었지만 직접 기도 받고 싶다는 분들, 제발 살려달라는 분들.. 급하다는 분들, 어떤 축사 사역자도 자기를 고치지 못했다는 분들, 지금 응급상황이라는 분들..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역이 해야할 것들이 참 많이 있고 지금 현재 상황에서도 써야할 책들이 많이 밀려 있는 상황입니다. 또 출판사는 저절로 유지되어 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해야 할 많은 작업들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전업 목사의 일을 하면서 영혼을 돕는 목양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는 평신도로서 저의 직업에 속한 일을 하면서 간간이 시간을 내어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시간에 쫓기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최대한 메일 등으로 열심히 답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고, 메일을 통해서 많은 증상들이 개선되었다는 답변들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메일에 응답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대적기도 책을 쓴 것은 신자들에게 영적인 전쟁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넓혀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권세를 발견하고 스스로 영을 분별하고 영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얻고 사용하여 자유함을 얻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인데 적지 않은 분들이 스스로 싸우기 보다는 사역자의 능력과 기도로 자유를 얻게 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의 상황을 보면 더러 가벼운 내용들도 있지만 대부분 심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분들의 요청들이고 그래서 한통 한통 답을 하기 위해서는 집중과 기도와 전쟁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이 아프기도 하지만 점점 지쳐가게 되고 또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분들, 악한 영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회복과 자유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요령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영적 전쟁이란 영력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식, 실제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와 많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이 대부분 저를 직접 만나서 기도를 받고 악한 영이 쫓겨나가고 단번에 자유를 얻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개인적으로 돕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렇게 돕는다고 해도 실제적으로는 유익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을 이해해야 합니다. 설사 악한 세력이 능력 있는 사역자의 사역을 통하여 사라졌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그는 그 후로 완전한 자유의 삶을 살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역자는 잠시 그를 만나겠지만 그의 집까지 따라가서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다시 혼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될 때 그는 전에 가지고 있었던 영보다 더 강한 영이 공격해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신의 영이 깨닫고 정화되고 강해지지 않고 외부 사역자의 힘으로 해방을 얻었을 때 그 해방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계속 사역자를 찾아가야 하며 개인적 자유의 가능성은 더 멀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에서의 자유가 아니고 영적 전쟁을 이해하고 영적 원리를 이해하여 생활에 적용하고 삶의 패턴, 신앙의 패턴, 의식, 사고의 패턴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외부의 기도는 아무리 받아보아도 별로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2. 악한 영은 쫓겨나간 후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혹은 쫓겨나가지 않고 속에 숨어서 없는 척 하고 숨을 죽이고 있다가 그 사람이 혼자 있게 되면 마구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그 비슷한 일을 더러 겪곤 하죠. 가전제품에 문제가 생겨서 A/S를 요청했는데 막상 출장기사가 오면 멀쩡한 겁니다. 그런데 기사님이 가고 나면 다시 문제를 일으키는 거죠.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이 경우에 왜 악한 영은 근본적으로 처리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악한 영이 이유 없이 숨어서 그 사람을 공격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단순한 영적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회복이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영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영적 근원을 모르고 악한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건 미신이야..] 하는 상태라면 악한 영은 그 사람을 마음 놓고 유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영적 지식과 실제를 알게 되고 그 영적 전쟁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의 능력에 대해서 알게 되고 괴롭힘의 실체를 깨닫게 되면 그 악한 영은 대적하는 순간에 바로 초토화되고 소멸됩니다. 그는 아무런 권리가 없이 숨어서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밝혀지는 순간 바로 사라집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도 알고 악령에 대해서도 알고 그래서 계속적으로 대적을 하는 데에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 전쟁은 대부분 한 순간에 끝나지 않고 서서히 좋아지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서서히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대적할 때만, 그 때만 잠시 효과가 있고 시간이 가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는 계속 기계적으로만 대적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근원적인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악한 영이 계속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자기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러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자, 문제는 무엇일까요?
3. 여러 번 대적기도를 했는데도 효과가 없다면 더 이상 그런 식의 기도를 계속 하지 말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악한 영들은 몇 번 대적하면 끝이 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효과가 없다면 그것은 그 악한 영들을 유인하는 요소가 그 사람의 안에 있습니다. 악한 영들의 먹이감이 그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자기의 모든 고통의 원인은 악령들이며 그것들이 나가기만 하면 자기 인생이 잘 풀릴 거라고 여깁니다. 우연히 자기가 어느 순간에 악한 영들이 들어왔는데 그것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장례식 장에 갔다가 그 때부터 이상한 증상이 시작되었고 악한 영으로부터 고통을 받기 시작합니다. 어떤 분은 제사를 드리는데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참석했다가 그 이후부터 지옥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가위 눌리고, 귀신의 음성이 들리고, 악몽에 시달리고.. 온 몸이 무기력하고 아프고.. 또 어떤 분은 우연한 어떤 사건들을 통해서 그런 증상들이 시작됩니다.
이들은 후회합니다. 아.. 내가 거기에 왜 갔을까.. 아.. 내가 그것을 왜 했을까..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니 이놈들만 처리해버리면 나는 다시 괜찮을 것이다.. 라고 후회합니다.
4. 하지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암의 증상이 발견되었을 때 그 증상이 발견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암세포는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와 같이 악한 영들은 아무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여건과 파장이 맞아야 들어올 수 있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 결정적으로 악한 영에게 시달리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전부터 조금씩 영적인 파장이 어두움의 영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가고 있었고 그 분량이 가득 차게 되었을 때 그 사건을 통해서 악한 영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그러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미 악한 영과 동조되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제사에 가지 않았어도, 더러운 공간에 가지 않았어도, 장례식에 가지 않고 중환자실에 가지 않았어도.. 다른 경로를 통해서 악한 영의 침입을 받았을 것입니다. 드라마를 통해서도, 영화를 통해서도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도.. 아니면 심하게 꾸짖는 상사나 부모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그는 피해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영의 상태가 어느 수준까지 어두워지게 되면 그 사람은 악한 영들의 세계와 동조하기 때문에 그 영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입니다.
5. 악한 영이 들어와서 괴롭히고 공격을 한다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들어온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제거해야 합니다. 단순히 힘으로 쫓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이유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쫓아내기만 했다면, 본인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그들은 당연히 계속적인 공격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도둑이 망가진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는데 도둑을 쫓아내기만 하고 창문을 수리하지 않은 것과 같아서 다시 도둑이 침입을 하게 됩니다.
6. 악한 영들은 비유하자면 꽃의 향기를 맡고 날아오는 나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좋은 향기를 풍기면 좋은 나비가 오고 나쁜 향기를 풍기면 나쁜 나비가 온다고, 그렇게 이해하시면 쉬울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쓰레기에서 풍기는 악취를 기뻐해서 다가오는 파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악취를 제거하지 않고, 쓰레기를 제거하지 않고 사역자의 일방적인 능력과 권세로 파리를 쫓아내면 모든 문제가 끝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어떤 것인지를 분별하고 그 냄새를 바꾸려고 하는 방향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받기만 원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7. 사람들은 오래 동안 살아오면서 자기가 형성한 생각, 습관, 대인관계들이 있습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자신들이 형성해왔던 영적 유산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의 침입과 공격은 그것들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에게 틈을 주는 자신의 문제점과 패턴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오래 동안 형성되어온 자기 삶의 스타일을 바꾸어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년, 또는 수 십 년간 형성되어온 자기의 문제를 잠시의 기도로 한 번에 끝내려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방향 전환이며 그 후에는 꾸준한 적용을 통해서 영혼의 정화와 성장을 구해야 합니다.
8. 암에 걸려서 위급한 상태라면 치유는 그저 병원에 맡기고 생활 패턴을 전과 동일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수술하면 다 낫겠지.. 병원에서 알아서 하겠지..]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치유의 방식을 찾아야 하고 의료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또한 자신도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하여 돌아보아야 하며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찾아내고 음식조절이나 운동이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삶의 패턴에 변화를 주어서 자신도 치유에 동참해야 합니다. 약에만 의존하고 외적인 처지에만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치유에 임하면 오히려 병에 걸린 것이 인생의 큰 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태하고 둔감하게 살아온 삶을 중한 병에 걸린 것을 통해서 오히려 새롭게 되고 삶의 사소한 기쁨의 보람을 느끼며 아름다운 새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9. 악한 영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단순히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빨리 자유롭고 싶다..] 하는 마음 뿐이라면 오히려 고통은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의미없이 다가오는 고통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복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런 고통이나 증상이 아니었으면 깨닫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을 통해서 충분히 배우도록 하자. 그리고 나를 개선해보도록 하자.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게 하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오히려 영적 성장과 풍성함을 누리는 데에 도움이 되며 고통에서도 빨리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0. 악한 영들은 또한 애완용 강아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애완용 강아지가 자기 스스로 밥을 해 먹고 먹이를 찾아 먹습니까? 아닙니다. 주인이 밥을 해서 먹입니다. 그와 같이 악한 영들에게 밥을 해서 먹이는 것은 본인 자신입니다. 밥을 주지 않으면 애완용 강아지는 굶어죽게 됩니다. 악한 영들도 먹을 것이 없으므로 할 수 없기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악한 영들에게 계속하여 밥을 주면서 제발. 제발 이 강아지를 쫓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밥을 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악한 영들은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인간에게서 양식을 취합니다. 인간의 반응을 통해서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악한 영이 좋아하는 것이며 악한 영에게 밥을 주는 것이며 악한 영이 나가지 않고 머무르게 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함의 세계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11. 악한 영들은 영입니다. 그런데 이 영이라는 존재는 혼, 즉 정신과 서로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의식, 생각, 감정은 영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이 좋아하는 생각, 감정, 의식이 있습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생각, 감정, 의식이 있습니다. 벌레들이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것처럼 그들을 자극하는 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12. 악한 영들이 가장 좋아하는 의식은 자학, 또는 자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책감은 악한 영들이 아주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자세하게 쓰려면 또 한권의 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언급을 하겠습니다.
영적 성장에 있어서 죄책은 필요합니다. 건강한 죄책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일으키는 죄책은 우리를 회개하게 하고 성결을 사모하게 합니다. 성령의 계시는 우리의 깊은 속을 찌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날카롭지만 동시에 아주 후련한 것입니다.
성령의 계시로 인한 죄책과 회개는 사람의 영혼을 아름답고 순결하게 만듭니다. 회개후의 기쁨과 영광과 후련함은 천국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회개의 영은 오늘날 아주 보기 드뭅니다. 정말 많은 경우가 악한 영을 기쁘게 하는 자학과 자책의 영입니다. 이 죄책감이 악한 영들에게 권세를 줍니다.
13. 회개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하고 죄를 시인하고 주님께 나아갈 때 그것은 행복을 줍니다.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아주 처절하게 회개를 해야 제대로 된 회개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슴을 찢고 울부짖으며 온 난리를 쳐야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한 것이지 우리가 얼마큼 악을 쓰고 목이 터지느냐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긴장이며 자기의이며 인간의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조건 없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자꾸 어떤 조건을 만들어서 자기를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회개의 영이 강하게 역사함으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간절한 회개가 터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억지로 그런 식으로 짜내는 회개는 오히려 영이 눌리게 됩니다. 영의 역사는 무엇이든지 자연스럽습니다. 억지로 짜내면 영혼이 파리해집니다.
그 결과 회개하기 전보다 영이 더 침체가 됩니다. 지치고 기도도 하기 싫고 나 같은 죄인이 기도하면 뭐하나 살아서 뭐하나.. 하는 식으로 많이 떨어집니다. 슬퍼지고 우울해지고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합니다.
그런 상태를 은혜받은 것으로, 영적으로 깊은 상태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창백하고 우울하게 살면서 자신은 영적으로 아주 깊다고 여기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14. 천국은 우울하고 창백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지고 좁은 길을 가는 삶은 우울하고 힘든 삶이 아닙니다. 환경이 가난하든 몸이 아프든 거기에는 천국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의 세계, 영광의 세계를 아는 사람들이 적으니까 좁은 길이지 그 길은 고통의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죽지 못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거의 다 순교를 했는데 마지못해서, 죽지 못해서 할 수 없이 그 길을 갔는 줄 아십니까? 천만에요.. 제자들은 온갖 핍박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환경이 어떻든 그 길은 말로 측량할 수 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삶입니다.
15. 안타깝게도 오늘날 성령님이 주시는 회개의 영이 아닌 악한 영에 눌린 자책의 영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그것을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죄를 이기려고 버리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또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똑같은 죄를 가지고 회개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나중에는 마음 속 깊은 곳에 깊은 죄책이 생깁니다. [나 같이 더러운 것이 또 있을까..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이 사랑하실까..]
자책을 해결하기 위해 보상심리로 더 봉사에 힘쓰고 힘에 겨울 정도로 헌신하지만 깊은 마음 속의 죄책은 사라지지 않으며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죄책이 징벌의 영을 끌어당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고 자기의 깊은 속에 있는 의식이 끌어당기는 재앙입니다. 이들은 쉽게 질병에 감염이 되고 사고를 당하며 악한 영들에게 눌립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치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죄인이니 당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가 악한 영이 그 사람을 사로잡고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16. 세상에는 더러 양심이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밝히고 나쁜 짓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고 태연하고 뻔뻔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양심이 마비되어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서 악한 영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악령에게 눌리지는 않습니다. 죄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 양심이 예민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많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그 죄책감을 처리하기 전에는 그들은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17. 대체로 양심적인 사역자들은 죄책이 많습니다. 영의 흐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양심적이고 선비적인 스타일의 사역자들은 죄책이 많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고 깨끗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그 실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깊은 속에 좌절과 고통이 가득합니다.
이들은 말씀을 전할 때도 치는 설교를 많이 합니다. 무서운 표정으로 살벌한 태도로 죄에 대해서 무섭게 경고하고 치는 설교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것이 사람의 양심을 찔러서 회개의 영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는 사역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회개의 영은 주님이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사람이 흥분하고 무섭게 한다고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기도의 무릎이 성령의 감화를 일으키는 것이지 웅변하고 흥분해서 사람들이 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박수를 많이 쳐서 임하시는 것도 아니고 겁을 많이 주어서 임하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의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이라기보다는 실제로 단순히 화를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신자의 영을 눌리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지 아름답고 성결한 회개의 빛과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18.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피상적이고 기계적인 몇 가지 개념을 반복해서 주입받았을 뿐이며 말씀의 진리에 대한 인격적인 터치나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친밀한 교제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며 인격적이고 부드러운 깨우침을 받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므로 그 인격과 삶이 변화되지 않으며 많은 의무감을 가지고 있을 뿐 주님 안에서의 안식과 기쁨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의 영은 거칠고 사나우신 분이 아니고 아름답고 거룩하시며 정결함과 사랑스러움이 가득하신 분입니다. 주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은 회개든 무엇이든.. 거기에는 주님의 아름다우심이 나타납니다.
19. 주의 영이 흐를 때 사역자는 인간적으로 흥분하고 애쓰지 않아도, 아주 부드럽고 조용히 말해도 회중에는 정결한 회개의 영이 흐르게 됩니다. 포효하듯이 울고 소리를 쳐야 진정한 회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듯이 사역자의 깊은 심령 속에서 주의 영의 흐름이 있을 때 그것은 신자들의 깊은 심령에 거룩하고 달콤한 회개의 영이 흐르게 합니다.
20.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회개의 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책과 자학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징벌의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렴한 사역자일수록, 양심적인 사역자일수록 그러한 죄책이 많으며 적지 않은 경우 그들의 공격적인 메시지는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역자로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는 이중적인 위선자가 아닐까..] 하는 갈등과 고통이 그들의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자책의 영은 고스란히 신자들에게 전이됩니다. 사역자가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할 때 신자들 역시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됩니다.
21. 사역자 뿐 아니라 부모나 교사와 같이 가르치는 입장, 권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완벽주의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을 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자녀들의 의식은 억압되기 쉽습니다.
부모가 지적 수준이 높을 때, 도덕적인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신앙의 외적인 행위에 대한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그들은 그러한 자기의 기준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게 되고 다그치게 되며 부모라는 절대 권력 아래서 자녀들은 부모의 기준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영적으로 눌리게 됩니다. 자책에 빠지게 됩니다. 부모가 자신의 요구와 기준이 온전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만큼 자녀들은 깊은 자책에 빠지게 됩니다.
사역자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높은 기준을 신자들에게 강요할 때 사역자도 신자도 그것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죄책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부모들이 이룰 수 없는 기준을 자녀들에게 요구할 때 자녀들도 죄책에 빠지게 됩니다. 부모들이 세상에서의 성취를 위해서 학업 등을 위하여 지나치게 다그칠 때 그것도 자녀들의 영혼을 비참하게 억압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평생을 우울하고 어둡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항상 자책에 빠져 있기 때문에 징벌의 기운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러니 훌륭하고 탁월한 부모를 둔 자녀들, 기대치가 높은 부모를 둔 자녀들은 어떤 면에서 참으로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인생을 편안하게 누리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가 인생을 즐길 줄 모르기 때문에 자녀에게 즐거움을 가르칠 수가 없으니 계속 부담을 주고 요구를 하게 됩니다.
이들은 설사 외적인 목표, 예를 들어 명문대 입학과 같은.. 성공적으로 보이는 것을 성취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영혼이 깊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치유하지 않는 한 평생을 고통 속에서 많은 묶임의 증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교사들, 스승들이 이룰 수 없는 높은 기준을 강요할 때 제자들은 눌리거나 반항하게 됩니다.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들은 죄책감에 빠지게 되고 반항하는 제자들은 눌리지는 않지만 깊은 속에는 자신을 반항아로 스스로 낙인찍기 때문에 역시 어느 정도의 죄책을 가지게 되어 징벌의 기운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22. 마음이 선한 사람은 우울하고 창백하며 어둡고 피곤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양심과 선함이 자책을 일으키므로 깊은 마음속에서 스스로 처벌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이 마음 놓고 그들을 누르고 괴롭히게 됩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감염이나 사고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좀 더 높습니다.
영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영의 세계는 무엇이든지 이를 악물고 애를 쓰면 제대로 되는 것이 없으며 주님 안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누리다보면 많은 열매를 성취할 수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신자들이 자기를 학대하며 자책하고 자학하며 많은 재앙들을 스스로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3. 죄책감 후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이들은 마음 깊은 곳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책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좋은 것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낙천적으로 보이고 웃고 장난을 치고 즐겁게 지내는 것 같지만 깊은 속으로는 [나는 안 돼..]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대비합니다.
두려움은 강력한 믿음입니다. 그것은 재난과 징벌을 가져오는 믿음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항상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두려움을 대비하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 그 재난을 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도둑을 맞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 도둑을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열쇠를 바꾸고 보조키를 바꾸고 난리를 칠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유행하는 질병에 감염되면 어떡하나.. 생각하고 접종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온갖 난리를 칠수록 그 확률은 높아집니다.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대비하고 힘쓰는 이들은 실제로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그 의식 속의 두려움이 악한 영들, 나쁜 상황을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이며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며 주님의 보호하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나쁜 소문, 사람들의 어두운 말, 어두운 경험을 더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마음속에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을 때 거기에는 항상 나쁜 상황이 따라다니게 됩니다.
24. 사람의 안에 두려움이 있을 때 악한 영들은 그곳을 고향처럼 편안하게 느끼며 마음 놓고 활동을 하게 됩니다.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소한 증상이 있어도 그것에 질겁하고 놀랍니다. 악한 영들이 공격을 할 때 아주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놀랍니다.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은 대부분 자신이 얼마나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지 악한 영이 얼마나 강한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싶어 합니다. 수많은 귀신들의 음성이 들린다.. 혼자 있을 때 이놈이 성적으로 괴롭힌다.. 머리가 아프다. 온 몸에 전기가 흐른다.. 죽을 것 같다.. 온갖 증상을 나열하며 자기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25.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한 영의 공격 증상이든 무엇이든.. 나쁜 것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자세하게 묘사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대충.. 희미하게 표현하십시오. 오직 주님에 대해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선명하게 표현하십시오. 그럴 때 악의 세력은 약해지고 은혜의 세계는 확장됩니다.
간증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예전에 자신이 잘못한 죄에 대해서 쓸데없이 자세하게 설명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때의 감정까지 실어서, 죄를 짓게 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음란한 장면이나, 자신이 분노한 장면이나 파괴적인 장면을 흥분하면서 자세히 나열하고.. 그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옥을 그 공간에 심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는 실체입니다. 그것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한 것을 집중하지 말고 주님의 선하신 일,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간증하고 높이십시오. 그것이 간증입니다. 나의 잘하는 것도 드러내지 말고 못하는 것도 드러내고 자책하지 말고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시인하십시오. 악에 대해서 말해야 할 상황이 있다면 가급적 대략적으로 말하고 자세하고 선명하게 묘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항상 초점을 주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26. 이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악한 영이 공격할 때 절대로, 절대로 침착하십시오. 대수롭게 여기지 마십시오.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아이고, 큰일났다..] 하지 마십시오. [어떡해요. 오.. 제발... 주님.. 저는 못 해요.. 할 수 없어요. 주님.. 도와주세요..]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애처로운 기도는 비명과도 같아서 상황을 더 나쁘게 합니다. 그것은 신앙고백이 아니고 불신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악한 영의 힘을 강하게 합니다. 호들갑을 떨수록 마귀는 강해집니다. 그리고 주님을 부를 때 신뢰를 담아서 불러야합니다..[오.. 주님.. 흑흑..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이런 식의 하소연에는 믿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 수 없고 오히려 약탈하는 자들이 와서 고통을 주게 됩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비명소리, 한탄, 한숨, 비통한 고백, 하소연.. 이러한 것들이 악령을 키우는 것입니다.
27. 고통의 느낌을 무시하십시오. 귀신들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신자들이 귀신에게 경배하고 찬양을 하지 않는 한 귀신은 아무 힘도 없고 권리도 권세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들이 귀신에게 엎드려 절하고 높이고 밥을 주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위의 비통한 고백입니다.
[오.. 주님.. 제게 역사하는 귀신은 보통 강한 존재가 아니에요. 몸에 전기가.. 오..주님..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안 되요.. 오.. 하나님.. 마귀가 얼마나 센지.. 오.. 뭐라구요? 목사님.. 제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지 아세요? 제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뜨겁고.. 속에서 올라오고.. 제가 이런 상태에 있는데 믿음을 고백하라구요? 저를 모르셔서 그래요.. 제 상황을 모르셔서 그래요.. 오.. 주님.. 제발..]
28. 제발 믿으십시오. 마귀는 강하지 않습니다. 귀신은 강하지 않습니다. 귀신은 권세가 없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모든 권세를 폐하셨습니다. 그러니 당신만 그들을 높이지 않으면 됩니다. 고통을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다면 악령들을 높이고 격려해주는 것을 멈추셔야 합니다.
공격이 올 때 웃으십시오. [웃기는 놈들..] 하세요.. [네가 그러면 내가 속을 줄 아니? 겁낼줄 아니?] 하세요.. 그들은 순식간에 약해집니다.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왜냐구요? 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난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지금까지 잘 먹이다가 뭐하는 짓이지? 우린 이제 어떻게 살란 말이야?] 하면서 그들은 충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9. 당신은 지금 당신의 증상이 어떻든 그것을 무시해야 합니다. 말씀은 주님이 대가를 지불하셨고 이기셨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상태는 고통을 겪습니다. 지금의 현재 상태를 믿겠습니까? 아니면 말씀의 약속을 믿겠습니까? 증상이 사라진 후에 [오.. 감사합니다..] 하겠습니까? 아니면 아직 증상이 남아있지만 먼저 승리를 선언하고 [마귀야. 너는 끝났다] 선언하시겠습니까?
그들의 공격에 침착하게 있고 요동하지 않으면 그들은 곧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들은 풀이 죽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에너지가 떨어져가게 됩니다. 그들은 다른 직장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30. 악한 영을 끌어당기는 것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한이 없지만 이 기본적인 문제만 다루어도 많은 회복과 자유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자책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주님의 보혈을 믿어야 합니다. 갈보리 언덕, 그 십자가에서 나의 죄가 완전하게 씻겼음을 믿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아무 것도 더 보탤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이며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 완전한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누구나 알고 있는 복음입니다. 그런데 자꾸 여기다가 무엇을 보태려고 합니다. 자기의 행위를 자꾸 덧붙이려고 합니다.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합니다.
[주님.. 저는 저 세리와 다릅니다. 저에게는 은사가 있고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저는 어디서 제자훈련 받았고 영성훈련 받았고.. 어디서 무슨 체험을 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자꾸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자꾸 다른 것을 덧붙이고 사랑받을 조건을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에서 더 멀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그의 의를 우리가 값없이 감사함으로 받는 것을 원하시지 우리의 의를 덧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애를 쓰면 쓸수록 우리의 영은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31. 당신이 헌금을 100억을 했건 전도를 만 명을 했건 그것은 의가 되지 않습니다. 의로우심은 오직 그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옵니다. 행위란 우리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용서를 받아들인 후에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즐겁게 우리를 드리는 것이지 그것이 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버리는 헌신을 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할 것을 했을 뿐이라] 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가 되고 고통의 씨앗이 됩니다.
32. 완전한 용서와 완전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죄책에서,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울부짖고 가슴을 찢어도 그 행위가 죄를 없게 하지 않습니다. 손을 찍어버리고 눈을 빼버려도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사역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자신의 눈을 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스스로 애써도 죄를 이길 수 없고 주님을 붙들어야 해방이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33. 오늘날 적지 않은 사역자들이 구약과 신약을 혼동합니다. 그래서 이미 신약에 성취된 구약의 메시지를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역자가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안식일에.. 성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들어가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말씀을 읽으며 주일 성수를 어떻게 철저하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식일에 사사로운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그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아주 굳은 모습으로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을 잘 보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기도와 교제에 힘쓰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의 참 뜻은 외적인 행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을 먹고 마시고 누릴 때에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에 신실한 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며 누림과 해방이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구약의 모든 메시지는 신약의 빛으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살아계신 주님과 따뜻하고 아름답고 실제적인 교제를 누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문자 자체에 매달려서 메시지의 중심을 곡해하고 있으면 영에게 묶임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문자대로 하고 싶으면 그 안식일은 토요일을 말하는 것이니 토요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의 본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이 자유롭게 풀려나오는 것에 제한을 받습니다.
33. 죄책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불신과 같은 것이며 주님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이나 거짓말 같은 외적인 죄보다 좀 더 근원적으로 그의 영혼을 짓누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대가를 지불하셨는데 자꾸 인간이 더 지불하려고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자꾸 값싼 십자가, 값싼 은혜.. 하면서 무엇인가를 덧붙이려고 하는 것은 영혼을 억누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책을 일으킬 뿐입니다. 죄책감이 있는 곳에는 결코 죄에 대한 해방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통하고 가슴을 찢어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무리 자기를 죽이며 스스로 양을 잡고 소를 잡아서 희생제물을 드리려 해도 그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점 없고 흠 없는 어린 양의 제사만을 열납하십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복종시키는 것이지 우리 자신을 혐오하거나 학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위해서 우리가 주님 앞에 드려지는 것이지 창백하고 핏기없는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 자기부인이 아닙니다.
34.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와 완전한 사랑을 받아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안식하고 누려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깊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속에서 [설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나는 이렇게 못 됐는데..]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깊은 속에서 자신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마음에 부딪치지 않습니다. 자기의가 있고 자기 노력이 있고 자꾸 사랑받을 조건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만들지 못하니 죄송한 것입니다.
35. 탕자가 생각하기를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그건 너무 염치가 없는 일이야. 본전을 조금만 찾고 돌아가야지.. 노가다를 해서 종자돈을 만들자.. 그래서 한탕만 하자.. 나아질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너무 아버지 볼 낯이 없잖아..] 하면 과연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노력과 조건을 만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조건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합니다. 전도를 1000명을 해서.. 금식을 해서.. 무엇인가 조건을 만들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좀 더 나은 의를 만들려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조건은 완전하지 않으므로 항상 왔다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든 의는 낡은 누더기와 같아서 우리 몸의 수치를 가리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36.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죽었다 깨도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안식을 알게 됩니다. 피곤이 사라집니다. 긴장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인식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정말 좋아하십니다. 보고 싶어하십니다. 아름답게 보십니다. 사랑스럽게 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겠어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얼마나 못되었는데..] 하시겠어요? 그러면 계속 자책하면서 악한 영들에게 시달리면서 평생 마음 고생하시면서 사시겠습니까?
보상심리로 전 재산 헌납하고 선교를 하고 가장 힘든 일에 자원하고.. 자기 학대를 하고.. 그렇게 하시면서 사시겠습니까? 봉사란, 사역이란.. 주님의 은혜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죄책의 보상이라는 심리에 의한 사역과 봉사는 열매도 없으며 고생만 할 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37. 제발 죄책을 버리십시오. 자기 형벌과 두려움을 버리십시오. 그래야 해방이 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야 해방이 옵니다.
우리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지금 이즈러진 모습이 당신의 본질입니까? 자.. 어떤 사람이 걷다가 똥통에 발이 미끄러졌습니다. 그래서 한쪽 발에 똥이 묻었습니다. 똥 묻은 발의 모습.. 그것은 당신의 본질입니까? 본 모습입니까? 아니면 원래 모습이 아니고 잠간 왜곡된 겁니까?
38. 우리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 안에서 거룩에 대한 열망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 모습입니다.
당신은 교만하고 음란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속이 좁고.. 그것이 당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그러한 상태를 진정 원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죄를 즐거워하십니까? 음란을 사모하고 정욕을 숭배하며 모든 이름 위에서 높임을 받고 찬사를 받기 원하십니까? 그래서 원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겁니까?
아니면 거룩해지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순결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자꾸 넘어지는 겁니까?
후자라면 당신의 본질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당신은 잠시 왜곡되어 있는 것이지 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꼬임에 빠져 왜곡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끝내시고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인 다면 이제 우리는 왜곡에서 벗어나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이제 왜곡이 회복되었으므로 우리가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보실 때 미소를 지으십니다. 안아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거절하고 나는 더러워.. 나는 자격이 없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이 지은 어떤 죄보다도 주님을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임재는 소멸되고 당신은 악한 영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39. 용서를 믿으십시오. 사랑을 믿으십시오. 믿지 않으면 끝없이 자책하고 자기 학대를 하며 형벌을 끌어당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가슴을 치고 온 땅에 뒹굴어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며칠은 평화롭겠지요. 하지만 한 주일쯤 지나면 다시 땅바닥에 뒹굴어야 합니다. 그것은 피곤한 삶입니다.
우리는 오직 용서를 받아들이고 사랑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평화를 얻으며 기쁨을 얻으며 변화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40.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너에게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주겠다.. 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겠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받아들이겠느냐?]
그래도 계속 [아니에요. 저는 자격이 없어요. 저는 은혜를 배신했어요. 저는 그 은혜를 입을 자격이 없어요..] 하시겠습니까?
41. 더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말합니다.
[몸이 더러워지셨군요. 목욕을 하세요..]
그는 울면서 말합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자격이 없어요. 목욕할 자격이 없어요..]
[왜요? 왜 목욕할 자격이 없어요?]
[예. 저는 너무 더러워서.. 목욕할 자격이 없어요..]
이게 말이 될까요?
어떤 사람이 너무 배가 고픕니다.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줍니다.
[배고프시군요. 어서 이것을 드세요..]
그는 울고 또 웁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이런 귀한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어요..]
[무슨 자격이요?]
[저같이 굶주린 사람은 이것을 먹을 수 없어요. 조금 배부른 사람이 이것을 먹어야 해요..]
이게 말이 될까요?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치지 못합니다.
어떤 이가 말합니다.
[아, 피아노를 잘 치고 싶으시군요? 그러면 배우세요..]
그는 울고 또 웁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자격이 없어요..]
[무슨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모를 거에요. 제가 얼마나 피아노를 못 치는지.. 그러니 저같이 피아노를 못 치는 인간이 무슨 낯짝으로 피아노를 배우겠어요..]
수영 이야기를 해볼까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는 수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너무 배우고 싶죠.. 하지만 자격이 정말 없어요.. 저같이 수영의 기초도 없는 사람은 이 거룩한 수영장에 올 수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될 거에요.. 제가 물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수영의 달인이 되는 날.. 그 때 저는 수영을 배우러오겠어요. 지금은 아니에요. 하지만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을 저는 굳게 믿어요..]
이런 신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씻지 않고 어떻게 순결해집니까? 먹지 않고 어떻게 배불러집니까? 주님의 은혜와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어떻게 죄를 이깁니까? 어떻게 마귀를 이깁니까? 주님의 사면을 깊은 속에서 거절하고 스스로 형벌을 취하고 있는데, 어떻게 풍성한 삶을, 해방의 삶을 산다는 말입니까?
결혼을 해야 애를 낳는 것이지 어떻게 먼저 아이를 낳아야 결혼할 수 있습니까?
[죄송해요.. 저는 당신과 결혼할 자격이 없어요. 제가 준비할 동안 기다려주세요.. 제가 먼저 혼자 당신의 애를 낳겠어요. 그리고 나서 당신에게 오면 결혼해주세요..] 이것은 오해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열매를 맺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42.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는 기도 중에 환상 속에서 주님을 본 사람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자신을 보고 무섭게 노려보면서 인상을 쓰고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에는 항상 사랑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보지 않아도 당신은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주님의 시선은 따사로운 사랑의 시선입니다.
[나는 악하고 게으르고 쓸모없는 종이다..] 그렇게 자책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수고를 아십니다. [내 종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염려하지 말아라. 네 스스로 혼자의 힘으로 그렇게 고생했지 않니. 이제 내가 도와주마.. 나와 함께 가자 나와 함께 일하자.. 그러면 너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오래 믿으면서도 신앙의 본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주님.. 저는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할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네가 마르다처럼 많이 수고하지만 마음에 쉼을 얻지 못하는 구나. 이제 내 안에서 안식하라. 나와 함께 교제하자. 이제 너는 기쁨의 삶을 알게 될 것이다..]
43. 열매 맺지 못함을 자책하지 마십시오. 밥을 안 먹으면 누구나 배고픕니다. 옷을 입지 않으면 누구나 춥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먹고 마시며 주님으로 옷을 입으면 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 그것은 주님의 은혜이며 주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믿음으로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들인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지 않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역사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려고 애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죄송하다고 하고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 힘으로 하려고 했더니 정말 안 되더군요. 이제부터는 정말 주님을 붙들고 주님을 누리며 살겠습니다.]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알았니? 이제는 내가 역사하리라] 하십니다.
44. 악한 영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또 잠간 흥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또 길어졌습니다. 요약하겠습니다.
1] 악한 영은 외부의 사역자가 해결해줄 수 없다. 나의 영. 나의 의식. 나의 믿음이 바뀌어야 한다.
2] 우리의 의식, 파장이 악한 영의 흐름과 비슷하다면 우리가 그들을 쫓아도 그들은 계속 온다.
3] 그러므로 우리의 의식, 믿음이 바뀌어져야 한다.
4] 죄책과 자학이 악한 영과 징벌을 끌어당긴다.
5] 두려움은 악한 영을 강하게 만든다.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하고 준비할수록 오히려 더 두려워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고 잡히게 된다.
6] 악한 영의 공격과 증상이 있을 때 그것을 무시해야 한다. 주님의 승리를 선언해야 한다. 마귀야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선언해야 한다. 악한 영을 두려워하고 대단하게 여기면 그것은 그들을 강하게 한다.
7] 죄책과 두려움의 해결은 주님의 십자가 완전한 사랑,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8] 먼저 깨끗해진 후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열매를 맺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신다. 불쌍히 여기신다. 햇살이 아낌없이 빛을 주는 것처럼 주님은 당신이 그 앞에 나아갈 때 사랑과 은혜를 주신다.
45.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람의 중심은 심장입니다. 머리의 많은 지식, 머리에 쌓여진 말씀은 심장에 내려오지 않으면 실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심장에게 말씀을 계속 들려주세요..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라.. 내 영혼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평안을 너에게 끼치노라.. 이 재앙이 네 장막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네 복역의 때가 끝났느니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지키신다.] 영혼에게 평안이 올 때까지 계속 말씀을 쉽게 잘라서 들려주십시오.
그리고 심장에게 여태까지 잘 돌보아주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내 영혼아.. 미안하다. 너에게 말씀을 잘 먹이지 않았고 내 멋대로 했다. 주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나도 너를 사랑한다..]
말씀을 먹이고 사랑의 고백을 할수록 심장은 깨어납니다. 그리고 점점 더 회복이 되어갑니다. 자꾸 눈물이 속에서 올라오게 됩니다. 감동과 기쁨이 일어나고 속에서 [아, 이젠 살았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심령이 점점 더 평화로워지게 됩니다.
전에는 조금만 내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짜증이 마구 나곤 했는데 점차로 그러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이상하게 환경이 나빠도 요동이 되지 않고 사람들이 나쁘게 대해도 이상하게 기분이 그리 불쾌하지 않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이게 됩니다.
심장이 살아날수록 하나님의 임재가 선명해지고 악한 영들이 점점 더 역사하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그들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46. 영혼이 점점 회복되면서 더 충만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사랑과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여보..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이러한 표현을 자주 하십시오. [당신이 전에 내게 그것을 해주었을 때 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알아요?] [당신 때문에 내가 하루 종일 행복해..]
그러한 대화들은 영혼을 풍성하게 하며 아름다움을 일어나게 하기 때문에 악한 영들은 점점 더 괴로워집니다. 악한 영의 침입은 많은 경우 나쁜 관계를 통해서 오는 데 모든 관계들이 점점 더 기쁨으로, 행복으로, 사랑으로 가득해지고 우리의 삶에 점점 더 천국의 향취가 나타나기 때문에 악한 영들은 굳이 대적하지 않아도 터전을 잃어버리게 되어 사라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47.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책과 자학과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면 자연히 영이 일어나고 사랑이 일어나고 기쁨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벽이 허물어지고 일도 즐겁게 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러한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생각해보십시오. 대인관계에서의 갈등, 미워함, 판단하기, 용서하지 않는 것, 서로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들.. 자학, 자책, 원망, 짜증, 두려움, 근심, 염려.. 불신.. 낙담.. 좌절.. 이러한 먹이들이 가득한 상태에서 능력 있는 사역자에게 안수한번 받고 기도 받고 모든 문제가 끝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지 말입니다.
웅덩이가 있고 썩은 물이 고여 있습니다. 모기가 거기에 알을 낳고 많은 모기떼가 생깁니다. 그 모기떼를 다 처리할 수 있을까요? 어렵겠지요.
그런데 그 웅덩이를 다 묻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심었습니다. 꽃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지요. 더 이상 모기는 오지 않고 아름다운 나비가 날아올 것입니다.
잠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또 길어졌어요.. 저녁 아홉시에 시작한 글이 벌써 밤을 꼬박 새웠네요. 벌써 새벽입니다. 조금 눈을 붙이고 아침에 틀린 글자를 조금 수정해서 올려야 겠어요..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다시 비슷한 질문을 하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메시지를 공지사항으로 올리려고 합니다.
영적 전쟁에 대한 도움 요청 외에도 참 많은 도움 요청과 상담 요청이 옵니다. 하지만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게 주어진 것이,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하고 밀려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요..
최근에 제가 메일에 답을 보낸 것이 150통은 넘을 것 같아요..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저에게 행복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씀하시기를 저에게 외에는 아무 데도 물어볼 데가 없다고 하세요. 그리고 많은 고통과 슬픔을 하소연하세요.. 이들을 격려하고 힘을 내라고 사랑한다고 저는 대답하고 여러 질문들에 대답들을 하죠. 하지만 행복하기는 하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것.. 해야할 일이 많이 있는데.. 항상 답을 해야 하는 메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마음이 거기에 가있게 되어요.. 지금은 답할 것이 대 여섯 통이 남았네요.. 이러다보면 책이나 일도 밀리게 되지만 휴식이 잘 안죠.. 음식도 안 넘어가구요..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마음이 아파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요.. 이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상황이 나아졌는지.. 계속 그런 것이 떠오르니까 벗어나기가 어렵죠..
메일에 답을 보냈을 때 답을 잘 받았다든지.. 감사하다든지.. 응답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 메일의 내용에 잘못 말한 것이 있었을까.. 화가 났을까..] 궁금해하다가 나중에는 [잘 해결되었겠지..] 하고 지나가게 되죠.. 또 다른 문제 거리들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저의 답에 대해서 불쾌하게 느끼는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에 다른 문제가 생겨서 도움을 요청하실 때 쓰기를 저번의 말씀이 도움이 되었어요.. 하고 말하곤 하는 것을 보면요..
생각해보면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 카페를 시작하고.. 그러면 사람들을 돕고 친절하게 해주는 것이 기쁨이니까.. 그러다보면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요.. 그러다가 어느 한계에 오죠..
가장 힘든 것은 처음 오신 분들이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많이 쓰시는 거에요.. 카페에 어느 정도 있고, 가까운 이들은 처음에는 어두운 의식이 있어도 점점 기쁨의 사람이 되어가죠.. 말도 글도 다 달라지고 천국의 향취에 가까워지게 되어요.
하지만 처음 오신 분들은 평소의 습관대로 어둡고 악한 파장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을 기쁘게 하고 강하게 하는 고백들을 많이 해요.. 그러한 하소연들이 자기를 파괴하고 그 공간을 파괴하고 천국을 깨뜨리고 지옥을 확장시킨다는 것을 모르죠.. 하소연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할 때 거기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점점 더 늪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몰라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자기의 고통을 호소하고 하소연해서 문제가 다 사라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술이 나쁜 것이니 다 마셔서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마실수록 공장에서 술은 재생산되죠. 하소연은 그와 같아요. 주님께 시선을 두지 않고 문제에 집중하는 이들은 문제를 점점 더 커지게 만들지 없어지게 하지 않아요. 자기의 어두움을, 자기의 지옥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것뿐이죠. 우리는 문제는 잊어버리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래서 그런 글들을 보면 참 고통스럽죠.. 글을 읽는데 가슴의 통증이 끔찍해지다가 피를 토한 적도 있어요. 세면대가 즐겁지 않은 색갈로 물들죠..
바깥의 문제에 대해서는 중보를 해도 그리 심각하게 하지 않지만 제가 관련된 곳에는 저의 책임이 많으니까 그러한 모든 것들을 저의 죄로 여기고 아픔을 겪어야 해요.. 그 과정에서 고통이 많이 오죠.. 그렇다고 그게 아주 싫다는 것은 아니에요. 고통이 있어도 감사하고 사랑하면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쉬고 있으면 회복이 되죠.
그런 글들을 보면 글을 쓴 분에게 쪽지를 보내고 이해를 구하고 삭제를 합니다. 그러면 자기 글을 삭제했다고 화가 많이 나서 아주 심한 욕을 다른 카페에 도배를 하시는 분도 있어요.. 계속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한참을 반복하고 나서 간신히 용서를 받곤 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많이 지치죠.. 카페를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죠.. 두려움을 고백하고 남을 비판하고 하소연하고 불신앙을 고백하므로 악한 영을 끌어당기는 곳은 세상에 많은데 굳이 그런 카페가 하나 더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으니 카페 폐쇄를 생각하게 되죠.. 그러나 카페를 닫는 말을 공고하고나면 충격을 받은 분들을 보고 차마 폐쇄는 못하고 한동안 잠수를 하고 카페에서 멀어지죠..
한동안 쉬고 있으면 회복이 되고 다시 사람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또 딜렘마가 생겨요. 친절하게 하고 글도 자주 쓰고 싶은데 그러면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러면 다시 문제가 복잡해지고 많은 요청에 시달리게 되죠.. 요즘에 다시 그런 시점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갓피플에서 회원이 만 명이 넘다가 이곳에서 몇 십 명.. 몇 백 명.. 그래서 아.. 오붓하고 좋다.. 그랬는데 벌써 또 몇 천명이 되네요. 이궁..
농담같이 제가 가지고 있는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꿈에서 제가 목회를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거에요.. 그런 꿈을 꾸면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에게는 악몽입니다. 깨고 나면 끔찍하죠..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사역과 체질과 다르니까요.. 그러니 저는 숨어있는 체질이고 좋은 사역자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소원하게 되죠..
대형 교회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참 존경스러워요.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실까.. 싶고.. 수천명이 기도해달라고, 상담해달라고 집으로 찾아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싶고 대형카페를 운영하시는 분들도 참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저는 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편이고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참 어렵게 느껴지네요..
아무튼.. 그래서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메일에 답이 없다고 화를 내시는 분도 있고.. 도대체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시는 분들도 있고.. 언젠가는 집으로 전화를 해서 받지 않으니 녹음으로 목사가 왜 섬기지 않느냐고 화를 내고 욕을 하시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분이 제가 그 시기에 천명이 넘는 분들을 일일이 돕느라고 탈진을 했다는 것을 알았으면 이해를 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아플 때가 많으니까요.. 제가 완전한 건강과 한이 없는, 지치지 않은 영력과 체력으로 항상 최고의 컨디션으로 모든 이들의 문제를 다 쉽게 해결할 거라고 믿는다면 정말 곤란한 일이죠..
저의 책이 몇십만권이 팔렸으니까 독자님들이 몇 만명은 넘을 텐데..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를 드리지만 저는 책으로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뿐이고 그 이상은 제한적으로 감당할 수 밖에 없어요.
강한 사역자님들도 많아요. 많은 일을 감당하면서 끄떡없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릇도 작고 골골해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목사라면 누구나 다 당연히 섬기는 것을 원하겠죠. 사실 목사라면 누구나 주님을 위해서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저도 당연히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효율성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좀 더 효율적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한 분 한 분을 개인적으로 돕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오늘날의 신앙 패턴을 보면 많은 신자들이 누림과 안식을 모르고 기쁨이 없어요. 그저 열심히 애쓰면서 충성 봉사를 하는데 다들 지쳐있고 긴장과 어두움이 많아요. 신앙이 사람에게 자유함을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피곤하게 만드는 경향이 많이 있어요.
사역자들이 기쁨이 있는 분들을 별로 못 보았어요.. 다들 슬프고 지치고 죄책과 무기력에 눌려있고 어둡고 창백하죠.. 신앙의 시스템이 사역자나 신자나 천국의 기쁨, 그 향취가 무엇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저는 사역자들이 기쁨을 얻고 자유함을 누리고 안식할 수 있도록 돕는 메시지를 많이 책으로 내고 그 쪽에 좀 더 집중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요..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역자들이 원리를 몰라서 고생을 하는 일이 많으니까요..
사역자들이 기쁨이 넘치는, 천국을 누리고 행복으로 가득한 상태가 되면 그분들이 많은 신자들을 섬길 수 있고 자연히 행복한 신자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겠지요..
사역자들이 타락했고 잘못되었다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은 데 저는 그것이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 죄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기 때문에 다른 지체의 아픔은 내 아픔이고 다른 지체의 죄는 내 죄에요. 발이 잘못한다고 잘라버리면 걸을 수 없어요.
사역자도 똑같이 사람이고 문제가 있을 수 있죠. 그러니 그것을 내 죄라고 여기고 주님께 죄송하다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면 다들 회복과 치유가 임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분들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보다 개인가정 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보다 신앙의 원리에 대한 글을 쓰는 데에 집중하고 싶어요.. 제가 공개적인 글을 쓰는 것이 강의 수업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 외에 개인과외를 원하시는 분들이 참 많거든요..
그러니 죄송하지만 도움 요청은 좀 자제해주셨으면 하는 미안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계속 지친 상태에서 어느 한계에 이르게 되면 카페 운영도 어려워질 수 있거든요..
그러니 저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얻는 것보다 제가 전하고 있는 신앙의 원리들을 적용하고 훈련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쓰다 보니 하소연같이 되었나요? 에고.. 부담을 느끼시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주님이 사람들을 한 분 한 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기뻐하시고 안쓰러워하시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주님의 그러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참 좋아요.. 다만 압력이 많아지면 지치는 것뿐입니다.
제가 대답하는 내용들이 거의 대부분 책에 다 나오는 이야기들이고 이 카페에도 많이 나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분하게 읽다보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직접 대답을 듣지 않아도 영의 감각이 생기면 점점 답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 글들을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면? 하하.. 그것도 괜찮아요. 신앙의 패턴은 누구나 다 다르고 자기에게 맞는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찾으면 되죠..
감사합니다. 말이 길어졌어요.. 제가 위로받고 싶어서, 노고를 치하 받으려고 쓴 글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괜히 [목사님.. 흑흑.. 어떡해요..] 뭐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 마세요. [너무 고생하시는 우리 목사님..] 그런 분위기로 가지는 마세요. 여기는 북한이 아니니까요.. 목사를 높이면 목사는 정말 바보돼요.. 주님께 감사드린다면 그 사역자에게는 보람이 있겠지요.
세상에 고생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모든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면서 각자의 일이 있고 전쟁이 있고 기쁨이 있어요. 저만 특출나게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주시기를, 개인적으로 한분 한분씩 돕지 못하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리는 것 뿐입니다.
42. 결론입니다. 이것만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그것은 악한 영들에게 틈을 주어요. [나는 사랑이 없어. 나는 못됐어.. 나 같은 것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리라 없어..]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것은 주님을 슬프게 해요.. 그러면 쓸데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어요.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어요. 왜냐하면 두려움은 믿지 않는 것이니까요..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필요한 거에요.
믿음이 없으면 신뢰가 없으면 두려움이 생기고 자책이 생겨요.
소망이 없으면.. 갈망. 주님을 미친 듯이 갈망하고 천국의 아름다움을 갈망하지 않으면 천국의 향취를 배부르게 먹을 수 없고 그래서 허기가 지니까 세상 쾌락을 좇게 되어요.
사랑이 없으면 적개심, 분노, 미움, 용서하지 않는 마음, 비판, 시기, 질투가 일어나죠..
그러니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신뢰하는 믿음
주님과 천국을 갈망하는 소망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내 몸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내게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공간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항상 감사함으로 살면 악한 영들이 우리의 삶에 개입해서 들어올 수가 없는 거죠..
믿음의 결핍, 사랑의 결핍 때문에
그들은 그 빈구석에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오직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만나는 모든 분들을 항상 사랑하고 축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들 가운데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정원 목사
댓글 '1'
혼자 끙끙 힘들었는데 지금 너무 기쁘구요 주님께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회원 가입이 안되네요...뭔가 사정이 있으신가봐요. 나중에라도 여건이 되시면 가입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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