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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5:1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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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10·04·23
성경은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핍박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우리는 대개 핍박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며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여기에는 큰 영광과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핍박을 당할 때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이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0-12)
핍박은 또한 교회를 강하게 하고 성장케 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있어서 핍박과 고난은 해로운 것이 아니라 유익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핍박을 받았을 때 담대하게 이기고 복음을 더 능력 있게 전파했습니다.
두 번째 핍박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시자 제자들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2:41)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일으키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사도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더욱 힘 있게 전파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행4:4)
그러자 당국은 교회를 공격해왔습니다. 당국자들은 사도들을 잡아다가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석방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당했던 첫 번째 공격이며 시험이었습니다. 교회는 이 문제를 놓고 합심하여 간절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모인 곳이 진동하며 그들은 더욱 성령으로 충만해져 복음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으며,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소유를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탄의 공격을 잘 이겨내고 더욱 힘차게 부흥되어갔습니다.
첫 번째 공격이 실패하자 사탄은 교회의 내부로부터 다시 공격해왔습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서 시작된 이 아름다운 일을 통해 교회를 시험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드리면서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 시험은 당시 초대 교회의 신앙의 순결을 변질시키려는 매우 심각한 공격이었습니다. 만일 교회에 이러한 거짓이 침투해들어온다면 교회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게 될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이들의 죄악을 꿰뚫어보고 책망했으며, 이들은 책망을 듣고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권징을 통하여 초대 교회는 신앙의 순결을 지켜나갔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에 더욱 큰 은혜와 권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더 많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국자들 또 교회를 공격해왔습니다.
핍박의 동기
당국자들의 두 번째 핍박은 첫 번째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사도들을 핍박하게 된 동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17절) 그들은 최고의 권세를 가진 자들이었으며, 그 권세로 사도들을 핍박하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게는 그 권세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모든 권세는 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성공적으로 복음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주목하고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당국자들의 전통적인 권세가 사도들의 새로운 권세에 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난감한 것은 자기들로서는 이들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국자들은 제자들의 지도자였던 예수라는 사람을 처형하면 이 물결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그 물결은 더욱 거세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보잘 것 없었던 몇몇 갈릴리 어부들을 잡아다가 위협했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권세가 이처럼 무력하게 느껴진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기와 증오심으로 가득 차서 더욱 거세게 교회를 핍박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무기력해진 권세자들
사도들은 단지 복음을 전한다는 것 때문에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옥에 갇힌 그 날 밤에 주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사 사도들을 옥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가서 공개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19-20) 복음을 전한다는 것 때문에 잡혀서 옥에 갇혔던 사도들은 옥에서 나가자 즉시 주님의 명령대로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 가르쳤습니다.
사도들을 잡아다 옥에 가둔 당국자들은 다음 날 사도들을 심문하기 위해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옥에서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는 그들이 분명히 가두어 두었던 사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이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잡아다가 요절을 내고 싶었겠지만 사도들을 따르는 백성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당국자들은 가만히 사도들을 잡아다가 심문했습니다.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28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다시금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된 사도들은 공회의 금지명령을 어기고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함이 마땅하니라”(29절) 이 말은 오늘 우리의 행동 원리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창조주시며,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당할 소망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만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나 이론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유일한 주인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게 된다 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단호한 고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핍박들을 그렇게 능력 있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얼마만큼 이러한 고백에 충실한가에 따라서 교회의 능력과 영향력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오늘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원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능력 없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핍박이나 손해를 당한다 해도 우리는 단호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여전히 능력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증인이다.
사도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단호하게 말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 일에 증인임을 천명했습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30-32절)
이것이 바로 증인입니다. 증인이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증인이란 말은 순교자를 뜻하기도 합니다(순교자라는 영어 단어 martyr는 증인이라는 뜻의 헬라어로 μαρτυς에서 나왔습니다). 증인이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자기의 고백을 말하며, 자기의 목숨을 바쳐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사도들은 지금 권세자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라고 해서 눈치를 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한다 해도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증언이 효과가 있는 것은 성령께서 친히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렇게 단시일에 복음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지역에, 안산에, 한국과 온 세계에 복음을 가득하게 하려면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함께하시는 능력으로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대적들의 격노
사도들의 당당한 증언은 대제사장과 그 일당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33절) 만일 가말리엘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사도들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개종하기 이전 사도 바울의 스승으로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리새파 중에서 진보적인 입장의 대표자였던 힐렐의 손자이자 문하생이었으며, 학식과 지혜와 중용으로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산헤드린 공회가 그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잠시 나가 있게 한 다음 그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게 한 뒤, 특정한 선례를 들어가면서 충고를 했습니다. 그는 드다와 갈릴리 유다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한 때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며 추종자들을 확보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임을 당하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면 그들을 핍박하는 것은 헛될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았더라면 저절로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가말리엘의 충고를 받아 들여 사도들을 놓아주었습니다. 아마도 그 외에는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내보내지 않고 사도들을 채찍으로 때려서 내보냈습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40절)
핍박을 감사함
사도들이 당한 채찍질은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참혹하게 찢기고 피를 흘리면서 물러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인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은 마5:10-12 말씀대로 행하고 있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뿐만 아니라 산헤드린 공회의 금지령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어디서나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42절) 성경은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11:38상)
당신은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다가 오해나 시기를 받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믿음으로 살려고 그렇게도 애썼는데 일이 안되고 더 꼬여 갈 때 어떻게 하십니까? 믿음 때문에 고통과 손해를 당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사도들은 우리가 그런 경우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을 인하여 손해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사탄의 세 번째 공격은 이렇게 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초대 교회는 번번이 사탄의 공격을 완전히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더욱 능력 있게 전하면서 든든히 서갔습니다. 핍박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보다는 더욱 연단시키고 부흥케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현대 교회는 수적으로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능력과 영향력은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과 타협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과 손해와 욕을 당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하게 살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핍박을 당하지 않게 되었지만 능력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바로 서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경건하게 살기를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오늘 우리도 믿음 때문에 핍박과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회피하지 말고 타협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단호한 결단과 결연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떤 핍박을 당한다 해도, 어떤 어려움과 손해를 당한다 해도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기쁨으로 능히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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