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
[샘물] 2005.2 월호- (테마가 있는 글)
제목/ 뒷산에 올라
최용우 (월간 들꽃편지 발행인)
맑고 화창하지만 햇볕은 없는 날, 여기저기 잔설이 남아 있는 어느 날, 책방 창 밖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무엇엔가 홀린 듯 두꺼운 옷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창 밖으로는 마을 뒷산인 국사봉이 보입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두어번 올라가 봤을 뿐.
"얘들아 우리 뒷산에 올라갈까?"
"네! 네!"
방학이라고 코가 삐뚤어지게 놀다가 지친 아이들이 아빠의 새로운 놀이(?)에 두손들고 환영을 합니다.
아, 저는 어느새 아이들과 함께 책방 창 밖에 있던 그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런걸 보고 '산이 부른다' 고 하는가 봅니다. 낙엽이 다 떨어져 속살이 다 보이는 산을 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꿩이랑 산토끼 노루가 낯선 인간의 방문에 놀라 후다닥 튀어버립니다.
"아, 너그들은 이 겨울에 뭐 먹고 사니?"
국사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넓은 자리 차지하고 몇 개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청호가 한 눈에 들어오고 골짜기 여기저기에 집들이 박혀있는게 보입니다. 멀리 대통령 별장 청남대가 있는 곳도 보이고, 다리의 다리가 가장 길다는 회남대교도 보입니다.
바로 발 아래에 있는 내가 사는 우리 동네를 봅니다.
이렇게 멀리서 보니 참 멋지네요.
마치 한적한 바닷가 같은 느낌이 드네요.
좀 떨어져서 보니 내가 사는 동네도 참 근사한 곳이네요.
내 삶도 그럴까요? 좀 떨어져서 보면 그래도 폼 나 보일까요?
아, 산이 나를 부른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그렇게 개미처럼 땅바닥에 붙어 아웅다웅 하지 말고, 좀 멀리 떨어져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부른 것이었군요.
"야! 토끼똥이다. 언니, 이거 좀바. 토끼똥이 한 바가지나 있어"
"야, 최밝은! 너는 토끼똥 처음 보냐? 우리 집에 토끼똥 엄청 있어!"
군데군데 검은콩 같은 산토끼 똥이 많이 보입니다. 집에서 토끼를 키우고 있으면서도 밝은이는 산에서 보는 토끼똥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풀 없는 겨울엔 토끼 한 마리 먹이기도 힘이 듭니다. 그나마 망초, 보래기싹이 올라오는 것도 며칠 전 추위에 다 얼어버렸습니다. 사과 껍데기나 고구마, 개사료를 먹이면서 어서 빨리 봄이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 산 속의 산토끼들은 추운 겨울에 도대체 뭘 먹고살기에 이렇게 똥이 굵고 때깔이 좋은지... 산토끼들도 사람들처럼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을 할까요? 하겠지요? 할까?
산에서 내려와 동네를 한바퀴 돕니다.
우리동네는 가난한 동네입니다. 동네 여기저기에 빈 집이 많습니다. 그냥 빈 집이 아니라 야반도주한 것인지 세간살이가 그냥 뒹굴어다니는 빈 집을 볼 때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는 것인지.
특히 작년 모내기할 즈음 농약 마시고 가신 왕따할아버지네 빈 집을 보니 눈물이 다 납니다. 술주정이 얼마나 심한지 아주머니도 도망가고 자식들도 돌아보지 않고 동네사람들도 왕따를 해서 혼자 사시는 불쌍한 할아버지였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가족들이 오지도 않아 동네 사람들이 황급하게 뒷산에 묻었던 생각이 납니다.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활짝 문 열린 안방도 그대로 있고 창고에 마늘이며 나물 주머니들도 주렁주렁 그대로 있습니다.
"시계는 딱 맞네"
아무도 없는 빈집의 벽에 걸려 있는 벽시계는 여전히 살아서 똑딱똑딱 신기하게도 시간이 딱 맞습니다.
청빈(淸貧)을 말하는 것이 참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가난해서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가질 것 다 가지고 있으면서 청빈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습게도 정말 청빈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부류는 후자입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합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밝은이와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온 동네 개들이 밝은이를 다 압니다. 큰 개든 작은개든 개를 보면 밝은이는 주저 없이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발을 잡아줍니다. 그동안 오고 가며 온 동내 개들과 모두 친구가 된 모양입니다.
"너, 그 개 알아?"
"네. 동주 언니네 호피에요"
"별장 개인데, 차에 치어 다리를 절둑거려요 불쌍하지요?"
"할머니 가게 개인데요. 잠잘 때 고양이랑 같이 자요"
개 이름이랑 사연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개들도 밝은이를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지만 제가 바라보면 꼬리를 내리고 경계를 합니다. (음... 저 돌아다니는 맛난 고기 덩어리들)
그래도 밝은이에게 경고를 합니다.
"밝은아, 아무 개나 만지면 안돼! 그러다가 꽉 물려!"
"괜찮아요. 보세요. 오랜만에 만났다고 꼬리를 흔들면서 반가와 하쟎아요..."
봄이 오려는지 공기가 한결 부드럽고 볕이 따뜻합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산에게 불려 나가 아이들과 함께 뒷산에도 오르고 동네도 한바퀴 돌고 오니 참 좋습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입고 있는 두꺼운 옷을 어느새 벗어서 손에 들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봄이 오려나 봅니다. *
제목/ 뒷산에 올라
최용우 (월간 들꽃편지 발행인)
맑고 화창하지만 햇볕은 없는 날, 여기저기 잔설이 남아 있는 어느 날, 책방 창 밖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무엇엔가 홀린 듯 두꺼운 옷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창 밖으로는 마을 뒷산인 국사봉이 보입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두어번 올라가 봤을 뿐.
"얘들아 우리 뒷산에 올라갈까?"
"네! 네!"
방학이라고 코가 삐뚤어지게 놀다가 지친 아이들이 아빠의 새로운 놀이(?)에 두손들고 환영을 합니다.
아, 저는 어느새 아이들과 함께 책방 창 밖에 있던 그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런걸 보고 '산이 부른다' 고 하는가 봅니다. 낙엽이 다 떨어져 속살이 다 보이는 산을 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꿩이랑 산토끼 노루가 낯선 인간의 방문에 놀라 후다닥 튀어버립니다.
"아, 너그들은 이 겨울에 뭐 먹고 사니?"
국사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넓은 자리 차지하고 몇 개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청호가 한 눈에 들어오고 골짜기 여기저기에 집들이 박혀있는게 보입니다. 멀리 대통령 별장 청남대가 있는 곳도 보이고, 다리의 다리가 가장 길다는 회남대교도 보입니다.
바로 발 아래에 있는 내가 사는 우리 동네를 봅니다.
이렇게 멀리서 보니 참 멋지네요.
마치 한적한 바닷가 같은 느낌이 드네요.
좀 떨어져서 보니 내가 사는 동네도 참 근사한 곳이네요.
내 삶도 그럴까요? 좀 떨어져서 보면 그래도 폼 나 보일까요?
아, 산이 나를 부른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그렇게 개미처럼 땅바닥에 붙어 아웅다웅 하지 말고, 좀 멀리 떨어져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부른 것이었군요.
"야! 토끼똥이다. 언니, 이거 좀바. 토끼똥이 한 바가지나 있어"
"야, 최밝은! 너는 토끼똥 처음 보냐? 우리 집에 토끼똥 엄청 있어!"
군데군데 검은콩 같은 산토끼 똥이 많이 보입니다. 집에서 토끼를 키우고 있으면서도 밝은이는 산에서 보는 토끼똥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풀 없는 겨울엔 토끼 한 마리 먹이기도 힘이 듭니다. 그나마 망초, 보래기싹이 올라오는 것도 며칠 전 추위에 다 얼어버렸습니다. 사과 껍데기나 고구마, 개사료를 먹이면서 어서 빨리 봄이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 산 속의 산토끼들은 추운 겨울에 도대체 뭘 먹고살기에 이렇게 똥이 굵고 때깔이 좋은지... 산토끼들도 사람들처럼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을 할까요? 하겠지요? 할까?
산에서 내려와 동네를 한바퀴 돕니다.
우리동네는 가난한 동네입니다. 동네 여기저기에 빈 집이 많습니다. 그냥 빈 집이 아니라 야반도주한 것인지 세간살이가 그냥 뒹굴어다니는 빈 집을 볼 때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는 것인지.
특히 작년 모내기할 즈음 농약 마시고 가신 왕따할아버지네 빈 집을 보니 눈물이 다 납니다. 술주정이 얼마나 심한지 아주머니도 도망가고 자식들도 돌아보지 않고 동네사람들도 왕따를 해서 혼자 사시는 불쌍한 할아버지였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가족들이 오지도 않아 동네 사람들이 황급하게 뒷산에 묻었던 생각이 납니다.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활짝 문 열린 안방도 그대로 있고 창고에 마늘이며 나물 주머니들도 주렁주렁 그대로 있습니다.
"시계는 딱 맞네"
아무도 없는 빈집의 벽에 걸려 있는 벽시계는 여전히 살아서 똑딱똑딱 신기하게도 시간이 딱 맞습니다.
청빈(淸貧)을 말하는 것이 참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가난해서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가질 것 다 가지고 있으면서 청빈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습게도 정말 청빈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부류는 후자입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합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밝은이와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온 동네 개들이 밝은이를 다 압니다. 큰 개든 작은개든 개를 보면 밝은이는 주저 없이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발을 잡아줍니다. 그동안 오고 가며 온 동내 개들과 모두 친구가 된 모양입니다.
"너, 그 개 알아?"
"네. 동주 언니네 호피에요"
"별장 개인데, 차에 치어 다리를 절둑거려요 불쌍하지요?"
"할머니 가게 개인데요. 잠잘 때 고양이랑 같이 자요"
개 이름이랑 사연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개들도 밝은이를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지만 제가 바라보면 꼬리를 내리고 경계를 합니다. (음... 저 돌아다니는 맛난 고기 덩어리들)
그래도 밝은이에게 경고를 합니다.
"밝은아, 아무 개나 만지면 안돼! 그러다가 꽉 물려!"
"괜찮아요. 보세요. 오랜만에 만났다고 꼬리를 흔들면서 반가와 하쟎아요..."
봄이 오려는지 공기가 한결 부드럽고 볕이 따뜻합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산에게 불려 나가 아이들과 함께 뒷산에도 오르고 동네도 한바퀴 돌고 오니 참 좋습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입고 있는 두꺼운 옷을 어느새 벗어서 손에 들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봄이 오려나 봅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