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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3: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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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12)
1. 시야가 열립니다(12-16절)
영적인 사람은 ‘수건을 벗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시야가 생깁니다. 사람의 눈에 비친 베드로는 쓸모없는 갈릴리 바다의 미천한 어부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눈에 비친 베드로는 세계를 뒤흔드는 위대한 재목이었습니다. 그처럼 영적인 사람은 가치 없는 것을 통해서 위대한 가치를 발견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십시오. 자신을 왜소하게 보지 말고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이 이뤄질 것이란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지금도 하늘로 닿은 벧엘의 사다리는 여전히 놓여 있습니다. 지금 위대한 일을 향한 환상을 새롭게 하십시오. 역사는 언제나 환상이 있는 사람 편에 서 왔습니다. 환상이 없는 직분은 고된 노동입니다. 찬란한 꿈과 비전과 환상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일하겠다는 위대한 결단을 내리면 그의 삶을 통해 큰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2. 자유함이 있습니다(17절)
사람들은 대개 무엇인가 붙잡혀 삽니다. 어떤 사람은 운명에 붙잡혀 살고, 어떤 사람은 죄의식에 붙잡혀 삽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에 붙잡혀 살고 어떤 사람은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제 죄의 사슬에 묶여 살지 말고 내일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향하십시오.
코끼리가 서커스단에서 작은 말뚝과 끈에 묶여 얌전히 앉은 것은 코끼리의 기억력 때문입니다. 코끼리가 어릴 때 쇠줄에 묶어 놓으면 코끼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탈출할 수 없으면서 쇠줄이 자신보다 세다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성장한 후에 쇠줄을 끊을 만한 힘을 가져도 끊을 수 없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고 끊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음으로 큰 힘이 파묻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의 가능성을 사장시킨 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는 자유함을 얻고 자신의 가능성을 따라 살게 됩니다.
3. 주의 영광이 나타납니다(18절)
초대교회 때 기독교가 급속도로 퍼진 것은 예수님의 향기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은 가장 두려운 문제였던 죽음 앞에서도 침착했습니다. 그들 안에 억제할 수 없는 기쁨과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쁨 가운데 살고 함께 도우며 살던 모습이 너무 좋게 보여서 주변의 많이 사람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전도하다 보면 복음을 심하게 배척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이나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배척하기보다는 대개 보면 잘못된 태도를 가진 성도들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꿈이 크면 실망도 큽니다. 성도들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할 때 그 기대감이 무너지며 증오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다운 모습과 인격을 갖추기를 힘쓰십시오. 마음이 깨끗할 때 하늘의 빛이 그 마음에 비치고 그를 통해서 예수님의 흔적이 나타나고 영광이 나타납니다.
4. 예수님의 형상이 됩니다(18절)
축복 중에 최고의 축복은 예수님을 닮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닮을 때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을 닮을수록 비판도 줄어듭니다. 비판하는 본성을 가지고 남 대신 차라리 자신을 비판하십시오. 영적인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품어 주셨던 예수님처럼 이해하고 용납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기독교인들이 지은 가장 큰 범죄는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 전쟁은 기독교의 성지를 탈환하겠다는 목적을 가졌지만 그 방법이 예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복음의 정신과 성경의 핵심에서 가장 멀리 떠나 있었던 어두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많은 교인들은 회교도들에게 증오심을 가지고 흥분된 소리를 높일 때 고요하게 사랑의 등불을 켜고 평화의 기도를 드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성 프랜시스입니다. 다음과 같은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를 마음에 품고 예수님 닮는 최고의 축복을 꿈꾸십시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주게 하소서/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주게 하소서/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주게 하소서/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주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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