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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전망과 과거회상

출애굽기 이성희 목사............... 조회 수 2391 추천 수 0 2011.06.19 22: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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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14:10-14 
설교자 : 이성희 목사 
참고 :  
미래전망과 과거회상

본문: 출 14:10-14, 빌 3:12-15

아무도 원치 않는 배가 한 척 있었습니다. 1986년 펠리카노호는 공해상에 떠도는 배가 되었습니다.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버뮤다 제도, 도미니카 공화국, 네덜란드, 온두라스 이 모든 나라가 이 배를 거절했습니다. 문제는 이 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배는 비록 녹이 슬고, 때는 끼었지만 화물선으로 아직 쓸만한 배입니다. 배의 주인도 문제가 없습니다. 배의 소유증서도 이상이 없습니다. 배의 세금 영수증도 다 첨부되어 있습니다. 선원들도 모두 자격이 있습니다. 이 배는 이런 모두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년동안 이 배가 공해상에 떠돈 이유는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배에는 자그마치 1만5천톤의 쓰레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1986년 여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수거한 쓰레기입니다. 이 때 시의 직원들이 파업을 하였습니다. 도시의 쓰레기는 날이 갈수록 쌓여갑니다. 펠리카노호는 쉽게 돈벌 궁리를 하였습니다. 쓰레기를 소각하고 남은 재를 처리해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쓰레기 때문에 이 배는 오랫동안 공해상에 떠 있어야 했고 이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았습니다. 쓰레기를 실은 채로 다른 사람에게 가지 못합니다. 쓰레기를 실은 배는 누구 하나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 때문입니다. 옛 것을 버리기 전에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옛 것을 버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용지물입니다. 아무리 외모가 그럴듯해도 속이 더러워져 있으면 누구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속에 가득 차 있는 쓰레기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입니다. 구원을 현실적 복이나, 일시적 평안과 비교하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구원의 시작은 마침이 있습니다. 이미 죽음의 신이 비켜간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가로막히고 애굽의 병거가 압박해도 종래 광야로 나아가고 가나안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미 의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죄와 함께 굴러가도 성결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종래는 영화로운 나라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가기까지 수없는 장애와 걸림돌이 있습니다. 외부에서의 장애가 있습니다. 내부에서의 걸림돌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기 까지는 내부의 적이 더 심각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춤추시는 하나님’이란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내 일에 늘 방해물이 끊이지 않는다고 항상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해물이 바로 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우리 인생의 길에는 수없이 많은 방해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방해물들이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장기환자를 보살피는 일이 있습니다. 힘드는 방해물이지만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장애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일이 있습니다. 평생 짐입니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치매 노인을 치다꺼리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큰 방해물입니다. 그러나 깊이 살펴보면 이 모든 것이 다 나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방해물들이 있습니다. 홍해도, 애굽 병거도, 배고픔도, 고기먹고 싶음도, 목마름도 모두가 걸림돌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씩 해결하면 해결되는 기쁨이 있고, 가나안이 보입니다. 2003년을 정말 아슬아슬하게 지났습니다. 그런데 2004년은 이 보다 덜할 것 같지 않은 해입니다. 연초부터 국회의원 8명이 무더기로 구속 영장이 떨어졌습니다. 전 경제 각료를 지낸 어떤분은 앞으로 2-3년은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제 신문에는 한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않아 맺은 나라는 자동차에 대하여 무관세인데 우리 나라 자동차는 50%의 관세를 매겼답니다. 뒤나 앞이나 우왕좌왕이고, 오리무중이고, 시계불명입니다. 홍해 앞의 이스라엘을 통하여 진퇴양난의 우리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어려운 현실은 두려움과 자포자기를 가져옵니다.
성경은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라고 합니다. 바로가 뒤에서 따라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은 두려움에서 자포자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악한 힘이 엄습하면 두려움이 밀려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 때문에 그들은 홍해를 건너야 했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홍해를 건넜겠습니까? 아마 홍해를 건널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앞에 진치고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쉬었겠지요. 세상의 악한 힘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진군합니다. 세상의 악도 우리 신앙의 진보에 도움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부르짖고” 애원합니다. 그나마 뒤에서 적이 쫓아오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없으면 기도도 안할테지요. 적의 추격도 때로는 우리의 신앙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라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고 합니다. 자기 뒤에 미친 애굽인을 볼 때에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뒤에 미친 악의 무리, 이것이 두려움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확인해 보세요. 요즘 전반적으로 장사가 안되지요? 정치판이 기대할 수 없을만큼 혼탁하지요? 더구나 총선이 코 앞에 왔으니 경제가 뒷전일테지요? 혼란과 고통이 우리 등짝까지 미쳐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두려움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부르짖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죄성의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죄성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도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 보기를 두려워하여 숨어 있었습니다. “두려워말라”고 하신 말씀은 구약에 107회, 신약에 42회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사람들은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1:7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합니다. 두려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누미노제 경험이란 말이 있습니다. 두려운 신비의 경험입니다.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누미노제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누구를 대하여 두려워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신앙의 문제이며 삶의 문제이며 인격의 문제입니다. 누구를 두려워하느냐?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질을 가늠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이 두렵지 않은 사람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죄 만을 부끄러워하고, 십자가를 자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을 겁내지 않고 변화시킵니다. 이런 사람은 넉넉히 세상을 이깁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청바지를 입은 예수’란 그의 책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가난을 두려워한다면 돈이 우상이 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성공이 금송아지가 될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인간관계가 신이 될 것이다”. 두려워할 것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높은 차원의 신앙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포기하는 마음을 줍니다. 이런 두려움은 미래를 포기하게하고 미래의 희망을 상실하게 합니다. 이런 두려움은 미래를 주신 하나님께 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싫어하십니다. ‘행복으로 들어가는 10가지 문’, ‘성공하는 사람 10가지 비결’등의 글귀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한결같이 “포기하지 말라” 는 말이 반드시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열려 있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원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로 돌아가게 합니다.
바로의 군사들이 쫓아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11절에는 “애굽에서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라고 합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하였습니다. 현실의 안이가 구원보다 중요하단 말입니까? 토마스 머턴은 ‘고독 속의 명상’에서 “감사와 배은망덕 사이의 중립적 입장은 없다. 감사하지 않는 이들은 곧 모든 것을 불평하기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원망과 불평이란 망국 백성의 근성입니다. 구원이란 가장 큰 은총에 대한 감사보다 작은 부족 때문에 큰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감사가 작아지면 불평은 커지고, 감사가 커지면 불평은 작아집니다.
사람들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조약돌에 걸려 넘어집니다. 산 같은 구원의 은총을 받고, 조약돌 같은 원망 때문에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탈락합니다. 세상에서 원망과 불평을 만들어내는 것들은 구원에 비해 볼 때 작은 조약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것들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현재 것을 즐길 수 없고 미래로 진보할 수 없습니다. 될 수 있으면 과거를 빨리 잊어버리고,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가 불평투성이가 되고, 미래를 포기하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10에서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원망과 불평의 결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가나안은 불평과 원망이 어울리지 않는 곳입니다. 가나안은 하늘나라의 상징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적합하지 못합니다. 이 이야기는 꼭 6개월 전에 한 번 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카네기는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법칙을 ‘3C 법칙’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비판하지 않는다(criticize),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condemn),
남에게 불평하지 않는다(complain).
남에게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에 불과합니다.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절대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원망과 불평은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이런 원망과 불평이 없어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람은 현실을 넘어 미래를 봅니다.
13절에는 모세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라고 합니다. 이 말은 10절의 “심히 두려워하여”에 대한 해답입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애굽인이 뒤에 미친 것을 보고”에 대한 해답입니다. 모세는 다시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겠다”고 한 말에 대한 해답입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는 설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앞을 봅니다. 현실이 미래의 디딤돌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
탄은 우리의 과거를 가지고 트집을 잡습니다. 그것이 그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과거에 얽매이게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잭 하일스는 그의 책에서 “향수병은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와 미래를 즐기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뒤를 돌아보고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 걸림돌이 됩니다. 애굽을 잊어야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세상을 잊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잊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무려 40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완전히 잊고 노예 근성을 버리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 기간이 40년이란 말입니다.
빌립보서 3:13입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뒤에 것 잊어야 앞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앞을 향해 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뒤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정신질환이란 과거와 동일한 행동을 하면서 전혀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고 동일한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정신질환이란 말입니다.

결론
“오늘의 생각은 내일의 행동을 낳는다. 오늘의 고집은 내일의 증오를 낳는다. 오늘의 질투는 내일의 분노를 낳는다. 오늘의 분노는 내일의 학대를 낳는다. 오늘의 욕망은 내일의 간음을 낳는다. 오늘의 욕심은 내일의 횡령을 낳는다. 오늘의 죄책감은 내일의 두려움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과거를 벗어버리십시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충실하게 사십시오. 현재 눈 앞에 있는 작은 어려움 때문에 큰 구원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작은 어려움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는 비교도 안됩니다. 이미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마침내 하늘나라에 다다르게 합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가나안에 무사히 도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나의 것이 아닌 과거에 집착하거나 돌아가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 한 해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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