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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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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21일-1637호 최용우의 산골편지
주인 있어요!
시골의 산과 들판에 나무와 풀과 벌레와 짐승들이 가득합니다. 가뭄에 물 주는 사람 없어도, 홍수에 비바람 피할 그늘막 쳐주는 사람 없어도 하나님이 물 주고 햇볕 주고 바람 주고 비료 줘서 자연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옮겨 심은 호박에 물을 흠뻑 주려면 조루에 가득 두 번은 퍼 날라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고 비를 내려 주시면 금방 땅 깊은 곳까지 젖어듭니다. 그래서 온 세상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논과 밭과 밭둑에 자라는 곡식은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때를 따라 김을 매주고 거름을 주어서 땀흘려 가꿉니다. 우리집 옆 빈 논에 가득한 미나리도 워낙 풀이 많아 마치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인이 있어서 거름을 뿌려주고 검불을 거두어내고 논둑의 풀을 베어내면서 가꿉니다.
요즘 도시 사람들이 시골로 나들이 삼아서 나물을 뜯으러 많이 오는데, 시골에서 자라는 것은 다 주인이 없는 줄 압니다. 그래서 배낭 가득 마구 뜯어가고 따 가는데 참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그거 주인 있어요.” 해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이왕 딴 것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냥 가지고 가버립니다.
시골의 농부들은 다음에 또 수확할 것을 생각하고 아직 어리거나 약한 것은 조심조심 다루는데, 우정장회관 할머니가 또 화 내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미나리꽝에 들어가서 인정사정 없이 막 밟고 다니며 싹 쓸어간 모양입니다. 다음에 다시 올 일 없으니 가릴 것 있나요.
이장님은 요즘 동네 입구 평상에 앉아 있다가 마을에서 나오는 낯선 차들 세워놓고 검문(?)를 합니다. 지금 대전에 나가계신 정 집사님네 두릅나무밭을 대신 지키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정 집사님이 기력이 너무 쇠하여 정성껏 가꾸어 놓은 두릅밭을 그냥 놔두고 아들집에 잠시 가 있는 중인데, 그 틈에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차를 대놓고 두릅을 막 따가 버린다니까요.
도시 사람들은 쉬는 날 여가로 시골나들이를 와서 산나물이나 약초를 따 가는 부수입을 올린다고 좋아라 할지 모르지만, 시골 사람들은 그것이 살아가는 수입원이에요. 시골 사람들 인심 좋고 순박하다고 안심하고 막 따가지 마시고 잘 가려서 주인이 없는 것만 따가세요.
시골 사람들의 직장은 논과 밭이고 때로는 논둑이나 산언덕에도 애써 가꾸는 나물이나 곡식이 있어요. 논밭에 울타리는 없지만 주인은 있답니다.
최용우/전도사
<햇볕같은이야기(http://cyw.pe.kr)>라는 꽤 괜찮은 인터넷신문을 만들며, 충청도 산골짜기에 있는 목회자 쉼터 ‘산골마을-하나님의 정원’에서 오가는 나그네들을 섬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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