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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20:2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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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노열 목사 |
참고 : | http://www.koabbey.com/16497 |
관상설교란? - 하나님께서 하시는 설교이다. 설교자는 하나님 면전에서 전하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관상설교란 이유는 설교자가 "관상상태"를 유지하면서 하는 설교이기 때문에 다른 설교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를 이름이 없어 "관상설교"라 스스로 이름 붙였다. 좀 교만한 생각이 아닌가 하면서도 꼭 "관상설교"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누가 무어라 하든지 그것이 "관상적 설교"라고 나는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물론 온전한 관상상태 속에서 설교는 어렵지만 지향하고 노력하고 있다. 본문 묵상과 자료 수집하고 기도(관상기도)하면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해 본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부탁한다. 설교 전에 준비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령께서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비운다. 예배전 관상기도를 통하여 성령께서 하나 되어 주심을 최대한 유지한다. (주님 나와 전인적으로 하나되시어 아버지의 뜻대로 말씀 하소서...) 그리고 전 예배 인도를 성령께 맡긴다. 설교 시간에는 더욱 나(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까지)를 믿음으로 주께 맡긴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내 속에서 한없이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들는 그대로 전한다. 체면이나 미움도 사랑도 계획도 의욕도 다 버린다. 하나님 면전에서이기 때문이다. 영감을 주는 대로 다시 말해서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 전한다. (때로는 마음 속으로 이것이 아닌데 싶더라도 그대로 전한다) 하나님의 평가가 있으시기 때문이다.(보시고 들으시기 때문이다)- 고려수도원 박노열 목사.
마 20:20~28 섬기는 자가 되라 주제: 44, 헌신 2007. 12. 30.
◎ 서론 : 야고보와 요한은 그리스도의 왕국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미리 확보하고 싶어했다. (마 18:1~4, 눅 22:24~30) ※ 예수께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시려 한다면, 지금 그분의 왕국에서의 지위와 권력과 권위를 확실하게 약속받아두어야 할 때였다. 1. 개인적인 위대함을 추구 (20~21) 2. 위대함이 요구하는 대가 (22~23) 3.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23~28) 1. 개인적인 위대함을 추구 (20~21) ※ 헛된 야망과 개인의 위대함을 추구하는 죄를 주목하라 (5가지) 1). 제자들은 자기 자신을 추구했다. ※ 야고보와 요한의 관심은 오직 명예로운 자리 뿐, 다른 이를 섬기는 데는 관심 없었다. ※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화려한 예식, 지위와 인정, 권력과 권위들이었다. 2). 헛된 야망은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는 것이다. ※ 그들의 어머니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왔다는 것은 예수님을 속이는 행위이다. ※ 그들은 어머니인 살로메(마 27:56,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자매=막 15:40, 요 19:25)를 설득하여 어머니를 앞세워 어머니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3). 헛된 야망은 영향력, 지위, 권력을 잘못 사용하게 만든다. ※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그리스도 주위에 내적 핵심그룹을 형성했던 이들이다. ※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다고 여겼다(막 9:2). 이것은 가족관계를 이용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4). 헛된 야망은 교만에서부터 나온다. ※ 그들은 자신들이 더욱 귀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음으로 자부심을 드러낸다. ※ 그들은 자신의 요구가 충분히 허락될 것으로 기대했다. (어머니와 함께 와서 절했다) 5). 헛된 야망은 또한 현실을 오해하게 된다. ※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잘못 해석했다. ※ 예수께서 로마의 압제를 전복시키고, 하나님의 왕국이 권력을 얻게 된다고 생각 했다. ※ 핵심은 헛된 야망은 현제가지고 있는 것들을 지키는데 초점을 맞추었지, 영원히 지키는 데는 관심이 없었 다. 2. 위대함이 요구하는 대가 (22~23) ※ 위대해지려면 무엇이 요구되는가? 한 사람이 치러야할 대가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1).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 위대함이란, 순종과 제자도의 고난과, 자아와, 안락과 방종과 사치로부터의 죽음을 포함 해야 한다는 사실 을 이해해야 한다. ※ 위대함이란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를 알고 이해하는 것과, 삶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다. 2). 고난의 잔을 마시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 매일 자신에 대하여 죽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어떤 고통이든지 감당해 내려고 자신의 생명을 드려야 한다.(22~23) 3). 위대함은 세례라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요구되는 대가를 치루는 것이다 ※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하더라도 그렇다. 4). 결정해야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 “우리가 할 수 있나이다.” 야고보와 요한의 답이다. ※ 위대함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대가가 무엇이든지간에 그분과 함께 고난과 죽음도 함께 당하리라는 결심 을 하고 도전을 받아들이게 된다. 5). 위대함은 확고히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것이다. ※ 어떤 고난이 오든지, 어떤 반대가 오든지, 간에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다. ※ 야고보와 요한은 그리스도의 세례와 함께 세례를 받고 그 잔을 마셨다. (눅 14:33, 9:23~24, 14:26~27, 롬 8:13, 갈 5:24, 빌 3:8) “야고보”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다. 순교의 잔을 최초로 마신 첫 사도였다. “요한” 약 100세(AD 95~96년에 밧모섬에서 계시록 기록)까지 살다가 잔을 마셨고,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 으로 고난의 세례를 받았다.(사도들의 죽음과 유배) ※ “잔”이란 사람이 자기 내부로 취하여 감당해야할 것을 말하는 내적인 고난과 고뇌이다. ※ “세례”는 외부에서 그에게 부어지는 것으로서 외적인 고난이다. ※ “고난의 잔”은 시험과 고통과 슬픔과 마음이 상하는 것과 고난과 실망, 그리고 눈물의 쓴 것과 고뇌를 마시는 것이다. “예” 겟세마네에서의 그리스도의 경험(마 26:36~46), 밧모섬의 요한의 경험(계 1:9) ... ※ “고난의 세례”는 고생, 거절, 학대, 조소, 반대, 박해 그리고 순교에 처해지는 것이다. 3.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23~28) 1). 위대함이란 영원한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 우편이든 좌편이든 하나님께서 알아서 그 자리를 주실 것이다.(천국의 영광의 차이) ※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권한은 하나님께서 정하신다고 하신다. ※ 스스로 섬김으로써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자와, 자신이 종이 됨으로써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를 구별하셨다. (마 10:27, 요 12:26, 13:14, 21:16, 고전 6:20, 7:22) 2). 위대함이란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 세상에서 말하는 위대함은 ① 외적인 관점 : 권력, 명성, 인정, 영향력, 권위, 지배, 지위에 의해서 측정된다. ② 내적인 관점 : 부, 건물, 자동차, 시설물, 일할 수 있는 능력, 성취목표로 측정된다. 3). 위대함이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 가장 위대한 자는 모든 이의 종이 되는 것이다.(롬 1:1) ① 큰 자는 섬기는 자이다(26) ② 으뜸인 자는 종이 되는 것이다(27) ※ 섬기는 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고, 모든 이가 같은 열정과 헌신으로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 10:42, 18:14, 눅 22:26, 요 13:14, 엡 6:7, 히 12:28, 잠 22:4, 미 6:8) 4).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28) ① “인자가 온 것은” 이 땅에 오심으로 ②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모든이의 종이 되셨기에... ③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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