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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누군가를 만지라 (Reach Out and Touch Someone)
사도행전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226 추천 수 0 2011.06.29 16:59:48성경본문 : | 행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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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
2009.6.7 (김 영봉 목사)
나아가 누군가를 만지라 (Reach Out and Touch Someone)
-- 사도행전 6:7
1.
우리는 지금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 기간(season of Pentecost)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절은 부활절 후 50일이 지난 주일부터 시작하여 강림절(Advent) 이전까지 25주간 동안 지속됩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 살아갔던 이야기들을 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초대 교회 교인들처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바라기는, 더욱 깊은 영적 생활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사람들로, 우리 교회가 성령의 공동체로서 더욱 성숙하기를 기원합니다.
‘성령의 사람’ 혹은 ‘성령의 공동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연상되십니까?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 성령 충만한 공동체가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으로 새로 지어지고 그분의 능력에 사로잡히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두드러지게 일어나는 변화가 ‘원심적인 움직임’(centrifugal movement)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사로잡는 순간, 우리의 눈을 밖으로 향하게 하시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보게 하시며, 안전지대를 벗어나 낯선 사람을 향해 나아가게 만듭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살지 않고 끊임없이 낯선 사람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의 사람들 그리고 성령의 교회는 부단히 안전지대를 넘어 낯선 사람들과 낯선 지역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6장 7절, 한 절만 읽었습니다. 이 구절은 노래로 따지자면 후렴구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에서 이 후렴구가 세 번 반복됩니다. 이 후렴구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교회가 복음을 들고 부단히 밖으로, 밖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을 단계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6장 7절은 예루살렘 도시 안에서 복음이 퍼져 나가고 있음을 보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9장 31절에 두 번째 후렴이 나옵니다.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면서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복음이 예루살렘의 경계를 넘어 유대 지방과 갈릴리 그리고 사마리아 지방에까지 퍼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12장 24절과 25절에 세 번째 후렴이 나오는데, 이 대목은 복음이 팔레스틴을 벗어나 땅 끝을 향해 나가는 전환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성경을 좀 아는 분이라면,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1:8). 이 말씀에 따라, 사도행전은 교회와 복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예루살렘에서부터 땅 끝을 향해 퍼져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라면 이 원심적 운동을 멈출 수 없습니다.
2.
오래 전, 어느 통신 회사의 광고 문구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Reach Out and Touch Someone! “나아가 누군가를 만지라!” 최근에는 미국의 우체국(US Postal Service)에서 이 광고 문안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전화로 혹은 편지와 카드를 사용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만지라는 메시지입니다.
알고 보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멀리 떠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롬 5:8) 우리에게 손을 뻗어 우리의 영혼을 만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지,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 지어졌는지, 우리의 삶에 진정한 희망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다 그렇게 사니 나도 그렇게 사는 방법 밖에 없다고 체념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찾아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만져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에게 깨어났고, 영적인 존재로 살아났으며, 참된 소망이 있는 삶으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영혼을 만지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전도한다는 말은 모든 영혼을 찾아가 그 영혼을 어루만져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에 의해 거듭났고 영생을 누리며 성령의 능력 안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낯선 사람을 찾아가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영혼을 만지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이란 낯선 사람에 대해 관심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만일 ‘나의 믿음은 나의 사적인 문제일뿐이며, 나는 오직 내 앞 가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종교인이기는 할망정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누구를 만나든 오직 전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는 ‘전도 광신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한국 식품점 입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대개 그런 곳에는 열심히 전도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열심을 탓할 수는 없는데, 그분들의 지나친 열심이 때로 아니 자주 공해처럼 느껴집니다. 교인도 그렇게 느끼니, 교인이 아닌 사람은 오죽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전해주는 전도지를 기쁘게 받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이 전도자의 손길을 피하면서, “저는 받아도 보지 않을 것이니 주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답니다. 전도지를 받아서 버리기가 죄스러워서 차라리 안 받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한 말입니다. 그분 나름대로는 좋은 뜻을 가지고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도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라붙어 전도지를 찔러 주려 했고, 이분은 재빨리 피했습니다. 그랬더니 전도지가 땅바닦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분은 전도자가 떨어진 전도지를 주울 거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등 뒤에서 그 전도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도지를 땅에 떨어지게 했으니, 당신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질거요!” 이분도 화가 나서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아니, 왜 안 받겠다는 전도지를 찔러 주어 떨어지게 하고, 그 죄를 나에게 덮어 씌우는 겁니까? 왜 애꿎게 저를 죄인으로 만드느냐구요!”
이같은 태도로 전도에 열심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같은 ‘전도 광신주의’로는 ‘구하는 영혼’보다 ‘등 돌린 영혼’을 더 많이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식의 전도를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전도’가 아니라 영혼에 대한 ‘사랑’을 품기를 원하십니다. 영혼을 진실하게 사랑하여 낯선 사람을 찾아 친구가 되고 함께 삶을 나누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 결과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영적 여정에로의 초대’이며, 그것이 ‘Authentic Outreach’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자기만의 신앙인’이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혹은 존 스토트(John Stott)가 말한 ‘토끼굴 신앙인’, 즉 믿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이 되는 것도 잘 하는 일은 아닙니다. 반면, 전도 광신자가 되는 것은 더 더욱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까지 수치를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옵션은 이 세 가지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낯선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어 줌으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사람의 영혼을 만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 성령의 사람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렇게 된 후에도 계속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낯선 우리를 찾아 오셔서 사랑으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3.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보았듯, 사도행전의 교회는 끝임없이 밖을 향해 나갔습니다. 바깥으로 나아가 낯선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주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끝으로 나감으로 성령께서는 수 많은 사람들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성령의 사람들로 자랐습니다. 교회마다 힘을 얻고 믿는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와지자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같은 원심적인 운동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면 이같은 움직임이 끊임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맥클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센터빌로, 매나싸스로, 헤이마켓으로, 리즈버그로, 매릴랜드로, 끊임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더 많이 끌어 모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더 많은 영혼을 만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몸을 떼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여 성령의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원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사는 거룩한 교회들이 더 많아지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세상이 달라지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2007년 9월에 매나싸스 캠퍼스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1년 9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이 캠퍼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참으로 다양하고 또한 감동적입니다. 지난 년초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게 하기 위해 센터빌로의 이전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6월 28일에 Old Centreville Road에 있는 센터빌 UMC에서 우리 교회를 초청하는 문제를 두고 교인 총회를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결정되면 우리는 한 두 달 정도의 준비를 거쳐 센터빌로 이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일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이전에는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센터빌 UMC는 백인 중심의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지난 몇 년 동안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교인들은, 다인종 거주지인 센터빌에 위치한 교회로서 99% 백인만 모인다면 미래가 없으며,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교회를 초청하려는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울의 꿈에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행 16:9)라고 말했던 것처럼, 센터빌 교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와서 타인종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지난 1년 9개월 동안, 매나싸스에서 우리는 우리 자체의 목회와 선교에만 집중했었습니다. 이제 센터빌로 가면 한인 이민자들을 향한 우리 자체의 목회와 선교만이 아니라, 센터빌 교회가 영어권 한인 이민자들과 아시아 이민자들 그리고 다른 소수 인종들에게 다가가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해 보지 않은 일입니다. 한 편으로는 부담스럽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가슴 뛰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멋진 선교입니까?
저는 캠퍼스 이전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해 오면서, ‘혹시나 성령께서 우리를 안전지대로부터 밀어내고 계신 것이 아닌가?’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유럽으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던 바울을 이끌어 내어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셨던 성령께서 오늘 우리를 새로운 선교지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번 예배 처소 이전을 통해 우리 매나싸스 캠퍼스가 제 2의 출발을 도모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제 2의 출발과 함께 센터빌로 나아가 그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는 일에 헌신할 분들을 찾습니다. 지금의 매나싸스 캠퍼스에는 모두 합하여 140명 정도가 모이고 있는데, 이번 이전을 통해 200명을 넘어서기 원합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행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혹시나 성령께서 이번 기회에 여러분을 밀어내려 하시는 것은 아닌지, 귀 기우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이전을 계기로 센터빌 캠퍼스가 든든한 공동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지금 우리 교회는 성령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거대한 두 개의 운동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속한 버지니아 연회의 흐름입니다. 2006년부터 연합감리교회 버지니아 연회는 앞으로 30년 동안 250개의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모든 역량을 이 일에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All Things New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세를 확장시키자는 뜻이 아닙니다. 연합감리교회가 영적으로 깨어나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에 헌신하자는 ‘대각성 운동’입니다.
또 다른 흐름은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추진하기로 한 ‘일천교회 십만 제자 운동’입니다. 지난 4월 LA에서 모인 한인연합감리교회 전국 총회에서는 2020년까지 일천교회와 십만 성도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모인 우리 교회 합동임원회에서는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 교회는 앞으로 기도와 물질로 참여할 것입니다. 새로운 교회 개척을 위해 기도하며 하루 1달러씩 헌금을 드릴 분들을 찾을 것이며, 목회자들은 십일조와 다른 헌금을 드리는 것에 더하여 사례비의 1%를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위해 나눌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두 가지 운동의 전면에 서 있습니다. 버지니아 연회의 1,200개 교회가 우리 교회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안에 있는 300여 한인 연합감리교회들이 우리 교회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우리 교회가 이 운동에 있어서 영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기대하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단순히 이 운동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건강한 교회들을 지속적으로 개척해 내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하겠습니다. 이 일에 목회자와 성도들이 모두 소명감을 가지고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매나싸스 캠퍼스 사역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캠퍼스를 잘 키워서 거룩하고 건강한 공동체로 가꾸게 되면, 이것이 다른 교회들에게 영감이 되고 모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북버지니아에 또 하나의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이번 이전을 계기로 센터빌 캠퍼스로 옮겨갈 것을 두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는 센터빌 캠퍼스가 안정되는 즉시 제 3의, 제 4의 교회를 개척해야 합니다. 맥클린 캠퍼스의 일부를 떼어 내어 개척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체 교회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교회가 아니라, 계속하여 새 교회를 개척하여 내보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맥클린 캠퍼스는 새로 오는 분들을 성령의 사람이 되도록 돕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교회 개척을 위해 내보내고, 그분들이 떠난 빈 자리에 또 새 사람을 받아들이는 ‘순환 운동’의 거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맥클린 캠퍼스는 건강한 교회를 키워내는 모판이 된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선교의 모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니,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무슨 교회를 더 세우느냐?’고 묻고 싶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의문에 저도 100% 동의합니다. 만일 이 두 가지 운동이 단지 교세를 불리자는 노력이라면, 저도 동참할 뜻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 교회가 하자는 일이 자체의 교세만을 위한 것이라면, 제가 먼저 그만 두겠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우리 각자와 잠 자고 있는 교회들을 흔들어 깨우려는 성령의 역사라면, 참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시려는 성령의 이끄심이라면, 참여하지 않는 것은 큰 죄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뜻이 흐려지고 교회의 권위가 추락된 이 세상에 거룩하고 건강하며 생명력 있는 교회들을 회복시켜 세상을 변혁시키시려는 성령의 역사라면,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예인지 모릅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는 참으로 자랑할 말한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자신을 드리는 성도들로 가득 찰 때까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결코 만족하거나 멈추는 일이 없이, 성령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낯선 사람들을 찾아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만지도록 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성령 충만한 교회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영상을 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버지니아 연회에서 만든 영상물입니다. 우리 각자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나아가 누군가의 영혼을 만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 영상물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상물을 보시면서 “나아가 누군가를 만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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