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팔복8]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김동명 목사............... 조회 수 2482 추천 수 0 2011.07.13 20:00:16
.........
성경본문 : 마5:9 
설교자 : 김동명 목사 
참고 : http://cafe.daum.net/jesusinto/HfEY/40 

<팔복강해 8>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5:9-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신을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기도문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이 기도문에서 기도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위해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 받게 될 것”입니다(마5:9). 이 말씀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차차 하게 되겠지만 평화를 위해서 사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시금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역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살펴볼 때에 여러분의 깊은 관심을 요구하면서 세 가지 면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세상이 구하는 화평과 그 노력에 대해서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둘째는 진실로 평화를 위해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셋째는 평화를 위해 사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Ⅰ.세상이 구하는 평화와 그 평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평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일찍이 천명하신 적이 있습니다(요18:36). 이 말씀을 ‘평화’의 문제와 관련해서 살펴본다면, 세상이 구하는 평화와 주님이 구하는 평화 사이에는 매우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차이점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자칫 세상이 구하는 평화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남한도 통일을 추구하고, 북한도 통일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만약 그 차이점을 모른다면 남한에 살면서 북측의 통일론을 따름으로 이적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추구하는 평화와 주님이 말씀하는 평화가 서로 다르지 않는지, 다르다면 어떤 면에서 다른가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살펴보십시오. 수많은 갈등들이 존재합니다. 민족과 민족이 갈등합니다. 인종과 인종의 갈등, 강대국과 약소국의 갈등,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 남자와 여자의 갈등, 어른과 아이들의 갈등, 그리고 개인과 개인과의 갈등, 이념과 사상의 갈등, 종교와 종교의 갈등, 문화 갈등, 문명 갈등 등등 온통 갈등 투성이입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갈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교회까지도 많은 갈등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 갈등은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합니다. 미움과 시기, 질투로 시작해서 분열과 분쟁, 폭력과 살인,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을 파괴해서 세상은 온통 고통의 도가니입니다. 사람들은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으며, 세상은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폐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이 파괴되어서 폐허가 되어가는 것보다 사람과 사람이 갈등하고 그 갈등으로 인한 세상과 사람이 황폐화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특히 20세기에 와서 평화를 위한 노력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수많은 나라들이 머리를 맞대고 손에 손을 잡고 힘쓰고 애쓴 20세기는 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참혹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1,2차 세계 대전을 비롯해서 중동의 분쟁은 엄청난 살육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21세기를 보십시오. 평화를 위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비용을 들려서 논의하고 노력하는 이 21세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은 미국의 심장부에 테러를 자행하여 3,000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을 몰살시켰고, 이에 맞서는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습니까? 평화를 논하면 논할수록 세상은 왜 걷잡을 수 없는 전쟁과 살육에 빠져드는 것입니까? 수많은 나라들이 모여서 국제연합기구를 결성하고, 평화를 위하여 막대한 비용을 사용하는 데도 불구하고 평화는커녕 이전보다 더 심한 폭력과 전쟁으로 세상이 초토화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그런 노력을 더 이상 계속해 갈 필요가 과연 있는 것입니까?


  세계는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를 살펴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국과의 전쟁이 끝나나 했더니 일본과의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해야 했고, 그 전쟁이 끝나나 했더니 남과 북이 민족의 사활을 걸고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평화를 위해 사용하는 비용은 우리 국민들을 다 먹여 살리고도 남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여러 빈국들을 다 먹여 살릴 만큼의 막대한 비용을 사용하고도 핵전쟁의 위협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과연 평화를 얻을 수 없는 곳이란 말입니까? 평화를 위한 모든 인간의 노력은 무익하다는 말입니까? 왜 국제 사회나 우리 민족이 기울인 평화를 위한 노력은 다 번번이 실패하고 만 것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여기서부터 문제를 해결해 가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의 밑바탕에는 죄라고 하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인간 안에 있는 죄가 정욕과 탐욕과 이기심과 폭력성을 산출해냅니다. 죄는 모든 더러운 것과 악한 것을 솟아나게 하는 원천입니다. 이 원천을 막지 않는 한 세상에는 평화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복음이 없이는 평화의 실현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우리는 중단해야 할까요?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중지해야 할까요? 오직 교회에 모여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만 하고, 전도만 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금하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그렇습니다. 세상이 지금까지 기울여 온 평화를 위한 노력은 숭고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노력을 멈추지 말되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는 복음으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Ⅱ.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세상이 지금까지 기울여 온 평화의 노력은 그 뜻이 숭고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럴지라도 그런 노력은 계속 기울이되 우리는 복음을 통해 화평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위한 화평의 노력은 어떻게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까?

  

  첫째, 내가 평화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릴 적에 있었던 일입니다. 앞 동네 친구하고 우리 동네 친구가 싸웠습니다. 그래서 중재를 하려고 갔지요. 그런데 싸움을 말리다 보니 둘 다 하는 짓이 너무 미운 것입니다. 그래서 둘 다 패버렸습니다. 저는 평화의 중재자가 가져야 할 자질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습니다. 자칭 세계 속에서 경찰국가라고 하는 미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습니다. 그들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과 사용하는 돈은 막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들 속에도 역시 평화의 중재자가 될 자질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내가 먼저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내가 누리고 그 평화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시작은 평화로 시작했다가도 싸움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평화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가 평화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내 안에 있는 불화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불화의 원인, 폭력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앞에서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온갖 악을 만들어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는 하나님을 향한 공격성을 갖게 하고, 사람을 향한 공격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죄가 그 속에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공격하고 사람을 공격합니다. 그런 공격성을 가진 채 아무리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수고한다고 해도 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죽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어떻게 죽입니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죄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도 죄는 그렇게 쉽게 우리 속에서 뿌리 뽑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한 후에도 또 죄는 우리의 생각과 삶 속에 잡초처럼 자라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의 회개뿐만이 아니라 매일 십자가를 의지하고,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아를 파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를 힘쓰고 매일 열렬한 기도 속에서 죄가 우리를 지배하기 전에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시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삶을 하루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평화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죄를 죽임으로 평화의 소유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둘째, 내가 평화의 보급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는 오직 복음을 통해서 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실 때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주님이 임하시는 곳에 평화가 임했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에 평화가 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평화를 온 땅에 가져오게 하기 위하여 온 땅을 지배하는 죄를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래서 예수를 믿고,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들이 이룬 교회에 참된 평화가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화평을 이루셨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함으로 죄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국제 연합 활동도 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반전 시위도 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막대한 평화의 비용을 지불하는 일에 참여도 해야 하지만 정말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평화의 왕국이 세워지게 하고, 커져가게 하고, 그래서 세상을 온통 평화의 왕국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십시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그 안에 있는 죄를 다 죽이고 평화의 사람이 되기까지 한 영혼을 위한 전도와 기도와 양육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평화의 보급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 평화가 실현될 것입니다. 


  셋째, 평화가 실현되도록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가 평화를 누리는 자가 되고,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것만 가지고는 하늘의 평화가 이 땅에 온전히 실현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자 하고, 평화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여도 이를 막는 세력이 있고,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들이 강력하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바로 어떤 것들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마5:44)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헐벗거든 입혀라(롬12:20).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18:22).

 

  우리가 이런 가르침들을 따라 살아가려면 우리는 막대한 희생이라는 값을 치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 속에 평화가 구현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구호만 외쳤지 주님의 교훈을 따라 희생의 값을 치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세상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우리의 일에 동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비웃고 조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공간 속에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실천합시다. 분열이 있는 곳에 가서 평화를 위해 일하되, 우리를 희생합시다. 우리의 눈물이 흘려지고, 우리의 피가 흘려진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평화가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됩시다.


  그렇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했는데, 여기서 화평케 한다는 것은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자가 아니라, 평화를 위하여 기도만 하는 자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평화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적극성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그러므로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구합시다. 평화를 위해 평화를 누리는 자가 되고, 평화를 위해 평화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되고,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이를 위해 희생하는 자가 되기를 구합시다. 그러면 주님은 세상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알 것이요. 주님도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Ⅲ.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로 [소유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다시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소유된다는 말을 떼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근접하게 닮은 존재가 되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에 가장 근접한 성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죽을힘을 다해 일하는 종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아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헤아리고 그 뜻을 성실하게 이루어 드리려고 전심전력하는 아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렇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영광스럽게 상속받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 노릇하는 그런 존귀한 아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아들을 최상의 아들로 성공시키려는 세상의 아버지의 노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사랑에서 나온 하나님의 기대요 소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위해 사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됩시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아 영원히 왕 노릇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됩시다.


  둘째는, [소유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이 인정하여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여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의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심으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죄용서가 아닙니다. 구원이 아닙니다. 단순히 천국에 들어와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영화롭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자기를 위해 사는 삶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평화의 사도로 살기를 구하였습니다.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산 그들은 지금 주님의 나라에서 이미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고 이 모든 역사 속에서 주를 위해 산 자들에게 영광을 주실 때에 그들은 지극히 영화로운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복이 있다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하시기 위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라. 평화를 위해 사는 자가 되라. 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죽이고 평화를 누리는 자가 되고, 이 평화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자가 되고, 그리고 내가 사는 시공간 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까지 네가 치를 수 있는 그 어떤 희생의 대가라도 아낌없이 치루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아들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평화를 위해 기도할 자가 누구입니까? 평화를 위해 증거자가 되고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하는 자 누구입니까? 오늘 평화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음을 깨닫고 기꺼이 나서는 자에게 주님은 함께 해 주실 것이며,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5477 사도행전 제자 디모데..... 행16:1-5  이정원 목사  2011-07-14 2323
5476 사도행전 분열의 아픔 ..... 행15:36-41  이정원 목사  2011-07-14 1837
5475 사도행전 예루살렘 공의회(2) ..... 행15:12-35  이정원 목사  2011-07-14 2321
5474 사도행전 예루살렘 공의회(1) ..... 행15:1-11  이정원 목사  2011-07-14 2471
5473 사도행전 승리의 귀환 ..... 행14:19-28  이정원 목사  2011-07-14 2250
5472 사도행전 하나님께 돌아오라 ..... 행14:8-18  이정원 목사  2011-07-14 2445
5471 사도행전 이고니온 선교 ..... 행14:1-7  이정원 목사  2011-07-14 2057
5470 누가복음 성만찬과 하나님 나라 ..... 눅22:14-20  이정원 목사  2011-07-14 1997
5469 사도행전 설교에 대한 두 가지 반응 ..... 행13:42-52  이정원 목사  2011-07-14 2446
5468 누가복음 은혜를 잊지 맙시다 ..... 눅17:11-17  이정원 목사  2011-07-14 2821
5467 사도행전 구브로 선교 ..... 행13:4-12  이정원 목사  2011-07-14 2455
5466 마태복음 [팔복9]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의 복 마5:10-12  김동명 목사  2011-07-13 2753
» 마태복음 [팔복8]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5:9  김동명 목사  2011-07-13 2482
5464 마태복음 [팔복7] 마음이 청결한자의 복 마5:8  김동명 목사  2011-07-13 2928
5463 마태복음 [팔복6] 긍휼히 여기는자의 복 마5:7  김동명 목사  2011-07-13 2659
5462 마태복음 [팔복5]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의 복 마5:6  김동명 목사  2011-07-13 3027
5461 마태복음 [팔복4] 온유한 자의 복 마5:5  김동명 목사  2011-07-13 2398
5460 마태복음 [팔복3] 애통하는 자의 복 마5:4  김동명 목사  2011-07-13 2812
5459 마태복음 [팔복2] 심령이 가난한자의 복 마5:3  김동명 목사  2011-07-13 2769
5458 마태복음 [팔복1] 복이 있나니 마5:3-10  김동명 목사  2011-07-13 3130
5457 히브리서 죄를 몰아내는 길 히3:13  한태완 목사  2011-07-10 1949
5456 누가복음 참 성공적인 삶 눅12:13-22  한태완 목사  2011-07-10 2388
5455 창세기 아들을 바쳐라! 창22:1-14  정용섭 목사  2011-07-08 2523
5454 마태복음 세례를 베풀라 마28:16-20  정용섭 목사  2011-07-08 2175
5453 요한복음 성령을 받으라! 요20:19-23  정용섭 목사  2011-07-08 2300
5452 베드로전 하나님의 영광이 답이다 벧전5:6-11  정용섭 목사  2011-07-08 2372
5451 전도서 나는 청춘이다 전3:1-22  홍철의 청년  2011-07-08 1868
5450 사도행전 성령강림의 의미 행2:1-13  권진관 형제  2011-07-08 2109
5449 사도행전 큰 고통을 당했을 때 행16:16-26  조용기 목사  2011-07-05 1122
5448 에배소서 영적 전쟁 엡6:10-18  조용기 목사  2011-07-05 2607
5447 히브리서 성경적 삶의 방식 히10:38∼39  조용기 목사  2011-07-05 2310
5446 로마서 영으로 자유로운 사람 롬8:1-2  강종수 목사  2011-07-03 2105
5445 에배소서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Love Begets Love) 엡5:1-2  김영봉 목사  2011-06-29 3232
5444 에배소서 그래도 나는 일어난다 (Still I Rise) 엡3:14-21  김영봉 목사  2011-06-29 3157
5443 사무엘하 네가 아니라 나다 (Not You But I) 삼하7:1-17  김영봉 목사  2011-06-29 265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