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행14:19-28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10·12·28
우리가 살면서 행한 모든 일에 대하여 우리가 언젠가는 하나님께 보고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보고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그 날에 우리는 정식으로 우리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결산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 때 기쁨과 감격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참으로 감격적이고 은혜로운 장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보고할 때도 이러한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여행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놀라운 역사가 많이 있었고 보람과 열매가 가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많은 고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핍박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도망함으로 겨우 위험을 모면했습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왜 루스드라에서는 지켜주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딤후 3:11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그가 비록 돌에 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도 그를 건져주셨던 것입니다. 바울이 나중에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9)라고 쓸 때 그는 이 일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어려움을 당할 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주지 않으시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거나, 도저히 해결할 수 없게 여겨지는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 의지하는 것을 중단하고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조금 더 인내하면 우리도 바울처럼 ‘이 모든 어려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셨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우리도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런 믿음과 고백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1차 선교여정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첫 번째 선교여행을 거의 마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한 번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던 지역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안디옥을 출발하여 실루기아에 가서 배를 타고 지중해에 있는 큰 섬 구브로로 갔으며, 거기서 밤빌리아로 갔는데 그곳에서 마가가 도중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교여행을 계속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으며, 거기서 핍박을 당하여 이고니온으로 갔다가 루스드라로 갔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자 사람들은 사도들을 신으로 숭배하려 했는데, 겨우 그들을 진정시켜 자기들에게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그들을 핍박하던 유대인들이 와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끌어다가 버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19절)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서서 기도했던 것 같은데, 그 때 갑자기 바울이 깨어 일어나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첫 번째 선교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으로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20절)
루스드라에서 더베까지는 적어도 96km나 되는데, 돌에 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던 바울이 어떻게 그 먼 길을 걸어서 갔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는 피를 흘리며 절룩거리면서 그 길을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일 이후부터 바울은 내가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말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훈장처럼 여겼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한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상한 귀로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첫 번째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지도상으로 볼 때 그들이 마지막 선교지 더베에서 처음 출발했던 안디옥으로 가려면 동쪽의 육로를 따라 바울의 고향인 다소로 갔다가, 거기서 배를 타고 실루기아로 가서 안디옥으로 가는 것이 쉽고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다른 여정을 택하여 돌아갔습니다.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우리가 하나님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21-22절)
그들은 더베에서 다시 루스드라로 , 그리고 이고니온을 거쳐서 비시디아 안디옥을 지나 돌아왔습니다. 특히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이 택한 여정은 무모하기까지 한 것이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돌에 맞아 거의 죽었다가 깨어났습니다. 그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는데 바울과 바나바가 다시 그곳으로 간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핍박을 당하여 황급히 빠져나와야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그들은 심한 핍박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우리 같으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을 만났던 곳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왜 그 길을 택하여 돌아가고자 했을까요?
양육과 권면을 위하여
거기에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했을 때 각 도시에는 믿는 사람들이 상당수 생겨났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초신자들이었고 그들을 지도하고 돌보아 줄 지도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겨우 복음의 초보를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형편이었으니 어찌 바울과 바나바가 ‘이제 복음을 전했으니 빨리 돌아가자’는 식으로 행동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비록 많은 핍박을 받았던 곳들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들이 복음을 전했던 도시들을 다시 방문하여 믿는 자들을 돌아보고 돌아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그들에게 더 깊은 진리를 가르쳐 주고자 하는 마음과 그들을 다시 보고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놓고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다시금 그 도시들을 방문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도시들은 완전히 우상과 죄악의 분위가 팽배해 있던 곳들이었습니다. 신전들과 우상들, 사당들, 그리고 사치스럽고 유혹적이고 음란한 분위기 속에서 과연 이 초신자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다시 찾아보고 그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조직하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들이 복음을 전했던 도시들에 들러 성도들을 양육하고 권면하고, 그들 가운데서 장로들을 택하였습니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23절)
이것은 교회를 조직하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질서 있고 규모 있게 유지되며 성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장로들을 택하고 금식기도하면서 그 장로들을 그들이 믿는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이제 이 사람들은 특별하신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교회를 돌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유대권 밖에서 최초로 세워진 교회 조직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환난
바울은 어린 신자들을 양육하며 권면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다가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모든 일이 다 잘되고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낙심하고 심지어는 믿음에서 떠나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그러나 이 핍박과 고난은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축복을 생각할 때 얼마든지 이길 수 있고 감당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 관하여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그리고 이어서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이며 관심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아무리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손해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광과 축복이 보장된 고난이라면 나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 것이라면 고난을 주저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믿음 지키기 위해서 당해야 할 고난을 마다하고, 타협하고 회피한 성도는 그 날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성도의 고난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통하여 더욱 성숙되고 견고한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고난을 많이 겪은 성도는 그만큼 깊은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고난은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가 당했던 모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건지셨다”는 것이 바울의 간증이었습니다. 고난은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제1차 전도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이것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특히 그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우리에게 승리를 얻게 하는 기회인 것입니다.
귀환
바울 일행은 선교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배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26절)
그들이 파송되기 전에 안디옥 교회는 모여서 주를 섬겨 금식했었으며, 그 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그들을 따로 세워 선교사로 파송했었습니다. 그들을 파송해놓고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파송했던 선교사들이 이제 사명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선교여행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때로는 죽음에 직면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여행으로 많이 쇠약해졌으며, 특히 바울은 돌에 맞아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제 그들의 선교보고를 들으려고 모였습니다.
선교보고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 앞에서 자세하게 선교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극히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것을 보고하고”(27절) 이것이 그들이 보고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 선교여행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게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신 분은 성령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내신 분도 성령이셨고, 그들을 구브로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로 인도하신 분도 성령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능력을 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신 분도 성령이셨고, 교회가 설립되게 하신 분도 성령이셨습니다. 보내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들에게 선교사업을 위탁했으며(14:26), 그들은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14:27)을 보고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고하면서 바울과 바나바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사실 그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참으로 겸손하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던 것입니다. 그동안 마음을 조이면서 기도하고 후원했던 안디옥 교회의 모든 성도들 역시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실에 대하여 보고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후원과 이 선교사들의 수고로 복음이 이방 지역에 이르기까지 선포되었으며, 많은 이방인들이 믿고 돌아왔고 이방인들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것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성령님으로부터 같은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일을 하게 하신 분도 성령님이시며,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신 분도 성령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전할 때 성령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하실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겠으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일을 감당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승리의 보고를 올려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