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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의 아픔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837 추천 수 0 2011.07.14 23: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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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15:36-41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성경은 이 세상의 그 어느 책보다 정직하고 진실한 책입니다. 성경에는 결코 거짓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믿음의 위대한 영웅들에 관해서도 성경은 그들의 약점과 실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ex.노아, 다윗, 베드로…). 성경은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실수나 약점들을 감추어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서 그처럼 위대한 인물들도 우리처럼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사람들을 그토록 놀랍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참으로 위대한 선교사였던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늘 바울 같은 인물 앞에서 주눅이 드는 우리들에게 이 사건은 많은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분열의 시작
  

바울과 바나바는 제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갑자기 평안하던 안디옥 교회에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되어 복음의 진리가 확정되고 다시금 교회가 평안해졌습니다.
  이제 바울은 바나바에게 1차 전도여행 동안에 전도했던 지역들을 다시 순회하면서 회심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자고 제의했습니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36절) 아마도 그들이 제1차 전도여행을 마친 것은 겨울이 되기 직전이었을 것이고, 그들이 다시 전도여행을 떠나고자 한 것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전쟁도 겨울철에는 쉬고 봄이 되면 다시 시작했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제의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의견충돌이 생겼습니다.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다시 데려가자고 했고,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때 도중하차한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37-38절)
  바나바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그를 격려해주자는 것이었고, 바울은 그런 사람을 데리고 가면 다시 낭패를 당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은 일을 중시하는 인물이고, 반면에 바나바는 사람을 중시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누구의 의견이 옳은 것일까요?

관점의 차이
  

바나바는 사람을 일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회심한 후에 다메섹까지 가서 그를 예루살렘에 데리고 와 제자들에게 소개시켜주었으며, 다소에 은거해 있던 바울을 찾아다가 안디옥에서 함께 목회를 하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그런 바나바가 이번에는 비록 한 번 실수를 했을망정 마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그를 격려하여 지난날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바나바다운 생각이었습니다. 단순히 마가가 그의 조카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반면에는 바울은 사람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망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울의 생각이었습니다. 마가는 지난번에 바울과 바나바를 버려두고 혼자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마가에게는 바울이나 바나바와 같이 이방인 선교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삼촌이 간다니까 별 생각 없이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과 위험을 당하자 그만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가 도중에 탈락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마가가 도중에 돌아가고 말았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상당히 실망하고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나 한 사람이 낙오하면 열심히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다른 성도에게 큰 실망과 상처를 주게 됩니다. 한 사람의 낙오가 때로는 전체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마가의 도중 탈락으로 실망과 상처를 받았던 바울은 당시의 일을 상기하면서 마가가 같이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도중에 돌아갈지 모르는데, 그 때 우리가 얼마나 실망하고 힘들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 바울의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 일에 일치를 보지 못하고 심하게 다투고 피차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39상)

애석한 결별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인 바울과 바나바는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사도는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그의 고향인 구브로로 갔으며,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39하-41절)
  안디옥 교회는 공식적으로 바울을 지지했던 것 같습니다(40절). 그러므로 바울이 논쟁에서 이겼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논쟁에서 이기고 교회의 인정을 받았지만,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 바울의 발걸음은 매우 무거웠고 그의 마음은 매우 침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쓰라린 가슴을 안고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가 위대한 선교사들이요 사도들이었지만, 그 이전에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훌륭한 믿음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도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두 사도의 다툼과 결별을 알고 계셨으며, 그것을 주관하셔서 선을 이루셨습니다. 선교 팀은 한 팀에서 이제 두 팀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심하게 다투고 피차에 갈라섰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나중에 서로 화해했습니다. 빌레몬 24절에서 바울은 마가를 가리켜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그 때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로마에서 마지막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툴 수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평생 원수 같이 지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분열을 주관하셔서 복음 사역을 선하게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던 마가가 아마도 이 일로 인하여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 때문에 싸우는 것을 보고서 마가가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거절이 마가에게 큰 자극제가 되어 더욱 분발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바나바는 마가의 결심과 각오를 믿어 주었고, 그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마가는 교회의 훌륭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마가는 나중에 베드로의 수행원이 되어 충성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베드로는 마가를 가리켜 “내 아들 마가”라고 불렀습니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5:13) 마가는 나중에 베드로의 증언을 토대로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바울도 결국은 마가와 화해하고 그를 인정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마가를 교회에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골4:10) 그리고 자신의 사역 말기에 가서는 디모데로 하여금 마가를 자기에기로 데려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일시적으로 다투고 각자의 길을 갔지만,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동지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두 사도가 화해하고 있는 모습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감정적이어서 한 번 다투게 되면 그 감정 때문에 너무나 쉽게 흑백논리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와 다툰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여 다시는 만나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만나게 되더라도 서로 비난하고 싸우려 듭니다. 그래서 한 번 적이 되면 화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지나치게 감정에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의견이 달랐고 서로 다투기까지 했으나 여전히 서로를 동역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일시적인 다툼과 분열에도 불구하고 다시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근본적인 목표를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리 다투고 감정적으로 대립되었다 해도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희생시키지는 말아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렇게 심하게 다투었지만 가장 중요한 선교 사역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다툼이 있은 후 즉시 각자 다른 곳을 향하여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러한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비록 다투고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더욱 힘차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사소한 것들 때문에 다툽니다. 그런데 다투다 보면 마치 모든 것을 끝장낼 사람들인 것처럼 싸웁니다. 그리고는 서로 상처를 받아 오랫동안 고생을 합니다. 서로가 부부라는 것을 망각하고 그렇게 싸우다 보면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교회에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다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바울과 바나바가 그렇게 위대한 선교사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연약한 인간이었고 실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실수 많고 어수룩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인도해내시고, 계속해서 말씀을 주시고,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습니다.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때로 열심히 충성해보고자 애를 쓰지만 우리는 번번이 역부족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도저히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을까요? 바울과 바나바도 우리처럼 연약하고 싸우는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그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고 충성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우리가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서 끝까지 승리하게 됩니다.

정당화될 수 없는 분열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과 분열까지도 선하게 인도하셔서 교회에 유익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수를 하고, 때로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실패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심지어는 다툼과 실패까지도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이 우리의 다툼과 실패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싸우거나 분열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싸우지 않고 분열하지 않는다면 더욱 아름답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괜찮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선악 간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화해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는 이렇게 다투고 갈라서는 것이 당연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한 쪽이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잘못된 쪽이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양쪽이 다 옳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는 양쪽을 화해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의견이 달라도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다면 우리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과 자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의 연약함을 용납하고 이해하며 주 안에서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을 늘 고백하는 겸손한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름답게, 놀랍게, 위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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